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선물해 준 최은영 작가의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
작가의 손글씨가 넉넉한 사랑으로 부풀려진 하트와 함께 적혀있다.
미라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_무급휴가
과거의 나를 돌아볼 때가 있다.
미숙했고, 혼란스러웠던 나의 모습. 후회와 아쉬움 가득한 나의 지난날.
나의 과거와 함께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좋아하고 미워했으며, 선망하고 질투했고, 사랑하며 서운해했던 모든 관계들.
무수한 세월을 보낸 이제는 모든 이들에게 연민의 감정이 더 크다.
서툴렀던 나, 그리고 관계를 맺었던 모두는 다 그렇게 서투른 시절이었음을.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나이브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속으로 비웃었을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던 순간 나는 데비의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_데비챙
진심은 관계에서 전해지기 쉽지 않다.
순간의 감정적인 말, 나의 심리 상태, 상대의 기분과 상황, 지나친 배려조차도 뒤섞여 찰나의 오해를 만든다. 시간이 쌓이며 골이 깊어진다. 진심은 사람들의 마음을 관통하지 않는다.
왜 좋은 마음이 언제나 좋은 결과가 될 수 없는지 연희는 초조한 슬픔을 느꼈다. _문동
어쩌면 송문 또한 송문으로 살아온 송문의 마음을 영영 배울 수 없을지도 몰랐다. 자기 마음을 배울 수 없고, 그렇기에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채로 살아간다. _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
우리는 자신만의 성정과 경험과 생각을 가진 섬이다. 외로운 섬 하나하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가까운 가족조차도 그들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런 누군가를 얻기 위해 온갖 말과 행동을 하며 애쓸 필요도 없다.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지치 지를 않나 봐요. 자꾸만 노력하려 하고, 다가가려 해요. 나에게도 그 마음이 살아 있어요.
_손 편지
엄마에게는 감동이었을 그때가 내게는 지우고 싶은 순간이었다는 걸 엄마는 끝내 이해할 수 없겠지. 나는 상기되어 이야기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_호시절
현주의 사랑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자유롭고 편안했을까.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_무급휴가
영원히 용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유나에 대한 나의 마음은 그게 어떤 모습이든 늘 과하고 넘친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유나를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할 수 있다. _애쓰지 않아도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아름다운 대사처럼, 한 존재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그저 받아들이고 사랑하면 된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기에, 애쓰지 않아도 우리는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최은영 작가의 책은 여전히, 나의 깊이 숨어있는 감정을 꺼내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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