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 [여행과 나날]

 

 

 

 

 

 

경기도 광주에 있는 멜리에스 빈티지 시네마에서 영화 <여행과 나날>을 보고 왔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 꾸며진 1층 카페와, 독특한 인테리어에 편안한 공기가 감도는 극장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좋았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미 이 공간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 <여행과 나날>의 주인공 '이'(심은경)는 영화와 드라마 각본을 쓰는 작가다.

말로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오히려 말에 갇혀버린 듯한 답답함 속에 있다. 자신을 둘러싼 평가와 기대, 그리고 ‘나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겹치며 그녀는 깊은 슬럼프에 빠진다.

 

'이'는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가방 하나, 카메라 한 대만을 가지고 작은 설국의 마을로 떠난 그녀의 여행은 별다를 것 없다.

따뜻한 국수 한 그릇에 고개를 끄덕이고, 제대로 된 숙소를 찾지 못해 외딴 시골여관에 머문다.

그곳에서 만난 여관 주인 '겐조'와의 동행 역시 과장되지 않고 조용하다.

미술관이나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도 없이 그저 눈 쌓인 주변을 돌아다니고 여관 주인 겐조의 권유로 밤길을 따라나설 뿐이다.

 

영화는 보는 내내,  늘 각본만 쓰던 그녀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여행의 여정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소박하고 사소한 일탈 속에서 묘한 재미를 느낀다.

 

"눈 속에서 우리는 결국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래도 의외로 재밌었어요. 이렇게 즐거웠던 건 오랜만이에요."

 

 

이 대사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듯 느껴졌다.
작은 변화도, 뚜렷한 사건도 없는 결 속에서도 소소한 ‘재미’를 발견하는 것. 

내가 선택한 일들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해 나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삶이 아닐까.

 

<여행과 나날> 속 여행의 재미는 특별한 순간에 있지 않다. 그저 나날 속에, 일상처럼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일상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다시 일상이 된다.

 

 

 

 

 

김혜진 작가의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

 

 

 

 

 

 

종로 거리를 걷다 우연히 들른 독립 서점에서 김혜진 작가의 책, <오직 그녀의 것>을 발견했다.
<딸에 대하여>를 쓴 작가라는 사실만으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전에 이 책은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그녀의 것.’
제목이 주는 묘한 질문이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 황석주.
그녀에게 '오직 그녀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황석주 씨, 책을 좋아하나요?"
"네, 좋아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교열자의 일부터 시작해 편집과 출판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그녀의 삶이 펼쳐진다.

내가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지점들, 나의 소속이 아니라고 여겼던 세계, 내가 해낼 수 없을 거라 미리 단정했던 일들.

다시 태어나야만 가능할 것 같던 일들이 이 소설 속에서 결국 이루어진다.

 

그게 가능한 일이었다니.

끝없는 도전과 노력, 그리고 성실함이 그 시간을 통과해 마침내 한 사람의 삶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녀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기도, 포기하기도 한다.
그 모든 선택 끝에 그녀가 손에 쥔 것, 그 결실은 분명 그녀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나만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소설 [오직 그녀의 것]  &  영화 [여행과 나날] 

 

 

p 263. 그날, 석주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냉정하게 돌아보았다. 그것은 닮은 꼴의 하루가 반복되는 진부한 이야기 같았다. 극적인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는 서사. 개성도 매력도 없는 주인공이 완성해나가고 있는 그 스토리는 어떤 독자에게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먹먹함이 밀려왔다. 시시하고 평범한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삶이었다. 석주가 미약하게나마 감동을 느낀 건 쓰지 않는 것과 쓸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단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그 여정은 오직 석주에게 속한 것이었고 그녀만의 것이었다.

 

 

 

영화 속 ‘이’와 소설 속 ‘석주’는 개성도, 눈에 띄는 매력도 없는 주인공들이다. 놀라운 반전이나 극적인 서사를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올곧은 선택은 어떤 결실을 향해 분명히 나아가고 있었다.

 

묵묵하고 성실하게 마주해 온 시간들은 결코 허상이 아니었다.
그 세월은 분명한 실체를 지니고 있었고, 그들은 자신이 오래도록 동경해 온 어떤 세계를 향해 어렵지만 한 걸음씩,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

 

‘석주’가 세월이 흐른 뒤 달라진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듯,
‘이’ 또한 여행의 끝에서 이전과는 다른 자신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조용히 마음에 남았다.

 

책도 영화도 그녀들의 삶처럼 잔잔하고 여백이 많았다.
읽고 보고 있는 동안,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이 떠올랐다.

 

별다른 것을 성취하는 인생보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그리고 기쁘게 살아가는 일.
어쩌면 그것이 가장 어렵고, 동시에 가장 빛나는 삶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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