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라이카시네마에서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패터슨>을 봤다.
이 영화는 나의 인생 영화 중 하나이기도 하고, 비밀로 하고 싶은 나만 알고 싶은 영화다.
문득 쟝 그르니에의 책 <섬>이 떠올랐다.
이 책 역시, 아껴두었다 꺼내 읽는 나의 인생 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쟝 그르니에 에세이 [섬] & 짐 자무시의 영화 [페터슨]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은 버스 드라이버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고, 동네 바에서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다.
부유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특별한 사건도 없지만 그는 불만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패터슨에게는 비밀스러운 삶이 있다.
쟝 그르니에의 <섬>에서 이런 문장을 만난 적이 있다.
"비밀스러운 삶의 예를 들어 보자면, 데카르트가 네덜란드에 살면서 누릴 수 있었던 삶을 말할 수 있다. 시계추처럼 단조롭고, 또 어김없이 계속해 나가고, 노골적으로 낱낱이 드러내 보이는 극도로 절제된 생활을 해 나감으로써, 데카르트는 오히려 자기 생활의 신비로움을 충실히 간직할 수 있었다." (p.76)
패터슨의 삶도 이 문장과 닮아 있다. 겉으로는 누구에게나 훤히 보이는 반복된 일상이지만, 그 안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세계가 숨 쉬고 있다.
그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를 좋아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를 쓴다.
<섬>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앞으로 다가오는 나날을 어떻게 해서든 견디어내고 싶다면, 그 어떤 것이건 하나의 대상에 다만 몇 시간이라도 열중해 보라. 아마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으리라." (p.60)
패터슨에게 그 대상은 시일 것이다.
그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사물과 자연의 순간들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그 놀라움을 시로 옮긴다. 그는 그렇게 조용히 시인이 된다.
"무엇보다도 특히 방금 물속에서 건져 올린 듯한 푸른 하늘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질리지가 않았다." ( p.114)
그는 완벽하게 단조로운 삶 속에서 조금씩의 변주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나는 어쩔 도리없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의 은신처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p.167)
출근길 붉은 담벼락에 스민 햇살을 바라보고, 매일 다른 승객들의 대화를 들으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불만 없이 먹고, 그날그날 마주친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버스가 고장 나거나, 바에서 소동이 일어나거나, 그가 쓴 시 노트를 개가 찢어버렸을 때조차 그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잠시 마음의 동요를 느끼지만, 의외로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인생의 공허와 허무를 잘 알지만, 그는 그 마음을 다스릴 줄도 안다.
"곧 말없이 어떤 풍경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된다. 홀연히 공(空)의 자리에 충만이 대신 들어오게 된다. 나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면, 그것은 오로지 그와 같은 신적인 순들에 이르려고 했던 어렵고 힘든 노력이었을 뿐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p.36)
사실 이렇게 고요한 일상을 유지한다는 것이 판타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패터슨이라는 인물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내면에 비밀스러운 삶을 품고, 일상을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자족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에게 삶이란, 더 큰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찢어진 노트 대신 낯선 시인에게서 새 노트를 선물 받은 그 행운처럼, 그의 일상에는 앞으로도 조용한 기적들이 끊임없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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