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하는 이야기 좀 잘 들어보세요!   /   괜찮았나요? 오늘은 이 정도로 할게요!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 파트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이렇게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보후밀 흐라발은 이야기꾼이다. 그의 이야기는 재미나고 위트 넘친다. 우스꽝스럽게 그려지는 인물 디테는 그에 걸맞은 주인공이다.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니 체코의 파란만장한 역사 속을 관통하여 살았던 디테의 삶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체코에 남아 고군분투했던 작가의 인생을 가늠해 보니 마음이 저릿하다.

 

 

독일이 체코를 점령했던 시기, 키가 작고 보잘것없는 웨이터 디테는 돈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확신하며 백만장자를 꿈꾼다.

 

21.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며 사람들이 무엇을 믿는지, 몇 푼 안 되는 동전 몇 개를 위해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곧바로 알게 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디테는 닥치는 대로 일하고 벌었다. 운이 따랐던 그는 영국왕을 모셨던 지배인에게 교육을 받기도 하고, 직접 아비시니아 황제를 모셔 황금훈장을 받기도 한다. 독일인 체육교사였던 리사와 사랑하고 결혼까지 하며 주류층에 들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갖는다.

 

198. 웨이터복에 딱딱한 옷깃을 달지 않았어도 내 생애 처음으로 사람이 꼭 체격이 클 필요는 없으며 자신 스스로가 크다고 느끼면 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제부터 웨이터 조수이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견습 웨이터이기를, 작은 웨이터이기를, 날 때부터 그렇게 운명 지어져 이 삶이 끝날 때까지 작은 존재이기를, 난쟁이 꼬마라고 불리는 것을 그리고 아이란 뜻의 디테란 내 성을 갖고 놀리는 소리를 듣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그러나 전쟁은 아내를 앗아가고, 정신지체를 앓는 아들 지크프리트는 고통일 뿐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디테는 체코 애국자들이 처형당하고 있는 동안 나치 의사들에게 독일 여자와 성교할 능력이 있는지 검사를 받았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반년을 지낸다. 

 

222. 기차역에서 플랫폼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스스로 낯선 사람인 것처럼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  독일인들이 러시아와 전쟁을 시작했을 때 결혼식을 올리고 군가 <대열을 바싹 좁혀라!>를 부르고 있었고, 고향에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독일 호텔에서 독일 군인들과 에스에스 대원들의 시중을 들면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쟁이 끝나면 프라하로 더 이상 돌아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아니 나 스스로 첫 번째 가로등에서 목을 매다는 모습이 내 눈에 보였고, 나 자신에게 십 년형 이상을 언도했다. 

 

 

출소 후 리사의 우표를 팔아 백만장자가 되고 호텔을 운영하며 인생의 정점을 찍었지만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호텔은 국가에 귀속된다. 이후 백만장자들이 수감된 감옥에 자진해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있었지만, 애초에 신분이 달랐던 디테는 다른 호텔 사장들이나 부자들에게 여전히 굴욕감을 느낀다. 모든 건 허상이었을 뿐이었다.


281. 그들은 내 백만, 내 이백만 코루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자신들 사이에 있는 걸 참곤 있었지만, 내가 자신들에게 결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백만장자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오래전부터 많은 돈을 갖고 있었지만 나는 전쟁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벼락부자를 자신들 사이에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신분에 어울리는 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디테는 결국 자신의 삶을 똑바로 마주 보며 내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라 나 자신을 그대로 직시한다.

 

286. 여태까지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으며 오로지 내가 절대로 될 수 없는, 비록 이백만 코루나를 갖고 있었을지라도 될 수 없는 사람인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비둘기들이 나의 친구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말씀의 비유라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면서야 나는 몇 곱의 백만장자가 되었다. 

 

국경지역 삼림작업반에서 만난 외눈박이 문학교수와 빨강머리 아가씨 마르첼라와의 생활은 고되었지만 행복했다. 마르첼라에게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며 인생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교수와 마르첼라를 떠난 후, 산골 외딴곳에서 조랑말과 염소 셰퍼드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 살며 도로를 보수하고 유지하는 일을 하게 된다. 노동의 수고는 거만하거나 오만할 시간이 없도록 겸손함을 가르쳐 주었다.

 

327. 나는 길을 정비하며 돌을 잘게 깨부숴 만든 쇄석으로 길을 메웠다. 그 길은 내 인생과 닮아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길 뒤로도 앞으로도 잡초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일을 마치고 나면 그 부분만 내 손이 닿은 흔적이 남았다. 장대비와 장맛비가 퍼붓고 나면 복구해 놓은 길이 모래와 작은 돌들로 다시 덮였지만 나는 화를 내지도 욕을 하지도 내 운명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대신 참을성 있게 다시 일을 시작했다. 

 

 

디테는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것,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생의 허무를 깨닫는다. 그는 순간순간 자신과의 대화를 하며,  경이롭게 다가오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쓸 미래를 생각한다.

 

330. 무엇보다도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가장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처음에는 아무 말하지 말고 필름을 돌리듯 자신의 과거를 떠올려본다. 그러고 나서 나처럼 자신에게 말을 걸고 조언을 하고 따져보고 질문하고, 또 가만히 마음속에 귀를 기울이다가 무의식 속에 감춰진 것을 꺼내보고 스스로 검사가 되어 자신을 기소도 하고 스스로를 변호도 하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과거에 있었던 삶에 대한 의미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면서 내가 두들기고 또 두들겨야 하는 이 길이 과연 어떤 길인지, 고독에서 도망치고 싶거나 직면하려면 용기와 힘이 필요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를 지켜줄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지......

331. 인생의 본질이 사실은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때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죽음, 죽음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은 영원과 불멸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과 나누는 대화인 것이다. 이때 자신의 인생 여정의 무의미를 맛보며 어차피 지속되지 못할 아름다운 것들 안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 바로 그것이 벌써 죽음의 문제에 대한 답의 시작인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맛보고 경험하는 일은 인간을 비통하게 만들지만 또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주기도 한다.

 

 

 

이야기가 흡족하셨는지요? 이제 이것으로 정말 끝입니다.

 

작가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책을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디테의 '자신과의 대화법'은 그대로 따라 해보고 싶다. 디테의 말년은 외로웠지만 아름다웠고 혼자인 듯했지만 또 그와 함께한 것들, 그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별 볼 일 없었지만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말로 영국왕을 모셨던 지배인의 조수였으며 아비시니아 황제를 모시고 황금훈장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지금 우리 주위에도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

뭔가 놀랄만한 일들은 일생 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눈부시게 빛나는 별빛을 걷어내고, 그 별의 희미한 중심을 볼 수 있게 되기를.

허황된 빛이 아닌 희미한 심장을 볼 수 있기를.

 

이 책은 1971년에 쓰였지만 작가가 출판 금지를 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체코에서는 1989년에야 공식적으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6년에 작가의 친구인 이리 멘젤 감독에 의해 <나는 영국 왕을 섬겼다>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화는 이 훌륭한 책을 어떻게 담아냈을지 보고 싶다.

 

 

 

 

 

 

 
 
 
11월 초, 강릉으로 1박 여행을 다녀왔다.
 
강릉 하면 떠오르는 기분 좋은 것 중 하나는, 한 여름 더위속 열리는 '독립영화제'다. 그와 못지않게 강릉을 좋아하는 이유는 독특한 분위기의 수제 맥주 집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책 한 권을 구입하면 맥주 한 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작가와 책에 대한 아무 정보가 없었고, 심지에 이 책은 비닐에 싸여있어 내용을 볼 수도 없었지만, 분위기에 취해, 예쁜 표지와 메모에 이끌려 그렇게 샀던 책이다. 
 
 
작가는 한 밴드의 리더였던 음악가였고, 현재는 꽤 많은 에세이집을 출간한 에세이스트다.
표지에서 받은 인상대로 책의 질감은 부드럽고 삽입된 사진들은 예뻤다. 책을 읽으면서는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삶을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한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75. 인간에게 있어 타인이란 존재는 거의 절대적이다.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화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일들이 사실상 타인으로부터 비롯되기에 그렇다. 어떤 인간도 저 스스로 태어나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고 혼자서는 행복할 수도 없으며 삶의 의미를 가지기도 어렵다. 
 
276. 그러니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지만 너무 큰 고통까지 주는 이 타인이란 존재들을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그들과 원만하게 어울리며 큰 어려움 없이 이 세상을 갈아갈 수 있을까. 
 
처한 상황과 생각은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 개개인은 저마다 삶을 의미 있게 살고자 고민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협력하려 부단히 애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맘 한 구석이 조금은 따뜻해졌다.
 
예쁜 사진들과 함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더디게 지나간다.

반복되는 역사를 부인하고 싶고, 모든 것이 꿈이 아니란 사실에 온몸이 무너져 내린다.

 

5.18 광주를 이야기 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다가 다음 구절에서 불현듯 울음이 터졌다. 노벨 위크 내내 어두운 색 옷을 입고 행사에 참여했던 작가가, 노벨상 수상 자리에서도 검은색 롱 드레스를 입었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26. 그 후 우리는 이따금 만나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서로가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지고, 교통사고를 내고, 빚이 생기고, 다치거나 병을 얻고, 정 많고 서글서글한 여자를 만나 잠시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믿고,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모든 걸 무너뜨려 다시 혼자가 되는 비슷한 경로를 거울 속 일그러진 얼굴처럼 지켜보는 사이 십 년이 흘렀습니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은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온몸을 덮은 검은색을 생각하며 어쩌면 작가의 삶은 폭력에 맞서 싸우다 희생당한 사람들을 대신해 장례를 치르는 중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냘픈, 부드러운, 평범한, 겁에 질린, 어리고 앳된 사람들의 삶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호소처럼 느껴졌다. 진행 중인 모든 폭력의 반대편에 설 것이라는 다짐처럼 느껴졌다.

 

99.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213.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말을 걸며 길을 인도하고,

 

215. 나는 가방을 열었다. 가지고 온 초들을 소년들의 무덤 앞에 차례로 놓았다. 왼쪽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 앉아 불을 붙였다. (......) 반투명한 날개처럼 파닥이는 불꽃의 가장자리를 나는 묵묵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며 불을 밝힌다.

 

 

그녀의 올곧은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또, 희망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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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0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소식을 감동적으로 마주하고, 12월 10일 시상식을 기다리며 나는 무척이나 설레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 <작별하지 않는다>, <흰> 등 그녀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슬프고 고통스럽다. 4년 전, <채식주의자>를 읽고 썼던 글을 보니 나는 이 작품을 많이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12월 7일 스톡홀름에서 진행된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강연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수수한 얼굴과 차림새, 차분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원고를  읽어나가는 그녀의  강연은 한 편의 서사시를 듣는 듯했고, 어느새 나의 눈가는 젖어있었다.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수상자 강연 중)
 
그녀가 여덟 살 때 썼던 시의 한 연처럼 그녀의 삶과 작품, 과거와 현재, 사람과 사람은 연결되어 있었다.
 
 
 
기자 회견 중, <채식주의자>에 대한 작가의 언급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채식주의자는 질문으로 가득한 소설이며, 제목이 채식주의자인데 주인공은 한 번도 자신을 채식주의자로 명명한 적이 없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라는 문학적 장치가 이 소설에 있고, 그렇게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이야기할 때 문장마다 아이러니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걸 생각한다면 흥미롭게 읽으실 것이다."
 
책을 다시 읽었다.
 
주인공 영혜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으며 폭력적인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려고 한다. 

 

 43.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_<채식주의자>

종내 식물이 되었다고 믿는 영혜는 서슬 퍼렇게 도사리고 있는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도, 완전한 존재가 되지도 못한다. 그녀는 살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



 
세 편의 연작 소설로 이루어진 채식주의자는 하나의 소설인 듯 연결되어 있다.  <채식주의자>의 화자 영혜의 남편, <몽고반점>의 화자 영혜의 형부, <나무 불꽃>의 화자인 영혜의 언니 인혜는 모두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다. 그들은 영혜가 거부하려고 했던 것이 결국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생각과 감정대로 영혜를 생각하고 추측하고 판단하고 연민한다. 
 
기이하게도 각 단편의 화자들은 다른 단편에서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영혜를 들여다보는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끌고 나갈 때 남편과 형부는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된다. 언니 인혜는 폭력을 당하는 주인공이 된다. 결국 모두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혜와 인혜 자매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악몽과 부서짐의 순간들을 통과해 마침내 함께 있다. 이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앰뷸런스 안이다. 타오르는 초록의 불꽃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 (수상자 강연 중)
 

행복해지기 위해 죽어가는 영혜, 고통을 끝내려 죽음을 선택하려 했던 인혜. 

그 앰뷸런스 안에서 인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결국, 무수한 질문들을 던진 채 질문으로 끝난 이 소설은 여전히 어려운 소설이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그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수상자 강연 중)
 
영혜와 인혜가 세상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끝냈다는 작가의 그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이 소설에서 작가는 우리의 삶에 생명을 어떻게 증명하고자 했는지 읽어 보려 한다.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수상자 강연 중)

결국 팔딱팔딱 뛰는 가슴에서 가슴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랑은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는 열쇠일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폭력적인 세상, 이곳에 구원이 있기를, 또 살아갈 수 있기를,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이기를 바라는 아침이다.

 

 

 

 

 

 

 

 

 

 

 

 

1985년, 아일랜드 한 마을. 추위가 매섭고, 한기가 칼날 같다.

 

실업수당을 받기 위한 긴 줄, 전기 요금을 못내 추운 집에서 외투를 입고 지내는 사람들, 아동수당을 받으려는 여인들, 돌보는 사람들이 떠난 젖소들의 울음, 경기는 꽁꽁 얼어붙었고, 여기저기 문 닫는 회사들과 상점들이 넘쳐나며, 다른 나라로 무작정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다.

 

펄롱은 부자는 아니었지만 석탄, 장작 등을 파는 야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부지런한 아내 아일린과 바르고 장래성을 보이는 다섯 딸과 함께 소박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20. 가끔 펄롱은 딸들이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걸 보며--성당에서 무릎 절을 하거나 상점에서 거스름을 받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이 애들이 자기 자식이라는 사실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한 기쁨을 느끼곤 했다. '우린 참 운이 좋지?" 어느 날 밤 펄롱이 침대에 누워 아일린에게 말했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

 

24.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나 또한 두 자녀가 친절한 행동을 하며, 바른 생각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에 자랑스러움을 느끼며 그것이 나의 삶에 많은 기쁨을 준다.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뒷바라지하며, 가족과 나의 노년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고 있기에 펄롱의 맘이 너무 이해가 되었다.

 

22. 벌써 길에서 딸들한테 눈길을 주는 남자들이 있었다. 펄롱은 마음 한편이 공연히 긴장될 때가 많았다. 왜인지는 몰랐다. 모든 걸 다 잃는 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그러다 문득 그리고 자주, 아들과 딸, 가계 형편, 가족들, 미래에 대한 생각이 한가득 몰려오면 걱정과 염려로 우울해지기도 한다. 삶이란 이런 거지. 다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지. 하며 소설을 읽어나가다 작가가 말하는 '사소한 것들'에 놀라고 부끄러워진다.

 

 

 

허드렛일을 했었던 엄마와 윌슨 부인의 집에서 살았던 펄롱은 아버지의 존재를 모른 채 슬픈 시절을 보낸다. 그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주인아주머니와 또 다른 일꾼이었던 네드 아저씨의 친절과 배려로 그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슬픔은  현재 자족하며 살아가려 부단히 노력하는 펄롱을 종종 우울하게 만들었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은 그를 심란하게 만든다.

 

35. 갑자기 무언가가 목구멍에서 울컥 치밀었다. 마치 이런 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일요일 밤에 대체 무엇 대문에 이렇게 심란한 걸까?

 

43-44. 이게 다 무엇 때문일까? 펄롱은 생각했다. 일 그리고 끝없는 걱정.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도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펄롱은 석탄을 배달하러 수녀원에 갔을 때 허름한 차림새로 마루 바닥을 광내고 있던 젊은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들을 마주한다.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시겠어요?"

이상한 낌새가 있었지만 그들에게 손을 내밀지는 못했던 그는 혼란스러웠지만, 아일린은 그런 일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니 상관없다며 안심시킨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그러나 펄롱은 미스즈 윌슨이 이렇게 생각했다면,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어머니와 그를 밀어냈다면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됐을지 두려웠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석탄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시 수녀원으로 배달을 간 펄롱은 광에 갇혀있던 여자 아이를 발견한다. 그녀는 출산한 지 14주 되었고 아기의 행방을 모르는 채 갇혀있었다. 수녀원을 관리하는 선한 목자수녀회는 직업여학교와 세탁소를 함께 경영하고 있던 실세였다. 타락한 여성들을 위한다던 자선 단체는 여자들을 가두고 부리고 학대하고 있었다. 

 

99.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탕 관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 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102. 좋은 사람들이 있지.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의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척지거나 다투지 않고 살아왔던 펄롱은 권력과 힘과 부를 가진 세력과 맞설 용기를 낸다. 분명히 맞닥뜨려야 할 어떤 두려움들을 예견하지만 또 설렘을 간직한다. 그는 수녀원으로 향하고 맨발에 초라한 행색의 아이를 광에서 데리고 나온다.

 

119.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욕심부리지 않고, 살뜰하게 가족을 챙기고, 이웃과 적당히 돕고 베풀며, 단정한 인생을 사는 것도 훌륭한 인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주변이 큰 위기 없이 흘러간다고, 혹은 나에게 어떤 불이익이 있을까 봐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모른척하고, 손 내미는 사람들을 뿌리치는 것은 이기적이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이렇게 말하기보다는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걔들은 우리 애들과 같아. 나에게 반드시 닥칠 고난과 궁핍과 갈등이 있겠지만 용기 내볼래. 맞서볼래." 이렇게 말하는 용기를 내보기로.

 

 

 

펄롱은 또 다른 일꾼이었던 네드와 닮았다는 말에 그가 자신의 아버지일 지도 모른다고 깨닫는다. 

 

111.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펄롱으로 하여금 자기가 더 나은 혈통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서, 그 세월 내내 펄롱의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네드의 행동이, 바로 나날의 은총이 아니었나.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 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

 

120.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네드와 미시즈 윌슨은 펄롱의 곁에서 그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사람들이었다. 손톱 솔과 비누 한 장, 보온 물주머니, 곰팡내 나는 책 <크리스마스 캐럴>, 얼마든 쓸 수 있었던 물건들, 먹을 수 있던 음식들, 함부로 평가당하지 않았던 일 등,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야말로 한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 사람 되게 하는 "얼마나 위대한 것들"인지....

 

 

 

길을 잃은 펄롱에게 한 노인은 조언한다.

54.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우리는 어느 길로도 갈 수 있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나 하나 챙기며 사는 것도 힘겨운 세상이지만 작은 친절과 어떤 용기는 한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더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 걱정과 근심으로 잠이 잘 오지 않는 요즈음,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며 참담하다. 나의 이익보다는 더 나은 선택이 필요한 이때 정치인들도 시민들도 용기를 내야 한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 & 콤 베어리드 감독의 영화 [말없는 소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책.

[맡겨진 소녀, Foster ]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아 늘 지쳐있는 엄마, 다정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무책임한 아빠.

엄마의 출산을 앞두고 소녀는 엄마의 먼 친척 집에 잠시 맡겨진다. 

아빠와 함께 낯선 곳에 도착한 소녀는 집에서 경험해 본 적 없는 킨셀라 아주머니의 다정함과 따스함을 느끼며 묘한 기분이 든다.

 

17.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24.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숨 막히던 집에서 가족들과 소통하며 지낼 수 없었던 소녀는 최소한의 말만을 하며, 많은 비밀을 가지고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런 환경은 소녀를 눈치 보고 주눅 들게 만들었고, 두려움에 갇히게 했을 것이다. 소녀는 두렵지만 또 어떤 호기심으로 새로운 곳에서의 삶에 용기를 내어본다. 

 

27.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

 

30.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킨셀라 아저씨는 처음에는 소녀에게 무뚝뚝했지만 점점 관심과 애정을 주게 되고, 받아본 적이 없는 보살핌과 사랑은 소녀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인다. 

 

69.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75. 바로 그때 아저씨가 두 팔로 나를 감싸더니 내가 아저씨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끌어안는다.

 

찬란했던 여름날은 지나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다가온다.

부모 그 이상이었던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정겹던 주변의 많은 것들은 소녀를 또 얼마큼 변하게 만들었고 성장시켰다. 

 

79.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불을 빤히 보면서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고, 그래서 울음을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떠오른다.

 

83. 물건을 하나하나 모으면서 나는 우리가 함께한 나날을, 우리가 물건을 샀던 곳과 이따금 나누었던 대화를, 그리고 거의 항상 빛나고 있던 태양을 떠올린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은 [말없는 소녀, The Quiet Girl]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67.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죠. 이런 애들이 많으면 좋을 텐데요.

 

73. 넌 아무 말도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렵.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96. 아무 일도 없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묻고 있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다.

 

영화를 보면서도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며, 때로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보석 같은 일인지 깨달았던 순간이 몇몇 있었다.

 

킨셀라 부부의 숨겨진 아픔을 소녀에게 함부로 얘기하고, 그들의 생활을 꼬치꼬치 묻던 이웃 아주머니.(제발 말 좀 그만했으면 하고 생각했다.)

딸을 잘 보살펴 준 킨셀라 부부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 딸이 감기에 걸렸다며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불평한 아빠.(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감자를 선물로 주고 언제든 소녀를 다시 보내도 된다며 길을 떠난 킨셀라 부부.(훌륭한 품격이 느껴지던 순간)

 

영화는 킨셀라 부부가 있는 곳의 빛과, 소녀 집의 어둠을 대비시키며 그녀의 참담한 상황을 더 짙게 드러낸다.

가난으로 고통받고 돌볼 것들이 많은 엄마는 자식들에게 살갑게 대하거나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다. 그러나 말과 태도에 최소한의 예의가 느껴져 연민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빠는 대책없는 최대의 빌런이었다.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들 색감들 빛들. 책의 그림 같은 묘사 장면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

영화 역시 잔잔하게 흘러가다 후반부에 몰아치는 엔딩이 너무 인상적이다.

 

떠나는 킨셀라 부부를 향해 소녀는 전속력으로 달려가 아저씨의 품에 가득 안긴다. 그리고 그 따스한 품에서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아빠를 바라보며 말한다. 경고한다.

 

98.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책도 영화도 단숨에 읽고 한 호흡에 볼 수 있는 분량이지만 그 여운은 꽤 오래 지속된다.

자식을 낳고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 보살피지 못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난과 무지, 환경과 제도, 상황과 인격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기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소녀가 경험한 그 여름의 추억들과 따스한 빛들 그리고 사랑으로 앞으로의 많은 날들을 보낼 수 있기를, 소녀가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응원한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장편소설 [어떻게  지내요] & 파스칼 포자두 감독 [마지막 레슨]
 
 
영화 [마지막 레슨]의 주인공, 마들렌은 92세의 생일날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다. 더 이상 내 몸을 어찌할 수 없을 때, 나의 품위와 존엄을 지킬 수 없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말이다. 그 선언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던 가족들은 저마다 혼란스러워한다.
 
결국, 마들렌의 딸 디안은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며 엄마 곁을 지켜주고, 아들 피에르는 끝까지 괴로워하며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다. 디안과 피에르 각자의 생각과 방식대로 엄마를 사랑하는 진심이 느껴져, 마들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들렌의 죽음은 슬프지만 또 아름답다.
 
"내 눈물은 어디로 갔을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이것이야말로 엄마가 준 마지막 레슨이다."
 
 
 
소설 [어떻게 지내요]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삶을 스스로 끝내려고 하는 친구와, 그 마지막을 함께 보내게 된 작가의 이야기다. 소설 속에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들의 주제는 무겁고 비관적이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도 슬픔이 와락 몰려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삶의 그 어떤 면들을 인정하게 되는 편안한 느낌이 들었달까?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매력인 듯하다. 
 
암에 걸린 엄마의 치료를 두고 "엄마가 결정할 일이죠." 그저 이렇게 말하는 친구의 딸. 결국, 딸에게 삶의 마지막 계획을 알리지 못한 모녀의 거리. / 아내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삶에 활기가 생기고 미소가 많아진 한 남편 이야기.
이처럼 무관심하거나 서로를 증오하는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가. (영화 [마지막 레슨]의 마들렌 가족은 어쩌면 너무 이상적인 가족일지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저 상투적인 위로나, 그 사람의 감정을 부정하며 긍정적인 말만 되풀이한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그러나, 그런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166.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번 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가족과 관련된 슬픈 이야기는 맘이 저리게 아프다. 누구나 세월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 사건들이 왜 없겠는가. 
 
195. 절대 씻어낼 수 없는 삶의 얼룩이라고 표현했다. 어느 때건 예기치 않게 불쑥 밀려드는 슬픔, 특히 행복하고 평온한 순간이면 그렇게 찾아들어- 그 순간들을 망쳐놓는 슬픔이라고.
196. 그런데 어떤 것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거야. 살날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아는데도. 그러고 나면 그대로 벌어진 상처가 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암 치료를 거부하고 삶을 끝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선 안된다고, 버터야 한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희망의 말들을 한다. 무슨 영웅 서사처럼 말이다.  (딱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183.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권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123. 이것이 싸우는 내 나름의 방식이라는 걸 사람들도 이해해야 해. 내가 먼저 나를 없애버리면 암이 나를 없앨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기다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이 모두를 이해하고 내 편이 되겠다고 약속해 줄 사람, 내가 잠든 사이에 약을 변기에 넣고 내려버리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사람이야.
 
211. 가능한 한 세상에 누를 끼치지 않고 내 식대로 죽고 싶었다고. 평온함을 바랐어. 질서 정연함을 바랐고. 주변이 평온하고 질서 정연하기를 바랐을 뿐인데. 차분하고 말끔하고 품위 있고, 심지어- 안 될 게 뭐야? -아름다운 죽음. 내가 생각한 건 그것이었는데.
 
주인공은 친구의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켜낸다. 외롭지 않도록, 웃을 수 있도록, 기쁨과 슬픔을 간직할 수 있도록, 안락하고 간결한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말이다. 
 
239. 우연의 일치. 요즘 새로 읽고 있는 책에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경험을 사랑에 빠질 때의 강렬함과 비교한 대목이 있다.(......) 이 모든 일이 먼 과거의 기억이 됐을 때는 과연 어떨지 알고 싶다. 더없이 강렬한 경험이 결국엔 얼마나 자주 꿈과 비슷해지는지, (......) 인생은 한갓 꿈일 뿐. 생각해 보라. 그보다 더 잔인한 관념이 과연 있을 수 있나?
 
친구의 죽음과 반대로 그녀는 또 살아가야 한다. 분명 이전의 그녀와 얼마큼 또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213. 그게 사는 거야. 무는 일이 있건 삶은 이어진다. 엉망의 삶. 부당한 삶.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삶. 내가 처리해야 하는.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122.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친절하라. 네가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니." 소설 속 언급된 플라톤의 이 말처럼, 
가족에게, 친구와 이웃에게, 마주치는 모든 이들에게 "어떻게 지내요?" 다정하고 상냥하게 진심을 전하는 것이 파괴된 지구에서 시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무슨 일이지? 공포로 심장이 쿵쾅거린다. 곧 끝날 거야. 이 동화 같은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가장 슬픈 이 시간은 지나갈 거야. 그러면 혼자가 되겠지."
 

이번 주 주말, 소설 <어떻게 지내요> 를 영화화 한 <룸 넥스트 도어>를 볼 예정이다. 대단한 두 배우의 연기와 함께 소설의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 지 무척 기대되는 작품이다.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ROH 시네마 기획전, <영화와 민주주의>에서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를 관람했다.

 

1973년 9월 11일 시작된 칠레 군사 쿠데타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문민정부를 부르짖던 아옌데 신사회주의 정권이 미군의 지원을 받는 피노체트 장군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와 너무도 닮아있는 비참한 상황을 두 시간 가까이 힘겹게 지켜보았다. 영화 후 이어진 GV는 중남미 역사와 현실 등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프랑스와 불가리아에서 촬영되어, 1975년 세상으로 나온 영화에 대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네루다의 장례식으로 끝이 난다. 

책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다시 꺼내 들게 만들 정도로 이 장면은 나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197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고, 칠레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시인. 1969년 대통령 후보에 지명되었지만, 아옌데 대통령을 추대하고 후보에서 사퇴했던 정치인 파블로 네루다. 

 

소설은 네루다의 열정적이고 혁명가적 기질보다는 유머러스하고 인간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바닷가 시골마을, 이슬라 네그라의 우편배달부 마리오의 설정이 그의 무거움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서문에 쓰인 대로 이 이야기는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며 끝을 맺는다.

 

 

51. 천둥이 몰아치듯 정치가 나의 일을 중단시켰다. 민중은 내게 삶의 교훈이 되어왔다. 나는 민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 시인 특유의 수줍음을 띠고, 수줍어하는 사람에게 두려워하면서. 그러나 민중의 품에 안기고 나면 내가 변하는 것을 느낀다. 나는 대다수 참된 민중의 일부고 인류라는 거대한 나무에 달려있는 이파리 중 하나인 것이다.

 

131. 정확히 백 년 전, 가련하지만 찬란한 시인, 처절하게 절망하던 한 시인이 이런 예언을 썼습니다.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리라." 저는 예지자 랭보의 이 예언을 믿습니다. 저는 지리적으로 철저히 격리된 나라의 알려지지 않은 한 지방 출신입니다. 가장 버림받은 시인이었고, 저의 시는 지방적이고 고통스럽고 비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결코 희망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 도달했습니다. 시와 깃발을 가지고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미래는 랭보의 말대로라는 것을 노동자, 시인 그리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불타는 인내를 지녀야만 빛과 정의와 존엄성이 충만한 찬란한 도시를 정복할 것입니다. 이처럼 시는 헛되이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 속 죽음을 맞이한 네루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불타는 인내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을까. 빛과 정의와 존엄성은 결국 헛된 희망이었을까.

 

시인의 수많은 메타포들은 민중들을 일으켜 세운다. 네루다의 장례식은 쿠데타 이후 최초의 항의 시위가 되고, 17년간의 긴 독재정권은 결국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실현된다. 여전히 빛과 정의와 존엄성은 희미하지만 또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고단한 사람들이 인내의 불을 꺼트리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소설을 영화화 한 <일 포스티노>를 보고 싶다. 

 

 

 

 

 

 

 

 

 

 

 

소설이라기엔 에세이, 에세이라기엔 시 같은 느낌의 책.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환부에 바를 흰 연고, 거기 덮을 흰 거즈 같은 무엇인가가 필요했다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단어들을 들여다보는 일엔?

 

 

두시간 만에 죽은 내 어머니의 첫아기, 나의 언니의 죽음을 생각하며 사라진 것들과 살아남았지만 상흔을 품고 있는 모든 것들을 애도하고 위로하는 이 책.

 

1944년 바르샤바에서 있었던 독일군의 만행. 무너져 내린 도시엔 잔해들의 흰빛과 검은 흔적의 폐허만이 남았었다. 잔해들 위에 끊임없이 복원되었던 그 도시에서 작가는 책의 3분의 2를 썼다고 한다.

 

 

p 55. 이게 뭔가, 대체 이게 뭔가 생각할 때 더럽게도 하얗게 내리는 눈.

p 58. 부서지는 순간마다 피도는 눈부시게 희다.

p 59.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p 64.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p 67. 그 소금 산에, 아무리 희게 빛나도 그늘이 서늘한.

 

p 78. 하얗게 웃는다,라는 표현은 (아마) 그녀의 모국어에만 있다. 아득하게, 쓸쓸하게, 부서지기 쉬운 깨끗함으로 웃는 얼굴, 또는 그런 웃음. 너는 하얗게 웃었지. 가령 이렇게 쓰면 너는 조용히 견디며 웃으려 애썼던 어떤 사람이다. 그는 하얗게 웃었어. 이렇게 쓰면 (아마) 그는 자신 안의 무엇인가와 결별하려 애쓰는 어떤 사람이다.

p 80. 사라질 --사라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통과했다 묵묵히.

 

p 109. 그리고 그보다 사소하게, 그녀는 자신의 재건에 빠진 과정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녀의 몸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녀의 넋은 아직 육체에 깃들어 있다. 폭격에 완전히 부서지지 않아 새 건물 앞에 옮겨 세운 벽돌 벽의 일부 --깨끗이 피가 씻겨나간 잔해-- 를 닮은, 이제 더 이상 젊지 않은 육체 속에. 부서져본 적 없는 사람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어 여기까지 걸어왔다. 꿰매지 않은 자리마다 깨끗한 장막을 덧대 가렸다. 결별과 애도는 생략했다. 부서지지 않았다고 믿으면 더 이상 부서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 몇 가지 일이 그녀에게 남아 있다; 거짓말을 그만둘 것. (눈을 뜨고) 장막을 걷을 것. 기억할 모든 죽음과 넋들에게--자신의 것을 포함해--초를 밝힐 것.

 

 

p 133.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말을 모르던 당신이 검은 눈을 뜨고 들은 말을 내가 입술을 열어 중얼거린다. 백지에 힘껏 눌러쓴다. 그것만이 최선의 작별의 말이라고 믿는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135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어딘가로 숨는다는 건 어차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라는 소설 속 말처럼 그 흰, 모든 흰 것들은 죽음을 되돌릴 수도 상처를 깨끗하게도 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하얀 작별, 흰 애도, 하얀 초의 심지에 불꽃을 켜 두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회복할 수 있도록.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영화감독도, 영화를 만드는 일에 관여하지도, 씨네필도, 평론가도 아닌 영화 보기가 취미일 뿐인 사람이지만, 거침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어쩌면 나는, 영화를 사랑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그만큼 나의 삶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것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우고 나아간다. 

 

이 소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혹은 좋아하는 일들로 상처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어둡고 우울한 면이 있지만, 결국 미소 짓게 만드는 엔딩으로 따뜻하고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115. 우리는 각자가 원하지 않는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잘하고 싶었는데, 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콘티도 열심히 그렸는데, 우리는 왜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을 미워하게 될까.

 

138.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168. 혜나야. 너 기분 좋아 보이니까 좋다. 그런데 꼭 뭐가 되어야지만 사랑받을 수 있는 건 아니야.

 

168. 자기가 좋아한 것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다. 우리가 추구하던 꿈과 기대하던 삶이 전부 무너진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198. 그러나 계속 후회 속에 빠져 멈춰 있을 순 없다.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 한다. 때로는 오케이가 없어도 가야 한다.

 

205. 영화를 정말로 사랑하니까 영화를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승호의 말. 누군가에게는 궤변으로 들릴 말이지만, 내게는 궤변이 아니었다. 영화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승호가 단지 자신이 뭔가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17. 어떻게 버티느냐고 물었지. 진정으로 응원해 주고 지켜봐 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돼.

 

217. 고태경의 이 모든 게 애정 때문이었다는 말인가. 애정이라는 건 결국 식어버리는 것 아닌가.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납득했다. 결국, 내가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도 <초록 사과>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229. 작품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됐다. 돌이켜보면 뭔가를 도모하고 거기에 몰두할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

 

 

애정, 사랑은 삶을 끌고 가는 원동력이다.

나를 지켜봐 주는 단 한 사람을 위해,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다. 일터로 향한다.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드린다.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를 위해, 낡고 비좁은 작업실로 발길을 돌린다. 힘겹게 돌아가는 컴퓨터로 편집을 강행한다. 

그렇게 버텼고, 버티고 버틸 것이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 또한 애정일 것이다.

 

모든 준비생들과 지망생들, 기회만 주어진다면 잘 해낼 사람들이지만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 놓인 누군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소설을 썼다. 그건 나에게 누군가 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였다. _작가의 말 중

 

 

 

인생에서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는 것도,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주어진 하루를 애정 어린 시선을 주고받으며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따스한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리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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