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생각의 나무> 절판 <2012, 청미래>
서양철학을 재미있게 읽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재미있다. 특유의 농담과 유머는 글을 지루하지 않게 하고, 사진이나 그림 등의 시각적인 효과도 한몫한다. 철학처럼 무거운 이야기마저도 유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무엇보다 저자의 박학한 지식은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다음 여섯 명의 철학자를 소개하고 있다.
소크라테스_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
에피쿠로스 _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
세네카 _좌절에 대한 위안
몽테뉴 _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
쇼펜하우어_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
니체 _곤경에 대한 위안
2005년 출판된 책으로 읽었다. 책의 제목이 영어로는 『THE CONSOLATION OF PHILOSOPHY (철학의 위안) 』, 부제는『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그리고 제목은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다.
책꽂이에서 내 눈을 자주 사로잡았던 책.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제목, <베르테르의 기쁨> 때문이었다. 왜 슬픔이 아닌 기쁨일까........?
책을 읽는 동안 전반적으로 그 느낌이 오긴 했지만, 그 해답은 쇼펜하우어의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 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철학자이다. 그는 이 지구 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물론 인간을 포함해서, 무의미한 생존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더지의 삶을 보자.
삽처럼 생긴 커다란 발로 끊임없이 땅을 파는 것은 두더지가 평생 짊어진 숙명이다. 두더지의 주변에는 영원한 어둠뿐이다. 두더지의 눈이 덜 발달한 것은 단지 빛을 피하기 위해서다. 즐거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고난으로 꽉 찬 일생을 통해 두더지는 무엇을 얻을까?.......... 삶의 고난과 고통은 삶에서 얻는 과실이나 이득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가혹하다.
_쇼펜하우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中>
개미는 어떨까?
대부분의 벌레들의 삶은 자신들의 알에서 태어날 미래의 자손들을 위한 음식물과 주거 공간을 준비하느라 줄기차게 노력하는 근면의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자손들 또한 똑같이 그 일을 반복한다.......... 이런 노력으로 개미들이 무엇을 얻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허기와 성적 열정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 달리 보여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_쇼펜하우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中>
인간은 다를까?
인간도 사랑을 추구하고, 장래 파트너가 될 사람과 카페에서 잡담을 나누고, 아기을 가지고, 두더지나 개미와 비슷한 선택의 과정을 겪으며 그런 생명체보다 별로 더 행복하지도 않다.
_쇼펜하우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中>
쇼펜하우어의 위와 같은 견해는 모든 생명체의 삶은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감내하면서 생식과 번식을 최종 목표로 그냥 사는 것이다. 살아생전에 행복 사냥을 하는 것은 아무런 성과가 없는 헛된 일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철학자는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도 준다. 고통의 삶 가운데도 인간에겐 두더지에게 없는 한 가지 장점이 있다는 것! 그것은 바로....... 극장, 오페라, 콘서트홀, 철학, 서사시 등 '예술과 철학 작품' 들이다.
우리 자신의 고통과 투쟁 → (예술과 철학 작품 속에서) 소리, 언어, 이미지로 재현됨 → 작품 속에서 고통은 객관화됨→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삶의 양상들에 형태가 부여 → 우리 상황을 설명함으로 덜 외롭고 혼란을 겪지 않도록 도와줌
즉, 인간은 두더지처럼 굴을 파면서도 틈틈이 우리 고뇌의 순간을 통찰할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고민을 해결하고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작품들은 우리를 알지 못하면서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_쇼펜하우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中>
이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한번 적용해 보자. 사랑의 고통과 투쟁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그녀는 이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혹은 작품 가운데 어떤 메시지를 통해)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란 생각을 하며 위로를 받는다. 차츰 고통이 누그러지면서 객관성이 확보되기 시작하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베르테르를 보며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르테르의 슬픔은 다수의 독자들에게 사랑의 고통 가운데서 헤어 나와 기쁨을 줄 수 있는 하나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그리고 삶의 불행에서 그 사람은 이제 자신의 개인적인 운명보다는 전체로서 인류의 운명을 더 돌아볼 것이다. 따라서 고통받는 존재보다는 뭔가를 아는 사람(knower)으로서 행동할 것이다.
_알랭 드 보통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中>
어둠 속에서 땅을 파는 사이사이에 우리는 자신의 눈물을 지식(knowledge)으로 바꾸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_알랭 드 보통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中>
세상이 도통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태어나는 것부터가 각자의 선택이 아니었으므로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애쓰며 살지만 모든 일이 노력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정의롭지 못하고 악한 세력들이 판을 치고 부를 쌓아가고 있다. 원하지 않는 재앙과 질병들이 닥쳐온다. 우리는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인생은 고통으로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 인생을 즐기려고 애쓰지 말고 고통 가운데 바라만 보아야 하는가? 니체의 사상을 소개한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지식으로 바꾸어 보자.
정원사의 철학
니체는 역설했다. 인간은 정원사처럼 자신의 곤경을 돌보아야 한다고. 식물의 잠재력을 믿는 정원사처럼. 삶에서도 식물의 뿌리에 해당하는 수준에서는 여러 어려운 감정과 상황에 처할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은 사려 깊은 재배를 통하여 더없이 위대한 업적과 환희로 결실을 맺을 수도 있다.
_알랭 드 보통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中>
니체의 철학은 우리 마음에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감정인 욕심, 질투, 욕망, 분노, 시기, 허무 등을 애써 감추려 하지 말고, 그것들을 세련되게 관리하고 사려 깊게 재배하여 무언가 아름다운 것들을 일구어 내자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코로나 19로 집안에만 갇혀 공부하는 고3 딸이 얼마 전 했던 말이 생각난다. 노력 없이 잘 되는 친구들을 보면 갑자기 우울해진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채워 공부에 집중이 안 될 때는 존 롤스의 정의론을 떠올리면서 위로를 받는다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랑스러운 딸도 누군가의 작품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있었던 거다.
책의 제목 『THE CONSOLATION OF PHILOSOPHY (철학의 위안)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모두 이 책을 다 읽은 후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들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철학자들은 우리 각자의 상황에 따라 시기적절한 위안을 줄 수 있으며, 우리 인생을 좀 더 사려 깊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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