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 그르니에 전집 中 6. 섬 <청하>_함유선 옮김

 

 


 

아주 오래된 책 한 권을 책꽂이에서 꺼냈다. 1988년 처음 발행된 장 그르니에 전집 중 한 권이다. 『섬

 

이 책은 그의 제자인 알베르 까뮈가 쓴, <섬에 부침>이란 소개글로도 유명한 책이다. 까뮈는 스승의 이 글을 읽고 진정으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독서, 짤막한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에 끼치는 영향은 과히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까뮈의 추천글을 읽으며 나도 이 책을 자녀들에게 권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여행 에세이라고 할 수도 있을 이 짤막한 글들의 모음은, 사실 쉽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다. 깊은 사색의 시간이 필요한 책인 듯싶다. 내가 아주 오래전에 읽었을 이 책은, 고백하건대 최근 다시 읽었을 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나였지만 결정적 순간의 감동을 맞이할 마음의 깊이가 없었던가보다. 

 

그 후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이 책은 나에게 깊은 감동을 가져다준다. 어쩌면 자녀들에게 부러 권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空)의 매혹    고양이 물루    케르켈렌 군도   행운의 섬   부활의 섬   상상의 인도   사라져 간 나날들   보로메 섬 

 

 

이 여덟 개의 짧은 에세이 중 케르켈렌 군도 편의 첫 문장이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낯선 어느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몹시도 원했었다. 나는 겸허하게 그리고 가난하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비밀스런운 삶.

 

요즘 우리 주변은 우리를 가만 놔두지 못한다. 나만의 비밀스러움을 간직할 시간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책에도 언급되었듯이, 비밀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에 대한 열등의식이나, 가난, 아니면 인간사회의 관습적인 관계들에 별다른 매혹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달이 우리에게 똑같은 한쪽 만을 보여주는 것처럼, 사람들의 삶도 그렇다. 모든 사람의 감추어진 삶에는 어떤 위대함이 깃들어있다. 필연적으로 부끄럽거나 인위적인 것 이상이다.

 

비밀스러운 삶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 어떤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다가 혼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비밀은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이자 시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 자신을 되찾기 위한 여행, 위대하고 가슴을 찌르는 듯한 풍경 속에서 한없이 작은 나를 발견하는 것, 공(空)에서 얻는 모든 것, 보여지는 나 말고 더 깊숙한 내면의 나를 찾아가는 그 모든 여정은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가게 해 줄 것이다.

 

유럽여행을 가보는 것을 생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에세이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지중해 연안의 온 바닷가는 아닐지라도, 그 중 한 곳이라도 다녀오고 싶다. 그러나 이런 나의 충동에 사뭇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그의 마지막 이야기 보로메 섬.

 

 

여행을 한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 산을 하나 넘으면 또 산이 나오고, 들판을 가로질러 가도 또  들판이 있고, 사막을 지나가도 또 사막이 있으리.............. 그러한 대응품들을 찾으면서 사는 수밖에!

 

그렇다면 무엇을? 그러므로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다 나에게는 보로메 섬이라고 여겨진다. 너무나도 쉽사리 허물어질 듯하고 그러나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지켜주는 어느 마른 돌담이 늘 나를 홀로 서 있게 해주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그득히 채워 줄 것이고, 어느 농가의 문께에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그루의 씨프레 나무만으로도 나를 반가이 맞아주기에 족하리니..... 한 번의 악수, 단 하나의 지혜의 표시, 한 번의 눈길..... 이런 것들이 바로 그토록 가까이 있는, 가혹할 정도로 가까이 있는 나의 보로메 섬들이리니.』

 

 

왕복 1시간. 운동삼아 일터까지 걸어 다닌 지가 꽤 되었다. 올 겨울은 추위가 그만그만하여 걷는 걸 계속하려고 노력 중이다. 무심코 걸어갔던 그 길의 나무들과 하늘 그리고 건물들과 사람들 마저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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