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1999>
루이제린저의 소설 <삶의 한가운데>....... 요 며칠 푹 빠져있던 책이다.
제목처럼, 삶의 한가운데 내던져진 한 여인의 인생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닌, 위태로운 삶 속에서 각기 다른 삶의 모습과 다른 자세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삶이란 수수께끼 같고 불완전하지만 눈부시도록 아름다울 수 있는 우리 삶 말이다.
주인공은 니나 부슈만과 그녀를 사랑하는 슈타인, 그리고 1인칭 화자가 되어 글을 전개해 나가는 그녀의 언니 마르그레트이다. 슈타인이 니나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18년 동안 쓰고 간직해 놓은 니나에 대한 모든 기록들과, 니나와 마르그레트의의 짧은 만남 속 대화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니나는 평범한 여인은 아닌 것 같다. 시대가 많이 바뀐 현시대에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녀는 분명 튀는 존재이었으리라.
어려서 패혈증을 앓고, 어려워진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포기한 후, 객지에서 친척 할머니의 가게를 맡아 운영하게 되면서 할머니의 병간호와 죽음을 혼자 감당해낸다. 그 와중에 유태인을 도와 반 나치즘 활동을 하며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그 후, 원치 않았던 임신과 결혼, 두 번의 출산, 자살시도, 이혼, 정치범으로의 수감생활, 종전과 석방, 작가로서의 활동 그리고 좋지 않은 평판 등등.......
마흔이 채 되기도 전인 38년 인생에서 너무나 많은 경험을 한 존재였다.
그 모든 과정에 그녀를 돕고 사랑했던 슈타인이 있었다. 그는 의사였고 교수였다.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규범적이며 항상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니나라니!) 패혈증으로 병원에 찾아온 그녀를 본 이후, 줄곧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20살 연하의 그녀. 황야의 바람이 불어온 것 같은 느낌의 깡마르고 차가운 느낌의 그녀를 말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그러나, 나는 니나를 변함없는 강도로 계속 사랑한다. 나는 내 인생의 힘 전부를 이 한 점에 쏟아놓고 있는 것 같다. "
그녀를 향한 사랑으로부터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슈타인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는 니나의 모든 것을 지켜보며 얼마나 심적 번뇌와 고통을 겪어냈을까? 그것을 짐작하는 것조차도 고통스럽다. 그녀를 가질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도 스스로 잡지 못한다. 모든 것을 주기만 한 사랑, 강요와 속박 없이 자유롭게 그녀를 내버려 두는 그의 사랑은 고귀하지만 답답하고 너무 마음이 아프다.
니나의 사랑이 확실치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그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그의 모험 없는 삶을 경멸했기 때문에? 아니면, 슈타인 자신이 니나와의 삶이 불행할 것이라고 예견했기 때문에? 그의 열등감과 자존심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우유부단함과 용기 없음으로 인해?........ , 나중에 슈타인의 고백을 보면, 아마도 자신이 갖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 니나를 향한 사랑으로 표현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니나를 얻기 위한 투쟁은 한 특별한 여성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특수한 방향으로 나 자신의 본질을 인식하고 발전시키려는 투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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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는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힘겨운 인생을 살았지만, 매 순간 삶을 사랑하고 살아내려는 의지가 강한 여성이었다. 사실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자살시도마저도 삶에 대한 열정을 담고 있는 듯이 보인다.
"내가 의식을 잃기 시작한 때만큼 생을 미치도록 강력하게, 정말 지겨우면서도 멋지다고 느껴본 적이 전에는 없었어요."
니나는 걱정 없이 안정적이며 조용히 흘러가는 인생을 살기를 원치 않는다. 모험적이고 생산적이고 도전하는 삶을 원한다. 그녀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싶어 하고, 모든 순간을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며, 그것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즐기기까지 한다. 어찌 되었든 살아내려고 하고 그 가운데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고통의 한가운데에는 아무리 심한 고통도 닿지 않는 보호 구역이 있어. 그리고 그곳에는 일종의 기쁨이 있어. 나는 그것을 용납이 가져다준 승리의 구역이라고 이름 붙이겠어."
나의 삶은 마르그레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소란스러운 일들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다른 이들과 별다를 게 없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감당해 내고 있다. 다정한 남편, 인생공부를 하고 있는 청년 아들과, 고3을 긍정적으로 보내고 있는 딸, 시어머님은 누워계시지만, 늘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 일할 수 있는 직장 등 말이다.
난 내 삶을 그쪽으로 유도하고 선택하였을 뿐이다. 어려서부터 좀 더 모험적으로 인생을 선택할 안목과 용기가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천성이 또 자라온 환경들이 나와 담합하여 그러지 못하게 했다. 니나의 삶을 온전히 동경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삶을 바라보는 자세,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실행들은 부럽기까지 하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제부터라도 조금씩의 일탈을 하면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들과 마주해보고 싶다. 막살고 싶은 게 아라 도전적으로 열심히 살고 싶은 거다. 젊을 때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때보다는 더 많은 걸 경험했고, 조금 더 뻔뻔해진 '나' 이기에 더 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은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그물 안에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더 안정적인 삶도, 더 고통스러운 삶도 모두 인생이고 삶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정답은 없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우는 것이 슈타인의 지난 고통과 니나의 엄청난 이별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리고 축축하고 촘촘한 회색빛 그물에 얽혀 있듯 자신의 운명에 얽혀 있는 인간들 때문에 우는 것이라는 것을. 대체 누가 그 그물을 찢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설령 그 그물에서 벗어났다 해도 그것은 발치에 걸려 있으며 인간은 그것을 끌고 다닐 수밖에 없다. 그 그물은 아무리 얇아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
니나와 슈타인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다. 니나는 슈타인의 생을, 슈타인은 니나의 생을 인정할 수 없었지만, 서로의 존재가 없었다면 그들은 삶의 원동력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서로 사랑해서 불행했지만,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고 순간순간 삶을 살아낼 수 있었으리라.
" 나는 이런 아름다운 만남을 선사한 인생에 감사한다."
슈타인의 마지막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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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혹시 한 마리 새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고양이, 말똥가리, 담비, 어린 학생들, 겨울 추위, 이 모두가 그를 쫓고 있어. 새는 이런 한가운데에 살면서 새끼들을 키우고 있어. 한순간도 나뭇가지에서 마음 놓고 앉아 있지 못하지. 그래, 새를 봐, 새가 어떻게 앉아 있는지를 봐. 달아날 준비를 하고, 경계를 하면서, 불안해하면서 나뭇가지에 앉아 있잖아. 그리고 온 세상이 그를 적으로 보는데 노래 부르는 거야."
이 부분은 내가 날아가는 새를 동경하게 만들어 주었다. 불안한 삶 가운데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것들...... 위험 속에서도 새끼들을 키우는 열심과 부지런함...... 모두가 적인 듯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는 그것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불안과 공포, 절망과 슬픔으로 인해 주어진 인생을 맘껏 즐기거나 노래하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들...... 삶 한가운데 서서 뭔가 완벽한 상황을 만들어 행복하려고 하지만 끝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보다 더 낫지 않은가?
<삶의 한가운데>, 이 아름다운 한 권의 책은 나의 마음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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