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265.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딸이 어느 날 가족 톡으로 공유한 구절. 슬프지만 가슴 뭉클해지는 글에 마음이 따스해졌었다.
사실 이 책은 몇 해 전 읽었던 책이다. 개인적으로 판다지 소설이나 영화에 흥미가 없는 편이라 이 책 역시 가볍게 읽었던 기억이다. 소중한 딸의 문자로 다시 한번 읽고 싶어졌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보건교사 안은영.
M고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을 그녀와, 한문선생 인표가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p 21. 하도 예상 밖의 것들이 튀어나오는 세상
p 22. 폭력성과 경쟁심의 덩어리들, 묵은 반목과 불명예와 수치의 잔여물들이 어두운 곳에 누워 있었다.
p 238. 은영은 살아 내는 일이 버거워서 먼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며 모든 상황이 임시적이라는 걸 늘 암시했다.
괴물의 공격을 받은 학생들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다. 외롭거나 약한 이들은 외부의 충격에 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정치와 권력, 자본의 힘에 눌려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친절과 정의를 포기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무겁지 않게 전해주는 느낌이 좋았다.
p 113. 은영은 근거 없는 짝사랑 증후군이라고 혼자 이름을 붙였다. 작은 친절에도 쉽게 반할 정도로 좋지 않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주 발생한다.
p 185. 어린 은영은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지독하게 폭력적인 세계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가끔은 피할 수 없이 다치는 일이란 걸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
p 192. 아직은 있어야 할 것 같아. 나쁜 일들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곳이야. 나쁜 일들은 언제나 생겨.
p 193. 빛나는 가루가 강선이 처음 서 있던 가로등 쪽으로 흩어졌다. 상자를 들고 달려가서 주워 담고 싶다고, 은영은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아주 오랜만에 울었다.
은영은 선하고 친절하다. 어려운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고 어떤 식으로든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진 착한 사람이다.
실은, 언젠가부터 착하다는 미덕이 그리 좋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착한 사람이 이용당하고, 친절한 사람이 상처받는 세상이라서 일까. 악인이 되고 싶진 않지만,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차갑게 내 자신을 지키고 싶다.
p 47. 은영이 손을 뻗어, 정현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닦는 시늉을 해 본다. 닦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p 117.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은영이 나쁜 것들로부터 학생들을 지켜낼 때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늘 어딘가에서 충전을 해야 한다.
한문 선생의 손, 명승지의 탑, 성당, 남산타워의 사랑의 자물쇠, 학생들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물건들.....꿀벌처럼 단것들을 빨아들이는 은영의 설정이 재미있고 공감이 갔다.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조그맣고 사소한 일들로 인해 의외로 큰 힘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p 125.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인표에게서 얻은 그날 치 좋은 기운을 고스란히 전했다. 어떤 나이에는 정말로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데 모두가 그걸 얻지는 못한다.
따뜻하고 선한 이야기. 친절하고 정의로운 이야기. 결론까지 완벽하게 달달한 이야기. 힐링 그 자체다.
p 272. 좋아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꽃무늬만 입는다 해도.
p 272. 그래도 인테리어 취향 차이에서 오는 괴로움을 빼면 전반적으로는 만족할 만했다. 서로의 흉터에 입을 맞추고 사는 삶은 삶의 다른 나쁜 조건들을 잊게 해 주었다.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소설] 아몬드_손원평 (0) | 2024.08.31 |
---|---|
[한국 소설] 타인에게 말걸기_은희경 (0) | 2024.07.05 |
[한국 소설] 경청_김혜진 (0) | 2024.06.23 |
[한국 소설] 너라는 생활_김혜진 (2) | 2024.06.19 |
[한국 에세이] 슬픈 세상의 기쁜 말_정혜윤 (0) | 2024.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