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봤다. 내내 책을 읽는 듯, 혹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동경과 집착, 미움과 원망, 연민과 희생, 그리고 사랑. 두 주인공이 겪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지켜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상연의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향하는 은중을 보며,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와 그 원작을 영화화한 <룸 넥스트 도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세 작품을 나란히 떠올리며 보았다.
죽음에 대한 사유와 더불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서로를 향한 사랑이 끝내 지속되지 못할 운명임을 깨닫듯, 영원할 것만 같던 삶 또한 언젠가 멈춘다는 사실을 우리는 맞닥뜨린다. 삶은 유한하고, 죽음은 더 이상 타인의 일이 아니다.
 
탄소 배출량 증가와 지구 온난화로 위기에 처한 지구.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극우 세력의 부상, 기후 변화에 무관심한 채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지배자들. 이 모든 풍경 속에서 희망은 점점 빛을 잃어간다.
__지구는 시한부의 몸으로, 서서히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불치병으로 죽을 날을 통보받은 사람들, 요양원에서 시체처럼 누워 있는 노인들.
구토와 설사, 피로, 끝없는 통증 속에서 희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__시한부 인생. 한 개인에게 다가오는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친구 마사(틸다 스윈튼)의 안락사를 위해 함께 머무르기로 한 후, 마사의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녀는 강의를 위해 근처에 들린 옛 연인을 만나게 되고, 그는 기후 위기로 인한 지구의 종말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희망은 없다고, 사람들에 대한 믿음도, 기대도 더 이상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잉그리드는 이렇게 말한다.
희망이 없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고. 비극 속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고. 마사의 죽음을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그녀와 함께 웃고 행복할 수 있다고. 물론 고통스럽지만, 견딜 수 있다고..... 그리고 마사가 느끼는 기쁨과 감사를 배우며 살아가려 노력 중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고통을 살아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구의 종말이 예고되어 있고, 개인의 죽음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할까.

<어떻게 지내요>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친절하라. 네가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니.” 


그리고 또 한 문장.
어떻게 지내요?
시몬 베유는 이 문장을 프랑스어로 썼다.
그 언어로는 이렇게 묻는다.
“Quel est ton tourment?”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삶은 결국, 

서로의 안부를 묻고, 타인의 고통을 알아차리고, 친절하게 대하며, 함께 웃고 그렇게 견디며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책 <어떻게 지내요>와,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다시 보니 더 좋았다.

책이 더 좋았다고, 혹은 영화가 더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기보다는, 두 작품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함께 있을 때 선연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다.

 

책의 담백함과, 영화의 시각적인 강렬함. 그리고 두 배우의 그 색감과도 같았던 연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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