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은 책은 처음 접했을 때만큼의 충격과 낯섦은 아니어도, 여전히 강렬하다.

흐릿해진 기억 속에서  이 소설은 항상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과 겹쳐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넋두리하듯 조용한 흐름의 그것과, 충격적이고 강렬한 전개를 가진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것은 아마, 억압과 순종 그리고 끊임없이 견디어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공통된 슬픔과 고뇌에서 오는 이미지 때문이리라.

 

처음엔 한 편의 소설인 줄 알았다. 작가는 세 편의 중편소설을 하나로 매듭지어 본인이 하고픈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따로 있을 때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합해지면 그중 어느 것도 아닌 다른 이야기가 담기는 장편소설이다. _<작가의 말 中>


|채식주의자... <창작과 비평> 2004년 여름호

 

|몽고반점... <문학과 사회 >2004년 가을호

 

|나무 불꽃... <문학 판> 2005년 겨울호

 

 

 

채식주의자,

 

영혜....... 그녀는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억압과 폭력을 경험한다. 또한, 자신을 물어 상처를 입힌 개가 아버지에 의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그것의 고기를 나누어 먹는 과정에서 겪은 트라우마를 갖고 살게 된다. 무뚝뚝한 남편은 회사일에 온통 집중하며 그녀에게 다정한 눈빛, 친절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어느 밤 영혜는 피 흘리는 고깃덩어리를 경멸하게 되는 꿈을 꾸게 되고 더 이상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된다. 그녀는 하루하루 몸과 정신이 피폐해져 결국 자해까지 하게 되고 정신병동에 입원한다.

 

몽고반점,

 

영혜의 형부....... 이미지를 비디오에 담아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처제가 자해했던 날, 피 흘리는 그녀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간 그 남자. 아내로부터 우연히 영혜의 몸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것은 그의 예술적 욕망의 도화선이 되어 결코 건너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된다. 영혜와 자신의 온몸에 꽃을 그리고 교합하는 장면을 연출하고자 했던 그의 예술적 욕망은 이성을 무시하고, 자신과 가족의 인생을 파멸의 길로 이끌게 된다.

 

나무 불꽃,

 

인혜...... 영혜의 언니,  서글서글한 눈매, 성실하고 배려심 많은 성격, 맏이로서의 책임감, 긍정적이고 넉넉한 마음씨. 그녀는 말 잘 듣는 딸이었고, 살림 잘하는 아내였고, 희생적인 엄마였으며, 성실한 화장품 가게의 사장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성실함은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 그녀의 내면은 깊은 절망과 외로움, 허무함으로 가득 차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픈 동생에게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 했던 남편, 정신병동에서 지내는 동생 영혜를 돌볼 유일한 가족으로서의 책임, 삶의 끈을 놓고 싶지만 눈에 밟히는 어린 아들. 그녀가 떠맡은 무수한 책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살아갈 수밖에 없게 하였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 전의 어린 시절로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_<채식주의자_한강>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도, 실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명쾌하게 알아낼 수 없었다. 매우 난해하고 어려웠다. 책 부록에 담긴 해설 부분은 오히려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작가는 인간의 폭력, 욕망, 악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살아있는 것들 사이의 폭력과 피 흘림을 경고하며 거칠고 모난 무기가 아닌 부드럽고 온순한 식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였을까?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여성을 욕망을 이루려는 한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인간 존엄의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글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아픈 이들을 어루만져 주는 글이었을까?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견디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고통스러운 꿈에서 깨어나 자신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였을까?

 

그 무엇이 되었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그 상처들을 매만져주고 공감해 주고, 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느껴졌다. 작가 특유의 생생한 묘사와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가 책을 한달음에 읽게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들은 너무 무겁고 깊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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