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  & 에두아르도 폰티 감독의 영화 [자기 앞의 생] 

 

몇 해 전 읽었던 삽화가 있는 책도 너무 좋았지만, 글에 집중해서 읽는 것 또한 다른 매력이 있었다. 내친김에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도 봤다. 지난번, 영화 초반만 보고 책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라 보기를 멈췄던 영화다.

이번에는 끝까지 봤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다. 소설과 다른 설정도 많았고, 인상적이었던 인물들이 생략된 영화는 나에게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책의 느낌이 전달되지 않아 다른 작품을 보는 듯했다. 

 

에밀 아자르의 소설은 부조리하고 불행한 인간 삶을 이야기하지만, 슬픔과 아픔 그 어딘가에 줄곧 따뜻하고 아름다운 기운이 흐른다. 에두아르도 폰티 감독의 영화는, 그러한 인간의 삶이 내내 어둡게 느껴졌고 슬픔 가운데 숨어 반짝이는 그 무엇이 잘 전해지지 않았다. 

 

 

 

온갖 풍상을 겪고 늙어 죽음을 앞두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 또한 젊고 화사했던 시절이 있었다. 동정심 없는 자연의 법칙은 인간을 추하게 만든다. 생이 그들을 파괴한 것이다. 온화한 노인의 얼굴, 심술궂은 노인의 얼굴, 요양원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들의 모습, 검버섯과 주름으로 가득한 그 얼굴들을 보면 속이 상한다. 밉다. 추하다. 눈물이 난다. 

 

p. 280 "난 너무 추한 꼴이 되었구나, 모모야." 나는 화가 났다. 늙고 병든 여자에게 나쁘게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니까. 하나의 자로 모든 것을 잴 수는 없지 않은가. 하마나 거북이 다른 모든 것들과 다르듯이 말이다.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p. 137 거꾸로 된 세상. 이건 정말 나의 빌어먹을 인생 중에서 내가 본 가장 멋진 일이었다. 나는 튼튼한 다리로 서 있는 생기 있는 로자 아줌마를 떠올렸다. 나는 좀 더 시간을 거슬러올라 아줌마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었다. 그러자 눈물이 났다.

 

그러나 늙지도, 고통받지도, 불행에 빠지지도 않는 삶은 없다. 그것은 인간 세상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생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p. 300 더 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처넣는 것보다 구역질 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삶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모모와 리사 아줌마를 도울 이웃들이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p. 97 하밀 할아버지는 위대한 분이셨다. 다만 주변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

p. 275 그 세네갈인이 나타나면 언제나 해가 뜨는 것 같았다.

p. 246 그들에게 얘기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끔찍했던 일들도, 일단 입 밖에 내고 나면 별게 아닌 것이 되는 법이다.

 

이웃들의 보살핌 속에서 모모와 리사 아줌마, 그 둘은 트라우마와 가난과 모욕과 고통 가운데 두 손을 맞잡고 생을 살았다. 그렇게 함께한 순간은 삶의 추함도 불행도 고통도 잠시 잊을 수 있었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했다. 노인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본다면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줄 수 있다.

 

p. 279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p. 305 그녀는 이제 숨을 쉬지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숨을 쉬지 않아도 그녀를 사랑했으니까.

 

 

 

소설과는 다른 감정이었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암사자, 모모의 엷은 미소,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멀어져 가는 이웃들의 모습에서 가슴이 찡했다. 소설과 영화 속 모모는 리사 아줌마에 대한 기억과, 이웃들의 사랑으로 자기 앞에 주어진 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슬프지만 또 아름답게. 불행하지만 또 행복하게. 

 

p. 311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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