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국제 개막작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어쩔 수가 없다]였다. 일정상 영화를 볼 순 없었지만 대신 그의 영화 <아가씨>를 재관람할 기회가 있었고, 상영 후에는 정서경 작가가 참여하는 GV까지 이어져 영화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 <아가씨>는 여성 해방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지만, 그와는 반대되는 시각으로 읽히는 불편한 장면들이 분명히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GV에서 영화에 대한 다양한 평들이 존재하지만, 결국 관객의 감상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이 작품은 메시지 해석을 온전히 관객에게 위임하기에는 위험이 따르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술의 자유와 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분명히 불편한 여지가 남는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

박찬욱 감독의 또 다른 작품 <박쥐>는 인간의 두 가지 모습, 도덕적 신념과 충동성, 금기와 해방, 종교적 신념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이영화는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판타지나 오컬트 계열, 뱀파이어 장르를 즐기지 않는 개인적 취향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가씨>와 마찬가지로) 불편하게 다가오는 장면들이 과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 속에 묘하게 끌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인간의 욕망과 죄의식이 뒤엉키는 장면들, 그리고 그 긴장감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감독의 태도에서 “왜 그가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 그 욕망을 감추고 절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이 영화는 씁쓸하면서도 아프게 드러낸다. 송강호가 연기한 상현의 직업이 신부라는 점은 그래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모든 것을 절제하며 살아야 하는 성직자가 한 여인에 대한 욕망을 품는 순간, 그의 균형은 무너진다. 욕망이 실현되는 잠깐의 쾌락 속에서 맛본 ‘작은 천국’은 서서히 지옥의 문으로 달려가고, 결국 그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죽음뿐이라는 냉혹한 결말만이 남는다.
제임스 셜터의 소설, [어젯밤]

욕망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는 제임스 설터의 단편 소설집 <어젯밤>에서도 만날 수 있다.
p.21 필립은 자기가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데....., 그녀가 말했다.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하루는 버그도프 백화점 앞을 지나는데 쇼윈도에 맘에 드는 초록샛 코트가 걸려 있었어요. 그래서 들어가서 그 코트를 샀어요. 그런데 며칠 지나서 다른 곳에서 처음 코트 보다 더 좋은 걸 본 거예요. 그래서 그것도 샀어요. 욕망을 자제할 수 없어 그런 거예요. (혜성)
가는 허리, 싱그러운 다리, 비키니 차림의 젊은 여자들. 어떤 이들은 이미 다정한 아내와 사랑스러운 자녀, 안정적인 가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쳐 지나가는 그 매혹 앞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강렬한 욕망에 휘말려 아슬아슬한 순간을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잠깐의 쾌락 때문에 다른 이들을 불행 속으로 밀어 넣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죄의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남는 것은 잘게 부서진 관계와 파멸뿐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도 언젠가 생애 가장 찬란했던 시절을 지나왔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 시절을 알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아름답던 날들을 서서히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 서글프지만, 그것 또한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다. 바로 이 덧없음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p.149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전보다 스무 살이 더 많았고, 체중도 불었다. 얼굴까지 통통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는데.(플라자 호텔)
p.151 그는 그의 인생 한가운데 거대한 방을 가득 채웠던 사랑을 생각했고,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길 위에서 그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플라자 호텔)
p. 165 (방콕)
- 지금 여기 있는 거, 태양과 별과 지구와 바다와 모든 거, 내가 당신에게 품은 감정을 포함해서 말이야. 그날 아침 허드슨 스트리트에서, 창가에서 다리를 올리고 햇빛 속에 앉아 얘기를 했고, 행복했어. 난 그걸 알고 있었어. 우린 사랑에 빠져 있었어. 그 순간 나는 삶에서 바라는 모든 걸 갖고 있었어.
- 그걸 느꼈어?
- 물론이야, 누구라도 그랬을 거야. 모두 기억해. 하지만 지금은 그 감정을 느낄 수 없어. 이제 지나갔어.
- 슬픈 일이네
- 난 그 이상을 갖고 있어, 지금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
-진짜 진부한 말이다. 사랑하는 아내라니.
- 그게 진실이야.
- 그리고 당신은 앞으로 함께할 절정의 세월을 기다리겠네
- 절정은 아니겠지
- 그래 맞아
- 절정을 매일 맛볼 수는 없어
....... 이런 게 사는 척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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