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산책

 

 

딸이 선물해 준 최은영 작가의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

 

 

 

작가의 손글씨가 넉넉한 사랑으로 부풀려진 하트와 함께 적혀있다.

 

 

미라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_무급휴가

 

 

 

과거의 나를 돌아볼 때가 있다.

미숙했고, 혼란스러웠던 나의 모습. 후회와 아쉬움 가득한 나의 지난날. 

 

나의 과거와 함께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좋아하고 미워했으며, 선망하고 질투했고, 사랑하며 서운해했던 모든 관계들.

 

무수한 세월을 보낸 이제는 모든 이들에게 연민의 감정이 더 크다.

서툴렀던 나, 그리고 관계를 맺었던 모두는 다 그렇게 서투른 시절이었음을.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나이브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속으로 비웃었을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던 순간 나는 데비의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_데비챙

 

 

 

진심은 관계에서 전해지기 쉽지 않다. 

순간의 감정적인 말, 나의 심리 상태, 상대의 기분과 상황, 지나친 배려조차도 뒤섞여 찰나의 오해를 만든다. 시간이 쌓이며 골이 깊어진다. 진심은 사람들의 마음을 관통하지 않는다. 

 

왜 좋은 마음이 언제나 좋은 결과가 될 수 없는지 연희는 초조한 슬픔을 느꼈다. _문동

 

어쩌면 송문 또한 송문으로 살아온 송문의 마음을 영영 배울 수 없을지도 몰랐다. 자기 마음을 배울 수 없고, 그렇기에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채로 살아간다. _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

 

 

 

우리는 자신만의 성정과 경험과 생각을 가진 섬이다. 외로운 섬 하나하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가까운 가족조차도 그들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런 누군가를 얻기 위해 온갖 말과 행동을 하며 애쓸 필요도 없다.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지치 지를 않나 봐요. 자꾸만 노력하려 하고, 다가가려 해요. 나에게도 그 마음이 살아 있어요.
_손 편지

 

엄마에게는 감동이었을 그때가 내게는 지우고 싶은 순간이었다는 걸 엄마는 끝내 이해할 수 없겠지. 나는 상기되어 이야기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_호시절

 

현주의 사랑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자유롭고 편안했을까.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_무급휴가

 

영원히 용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유나에 대한 나의 마음은 그게 어떤 모습이든 늘 과하고 넘친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유나를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할 수 있다. _애쓰지 않아도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아름다운 대사처럼, 한 존재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그저 받아들이고 사랑하면 된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기에, 애쓰지 않아도 우리는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최은영 작가의 책은 여전히, 나의 깊이 숨어있는 감정을 꺼내 위로를 준다. 

 

 

 

 

 

 

 

 

애타게 기다리는 누군가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

연극 <돌아온다>. 

결국 다시, 올 것이라는 확신에 찬 기운이 느껴지는 제목이다.

 

 

 

초여름 예술의 전당은 푸르고 맑았다.

오페라하우스, 한가람미술관, 서예박물관, 음악당 등 전시공간과 야외무대를 갖추고 있는 이곳은 정말 거대했다. 수십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왔을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은 저마다 행복해 보였다.

 

 

 

 

둥근 오페라하우스 옆, 음악분수 근처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계의 두 바늘이 겹쳐지자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분수쇼는 시작되었고, 음악의 클라이맥스 부분과 마지막에 거대한 물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떨어졌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영화에서나 볼법한 세련되고 여유로운 풍경처럼 느껴졌다.

 

 

 

 

 

CJ 토월극장

 

 

 

오페라하우스에 자리한 CJ 토월 극장 로비에는 연극을 홍보하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기둥마다 출연자들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가 둘러져 있었다.

 

 

 

 

출연진들의 연기가 담백하고 좋았다. 주연 조연의 차이 없이 모두 감동적인 연기를 보여 주었고, 무거운 이야기임에도 중간중간 유머 코드가 극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

막걸리를 파는 한 식당 벽에 걸린 글씨에 의지해 매일같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

이들은 사랑하는 이를 극적으로 만나기도 하고, 기다리던 이가 영영 돌아오지 않기도, 오히려 그를 떠나보내기도 한다.

 

 

 

 

 

기다리던 아들의 제대 소식이다. 

 

'기다린다'가 이제 이번 주말이면 '기다렸다'로 바뀐다. 

입대 초기, 슬프고 아픈 기다림이었다면 지금은 행복하고 설렌다.

 

아들의 제대 후, 또다시 무언가를 향한 기다림은 계속되겠지만, 기다림과 그리움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빛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온다'라는 메시지는 희망이요, 행복이다.

 

 

 

 

 

 

 

바람이 분다. 

 

사람 사는 마을을 향해 바람이 붑니다. 
엄발난 사랑 돌아오듯 바람이 붑니다. _바람이 분다 中 (시인 심종록)

 

 

전시의 소제목은 시인 심종록 시에서 따온 듯, 그의 시 <바람이 분다>가 노란 안내 책자 뒷면에 새겨져 있었다.

 

 

 

 

인사동 거리를 오랜만에 걸었다. 따스하고 맑은 날씨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북적이는 모습이 정겨웠다.

갤러리는 인사동 주 거리에 위치해 있어 찾기 쉬웠고, 노란 현수막은 한눈에 들어왔다.

 

 

 

 

 

 

 

그를 추모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두 공간으로 나누어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 곳은 중앙에 하얀 벤치를, 다른 한 곳에는 어두운 색감의 소파와 테이블로 장식해 놓았다.

 

 

 

 

작품 하나하나가 바람이 되어 마음을 흔든다. 그리움이 바람처럼 몰려온다.

 

떨어지는 벚꽃 아래로 손녀와 자전거 타는 그의 뒷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습니다'라는 작품 위 붓글씨 대로,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환멸로 잠들었던 사람의 마을로 바람이 붑니다. 
비와 함께 옵니다. _바람이 분다中 (시인 심종록)

 

 

 

 

권위적이지 않은 푸근함, 열정적이고 강인함, 고독함과 외로움. 그의 인간적인 모든 모습이 그립다.

 

 

 

 

 

가야 할 길 
사람의 길 

꽃나무들이 일제히 등을 내겁니다. _바람이 분다 中 (시인 심종록)

 

 

5월 18일부터 열린 전시는 그의 서거일인 23일 까지다. 이 날, 봉하마을에서도 추모의 물결은 이어질 것이다.

 

 

 

 

점심을 포기하고 갤러리 맞은편 지대방으로 들어갔다.

지난번 왔을 때, 대나무통 메뉴판 사진을 못 찍어 아쉬웠었는데, 오늘은 자세히 보고 사진도 잊지 않았다.

 

 

 

 

전통 찻집답게 다양한 차들이 있었지만, 지난번처럼 따뜻한 모과차를 주문했다. 남편은 목이 말랐던 차 시원한 한라봉차를 주문했다.

 

인사동의 대부분 전통찻집들은 차 가격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곳의 음료는 맛과 향이 좋고, 정성이 듬뿍 들어가 있는 것이 느껴진다.

전통악기로 연주되는 은은한 음악과 옆 테이블의 조용조용한 목소리, 벽면을 빼곡히 장식한 낙서들이 편안함을 주었다.

 

 

 

인사동에서의 아름다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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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동단, 해돋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 우리나라 지형 호랑이 꼬리에 위치한 호미곶을 문무대왕릉 가기 전 잠시 들렸다.

해돋이를 보진 못했지만 청량한 바다, 의미 있는 조형물, 아름다운 등대가 눈을 사로잡았다.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맞이하며 마련된 거대한 조형물이다.

해맞이 광장을 지나며 볼 수 있는 왼손과, 바다에 솟구쳐 오른 오른손 형상은 인류가 서로 도우며 상생과 화합을 이루자는 의미로 조성되었다. 두 손이 서로를 갈망하고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듯 멀고 아련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맑은 하늘 아래, 푸른 동해의 물은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시원하게 느껴졌다.

전망대 위쪽으로 사람들이 오고 갔다. 이름이 예쁜 해파랑길을 따라 나무로 만든 데크 위를 걸었다.

 

 

 

 

전망대 끝에 서있는 소년상은 해가 뜨는 지점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뒤쪽으로는 하얗고 높은 등대와 새천년 광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도상의 가장 동쪽 끝, 바로 그 지점에 내가 서있다 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바다 냄새가 정신을 깨웠다.

 

 

 

 

호미곶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등대답게 한 컷 사진으로 전체를 담기 어려웠다.

책을 뒤집어 바닥에 놓은 듯한 모양의 하얀 등대는 밤에 배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12초에 한 번씩 불을 밝힌다고 한다.

 

세계항로표지협회에서 2022년 올해, 세계의 아름다운 등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전 세계 수많은 등대 중 네 번째라고 하니 대단하다.

 

거칠고 어두운 밤바다 위, 반짝거리는 불빛으로 안도와 희망을 선사할 등대가 궁금하다. 해 진 후 등대의 불빛과 호미곶의 일출을 보려면 꼬박 하룻밤을 호미곶에서 지내야 할 듯하다.

 

 

 

경주로의 일박이일 여행 전 잠시 머문  포항의 바다는 기대 이상이었다. 

 

 

 

 

 

 

 

 

 

 

 

 

 

어버이날

 

<친정엄마와 2박 3일> 연극을 친정엄마와 봤다. 

그리고 친정엄마와 1박 2일을 함께 보냈다. 

 

남편의 고마운 배려였다.

 

여든이 넘은 배우 강부자의 열연은 감동적이었고, 연극은 친정엄마와 나뿐 아니라, 친정아빠와 나, 나와 나의 자녀들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른 점심상을 정성스레 장만해 배불리 먹고, 마당이 예쁜 아트센터에서 연극을 봤다. 

백화점에서 사위에게 옷 하나 사주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에 이끌려, 못 이기는 척 유명 브랜드의 여름옷 하나를 얻어 입은 남편과 엄마의 미소가 싱그러웠다.

선선한 초저녁 바람을 맞으며 수원 화성행궁을 한 바퀴 돌고, 치킨 거리 가장 핫한 가게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양념치킨이 들어간 반반 치킨을 포장했다.

집으로 돌아와 과일맥주 한 캔을 나누어 마시며 영화도 한 편 봤다.

 

여행 온 듯하다며, 가장 기억에 남는 어버이날 일거라며, 연신 고마워하고 좋아하시는 엄마의 모습에 나도 행복했다. 

추운 2월, 아빠와 사별 후, 엄마는 강해져 있기도 약해져 있기도 했다.

 

엄마의 약한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엄마의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에서 나의 연약함이 엿보인다.

 

그러지 않았어도 됐는데......

지금도 그럴 필요 없는데......

 

 

 

 

 

 

모든 생명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 _톨스토이

 

 

연약한 엄마를 바라보며 나를 되돌아본다.

 

 

 

군에 있는 아들의 반가운 목소리, 서울살이 하고 있는 딸이 손편지를 써 올린 카톡 메시지,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나의 눈시울과 코를 쨍하게 만든다. 가슴이 조여 오는 감동을 준다.

 

 

 

그렇게....... 어버이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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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30

안성 팜랜드

 

 

 

 

뿌리로부터 가늘고 길게 솟아 오른 여린 줄기는 작고 노란 꽃을 맺고, 그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작은 뭉치처럼 보인다. 

 

 

 

 

 

바람이 부는 대로 키가 다른 줄기와 꽃들이 하늘하늘하게 흔들렸다.

꽃들이 가볍게 춤을 추며 말을 건네는 듯한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놓고 감상했다.

꽃의 개수도 잎의 크기도 절정은 아니어 보였지만, 아름다운 그들의 군무를 감상하기에는 오히려 적당했다.

 

 

 

 

 

꽃밭과 좁은 길 끝에 지평선이 그려지고, 시원시원한 구름은 위를 차지하고 파스텔톤의 하늘을 살짝 선사하고 있었다.

 

 

 

 

 

바람과 꽃, 꽃과 바람.

 

바람이 불면 꽃잎은 날리고 떨어져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날 여린 유채꽃과 바람은 자연이 선사하는 공연의 최고의 파트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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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 성당

 

 

희미한 봄꽃들이 스러지고 강렬한 색이 지배하는 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성당을 찾았다.

입구부터 단정하고 고요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치료 중인 보호수를 지나, 회색과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성당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적벽돌 건물 정면에 아치형 문 세 개, 같은 모양으로 난 창문들은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을 주었다. 꼭대기에 솟구친 첨탑과 십자가가 위엄 있으면서도 부드럽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당을 감싸며 보호하는 거대한 나무들은 여름이 오기도 전에 무성한 잎을 내어 충분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고목과 성당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웠다.

 

 

 

 

신을 벗고 성당 내부로 들어가 보니, 평 천장 가운데로 아치형 천장이 솟아있다. 무지개처럼 그려져 있는 회색 장식, 그리고 회색 기둥이 엄숙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스테인드 글라스 창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성당 둘레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을 순례자처럼 걸었다.

붉은 철쭉이 핍박받는 예수상과 어우러지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하얀색과 분홍, 연보라, 특이한 핫핑크까지 다양하고 화려한 철쭉의 절정이었다.

 

 

 

 

박물관의 문은 닫혀 있었지만, 마당에 소박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은 열려 있었다.

토요일 미사 시간인지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바쁘게 움직이셨고, 야외 예배당에서는 찬송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정의 집은 지친 사람들에게 팔을 벌리고 있고, 마리아 상 앞에서는 양초에 촛불을 밝혀 기도드릴 수 있다.

숨겨진 장소인 듯한 성체 조베실은 성체 안 예수님과의 은밀한 시간을 갖는 곳이었다. 

이렇게 고요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도, 성당을 찾는 이도 많아 소란스럽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곳의 모든 것들은 공존하며 자연스러워 보였다.

 

 

 

 

 

 

 

피나클 랜드

 

 

 

아산의 또 다른 명소 피나클 랜드.

공세리 성당의 철쭉이 아직 눈에 선명한데, 이번엔 튤립이다.

 

 

활짝 핀 튤립은 꽃송이가 더 커 보였고, 강렬한 원색의 꽃들은 크기만큼 화려했다.

늦은 봄은 선명한 색의 꽃들 천지다.

 

 

 

 

국화도

튤립 축제 기간이지만 다양한 꽃들에도 눈길이 간다.

복숭아꽃이 국화를 닮아 국화도다. 색이 노랗다면 국화꽃, 모양이 복숭아꽃이면 복사꽃일 텐데....... 특이하다.

작은 복숭아 열매를 맺는다니, 국화도라기 보단 복사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수선화

수선화의 종류도 다양하다. 자주봤던 노랗고 간결한 수선화와는 다르게, 은은한 색이 뒤섞인 잎 많은 수선화가 피어 있었다.

 

 

 

 

죽단화 (겹황매화)

매화처럼 생겼지만 노란색의 꽃을 황매화라 한다.

죽단화는 풍성한 겹꽃이지만 황매화의 색을 닮아 겹황매화라고도 부른다.

매화도, 황매화도 아닌 꽃 죽단화. 꽃에 이름을 붙이는 방법이 단순하고도 재미있다.

 

 

 

 

자엽자두나무

늦가을인 듯, 짙은 물이 든 이 나무는 자엽 자두나무다. 하얀 꽃이 아직 남아 있었는데 너무 작고 나뭇잎의 색이 강해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작은 벚꽃 모양의 꽃이 자주색 잎 사이로 하얗게 얼굴을 내민다. 

싹이 날 때부터 낙엽까지 자줏빛을 유지하는 나무가 신기하다.

 

 

 

 

팥꽃나무

팥알 같은 꽃봉오리가 열리면 팥색의 꽃이 피어난다.

진달래의 빛깔과 비슷하고 꽃잎이 4개로 개나리 같으니 '진나리'고 해도 되지 않을까.

 

 

 

 

지면패랭이꽃

잔디처럼 피어난 지면패랭이꽃들은 요즈음 철쭉과 함께 자주 볼 수 있는 꽃이다.

 

 

 

 

어린 아이들이 좋아했던 동물 먹이주기 코너.

알파카라는 동물은 몸에 비해 목과 다리가 길었다. 놀이공원에서 동전을 넣으면 움직이는 동물 모형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피나클 랜드의 정상까지 올라가며 내려다보는 경치는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다.

곳곳에 포토존과 다양한 식물들 그리고 조형물들이 정성스럽게 배열되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흐렸던 하늘이 서서히 맑아졌다.

 

 

 

2007년 겨울, 나의 어린아이들과 이곳에 왔었다.

옛 사진의 배경에는 꽃도 푸르름도 없었지만, 뭐가 그리도 좋은지 웃음과 즐거움이 배어난다.

아이들은 없지만,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포즈를 재현해 사진을 찍어 보았다. 카톡 메시지로 딸에게 보내니, 셀카를 찍어 자신의 빈자리를 합성해 되돌려 준다. 감동이다.

 

2007년의 우리와, 2022년의 우리가 완벽하게 같다. 

추억이 현재와 이어져 행복은 배가 된다. 

 

함께 지내진 못하지만, 마음 안에 늘 머무는 가족은 삶을 이어주는 큰 힘이다.

 

 

 

 

 

 

 

생각의 나무

 

 

 

 

 

바다의 기별.

김훈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제목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바다로부터 오는 소식.

 

그러나 책을 읽은 후 그것은, 닿을 수 없는 모든 것들에 대한 처절함이다.

 

 

바다는 멀어서 보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바다의 기별이 그 물가에 와닿는다.

 

 

 

닿을 수 없는 '너'

연기나 바람 같은 '생명'

찾을 수 없는 '행복'

잡아 둘 수 없는 '시간'

허공에 울려 퍼지는 '해금 소리'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들을 향한 필사적인 '손짓'

잃어버린 '고향'

소통이 단절된 '민주주의'

 

작은 물줄기에 희망을 가져 보기도 하지만, 바다는 끝내 닿을 수 없다.

바다의 기별은 그렇게 우리를 설레게 하다 결국 비참하게 만든다.

 

내 살아 있는 몸 앞에서 '너'는 그렇게 가깝고 또 멀었으며, 그렇게 절박하고 또 모호했으며 희미한 저쪽에서 뚜렷했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닿을 수 없는 것들은 슬픈 눈물로 맺히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의 흔적을 새기지만, 또한 우리가 살아가도록 만든다.

 

 

 

'아이다호'

넓은 평야 사이 좁은 이차선 도로, 그 끝에 닿아있는 산과 하늘은 지평선을 이룬다.

황량한 길 가운데 서있는 리버 피닉스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던 영화.

 

결코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찾으러 이 도시 저 도시로 길을 떠나보지만, 끝에 도달할 수 없었던 마이크(리버 피닉스).

희미하게 남아있는 초록빛의 집, 하얀 옷을 입은 엄마의 기별은 그에게 좋은 어떤 것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결국, 외로움과 처절함만이 남을 뿐이다.  

 

가질 수 없었던 평범한 가족,

누릴 수 없었던 안정적인 생활,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친구 스캇,

끝내 닿을 수 없는 엄마,

 

그럼에도 Have a nice day! 를 외치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희망이 있지만 또 뜬 구름 잡듯 떠돌아다니는 방랑자와도 같다.

 

강을 거슬러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마이크는 어느새 아이다호, 그 길 위에 서있다.

 

 

바다의 기별은 슬픈 사랑이다.

 

 

 

 

 

 

 

 

 

 

 

 

이 책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다. 

예쁜 편지지처럼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삽화 덕에 동화를 읽는 느낌이 더해졌다.

 

고아인 제루샤 애벗(주디)이 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으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고, 불우했던 과거를 딛고 당당히 작가로 성공하는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존재를 '키다리 아저씨'라 할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다.

 

사춘기 시절, 소설의 주인공이 고아임에도 그녀를 부러워했던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나에게도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면 하고 말이다.

 

탁월한 재능이 있지만 환경의 거미줄에 걸려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 능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다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재능을 알아보고 대단한 지원을 해주는 후견인을 만날 행운이 주어진다면 모두 성공하고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그것 또한 장담할 수 없다.

 

주디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재능은 태도에 의해 빛이 났고, 키다리 아저씨의 안목과 지원이 더해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주디는 받기만 하지 않았다. 자립하려 끊임없이 노력했고, 자립의 상황이 되었을 때 보답하기 시작했다.

 

 

 

 

정작 중요한 건 엄청난 즐거움보다는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자세랍니다. 전 행복해지는 진짜 비결을 알아냈어요.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과거에 얽매여 평생을 후회하며 산다거나 미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최대의 행복을 찾아내는 사실을 똑똑히 인식할 거예요. 순간순간을 즐기고, 즐기는 동안은 제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식할 거예요. 사람들은 대부분 인생을 산다기보다는 경주하고 있을 뿐이에요. 지평선 멀리에 있는 목표에 도달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죠. 한참 헉헉대며 달려가느라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풍경엔 눈길 한 번 못 주고 말이에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늙고 지쳤으며 목표에 도달하고 안 하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전 위대한 작가가 못 되더라도 길가에 앉아 작은 행복을 쌓아 올리기로 마음먹었어요.

 

 

 

 

시간이 흘러 어렴풋이 돌아보니 고아원 시절도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는 다른 아이들이 누린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분한 마음이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안 그래요. 고아원 생활이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경험으로 생각되거든요.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된걸요. 어른이 된 지금, 전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자란 사람들에게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답니다. 전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여자아이들을 많이 알아요. 그 애들은 익숙해진 나머지 행복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져 버렸지만, 전 매 순간 제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온전히 느낀답니다. 그리고 아무리 속상한 일이 생겨도 그 사실을 잊지 않을 거예요. 그 일을 재미있는 경험이라 여기고,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내가 어떤 하늘을 이고 있든, 나에게는 모든 운명과 맞설 용기가 있다'는 말처럼. 

 

 

 

 

행복은 내 안에 있다. 

어떤 경험, 어떤 상황, 어떤 사람들과 만나던 그것들에서 기쁨을 느껴야 한다. 하늘과 계절, 숲과 바람, 나무와 새, 꽃과 나비, 책과 음악, 불 밝힌 작은 카페나 벤치 하나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것이 인생이다.

 

 

지친 일상에 따뜻한 온기와 휴식을 주는 책이다.

 

 

 

 

 

 

 

 

 

설화산 기슭에 자리를 잡고 수백 년 삶을 이어온 터전, 마을 자체가 문화유산인 외암 마을을 찾았다.

양반의 고택, 초가, 돌담, 정원의 옛 모습이 보존되어 있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저잣거리 쪽에 차를 세우고 파전과 국수로 민속마을에 온 분위기를 더해 보았다.

 

 

 

 

방송을 타 더 유명해진 듯한 식당은 오전 10시 30분 즈음 도착했을 때도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신을 벗고 마루에 올라 파전과 국수를 주문했다. 식당 앞 작은 정원에는 노랗고 하얀 수선화 몇 송이가 땅에서 솟아올라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오전 산책을 마친 듯한 복장과 분위기의 부부 한 쌍이 파전을 주문해 먹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 갔다. 이어 온 부부도 같은 메뉴에 막걸리를 추가했다. 먼길을 달려온 우리는 파전과 종류가 다른 국수 2개를 더 주문했다.

 

시간이 걸려 나온 파전은 광고대로 1cm 두께를 자랑했다. 굵게 썰린 오징어와 홍합, 새우 등이 파 사이로 드러났다.

맛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얇고 바삭한 부침개가 부담 없고 더 좋다.

국수는 익숙하고 정겨운 맛이었다. 모두 맛있었지만 정말 배가 불렀다. 결국 파전은 다 먹지도 포장도 못했다. 너무 욕심을 냈나 보다. 

 

 

 

 

저잣거리부터 걸어 마을 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가깝고 마을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어 좋다.

아직 남아있는 벚꽃들이 하나 둘 나리며 환영해 주었다.

 

 

 

 

주차장과 관리 사무소 근처에 있는 민속관에서는 상류, 중류, 서민층 가옥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이 있었다.

목련과 산수유는 여전히 자태를 뽐내며 마을과 어우러져 있었고, 마당에서 전통놀이 체험을 하고 있는 가족들의 수다와 웃음이 듣기 좋았다.

 

아주 오래전 가을,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을 배경으로 어린 나의 아이들과 이곳에 왔던 추억이 나를 물들이며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가옥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 지명을 따서 참판댁, 감찰댁, 풍덕댁, 교수댁, 참봉댁 등 택호가 정해져 있었다.

그중, 건재고택은 시간을 정해 개방하고 있어 들어가 보았다.

 

 

 

 

들어서는 순간 '아 뭔가 다르다'라고 느껴지는 반가의 고택.

잘 가꾸어진 정원과 기품 있는 기와집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선사하고 있었다.

 

 

 

 

박태기꽃

 

금낭화

돌담들 사이를, 기와와 초가집 담장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니 자주 볼 수 없었던 꽃들이 눈에 밟힌다.

밥을 튀긴 밥티기를 닮아 붙여진 이름 박태기나무 꽃. 봉오리가 구슬을 닮아 북한에서는 구슬 꽃나무라고도 한단다.

 

아치형으로 굽은 꽃대에 꽃들이 줄줄이 걸려있는 금낭화.

복주머니를 실로 정성스레 달아놓은 듯 물가에서 싱싱한 분홍빛을 띄고 신비롭게 피어있었다.

 

 

 

 

얼핏 봐서는 큰 매화, 혹은 작은 무궁화 느낌을 주는 복사꽃을 발견하고는 정말 기뻤다. 빛깔이 이리 고우니 아름다운 복숭아 열매를 맺나 보다. 붉은빛을 띠는 겹 복사꽃의 색은 정말 강렬했다. 

 

 

 

 

시대를 잘 재현해 놓은 민속촌도 좋지만, 보존되어 전해 내려오는 마을은 더 정겹다.

산과 물과 바람과 나무, 봄이기에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꽃들이 더해진 외암마을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입구로 돌아왔을 때는 사람들로 넘쳐났지만, 마을 안쪽의 산책길은 고즈넉하고 여유로웠다. 

 

꽃 이름 하나, 자연의 섭리 하나를 알아가는 것이 이리도 즐겁고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삶의 행복은 크고 거창한 일들에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돌리면 내 옆 작은 것들에 있다는 것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네 카페를 들려 잠시 쉬어갔다.

네모진 하얀 외관이 인상적인 카페는 야외 좌석이 꽤나 넓었다. 남편이 오래전부터 찾아둔 유명한 곳이었다.

 

 

 

 

추억의 분식집처럼 메뉴에 표시를 해서 가져다주면 주문 완료다.

앙증맞은 메뉴 그림과 컬러가 재미나다. 우리는 시그니처 흑임자 크림 커피와 딸기 라테를 체크했다.

 

 

 

 

남편은 라테가 정말 맛있다며 좋아했고, 검은깨가 아낌없이 들어간 음료는 흑임자 크림의 달달함을 시작으로 커피의 쌉쌀함까지 시그니처다웠다.

 

 

 

 

꽉 차게 알찬 그리고 행복한 하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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