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리드 누네즈의 장편소설 [어떻게 지내요] & 파스칼 포자두 감독 [마지막 레슨]
영화 [마지막 레슨]의 주인공, 마들렌은 92세의 생일날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다. 더 이상 내 몸을 어찌할 수 없을 때, 나의 품위와 존엄을 지킬 수 없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말이다. 그 선언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던 가족들은 저마다 혼란스러워한다.
결국, 마들렌의 딸 디안은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며 엄마 곁을 지켜주고, 아들 피에르는 끝까지 괴로워하며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다. 디안과 피에르 각자의 생각과 방식대로 엄마를 사랑하는 진심이 느껴져, 마들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들렌의 죽음은 슬프지만 또 아름답다.
"내 눈물은 어디로 갔을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이것이야말로 엄마가 준 마지막 레슨이다."
소설 [어떻게 지내요]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삶을 스스로 끝내려고 하는 친구와, 그 마지막을 함께 보내게 된 작가의 이야기다. 소설 속에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들의 주제는 무겁고 비관적이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도 슬픔이 와락 몰려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삶의 그 어떤 면들을 인정하게 되는 편안한 느낌이 들었달까?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매력인 듯하다.
암에 걸린 엄마의 치료를 두고 "엄마가 결정할 일이죠." 그저 이렇게 말하는 친구의 딸. 결국, 딸에게 삶의 마지막 계획을 알리지 못한 모녀의 거리. / 아내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삶에 활기가 생기고 미소가 많아진 한 남편 이야기.
이처럼 무관심하거나 서로를 증오하는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가. (영화 [마지막 레슨]의 마들렌 가족은 어쩌면 너무 이상적인 가족일지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저 상투적인 위로나, 그 사람의 감정을 부정하며 긍정적인 말만 되풀이한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그러나, 그런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166.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번 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가족과 관련된 슬픈 이야기는 맘이 저리게 아프다. 누구나 세월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 사건들이 왜 없겠는가.
195. 절대 씻어낼 수 없는 삶의 얼룩이라고 표현했다. 어느 때건 예기치 않게 불쑥 밀려드는 슬픔, 특히 행복하고 평온한 순간이면 그렇게 찾아들어- 그 순간들을 망쳐놓는 슬픔이라고.
196. 그런데 어떤 것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거야. 살날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아는데도. 그러고 나면 그대로 벌어진 상처가 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암 치료를 거부하고 삶을 끝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선 안된다고, 버터야 한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희망의 말들을 한다. 무슨 영웅 서사처럼 말이다. (딱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183.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권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123. 이것이 싸우는 내 나름의 방식이라는 걸 사람들도 이해해야 해. 내가 먼저 나를 없애버리면 암이 나를 없앨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기다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이 모두를 이해하고 내 편이 되겠다고 약속해 줄 사람, 내가 잠든 사이에 약을 변기에 넣고 내려버리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사람이야.
211. 가능한 한 세상에 누를 끼치지 않고 내 식대로 죽고 싶었다고. 평온함을 바랐어. 질서 정연함을 바랐고. 주변이 평온하고 질서 정연하기를 바랐을 뿐인데. 차분하고 말끔하고 품위 있고, 심지어- 안 될 게 뭐야? -아름다운 죽음. 내가 생각한 건 그것이었는데.
주인공은 친구의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켜낸다. 외롭지 않도록, 웃을 수 있도록, 기쁨과 슬픔을 간직할 수 있도록, 안락하고 간결한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말이다.
239. 우연의 일치. 요즘 새로 읽고 있는 책에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경험을 사랑에 빠질 때의 강렬함과 비교한 대목이 있다.(......) 이 모든 일이 먼 과거의 기억이 됐을 때는 과연 어떨지 알고 싶다. 더없이 강렬한 경험이 결국엔 얼마나 자주 꿈과 비슷해지는지, (......) 인생은 한갓 꿈일 뿐. 생각해 보라. 그보다 더 잔인한 관념이 과연 있을 수 있나?
친구의 죽음과 반대로 그녀는 또 살아가야 한다. 분명 이전의 그녀와 얼마큼 또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213. 그게 사는 거야. 무는 일이 있건 삶은 이어진다. 엉망의 삶. 부당한 삶.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삶. 내가 처리해야 하는.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122.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친절하라. 네가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니." 소설 속 언급된 플라톤의 이 말처럼,
가족에게, 친구와 이웃에게, 마주치는 모든 이들에게 "어떻게 지내요?" 다정하고 상냥하게 진심을 전하는 것이 파괴된 지구에서 시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무슨 일이지? 공포로 심장이 쿵쾅거린다. 곧 끝날 거야. 이 동화 같은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가장 슬픈 이 시간은 지나갈 거야. 그러면 혼자가 되겠지."
이번 주 주말, 소설 <어떻게 지내요> 를 영화화 한 <룸 넥스트 도어>를 볼 예정이다. 대단한 두 배우의 연기와 함께 소설의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 지 무척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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