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낯설게 느껴지는 경희궁을 다녀왔다.
광해군 때 창건되어 경덕궁이라 칭하다 이름이 바뀌었고, 도성 서쪽에 있어 서궐이라고도 한다.
190여 개의 전각과 문이 있었고, 인조부터 철종까지 10명의 왕이 살았던 거대하고 화려했던 궁궐.
숙종이 태어나고 승하했던 곳, 경종과 정조의 즉위식이 있었던 곳, 숙종과 헌종의 가례, 영조와 순조의 승하 등 살아있는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곳이다.
흥선대원군 때 100여 개의 전각을 경복궁 중건을 위해 옮겼고, 일제강점기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대부분 헐리고 훼손되어 그 위상을 잃어버렸다.
현재는 숭정전, 자정전, 태령전 세 전각이 복원되어 있다.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
티켓부스도, 안내하시는 분도 없이 덩그러니 서있어 처음엔 이곳이 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인지 몰랐다.
이 문은 일제가 이토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건물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되었었다.
1988년 경희궁 복원사업 시 다시 옮겨 놓았지만, 원래 흥화문 자리에 구세군 건물이 있어 제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하였다.
정문과 정전을 일직선으로 배치한 경복궁과는 다르게 흥화문은 숭정전 왼편에 위치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두 전각이 일직선으로 놓여있지만, 자리를 잃고 어색하게 서있는 단층 지붕 문은 쓸쓸해 보였다.
흥화문 맞은편으로 City 은행 본사가 하늘을 찌르며 서있다.
정문을 지나 길을 따라 걸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옆쪽으로 아담한 공원에 쉬어갈 장소가 군데군데 보였다.
경희문의 정전인 숭정전.
복원한 건물이고, 조선 시대의 숭정전은 동국대학교의 법당 '정각원'으로 쓰인다고 한다.
정전 좌우로 배치된 건물들의 기와가 여느 궁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흐린 하늘 아래 인적이 거의 없는 유적지가 매우 독특했다.
계단을 올라 안을 들여다보니 일월오봉도가 있는 어좌는 다르지 않다.
문을 지나 마주한 곳은 경희궁의 편전인 자정전이다.
회의, 경연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으로 역시나 복원한 건물이다. 이곳은 숙종이 승하하였을 때 관을 모셔두었던 빈전이기도 하다.
자정전의 복도로 이어진 곳을 따라 가보니 경복궁 교태전에서 보았던 계단식 정원이 있다.
화계에 꽃은 없었지만 봄이 돌아오면 외로운 궁에 화사함을 줄 것 같다.
영조의 어진이 보관된 태령전과 그 뒤로 기이한 모양의 사암을 보지 못했다.
리플릿만 펼쳐봤어도 놓치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
경희궁 터에 세운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금천교를 만났다. 흥화문 안에 놓여있던 다리이다.
그러니, 원래는 경희궁의 정문이 이 다리 앞 쪽에 있어야 한다.
묻혀있던 금천교를 박물관 건립 시 발견된 석조물을 기반으로 2001년 복원했다고 한다.
인왕산의 물줄기도 끊어지고 보호해주는 문도 없는 금천교는 현대적인 박물관 앞에서 생경하게 보였다.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다른 4개의 궁과는 달리 경희궁은 서울시에서 관리한다.
활발하게 복원을 하고 있는 다른 궁들처럼 이곳도 대접을 받으면 좋겠다. 가장 많이 훼손되어 복원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지킴이 하나 없는 궁궐은 왠지 안쓰럽게 느껴진다.
넓지 않은 공간에 몇 채 남지 않은 전각을 봤지만 경희궁은 묘한 매력을 주었다.
지친 일상을 떠나 가끔 쉬어가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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