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작가의 소설, [안녕 주정뱅이]


작가 권여선과 신형철 평론가의 조합은 옳다. 그녀의 소설을 읽고, 그의 해설을 보면 선명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어떤 감정들을 끄집어내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소설 뒤에 덧붙인 그의 해설, <호모 파티엔스에게 바치는 경의>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이번 책에서 권여선의 소설은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다.
요즈음 나에게 문학과 관련해서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화와 함께 큰 여운을 남겼던 소설, <봄밤>이 첫 번째 이야기로 실려 있었다. 
 
[안녕 주정뱅이]라는 소설의 제목처럼, 총 7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술을 절제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각 소설의 인물들을 만날 때마다, '안녕, 주정뱅이.'하고 인사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피하고 싶은 빌런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연약하여 깊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이다.
 
소설을 읽을수록, 사람들은 취하지 않아도, 혹은 옅은 취기로도 주정뱅이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이성을 잃고 감정을 앞세워 흥분하고, 사소한 일에 울컥하고, 누군가를 원망도 해보고, 현실을 부정하기도 하며,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흔들리듯 불안정하게 말이다.
 
평생 희생을 강요하는 파렴치한 가족, 불친절하고 무례한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들은 고통받는다.
우연히 벌어지는 불행들과, 무심코 한 말과 행동 하나에 인생 전체를 망쳐버리는 농담 같은 삶에 그들은 무기력하다. 
 
p. 62 자연이든 관계든 오래 지속되어 온 것이 파괴되는 데는 번갯불의 찰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들 부부나 케이블카 커플이나 파괴된 논밭에 서 있던 크고 작은 크레인들처럼 가엾고 기괴한 잔여물에 불과하다고 훈은 생각했다. <삼인행>
 
p. 106 나도 애초에 이렇게 생겨먹지는, 않았겠지. 불가촉천민처럼,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하게. 내 탓도 아니고, 세상 탓도 아니다. 그래도 내가, 성가시고 귀찮다고, 누굴 죽이지 않은 게 어디냐? 그냥 좀, 지진 거야. 손바닥이라 금세 아물었지. 그게 나를, 살게 한 거고." <이모>
 
p. 136 삶에서 취소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도 없다. 지나가는 말이든 무심코 한 행동이든, 일단 튀어나온 이상 돌처럼 단단한 필연이 된다. <카메라>
 
또한 인간들은 모진 삶 속에서도, 사랑을 갈구하며 미움받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한다.
무신경하고 배려심 없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자신은 타인을 위로하고 이해하려 애쓴다고 자부해 보지만, 글쎄…. 정작 그러기 위해 그의 삶은 위선과 고통뿐일 수도.
 
p. 156 그녀는 이번에도 이내 배반당하고 말 상상을 하느라 오후 내내 발코니에서, 그리고 무서운 바람이 부는 숲 속에서 시간만 허송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기가 달을 용서하고 말고 할 계제가 못 되는 애송이 소설가에 불가하다는 것과 자신이 때론 낯선 이들의 삶에 깜짝 놀라곤 하지만 낯선 눈으로 보면 허구한 날 술만 마시는 그녀 자신의 삶이야말로 가장 경악할 만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역광>
 
p. 176 어떤 불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실내화 한 켤레>
 
 
대체 누구의 탓이길래, 살아가는 행위가 이토록 고통스러운가?
'제가 그렇게 나쁩니까?'라는 영화 속 어느 배우의 말처럼,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가는 삶은 참 잔인하다.
 
p. 224 그게 누구 탓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때 그는 모든 일이 사촌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인희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여튼 자기 탓은 아니라고, 자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층>
 
p. 240 꼬추의 발광.... 문득 떠오른 이 상스럽고 고약한 말에 그는 고개를 휙 돌렸다. 모든 게 내 탓이 아니라고, 그렇게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살이 무한히 찌고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나버리는 습성은, 누나만의 것이 아니었으니. <층>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나의 불행에 대해 누구의 탓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다. 취소할 수 없고, 주어 담을 수 없는 실패는 그저 바라보고 견뎌야 할 것들이다.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누구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도 참 우스운 일인 것도 같다.
나에게 도움을 줄 마스터는 세상에 없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불안전하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거나, 견디며 삶을 통과해 나가야 한다.
이 주정뱅이들의 삶을 들여다본 후, 영화 [마스터]를 다시 보았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마스터]

 
구부정한 등, 어눌한 자세, 초점을 잃은 눈빛. 누가 봐도 고약한 주정뱅이, 프레디(호아킨 피닉스).
그는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들과, 사랑했던 어린 연인 도리스를 뒤로한 채 2차 대전에 참전한다.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며 떠돌이처럼 위태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인간의 심리를 연구한다는 ‘코즈’ 연합회를 이끄는 마스터, 랭케스터(필립 세이모어 호프먼)를 만나게 된다.
프레디는 그의 화려한 삶에 매혹되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마스터의 말과 존재에 경도되어, 그를 향한 전적인 의존과 선망을 동시에 품게 된다. 그는 마스터의 실험 대상이자 조력자로 지내면서, 때로는 위험한 술을 마시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마스터 또한 자신과 다르지 않은, 부족한 인간임을. 그의 가족조차 랭커스터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음을. 그리고 그 역시 아내 매리(에이미 아담스)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 <마스터>의 포스터가 그저 강렬하다고만 느꼈었다. 하지만 데칼코마니 형태의 포스터 속 인물들을 보고 있으니, 어쩌면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불완전한 존재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좌우 대칭으로 하나의 자신을 완성한 프레디의 모습에서는, 삶의 고통은 누구의 탓도 아니고, 누구의 도움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자신만의 몫이며 스스로 견뎌야 하는 것임을 말하는 듯도 했다.
 
사람들은 때로는 강자가 되었다가 약자가 되고, 마스터였다가 추종자가 되기도 한다. 끝없이 같은 원을 맴도는 데칼코마니 같은 삶,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일지 모르겠다.
 
자유로운 바람을 어찌 막을 수 있겠나. 프레디. 자넨 뱃사람이니 집세 걱정도 없지. 원하는 곳으로 가게. 가보게. 발붙일 곳 하나 없는 망망대해로. 행운을 비네. 그 어떤 마스터도 섬기지 않고 사는 방법을 발견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겠나? 아마도 자네가 최초의 인물일 테니."
 

프레디와의 이별을 앞두고 마스터는 구슬프게 노래를 부른다. 나는 이 장면에서 매번 눈물을 흘린다. 프레디의 눈에 흐르는 눈물 한 방울, 울음을 참아내는 마스터의 얼굴. 두 배우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이 장면에서 누가 마스터이고 누가 추종자인지 모를, 그저 서로의 고통을 알아보는, 견디는 인간일 뿐임을 그들의 표정은 말해주고 있다.

당신과 조각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고 싶은데
나 혼자서 가네요
당신을 영원히 내 품에 간직하고서

사랑하는 이를 뒤로하고
파도치는 먼 바다로
밝고 커다란 저 달이
당신 마음을 녹이는 그곳

 

 

책과 영화 모두, 나의 왓차피디아 별점에 5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왠지 취하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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