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더디게 지나간다.
반복되는 역사를 부인하고 싶고, 모든 것이 꿈이 아니란 사실에 온몸이 무너져 내린다.
5.18 광주를 이야기 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다가 다음 구절에서 불현듯 울음이 터졌다. 노벨 위크 내내 어두운 색 옷을 입고 행사에 참여했던 작가가, 노벨상 수상 자리에서도 검은색 롱 드레스를 입었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26. 그 후 우리는 이따금 만나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서로가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지고, 교통사고를 내고, 빚이 생기고, 다치거나 병을 얻고, 정 많고 서글서글한 여자를 만나 잠시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믿고,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모든 걸 무너뜨려 다시 혼자가 되는 비슷한 경로를 거울 속 일그러진 얼굴처럼 지켜보는 사이 십 년이 흘렀습니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은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온몸을 덮은 검은색을 생각하며 어쩌면 작가의 삶은 폭력에 맞서 싸우다 희생당한 사람들을 대신해 장례를 치르는 중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냘픈, 부드러운, 평범한, 겁에 질린, 어리고 앳된 사람들의 삶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호소처럼 느껴졌다. 진행 중인 모든 폭력의 반대편에 설 것이라는 다짐처럼 느껴졌다.
99.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213.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말을 걸며 길을 인도하고,
215. 나는 가방을 열었다. 가지고 온 초들을 소년들의 무덤 앞에 차례로 놓았다. 왼쪽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 앉아 불을 붙였다. (......) 반투명한 날개처럼 파닥이는 불꽃의 가장자리를 나는 묵묵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며 불을 밝힌다.
그녀의 올곧은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또, 희망을 가져보자.
'♭일상·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Adieu 2024! (6) | 2024.12.31 |
---|---|
가을, 신동엽 문학관 (2) | 2024.10.09 |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한 마음 (1) | 2024.09.06 |
Adieu 2023 (3) | 2023.12.29 |
Adieu 2022 (0) | 2022.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