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지만 강하게 마음을 때리는 소설, <소년이 온다>를 다시 꺼내 들었다. 두 번을 내리읽었다.
한강의 소설은 마음이 아프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은 후에도 끝없는 분노와 혼란, 아픔과 슬픔 등의 감정이 꿈을 꾸듯 멍하게 한다. 1980년 5월 18일. 그 잔혹했던 열흘간의 이야기이다.
총 6개의 소제목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지만, 독특하게도 각 장 마다 글을 이끄는 화자가 다르다. 이러한 구성은 그 당시 각자의 방식대로 인간의 존엄과 정의를 위해 소리쳤던 사람들, 싸늘한 주검이 된 사람들, 고통스러운 삶을 지탱해 나가는 사람들, 혹은 그 시절을 무사히 건너왔지만 이후 가슴 때리는 먹먹함으로 책임감을 느끼는 모든 이들의 심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작가의 세밀하고 감각적인 표현들은 온 정신을 책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마치 책 속의 상황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긴장감을 더해준다. 이 글의 중심에 있는 한 아이, 열여섯, 중학교 3학년, 평범하게 생긴 곱디 고운 그 소년, 동호
책을 다 읽은 후, 제목을 생각해 본다. 작가가 처음 생각한 제목은 ‘여름의 당신’이었다고 한다. 그 잔혹했던 봄이 지나고 소년이 만나지 못한 여름을 말하고 싶었다고......., 하지만 동호를 모르는 독자들을 생각해 많은 고민 끝에 지어진 제목이 바로 ‘소년이 온다’이다. 많은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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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어린 새
동호와 그의 친구 정대는 시위 현장에 가담하게 된다. 무차별하게 쏜 총을 맞은 정대의 몸을 뒤로 하고 동호는 몸을 피한다. 그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며 정대와 그의 누이의 시신을 찾기 위해 도청까지 오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게 된다.
수많은 시신들을 수습하던 동호는 죽은 몸에 '혼' 이란 것이 있을까? 생각한다. 온화한 성품의 외할머니 임종을 지켜보며, 할머니의 조용한 얼굴에서 '어린 새' 같은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었던 적이 있었다. 도청에 있는 사람들의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지, 그 몸 곁에서 파닥거리며 시취를 없애기 위해 피어놓은 촛불들을 흔들리게 하는지, 동호는 궁금했다. 어린 새와 같은 혼. 온화한 할머니의 몸에서 나간 그것은, 억울하게 죽은 평범한 시민들의 몸에서 나간 그것들과 같은 것처럼 느껴졌으리라. 가련한 죽은 몸. 어린 새.
|제2장 검은 숨
죽은 몸이 되어 거대한 몸들의 탑 가운데 버려진 정대. 그의 혼이 1인칭 화자가 되어 썩어가는 자신의 몸을 지켜본다. 온 힘으로 다른 혼들을 느껴본다.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누가 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억울해서 더 격렬한 힘을 갖는 혼. 자신을 죽게 만든 그들의 악몽 속으로 들어가서 피 흐르는 자신의 눈을 보여주고 싶은 분노를 느낀다.
" 우리들의 몸은 계속 불꽃을 뿜으며 타들어갔어. 장기들이 끓으며 오그라들었어. 간헐적으로 쉭쉭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는 우리들의 썩은 몸이 내쉬는 숨 같았어. " <소년이 온다 中_한강>
지독한 냄새와 구더기로 뒤덮인 시체더미는 불태워지며 검은 숨을 내쉰다. 안도의 숨인지 슬픔의 숨인지 모를… 혐오스러운 육체로부터 자유가 된 정대의 혼은 동호를 찾는다. 그 순간 총소리와 함께 동호의 혼이 빠져나오는 기척을 느낀다."그때 너는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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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부터 6장까지는, 시대의 상처를 안고 그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과 아픔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이야기한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소년이 온다 中_한강>
|제3장 일곱 대의 뺨
동호와 함께 도청에서 시체를 수습했던 은숙의 이야기이다. 그날 밤 계엄군을 피한 그녀. 살아남은 그녀의 삶은 어떠했을까? 입시 실패, 재수, 아버지의 병, 휴학, 복학, 학비를 벌기 위해 다시 휴학. 결국, 그녀는 졸업을 포기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한 출판사의 직원이 되고, 원고 검열로 한 수배자와 관련이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 그녀는 경찰서 조사실에서 일곱 대의 뺨을 맞고 피를 흘린다. 그녀는 그 억울한 뺨을 하루에 한 대씩 잊고자 노력해 본다.
"오늘은 여섯 번째 따귀를 잊어야 하는 날이지만, 이미 뺨은 아물어 거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내일이 되어 일곱 번째 뺨을 잊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소년이 온다 中_한강>
그녀는 결코 그날을 잊지 못한다. 도청의 분수대가 눈부신 물줄기를 뿜는다. 그녀는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한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그 잔인했던 오월을 뒤로하고 축제 같은 분수의 물줄기를 보는 것이 괴로웠으리라. 그날을 지우고 살 자신이 없다. 그녀는 동호를 기억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살고 싶어 무서워서 떨리는 눈꺼풀을.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소년이 온다 中_한강>
|제4장 쇠와 피
도청에서 시위를 주도하던 김진수의 이야기이다. 그날 시민군들의 임무는 버티는 것!이었다. 수십만의 시민들이 분수대 앞으로 모일 때까지만 말이다. 처음 총을 만져보는 여린 청년들과, 어설프게 총을 메고 카스텔라가 먹고 싶다던 아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도청에 남아 총을 지니게 되었을까? 이상하게도 그들을 이끈 것은 강렬한 무엇, 바로 양심이었다.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소년이 온다 中_한강>
그러나 그들은 한 발의 총도 쏘지 못했다. 쏠 수 없는 총을 나눠가진 어린아이들처럼. 이 날, 항복하고 두 손을 든 채 계단을 내려오던 동호는 계엄군의 총을 맞고 숨을 거둔다. 쇠가 몸을 뚫어 콸콸 흐르는 피를 흘린 채.
극렬분자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치욕스러운 감옥생활을 경험한 진수는 석방 후에도 고통의 흔적을 안고 체념과 복종과 공허함만이 뒤섞인 삶을 살다가 결국에는 자살을 하게 된다.
|제5장 밤의 눈동자
동호와 함께 도청에서 시체 수습을 했던 선주의 이야기. 그녀는 열여덟 나이로 하루 열다섯 시간씩 방직공장에서 일했었다. 노조간부들이 끌려가던 날 저항하다가 장파열 진단을 받고 해고 통보를 당한다. 그 후 양장점 미싱사 시다로 있다가 삼 년 만에 미싱사가 되어 일하던 중, 바로 그날을 마주한다. 보안부대에 잡혀가 조사실 탁자에서 온갖 치욕스러운 고문을 당한 후 석방된다. 쉴 새 없이 일했고 투쟁했고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던 그녀.
세월이 지난 뒤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시민군의 심리부검을 논문으로 쓴다는 한 남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다. 그는 기억하고 직면하고 증언해 달라고 그녀에게 요구한다. 고통을 주는 일들을 잊으며 밀어내며 살고 있는 그녀에게 말이다.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서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소년이 온다 中_한강>
열일곱 살, 노조 모임을 마친 봄밤에. 스무 살 성희 언니가 말했다. "그럴듯하지 않니. 달은 밤의 눈동 자래." 그 말을 듣고 달이 무섭다고 말한 선주. 깜깜한 밤을 훤히 밝혀 나를 바라보고 감시하는 밤의 눈동자. 그 눈동자는 무엇이었을까? 회백색 가로등 아래에서 어둠을 지켜보며 나오지 않았던 도피생활. 숨어서 나 자신을 지키려 애써왔던 노력들. 그러나, 그녀는 피할 수 없었다. 나를 지켜보는 눈동자를. 총격의 반동으로 팔다리가 엇갈려 모로 누워있는 동호의 사진을 마주했을 때, 그 순간 그녀의 피는 끓어 펄펄 되살게 되었다. 고통의 힘. 분노의 힘으로.
|제6장 꽃 핀 쪽으로
동호의 어머니가 화자가 되어, 자식을 잃은 후회와 슬픔을 토해낸다. 사투리에서 느껴지는 그 구슬픔은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동호와 둘이 걷던 햇빛 나던 어느 날. 엄마가 밝은 곳, 꽃 핀 쪽으로, 좋은 곳으로 가라고 손을 잡고 끌었던 그 사랑스러운 아들.
"그저 겨울이 지나간 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면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면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소년이 온다 中_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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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5.18 광주를 무사히 건너온 '나'라는 인물이 세월이 지나 그 당시의 아픔을 함께하는 이야기이다. 바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고 피해자들을 인터뷰하고 했던 그녀의 노력. 그 와중에 느꼈던 고통, 슬픔과 힘든 순간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소년이 온다 中_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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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 학살을 그린 영화, <쉰들러 리스트>. 독일인 쉰들러는 자신의 재산으로 유태인 천여 명을 학살당하지 않도록 구해준다. (실존 인물인 그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영화에서 그가 유태인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심경의 변화, 즉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 흑백 영화 속 단 하나의 색., 빨간 코트를 입은 유태인 소녀의 죽음이다. 아무 양심의 거리낌 없이 유태인들에게 총을 쏘고 폭력을 휘두르는 나치의 만행을 바라보는 쉰들러 역시 같은 독일인, 나치당이었지만, 한 어린 소녀의 부당한 죽음 앞에서 피할 수 없었던 양심. 그것은 더 강력한 '무엇'이었던 것이다.
잔인하고 끔찍했던 오월.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양심을 던져버린 사람들과 양심의 소리를 들었던 연약 했지만 위대한 사람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세상이 달라진 지금. 우리 삶의 곳곳에서 '이기심'으로 무너지는 양심들 그리고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양심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무엇이 지켜져야 하는 것인지, 무엇을 간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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