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트리크 쥐스킨트
1949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34세 되던 해 <콘트라베이스>를 시작으로 <향수> <비둘기> 등의 작품으로 세상의 관심과 문학성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모든 문학상을 거부하고, 사진 찍히는 일조차 피하며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이후, 1991년에 발표 한 <좀머 씨 이야기> 속에는 마치 그의 목소리 인 듯한 "그러니 나를 제발 좀 놔두시오!" 라며 하릴없이 걸어 다니는 좀머 씨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2. 단편 모음 집 [깊이에의 강요]
단편모음 중 제일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편소설을 제목 화하였다.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의 세 단편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하나의 고찰>로 구성된다.
작품 하나하나가 다 흥미롭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3. 깊이에의 강요
1)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젊은 화가. 이야기는 그 여인의 초대 전시회로부터 시작한다.
전시회를 본 한 평론가는 '별생각 없이' 혹은 그녀를 북돋아 줄 의도로 이런 말을 남긴다.
"당신 작품에는 재능이 보이고 마음에도 와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초대 전시회라 했으니, 아직 시작 단계일 것이고, 평론가이기에 작품이 완벽하다고만 말하기에는 좀 애매하니,
앞으로 경력을 더 쌓으면 훨씬 발전할 것이라는 의도로 한 말이리라.
이 평론가의 논평은 그녀의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비평 조로 신문에 실리게 되고,
그녀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말을 듣게 된다.
"그녀에게는 깊이가 없어요. 나쁘지는 않은데, 애석하게 깊이가 없어요."
마치 한 평론가의 의견이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말이다.
젊은 화가는 '왜 나는 깊이가 없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불안해하다가
'그래 맞아, 나는 깊이가 없어!'라는 결론을 낸 채,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깊이 있는 게 뭘까 책도 보고, 연구하고, 전시회도 다녀보지만 도무지 깊이 있는 게 뭔지 알아낼 수 없었다.
한 미술품 상인이 그림 몇 장을 그려 달라고 청했을 때 "나를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나는 깊이가 없어요!"라고 소리친다.
젊은 여인은 점점 이상해져 갔다.
약을 먹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그림은 더 이상 그리지 않았다. 친구도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다.
외모는 피폐해져 갔고, 비대해졌으며 집은 엉망이 되어갔다.
상속받은 돈으로 3년간 살았고, 돈이 떨어지자 자신이 그린 그림에 구멍을 내고 찢은 후 텔레비전 방송탑 위에서 뛰어내린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기 때문에, 숲 가장자리까지 날려가 전나무 숲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즉사한다.
2)
그녀가 죽은 뒤 기자들의 태도는 기가 막히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사건이라 판단한 그들은
이 사건을 두 번째 톱기사로 다루었고, 그것도 모자라 3면까지도 다루었다.
자살사건, 바람에 날려간 시체, 미모의 화가, 죽은 후 그녀의 집 상태.
재앙이 휩쓸고 간 듯한 그녀의 집에서 <기자들은 환상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환상적이라니! 도대체 뭐가......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알맹이는 놓친 채 이렇게 치욕스러운 부분에 집중하며 대중의 관심이나 먹고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언론.
정말 신물이 난다.
3)
본의 아니게 한 인간을 자살로 몰고 간 그 평론가는
그녀가 죽은 뒤 한 문예란에 단평을 기고한다.
그녀가 상황을 이겨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래도 그녀의 작품에는, 깊이를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흔적들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당신의 작품에는 깊이가 부족하다'는 말을
그녀가 죽고 나니 '그녀는 깊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로 뒤집어 버린다.
일관성 없이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이기적인 평론가.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_ [파트리크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 中]
4)
한 사람의 별 뜻 없는 말이 한 존재를 죽음으로 몰고갈 수 있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던 말이다. 조심해야 할 일이다.
넘쳐나는 거짓 정보들, 자신에게 유리한 말로 꾸미는 습관들, 책임질 수 없는 말들,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자극적인 기사들......
도대체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상황을 이겨낼 힘을 기르지 못한 개인의 책임이 정말 큰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한다.
하는 일이 무엇이든, 한 개인은 그 일에 대한 깊이에의 강요를 스스로도 어느 정도는 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들에게 깊이가 없다며 깊이에의 강요를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열심히 살고 있는 모두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자.
다른 사람이 보기에, 깊이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러면 또 어떤가?
이 소설은 아주 짧지만 그 안에 담은 메시지는 너무도 많다.
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일단, 글의 소재나 전개 방식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의 인생이 글에 녹아들어 그것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인간과 삶에 대해 다루고 있는 그의 글들은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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