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의 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
인간들은 각자 상황에 맞는 가면을 만들어 자신을 감추고, 포장하고, 연기한다.
상처와 흉터, 고통과 실패, 출신과 배경, 학력과 실력 등 자신의 약점을 가리고, 죄책감과 불안감에 긴장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하얀 탈을 쓴 얼굴로 웃고 말하며 행동한다.
한강의 <그대의 차가운 손> 속 인물들 또한 그러했다. 그들은 내면의 고통과 흔적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면서, 사회가 원하는 얼굴을 쓰고 살아간다. 그러나 차갑게 식은 내면은 언제나 틈새로 드러나고, 결국 연기로는 감출 수 없는 존재의 고독을 마주한다.
p. 285 껍데기는 조개나 게, 거북이처럼 단단한 걸 말해요. 하지만 껍질은 내용물에 완전히 엉겨 있죠. 사과나 배, 고양이와 개, 그리고 사람처럼. 그녀의 은밀한 시선이 탁자에 놓인 흰 석고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저 딱딱한 물건은 껍데기였으며 껍질은 그녀의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 내는 껍데기와 껍질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껍질 속으로 몸을 넣거나, 혹은 보호색을 만드는 많은 동물들처럼, 살아남기 위해 용기를 내는 또 다른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p. 42 차츰 나는 실수하지 않는 아이, 어른스러운 아이가 되려고 애썼다. 그러나 실은 집요하게 눈치를 살피는 아이, 결코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가 되어갔을 뿐이다.
p. 62 내가 알게 된 것이란, 진실이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났고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어난 상황에 가장 잘 맞는 행동을 하고, 그리고 나서 나에게 남은 감정의 찌꺼기들은 내가 처리해야 한다. 인내한다거나, 잊어준다거나, 용서한다거나, 어쨌든 내가 소화해 낼 수 있으며--소화해내야만 하며--결국 내 안에서 진실이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p. 302 아마도 난 증명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내 껍데기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는 걸. 그 자체로, 다할 나위 없이 훌륭한 껍데기라면, 그게 껍데기인들 무슨 상관이겠어?
그렇다면 그 껍데기와 껍질을 모두 제거했을 때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그곳에서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진실된 자아’일까.
가면 안에 감춘 나의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진실을 거부하는 사람들, 나를 미워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것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서,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 혹은 배려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껍데기를 쓰고 껍질을 만든다.
한강의 소설 속, 운형과 E는 바로 그 껍데기를 깨 부순다. 처절하고도 고통스럽게.
그리고 그들은 견딜만하다고, 따뜻하다고 말한다. 그녀의 차가운 손은 따뜻한 운형의 손을 잡고 안전함을 느낀다.
p. 313~317
"...... 나, 이것들, 마저 깨버릴까?"
그녀는 더듬더듬 침대 밑에서 구두를 찾아내 벗은 발에 꿰어 신었다. 그녀는 겹겹이 흩어진 파편들을 밝기 시작했다. 사방치기를 하는 계집애처럼 외발로 뛰기도 했고, 아마추어 복서처럼 두 주먹으로 석고 조각들을 내리치기도 했다. 종내는 무녀처럼 두 발로 겅중겅중 뛰며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낮은 천장을, 낡은 벽을, 먼지 낀 비닐에 싸인 조각들을 때렸다.
"이리 와, 같이 해"
모든 것이 남김없이 부서졌을 때, 그녀의 얼굴은 흰 석고 가루와 땀이 뒤 엉겨 마치 분장한 듯 희었다. 마치 새로운 가면을 쓴 것 같았다.
"네가 아까 날 꺼냈을 때."
"정말 꺼내진 것 같은 기분이었어."
"네가 널 꺼냈고...... 또 난 널 꺼낸 건가?"
" 만일 우리가 꺼내졌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다시 들어갈 수 없다면..... 저 부서진 석고 껍데기 속으로."
"많이 아파?"
"견딜 만해."
"나도, 견딜 만해."
"따뜻해."
"따뜻한 손이야."
마치 처음 웃는 아기처럼 그 웃음은 불가사의했다.
p. 313 삶의 껍데기 위에서, 심연의 껍데기 위에서 우리들은 곡예하듯 탈을 쓰고 살아간다. 때로 증오하고 분노하며 사랑하고 울부짖는다. 이 모든 것이 곡예이며, 우리는 다만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
루치아 슈미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전부를 원해]
지난 주말에는 21회 '제천 국제 음악 영화제'에 다녀왔다. 음악 영화제답게 개성 있는 영화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제천이라는 도시 또한 매력적이었다. 힐데가르트 크네프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전부를 원해>는 우연히 포스터에 이끌려 보게 되었다.

'힐데가르트 크네프'는 독일의 국민적 배우이자 가수이다. 세계적 스타였던 '마들렌 디트리히'와 종종 비교되었던 그녀는, 화려한 무대 뒤, 수많은 실패와 병 그리고 끊임없는 비난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면을 쓴 채 주저앉지 않았다. ‘나는 전부를 원해’라는 선언처럼, 삶의 고통을 안은 채 다시 무대에 올랐다. 샹송을 부르는 그녀의 전성기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시간을 넘나들며 그녀의 삶을 입체적으로 담아낸다.
불안과 희망, 상처와 회복의 삶을 살았던 전후 독일인들의 자화상처럼, 차가운 삶의 무대 위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많은 생각을 했던 영화였다.
<그대의 차가운 손>, 소설 속에서 실종되었던 '운영'과 'E'는 결국 다시 나타난 걸까? 껍데기와 껍질을 벗고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달라진 모습으로? 아니면, 작가 H의 바람이 그녀의 눈에 그들의 환영을 보게 만든걸까?
결국 인간의 가면은 부끄러움의 증거이자, 동시에 살아가기 위한 방패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벗어던질 수 없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연기이자 용기일 것이다.
'_ 책과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책 [어젯밤] & 영화 [박쥐] (1) | 2025.09.27 |
|---|---|
| 책 [안녕 주정뱅이] & 영화 [마스터] (1) | 2025.09.19 |
| 책 [봄밤] & 영화 [봄밤] (3) | 2025.07.28 |
| 책 [노랑무늬영원] & 영화 [바다호랑이] (1) | 2025.07.17 |
| 영화 [추락의 해부] & 책 [경청] (4) | 2025.07.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