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실천문학사>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인간의 삶, 그것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연습'이다. <작가의 말 中>
◑ 인간 연습
단 한 번뿐인 인간의 삶. 그 짧은 과정에서 연습을 제하고 나면, 실전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아니 그런 완전한 삶을 살 수는 있는 걸까? 연습만 하다 가버리는 인생은 너무 비참하고 슬프지 않을까? 내게 '인간 연습'이라는 말은 다소 혼란스러웠다.
이 책의 주인공 윤혁과 그의 친구 박동건. 이 둘은 남파간첩이다.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남조선에 침투해왔다가 체포되어, 30년 간 감옥살이와 모진 고문으로 고통받고 강제전향을 당하게 된다. 이 소설은 출소 이후 그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 박동건
"이거 우리 헛산 것 아니오?"
사상의 조국으로 믿었던 쏘련의 붕괴와 굶주리고 있는 북의 참상을 알게 된 그는, 그렇게 한 시대를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아무 보람도 성과도 없이 무너져간다. 그뿐인가, 무일푼에 불명예, 연좌제로 인한 가족들의 고통과 그들의 외면......
혁명의 순결을 지키려고 버틴 30년의 옥살이였지만 강제로 전향을 당한 그는 비 전향한 사회주의의 영웅도, 자진 전향하여 자본주의의 물결에 순응하지도 않은 채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삶은 연습이었나. 실전이었나? 살고보니 사회주의는 몰락했고, 살고 보니 가족들은 떠나갔고, 살고 보니 몸은 병들어 있었다. 살아보니 그제야 알았다. 연습하고 살 시간이 없었던 거다. 박동건. 그의 열정적이었던 삶의 흔적은 시대의 거센 파도와 같은 흐름 속에서 물거품으로 사라져 갔다.
◑ 윤혁
"못 믿긴요. 하도 기막히고 창피스러워 할 말이 없는 거지요."
출소했지만 경찰에게 보호관찰을 받으며 제2의 감옥이나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는 윤혁은 자신의 죽음과도 같은 박동건을 보내고 어지럼증이 다시 찾아온다. 꼿꼿했던 그의 신념이 일개 형사의 말을 수긍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비참함으로 바뀌게 된 현실에 그는 슬픔을 느낀다. 희생적이었던 당원, 열성적이었던 인민들의 타락과 나태는 그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현실이었다. 그가 살았던 삶은 성공적인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박동건을 잡아간 절망에서 자신을 구해낸 것은 이 아이들이 발휘해온 마력의 덕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박동건에게도 이런 아이들을 갖게 해 줄 것을..... 뒤늦은 후회가 일었다.'
그 침울한 시기를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것은 바로 경희와 기준이다. 부모를 잃고 불우하게 살던 그들은 윤혁의 도움으로 소년소녀가장들을 돌봐주는 제도의 보호 아래 있게 된다. 그의 집을 자주 찾아와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하면서 칙칙한 안개 속 같은 그의 삶은 햇살 그득한 날도 있게 된다. 이것은 박동건에게는 없었던 윤혁의 삶의 원동력이었다.
'자신이 어느 한 가닥이라도 필요한 존재라는 것, 그것은 큰 위안이 아닐 수 없었다.'
감옥에 함께 있었던 강민규라는 젊은이. 운동권에 몸 담고 있으면서 윤혁에게 번역일을 가져다 주며 생계를 도와주고 있다. 윤혁은 번역일을 하면서 지적인 자존심을 세울 수 있고, 생계를 유지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일이기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디까지를 믿을 수 있는 존재인가. 인간의 이성이란 본능을 이길 수 없고, 그것이 인간의 한계 아닐까. 그 인간의 한계가 사회주의 몰락의 절대 원인은 아닐까...... '
윤혁은 사회주의 붕괴에 대한 의문과 회의의 수렁 속에서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이어가며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괴로워한다. 비전향 장기수 북송이나 남북정상회담이 언급되어지는 등 시대는 물결치듯 변하게 된다.
'수기를 스지 않아서 자기 부정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비록 남다르게 이룩한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인생이었을지 모르나 자기 스스로를 부정해야 하는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그건 마지막 남은 한 가닥 자존심이었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강민규의 권유로 자신의 수기를 쓰게 되는 윤혁. 수기를 쓰면서 독방 공포증, 악몽, 환청, 고문, 자살, 정신신경증......, 그리고 강제전향의 치욕스러웠던 감방생활을 오롯이 다시 마주하게 된다. 책이 출판된 후 윤혁은 예상치 못한 감동을 느끼게 되고, 그 수기는 최선숙이라는 한 보육원 원장과의 인연을 맺어준다. 그는 보육원으로 살림을 옮기고, 그곳에서 일을 도우며 살게 된다. 물론 경희와 기준이도 함께.
"여긴 인간의 꽃밭이야. 아이들이 나한테 즐거움을 주고 삶의 의욕을 주니 나도 애들을 위해 무슨일이든 하고 싶은 거야.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인간에 대해 불신과 혐오로 괴로워하던 윤혁이 인간의 꽃밭이란 말을 하며 웃고 있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회복해가며 새로운 삶을 가꾸어나가는 것이다. 윤혁은 인간의 불완전함, 사회주의의 불안전함, 자신의 선택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실패의 연습을 딛고 짧지만 조금 더 나은 삶을 살다가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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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건의 삶은? 의지가 되어 준 두 송이의 꽃 경희와 기준이도, 정신적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강민규도, 존경과 사랑의 눈길을 보내는 여인도 없었다. 다시 일어설 작은 불씨도 없었기에 그의 연습은 실전으로 바뀌지 못했다. 그의 인생은 실패작인가?
윤혁의 삶은? 해핑엔딩이기에 그의 젊은 날의 그 모든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는가? 말년의 행복과 그 젊은 날의 무수한 연습을 맞바꿀 가치가 있는 걸까? 인생은 참 수수께끼다. 이해하기 어렵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인간의 삶, 그것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연습'이다. <작가의 말 中>
우리는 인간이지만 인간답게 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기심과 본능이 이성을 압도하기 때문일거다. 삶은 잘 짜인한 무대의 연극처럼 실수없는 Play를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리는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을 매일매일 경험하며 살지 않는가? 그러므로 성공하고 행복한 인생이 완전한 인생은 아닌 것이다. 조금 더 인간답게 살려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은 실패를 줄이기 위한 연습이지만, 그 연습조차도 나의 삶의 일부이다. 박동건의 삶이, 윤혁의 젊은 날들이 부정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시대적인 운과 개인 배경의 운이 분명히 작용한다. 운칠기삼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닐 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이다. 나의 선택이 성공,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이 그 시대 그 상황에서 최선이라면......, 악한 것이 아니라면......, 나의 이기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잘한 선택이 아닐까.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향해 조심스럽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그 과정이 나의 삶 자체가 아닐까. 작가의 말을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이해되어진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인간의 삶 =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연습 = 아름다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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