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ROH 시네마 기획전, <영화와 민주주의>에서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를 관람했다.
1973년 9월 11일 시작된 칠레 군사 쿠데타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문민정부를 부르짖던 아옌데 신사회주의 정권이 미군의 지원을 받는 피노체트 장군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와 너무도 닮아있는 비참한 상황을 두 시간 가까이 힘겹게 지켜보았다. 영화 후 이어진 GV는 중남미 역사와 현실 등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프랑스와 불가리아에서 촬영되어, 1975년 세상으로 나온 영화에 대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네루다의 장례식으로 끝이 난다.
책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다시 꺼내 들게 만들 정도로 이 장면은 나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197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고, 칠레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시인. 1969년 대통령 후보에 지명되었지만, 아옌데 대통령을 추대하고 후보에서 사퇴했던 정치인 파블로 네루다.
소설은 네루다의 열정적이고 혁명가적 기질보다는 유머러스하고 인간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바닷가 시골마을, 이슬라 네그라의 우편배달부 마리오의 설정이 그의 무거움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서문에 쓰인 대로 이 이야기는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며 끝을 맺는다.
51. 천둥이 몰아치듯 정치가 나의 일을 중단시켰다. 민중은 내게 삶의 교훈이 되어왔다. 나는 민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 시인 특유의 수줍음을 띠고, 수줍어하는 사람에게 두려워하면서. 그러나 민중의 품에 안기고 나면 내가 변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대다수 참된 민중의 일부고 인류라는 거대한 나무에 달려있는 이파리 중 하나인 것이다.
131. 정확히 백 년 전, 가련하지만 찬란한 시인, 처절하게 절망하던 한 시인이 이런 예언을 썼습니다.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리라." 저는 예지자 랭보의 이 예언을 믿습니다. 저는 지리적으로 철저히 격리된 나라의 알려지지 않은 한 지방 출신입니다. 가장 버림받은 시인이었고, 저의 시는 지방적이고 고통스럽고 비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결코 희망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 도달했습니다. 시와 깃발을 가지고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미래는 랭보의 말대로라는 것을 노동자, 시인 그리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불타는 인내를 지녀야만 빛과 정의와 존엄성이 충만한 찬란한 도시를 정복할 것입니다. 이처럼 시는 헛되이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 속 죽음을 맞이한 네루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불타는 인내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을까. 빛과 정의와 존엄성은 결국 헛된 희망이었을까.
시인의 수많은 메타포들은 민중들을 일으켜 세운다. 네루다의 장례식은 쿠데타 이후 최초의 항의 시위가 되고, 17년간의 긴 독재정권은 결국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실현된다. 여전히 빛과 정의와 존엄성은 희미하지만 또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고단한 사람들이 인내의 불을 꺼트리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소설을 영화화 한 <일 포스티노>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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