문화역 284에서 나와 길을 따라 걸었다. 뒤로 고가도로를 개조해 만든 보행공원 서울로 7017이 보인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서소문 역사공원 팻말과 함께 목적지를 알리는 화살표가 반갑다. 선명하고 강렬한 붉은빛의 벽돌은 이곳이 성지임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이 장소는 조선시대 성리학에 반하는 이들과 천주교도들의 공식 참형지였다. 그 아픔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금의 박물관은 많은 이들에게 치유와 위안을 선사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넓은 길로 들어서자 좁은 길이 나온다. 앞을 볼 수 없게 하는 환한 빛이 네모진 문에 가득하다.

 

 

 

길의 끝가지 와서 돌아보니 다시 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신비롭다.

 

 

 

박물관 입구 마당에서 볼 수 있는 작품 '순교자의 칼'과 '수난자의 머리'.

시작부터 고개를 숙이게 하는 분위기에 절로 경건해졌다.

 

 

 

건물을 들어서니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안내하시는 분들마저 차분하시다. 낮은 천장 아래 넓은 홀을 여유롭게 차지한 작품들은 더 고귀해 보였다. 

 

 

 

브론즈에 새겨진 글들을 읽으니 희생과 고난을 감내하는 삶의 무거움이 느껴져 잠시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태석 신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커다랗게 걸려있었는데, 방송에서 보았던 그의 생전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련되고 절제된 인테리어가 멋스럽다. 이제껏 보았던 다른 장소들과는 색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한 층을 내려가 보았다.

 

 

 

특별전시로 정희우 작가의 <풍경이 된 기호>라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서울 종로거리와 서울역 부근의 풍경을 기록한 이 전시는 주로 탁본으로 이미지를 뜬 작품들이었고 담벼락이나 간판 그리고 표지물들의 이미지를 기록하여 잊혀져가는 시간을 담고 있었다.

 

 

 

서울역 주변의 모습을 담은 수묵채색화도 만날 수 있었는데 정겹고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새롭고 특별한 전시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새로운 공간이 보인다. Consolation Hall로 내려가 보았다.

 

 

 

위로와 위안의 방 답게 어두운 조명이 비추고, 사방을 둘러싼 대형 스크린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영상이 은은한 소리를 내며 상영되고 있었다. 성인 다섯 분의 유해를 모신 곳 위로 빛이 어루만지 듯 비추고 있고 기다란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리거나 조용히 쉬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요히 앉아 계절이 지나가듯 흘러가는 영상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밖으로 야외광장이 보인다. 광장으로 나가보지는 않았지만 서있는 사람들은 순교하신 분들의 형상일 듯 하였다.

 

 

 

같은 층의 상설전시관으로 들어가 보았다. 

 

 

 

미래의 모습을 그린 <더 기버> 같은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공간이다. 역시나 넓은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절제된 전시 내용은 여느 박물관과는 다른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천주교의 역사뿐 아니라 서소문 지역의 이야기 등 다양한 전시 내용을 만날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

 

 

 

검을 중심으로 외벽에 새겨진 년도 1801, 1839, 1866.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를 거치며 목숨을 잃었던 수많은 교인들을 가슴에 새겨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한국 천주교 최대의 순교성지인 이곳,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은 한 번쯤 꼭 방문해야 할 장소인 듯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