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름 30주년 기념으로 명필름 아트센터에서 영화 <접속> 상영과 장윤현 감독, 한석규, 김태우 배우가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었다. 커다란 스크린에 첫 장면이 떠오르자 감정이 벅차오르며 그 시절의 감성에 푹 젖어들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GV시간에 장윤현 감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 듣는 사실이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그 소설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영화와 소설이 어떤 정서로 맞닿아 있는지, 그 연결의 결을 곱씹게 되었다.
장윤현 감독의 영화, [접속]

1997년 9월에 개봉한 영화 <접속>은 그 시절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감상은 조금씩 달라진다. 이번에 다시 본 <접속>은 사랑의 상실로 인해 외로움 속에 머무는 청춘 남녀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텔레마케터 수현(전도연)은 기철(김태우)을 마음에 두고 있지만, 기철은 수현의 룸메이트 희진(강민영)과 연인사이다. 한편, 라디오 PD 동현(한석규)은 옛사랑 영혜를 잊지 못하고, 영혜는 군대에서 세상을 떠난 남자를 여전히 그리워한다. 라디오 작가 은희(추상미)는 동현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동현의 방송국 선배 태호(박용수)는 은희를 향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들의 사랑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서로를 바라보지만, 그 시선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맴돌며, 외로움은 그들을 고립시킨다. 아날로그 감성이 짙던 시대, <접속>은 단절과 연결 사이에서 흔들리던 청춘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였다.

이 책의 한국어 초역 제목은 <상실의 시대>다. 나는 오히려 이 제목이 원제보다 작품의 본질을 더 정확히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와타나베는 자살한 친구 기즈키의 죽음을 끝내 잊지 못한다. 그의 부재는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이제는 삶의 일부로 스며든 그림자처럼 그와 함께 살아간다.
기즈키의 연인이었던 나오코 역시 그의 죽음 이후,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는 와타나베 곁에서 그를 통해 기즈키의 흔적을 느끼려 하지만, 마음속 깊은 외로움은 그녀를 끝내 구해내지 못한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다. 그것은 분명 진실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키워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나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잊고 있던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그 시절의 추억이 불현듯 되살아나는 순간이 있다. 잃어버린 시간, 떠나간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런 순간 말이다.
서른일곱 살의 와타나베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비틀즈의 노래 <Norwegian Wood>를 듣는다. 그 노래는 오래 묻어두었던 그의 청춘과 상실의 기억을 한꺼번에 불러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깊은 외로움 속으로 가라앉는다.
I only felt lonely.
나는 그저 외로움을 느꼈을 뿐이었다.
영화 속에서도 음악은 인물들을 이어주는 끈이었다.
서로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라디오의 주파수를 통해 마음을 주고받던 사람들. 그들에게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외로움 속에서도 누군가와 이어지고자 하는 간절한 신호였다. 수현이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Pale Blue Eyes' 는 동현이 보낸 음악이었고, 그 선율은 말보다 먼저 마음을 건넸다. 라디오라는 매개 속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상실을 안고도 잠시나마 연결된다.
그들의 ‘접속’은 결국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외로움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본능에 대한 이야기였다.
<접속>의 동현과 수현, <노르웨이의 숲>의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상실의 시대, 외로움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를 잃고, 그 상실의 고통에 빠진다. 그리움과 잊음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다른 사람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꿈꾸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외로움과 고독의 옷을 입고, 나름의 지옥을 살아간다.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끝내 서로에게 닿지 못했다.
수현과 동현의 사랑은 과연 이루어졌을까.
소설을 생각하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수현과 동현이 서로 마주 보며 미소 짓던 그 순간마저 해피엔딩이라 말하기 어려울 듯하다.
상실의 시대.
그럼에도 한 줄기 빛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 신호가 닿든 닿지 않든, 빛을 찾아 다시 걸어 나가는 사람들의 쓸쓸한 이야기를 책과 영화는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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