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설 [여수의 사랑]
한강 작가가 20대 초반에 썼던 단편 소설들을 모은 <여수의 사랑>.
여수가 주는 낭만과 그곳에서의 좋은 추억으로 소설의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여수의 낭만에 대한 글이 아니었다. 여수는 삶의 고통이 시작된 지점, 아픔을 끊어내는 공간, 영혼의 장소였다.
42. 다만 그녀의 지치고 외로운 얼굴에 여수[麗水] 아닌 여수[旅愁]가 어두운 그림자를 끌고 지나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 여수[旅愁] : 객지에서 느끼는 시름이나 걱정
작가는 가족을 잃은 상실의 고통으로 인해 안정된 생활이라곤 전혀 할 수 없는 청년들의 외로움과 지난한 삶을 그려낸다. 그녀의 책을 읽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이 소설 역시 다른 작품들과 결이 같다. 폭력적인 삶, 끝이 없는 고통,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인간들.
10. 음산한 하늘 아래 나무들은 비바람에 뿌리 뽑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젖은 줄기와 가지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휘어졌다. 노랗고 붉게 탈색된 낙엽들이 무수한 불티처럼 바람 부는 방향으로 흩날렸다. 조금 큰 활열수 들은 의연하게, 줄기가 여린 묘목들과 갈대숲은 송두리째 제 몸을 고통에 바치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도, 그들의 뿌리를 움켜 안은 대지도 놀라운 힘으로 인내하고 있었다.
나무는 사람 같다.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는 인간들은 놀랍다.
소설의 주인공 정선과 자흔 역시 고통의 나날들을 견디고 또 견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은?
정선, 스물여덟.
그녀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잃고, 일곱 살에 아버지의 동반 자살 시도로 동생과 아버지는 죽고 그녀 혼자 살아남는다. 이후 여수를 떠나 외가댁에서 지내다, 서울에서 홀로살이 하며 발작적인 결벽증과 위장경련을 앓으며 힘겹게 지내고 있다.
자흔, 스물여섯.
두 살 때 강보에 싸인 채 여수발 서울행 열차 안에 버려져 발견된 자흔은 보호 기관을 떠돌다 고아원을 거쳐 입양된다. 양아버지가 죽고 양어머니 밑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여수가 고향이라고 믿으며 여기저기 떠도는 삶을 살고 있다.
둘은 우연히 한 자취방을 공유하며 살게 되지만, 그들이 가진 상처와 고통은 서로에게 힘겨울 뿐이다. 결국 자흔은 떠나고 정선은 여수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13. 명치끝이 찢기듯이 아파왔다. 적요한 햇빛 속으로 무수한 먼지 입자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름답구나, 하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먼지는 진눈깨비 같았다. 먼 하늘로부터 춤추며 내려와 따듯한 바닷 물결 위로 흐느끼듯 스미는 진눈깨비......, 여수의 진눈깨비였다.
상처의 시절은 단단히 기억하지,
밀려온 진눈깨비조차
참 따뜻한 나라라고
-김영인의 시 [여수]
비가 섞여 내리는 눈. 진눈깨비. 차갑고 우울한 눈비. 정선은 그것을 따뜻하고 아름답다고 느낀다. 삶의 고통이 얼마나 크기에 그 안에서 발견하는 작은 어떤 것에 위로를 받는 것일까.
25. 이렇게 고요해질 통증인 것을, 지난밤에는, 또 수없이 반복되었던 그 밤들에는 이런 순간을 믿지 못했었다. 마치 밤이 깊을 때마다 새벽을 믿지 못하듯이, 겨울이 올 때마다 봄을 의심하듯이 나는 어리석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폭풍 속에서의 인내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아 견딜 수 없이 괴롭고 절망한다. 그러나, 지나간다. 모든 일들은 어떻게든 끝이 난다. 통증은 가라앉고, 상처는 흐려지고, 슬픔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생은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또 한 번 용기를 내어 견뎌야 하는 것일까.
34. 다만 신기한 것은 때때로 자흔의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이었다. 모든 것에 지쳤으나 결코 모든 것을 버리지 않은 것 같은 무구하고도 빛나는 웃음이 순간순간 거짓말처럼 그녀의 어둠을 지워내버리곤 했다. 그런 자흔을 보면서 나는 종종 어떻게 사람이 저토록 희망 없이 세상을 긍정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의아해지곤 했던 것이었다.
62. 마침내 오래 기다렸던 전동차가 라이트를 밝히며 천천히 승강장으로 들어왔을 때, 저마다의 눈에서 어슴푸레하게 빛났다가 이내 스러지는 무감각한 희망들을 나는 보았다.
희망 없이 세상을 긍정한다는 말.
가난과 부조리에 짓밟힌 사람들의 소박한 웃음, 암으로 죽어가는 한 여인의 의연하고 담담한 표정, 실패의 실패를 경험하고 이제는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의 긍정.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일까.
웃음 너머에 슬픔, 희망 너머에 체념이, 외로움이, 절망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 모든 긍정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64. 차창 밖 승강장에는 얼마나 바람이 불어대는지 승객들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흩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마다 빗물에 젖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승객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역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타지에서 고향으로, 혹은 어딘가를 떠나 또 다른 목적지로 돌아온 그들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 속으로 담담하게 용기 내어 달려간다. 어떤 고통을 마치고 또 다른 시련 속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하나의 산을 넘었다는 안도감이 그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일까. 그 찰나의 안도감과 평화로 인간들은 숨을 쉬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영화의 주인공 리(케이시 애플렉)는 자신의 실수로 두 딸을 잃고, 아내와 헤어진 후, 맨체스터를 떠나 매사추세츠에서 잡역부로 일하고 있다. 심장병이 있던 형의 부음을 듣고 맨체스터로 돌아가 모든 일을 처리하고 조카 패트릭을 보살펴야 했던 그는, 그곳에서 담담하게 지내보려고 하지만 과거의 고통과 삶을 견딜 수 없어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된다.
리가 뱉은 한 마디, "I can't beat it."
어떤 마무리도, 어떤 결말도, 어떤 해결도 없이 그저 또 살아가야 하는 너무나 인생 그 자체였던 영화.
떠나는 리는 조카가 언제든 올 수 있게 두 개의 방 혹은 소파배드를 준비하려고 한다. 견딜 수 없는 삶의 한가운데 숨을 쉴만한 그 작은 공간 때문에 리도 패트릭도 또 다음 삶을 이어나가지 않을까.
한강의 단편 [여수의 사랑]과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가족을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견딜 수 없는 삶을 살아내며 무감각한 희망, 희망 없는 긍정을 반복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독히 슬프고, 외롭고, 우울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 여수로 떠나는 정선과,
견딜 수 없어 맨체스터를 떠나는 리의 삶은,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하듯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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