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민음사>
루이제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서>를 읽은 후, 내친김에 이 책을 읽었다.
<삶의 한가운데서>의 주인공 슈타인과 이 책의 베르테르의 죽음은, 사랑의 고귀함을 위해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볼 수 있지만, 두 인물은 확연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성적이고, 견디고, 기다리며, 오롯이 참아내는 슈타인과는 달리, 베르테르는 감정적이고, 표현하고 역정적이며 뜨겁다.
괴테는 이 책을 25세 때, 2주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질풍노도 시기인 젊은이들의 감성과, 자신과 친구의 실제 경험, 그리고 신들린 듯한 속도로 창작된 그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 작품의 많은 부분들이 공감된다. 책은 젊은 베르테르가 친구 빌헤름에게 보낸 편지와 그 편지를 엮은이의 글로 이어지는 서간체 형식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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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지만 시민계급 출신인 베르테르는 작은 시골마을로 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그는 유머 있고 소박하며 관습에 얽매인 생활을 못 견디는 젊은 방랑자 같다. 자연과 아이들을 좋아하고, 불쌍한 이웃들을 도와주고, 자유를 꿈꾸는 그의 모습은 철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엿보인다. 돈과 명예를 향한 욕심 없이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그의 모습은 마치 인생의 도를 깨달은 철학자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대개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다가 약간 남아돌아가는 자유 시간이라도 생기면, 도리어 마음이 불안해져서 거기서 벗어나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쓴단 말이다.
그리고 모든 활동이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집중되고 있으며, 욕망이라는 것 자체에도 우리의 불쌍한 삶을 연장시키는 것 말고는 다른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통찰할 때, 그리고 또 연구가 어느 단계에 올라 만족할 수 있음은, 인간이 자신이 갇혀 있는 감방의 벽에다가 여러 풍경과 형상들을 화려하고 밝은 색으로 그려놓고 기뻐하고 있는 식의 허울 좋은 체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 이 모든 것을 생각해 볼 때, 빌헤름 나는 할 말이 없어지고 만다.
이렇듯 삶의 진정한 가치를 세상의 욕망에 두지 않는 그에게는 주위를 둘러싼 모든 자연들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위대하며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풍경들이었다. 이런 삶의 소박한 기쁨을 느끼는 베르테르는 우울증 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쿨한 낙관론자였다.
우울증이란 꼭 게으름 같다고 할 수 있지요, 그것은 게으름의 일종입니다. 우리 인간의 천성은 게으름으로 기울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분발하기만 하면 일은 잘 진척되고 활동 속에서 참다운 기쁨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더군다나 각자가 그래도 가금 자기 마음에 간직할 수 있는 즐거움마저 서로 빼앗아버려야 한단 말입니까?
그러던 그는 로테라는 법무관의 딸을 알게 되고, 첫눈에 사랑하게 된다. 베르테르가 묘사한 로테는 그지없이 아름다운 닮고 싶은 인물이다.
그녀는 그토록 총명하면서도 그토록 순진하고, 그렇게 꿋꿋하면서도 그같이 마음씨 곱고, 착하고 친절할 뿐만 아니라, 정말로 발랄하고 활동적이면서도 침착한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외모마저도 아름다운 이런 사람이 있을까?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로테에게는 알베르트라는 훌륭한 성품의 약혼자가 있었던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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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후반부로 가면서 그는 자신이 인정하지 않았었던 우울증에서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가 찬양하고 노래했던 모든 아름다운 자연들은 상막하고 음침하며 고통스러운 형상으로 그에게 다가온다. 도대체 한 여자를 향한 사랑이 무엇이길래 그 아름다운 청년의 마음을 이다지도 망쳐놓을 수 있는 것인가!
그는 서기관으로 일하면서 상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못하고 사직했고, 한 귀족 사교모임에서는 신분의 차이로 인해 수모를 겪기도 한다. 결국 그의 낭만적인 이상과 현실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삶에 부적응한 인물로 낙인 된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모든 행복의 원천이 내 가슴속에 깃들여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결국 모든 불행의 원인이 내 마음속에 잠겨있다.
그의 정신의 조화는 완전히 깨어지고, 내심의 흥분과 격정은 그의 본성이 지녔던 모든 힘을 뒤죽박죽으로 혼란시켰을 뿐 아니라 가장 불행한 작용을 일으켜서, 마침내 그는 일종의 허탈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로테의 사랑을 강요할 수 없는 처지, 알베르트에 대한 열등감, 사회적 관계에 가득한 불만, 신분제도의 역겨움....... , 더 이상 살아갈 힘을 잃은 그는 삶을 스스로 마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그에게는 또 다른 희망이었다. 도무지 극복할 수 없어 보이는 현실의 문제들을 저세상에서 이루려는 욕심이 이끄는 희망.
이것은 절망이 아닙니다, 스스로 참고 견디어 냈다는 것, 당신을 위해서 스스로 몸을 바쳐 희생하겠다는 것에 대한 확신입니다.
오오, 로테, 나는 먼저 갑니다. 당신이 오면, 나는 뛰어가서 당신을 반갑게 맞이하고 당신을 붙잡고, 당신 곁에서 떠나지 않은 채 무한한 신께서 내려다보시는 가운데서 영원한 포옹을 계속할 겁니다.
슈타인의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사랑과 죽음과는 다르게, 베르테르의 사랑과 인생은 무모하고 불편한 그래서 슬픈 이야기로 느껴진다. 한 인간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나의 생각과 상황이 자신을 알 수 없는 세계로 이끌어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참 두려워진다.
18세기 이 책을 읽은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 자살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도 있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읽는 책들 중 다수는 죽음, 그 가운데도 자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미화되어 보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격정적인 사랑이야기는 안타깝고 슬프지만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좀 더 이성적이었다면...... 고뇌 속에 누군가 위로가 되어주었다면...... 다른 인연이 다가왔었다면....... 그러나 그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한 개인의 마음에 감추어진 논리와 그 복잡한 감정들을....... 인간은 참으로 약하고 슬픈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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