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연작소설 (한겨레 출판)

 

[82년생 김지영]의 저자, 조남주의 소설은 우리네 삶의 모습을 덜거나 보탬 없이 자연스럽게 묘사한다. 긴장감과 반전 없이 잔잔하지만, 인간의 욕심과 간사함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서영동을 배경으로 한 일곱 편의 연작소설은 조금씩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부모 잘 만나 안정적이고 편안한 생의 기반을 마련하는 이들이 있다. 반면에 가난한 부모 탓에 독립할 자금은커녕 그나마 번 돈을 집에 갖다 바쳐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능력과 운의 기막힌 조화로 자수성가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그 재능이 발목을 잡고 초라한 삶을 살아간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 가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것은 너무도 멀리 있는 일이다. 

 

이런 불균형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품고 있는 욕망, 이기심 등의 마음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이익을 좇아 반응하며, 갖지 못한 어떤 것들을 선망하고, 남과의 비교로 괴로워한다.

38. 아내는 그만 욕심을 부리라지만 용근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8월 말의 실거래 정보를 보면 지금 내놓은 가격에도 거래가 될 것 같다. 분명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인데 내 것이었던 것 같고, 빼앗긴 것 같다. 용근은 박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봄날아빠)

72. 대답할 수 없었다. 말한다고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서울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소유주가 된 네가, 작은 아버지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큰 아버지의 회사로 이직한 네가, 가족 단톡방의 부모님 해외여행 사진에 무심히 이모티콘을 보내는 네가, 그 모든 일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경고맨)

96. 단지 입구 쪽에 작은 평형이 모여 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은 평형이다. 은주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샐리엄마 은주)

241. 학원 사이트에서 초등부 진도표를 확인하려고 크롬을 열었는데 포털 사이트 메인에 '2030 영끌족, 수도권 아파트 매수세 심상찮아'라는 기사가 떠 있었다. 아영은 기사에 나열된 30대의 사례들이 무척 낯설었다.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라 오히려 황당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끌어모으면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영혼은 대체 어떤 영혼일까. 나는 영혼마저도 실속이 없네, 웃음이 나왔는데 솔직히 웃기지는 않았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

 

 

 

내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돈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부동산 사이트를 드나들었던 기억, 남편의 승진과 더불어 생긴 이러저러한 혜택들에 좋아했던 일들이 이렇게 선명한데 말이다. 속물적인 마음을 표현하는 정도야 다르겠지만, 인간은 못나고 미운 마음을 가슴 한 구석에 아슬아슬하게 숨기고 살아간다.

188. 그런데요, 사장님. 저는 전세보다는 자가인 게 좋고요. 작은 집보다는 큰 집이 좋아요. 집값 오르는 거 느긋하게 보면서 그때 무리해서 사길 잘했지, 그때 안 샀으면 지금 넓혀가지도 못했지, 하는 기분도 썩 나쁘지는 않더라고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속물이고 투기꾼이라고 생각하시겠죠? 그래서 말하지는 않으려고요. 생각이야 참을 수 없지만 말은 가릴 줄 알거든요. 이게 현대인의 교양이죠. (교양 있는 서울 시민 희진)

109. 지긋지긋하기는 은주도 마찬가지였다. 샐리 엄마도, 새봄엄마도, 그런 여자들 중 하나로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생활도, 그런 여자들을 둘러싼 말들도, 오해도, 적의도, 정말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대체 그런 여자는 어떤 여자고 그렇지 않은 여자는 또 어떤 여자인데. (샐리엄마 은주)

 

 

 

그러나 욕심과 이기심, 못나고 미운 마음을 품고 표현하고 심지어 행동한 후, 또 인간이라면 가지게 되는 미안함과 후회, 수치심이 밀려온다. 양심버튼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143. 부끄러웠다. 무례한 아버지가, 속물 같은 아버지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버지가, 그리고 그런 아버지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자기 자신이. (다큐멘터리감독 안보미)

160. 노인이나 어린이, 장애인 시설을 기피하는 이기적인 주민들. 경화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두통이 밀려왔다.  (백은학원 연합회 회장 경화)

174. 카메라가 있고 없고서가 아니라 그냥 제 처지가 달라졌어요. 그때도 지금도 저는 아무 생각이 없고 이런 제가 한심하고 답답하고 부끄러워요. 부끄럽다고요. 이제 와 부끄럽다고 말하는 것도 부끄러워요. 경화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백은학원 연합회 회장 경화)

 

 

 

인간은 어떻게 디자인되었길래 이러나저러나 괴로운 마음을 안고 고통받으며 살아야 하는 걸까.

피해보지 않겠다고, 내 자식은 굶기거나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잘 살아보겠다고 했던 것들. 나의 이익을 위해 정의를 모른 척했고, 나의 편안함을 위해 손 내미는 어떤 것들을 마다했던 일들. 이런 속물적인 이기심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은 늘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

143.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 넘치도록 지원을 받았고, 결혼하고도 부모님께 기대어 살았다. 게다가 아버지의 속물근성을 까발리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커리어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 어쩌면 보미도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속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감독 안보미)

194. 남편의 가치관과 생활습관을 존중하려 노력했고, 딸 하나 아들 하나 잘 키웠고, 회사도 성실하게 다녔다.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사람이고 삶이라고, 좋은 아내라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희진이 자산 관리를 잘해서, 부동산 투자를 잘해서, 결국 10억을 만들어내서 최고의 아내인 걸까. (교양 있는 서울 시민 희진)

 

 

 

<서영동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고위직도, 기업인도, 정치인도, 연예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 소설들을 쓰는 내내 무척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습니다."라는 작가의 말도 어쩌면 너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이기에 그랬으리라 짐작한다. 

 

그렇게 다행이기도 불행이기도, 행복하기도 우울하기도, 자랑스럽기도 부끄럽기도 한 삶은 지속된다. 

208. 그렇게 시끄러운 윗집과 예민한 아랫집 사이에서 병들어가는 사이 집값은 계속 올랐다. 이사한 지 1년여 만에 시세는 15억이 되었다. 희진이 집이 좋기도 싫기도 했다. 이 집을 가져서 다행이기도 불행하기도 했다. 행복하기도 우울하기도 했다. (교양 있는 서울 시민 희진)

 

 

 

인간은 약하기에 못나고 미운 마음들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나 그렇다. 그러나 성인(聖人)까지는 아니지만 작은 잘못에도 부끄러워하고, 예쁜 마음씨를 갖고 살려고 노력하는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고,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이기심이 모여 삶이 각박해지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욕심이 더해져 세상은 무너진다. 무너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2023

 

엄태화 감독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위기사항에 처했을 때,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욕심과 이기심이 얼마나 극도의 이기주의로 발현되는지 엿볼 수 있는 영화이다.

 

대지진으로 하루아침에 서울은 처참히 무너졌고, 그 폐허 가운데 '황궁 아파트' 만이 유일하게 그대로다.

소문을 들은 생존자들이 아파트로 몰려들자 입주민들은 위협을 느끼고 집단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양심과 부끄러움을 버리지 않았던 인물, '명화'(박보영)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책과 영화의 상황과 결은 다르지만, 결국 두 이야기는 맞닿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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