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민음사>
이청준의 중,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소문의 벽
뺑소니 사고
개백정
병신과 머저리
가면의 꿈
퇴원
꽃동네의 합창
눈길
매잡이
그만의 독특한 형식과 어투로 쓰인 아홉 편의 이야기들 모두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의 소설이다.
도무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고뇌와 상처, 그리고 결국 파멸로 치닫는 결말 등은 책을 잡고 있는 내내 나 역시도 혼란스러웠다.
거짓, 억압, 강요, 증오 등 온갖 언어로 다 표현할 수도 없는 삶의 부조리함은 그 안에 몸을 담고 살아가는 누구라도 정상적으로 살 수 없게 만들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아니 오히려, 이런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 나의 생각을 사실대로 말할 수도 쓸 수도 없는 사회적 현실로 인해 미친 척하는 소설가. <소문의 벽>
⊙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어 거짓으로 금식을 한 민족의 은인과, 그가 죽은 후 역사 앞에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한 기자의 의문의 죽음. <뺑소니 사고>
⊙ 6.25 시절, 반동분자로 몰린 외가댁의 처참한 몰락과, 개를 도살해 가죽을 벗겨가는 개 공출로 인해 가족과 같았던 개를 잃게되는 한 가정의 고통. <개백정>
⊙ 6.25 전쟁의 상처를 가지고 사는 의사 형과, 전후 세대를 살며 또 다른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화가 동생. <병신과 머저리>
⊙ 나의 본 모습을 감추고 꾸며진 나로 살지만, 밤에는 거짓된 나의 모습을 가면으로 가리고 위로를 받는 한 판사와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혼란. <가면의 꿈>
⊙ 어린시절의 아버지의 강압과 군복무 시절의 상처로 인해 병원으로 도피하여 나 자신을 가두어 두는 주인공. <퇴원>
⊙ 동요 '고향의 봄'의 명성과는 다르게, 노랫말을 쓴 주인공이 현실의 삶에서는 빈곤하게 지내고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원수 선생님 이야기. <꽃동네의 합창>
⊙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사랑과 보호를 받기는커녕 온갖 희생을 강요당한 주인공은 출가 후 부모에게 진 빚이 없다고 생각하며 어머니에게 매정하게 굴지만, 오랜만에 찾은 고향길에서 몰랐던 어머니 사랑을 깨닫는 이야기. <눈길>
⊙ 자본주의 사회에 물들지 않고 진정한 장인의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매잡이의 비극적 삶과, 진정성 있는 소설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한 편의 소설도 남기지 못한 소설가의 비극. <매잡이>
다양한 시대 상황,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상처로 얼룩진 이야기를 읽고, 삶이란 것은 진정 고통일 수밖에 없는가? 또 뻔한 의문이 든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거짓된 소문들, 진실을 말해도 용납되지 않는 세상, 힘을 잃은 약자가 되었을 때 당할 수밖에 없는 수모, 사람과 관계에 상처 받으며 끊임없이 열등감에 빠져가는 현대인들, 먹고 살기위해 참아내야만 하는 나의 본질, 강요당해야만 하는 상황들,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과 자신의 가치를 지켜나갈 수 없게 만드는 세속적 잣대들.......
이런 것들을 온전히 비켜가는 인생이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한 철학자의 말처럼, 저항할 수 없는 악에 맞서 고통을 경감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숙명에 굴복하며 참아내는 것일까?
저항하느라 힘을 빼지 말고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파악하여 순응하는 삶을 사는 것이 과연 지혜일까?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 있겠어?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 걸. _Seneca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中_알랭 드 보통>
삶을 사느라 치열했고, 살기 위해 고민했고,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던 주인공들의 삶은 너무 고된 것이어서 슬프고 안타깝다. 그리고 우리네 삶도 이들과 많이 달라 보이진 않는다. 정답이 없는 삶의 길을 부디 눈물로만 살다가지 않기를 희망한다. 모두 말이다.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소설] 별들의 들판_공지영 (0) | 2020.03.04 |
---|---|
[교양 철학]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_알랭드 보통 (0) | 2020.03.03 |
[독일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_요한 볼프강 폰 괴테 (0) | 2020.02.21 |
[독일소설] 삶의 한 가운데_루이제 린저 (0) | 2020.02.17 |
[한국소설] 인간연습_조정래 (0) | 2020.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