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예쁜 표지였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커버가 벗겨진 낡은 모습이었는데.......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란 책을 읽은 후, 오랜만에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좋은 기억 때문에 찾아 읽게 된, 동일 작가의 책이다.
사서함의 주인공 공진솔과 이건의 느낌이, 이 책의 주인공 둘녕과 산호에게서 순간순간 느껴질 때가 있었다.
물론 나만의 느낌일 수 있겠지만........
아........ 그렇다고 이 책이 연애 소설은 아니다.
열한 살 봄에 엄마가 떠나고,
홀로 된 아빠의 손에 이끌려 시골마을 외가로 보내진 소녀,
둘녕의 이야기이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던 외가의 식구들.
외할머니, 이모 , 이모부, 그들의 딸 수안이. 작은 이모 경이, 막내 삼촌 율이
그들과 함께 살면서 겪는
때로는 서럽고 아픈, 때로는 평화롭고 그리운,
그녀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그 시절의 경험과 추억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피해 갈 수 없는 그림자처럼 그녀의 삶을 따라다니며
그녀를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게 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당신이 보기엔 별거 아니겠지만 내겐 그랬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말입니다."
-엘리너 파존
책의 구성은
어린 둘녕과, 서른여덟의 적지 않은 나이 둘녕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흘러간다.
(특히나, 어린 둘녕의 이야기 속 소재들은 나의 추억도 소환시키며 미소 짓게 만들었다.)
"내 곁에서 사라진 풍경과 더불어, 내가 알던 촉촉하고 부드럽고 좋은 냄새를 풍기던 어떤 것들이 내게서 영영 떨어져 나갔다는 것, 좋은 날들은 가버렸으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란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럴 줄 몰랐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그다음에 일어날 일을 모릅니다. 누구 탓도 아니었다고, 어떻게 하든 일어나는 거라고,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생각하려 했습니다. 비록 잘 되진 않았지만요."
세월을 살다 보면, 우리는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시간이 오게 마련이다.
선택할 수 없는 일들, 어쩔 수 없는 것들에 순응하면서,
나만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그렇게 삶을 살아낸다.
"무엇이 그 아름다운 시절을 데려갔는지 알 수 없지만..." "과거의 기억이 어떠하든 기억은 얼마든지 바뀌고 채색되는 것이었다, 없는 추억은 만들면 되는 거다."
그러고 보면, 안타깝게도, 살아간다는 건 내 맘대로 되는 것도, 그리 행복한 것처럼도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나를 지배하고 있는 과거의 우울하고 슬픈 기억들,
그 가운데 숨어있는 소중한 느낌을 발견해 예쁘게 채색해 보자.
누구 탓도 아닌 일들에 시간을 빼앗기며 자책하지 말자.
느리기도 빠르기도 한 세월을 보내며, 둘녕은 다시 고향 같은 마을로 돌아온다.
"울타리 넘어 바람이 불어왔다. 마당은 고요하고 잠옷을 입은 그 아이가 사립문 앞에서 웃고 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순간, 우리는 행복했다."
_이도우「잠옷을 입으렴」中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늘 따뜻하고 순수했던
가련하고 서글펐던 그녀의 앞으로의 삶을 응원한다.
행복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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