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픔이 길이 되려면

 

'부제는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이다.

정의로운 건강?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람이 병드는 것에도 불공정함과 부조리가 원인일 수 있으며,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공동체의 문제라는 것이 이글에 흐르고 있는 메시지이다.

 

 

 

○ 김승섭

 

오늘날, 의료기술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그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존재한다.

개개인의 삶에 대한, 혹은 병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  하는걸까? 병이 일어나는 사회적 원인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분포하지는 않아 보인다. 사회적인 약자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고 더 자주 아프다. 비정규직 노동자, 소득 없는 노인, 결혼이주여성, 성소수자 등등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질병의 사회적인 원인에 대해 조사하고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즉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이다.  * 역학(Epidemiology)이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이다

 

 

 

○ 데이터의 힘

 

저자는 사회적 약자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부와 기업의 관심 밖이었기에 데이터가 거의 없었고, 불안정한 그들의 삶으로 인해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약자의 건강을 말하기 위해서 항상 데이터를 먼저 수집하고, 그 데이터를 분석해 학술 논문을 쓰고, 그 근거에 기초해서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필요한지 말했습니다. 그것은 학자인 제가 '링'위에 올라가는 방법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동안 감성적으로 이해했던 문제들을, 정확한 사실 즉 구체적이고 수치화된 데이터들로 인지함으로써 완벽하게 이해되고 정리되는 통쾌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책에는 재난의 원인을 정확한 데이터로 분석하여, 그에 기반을 두고 대응 전략을 마련했던 공동체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는 몇몇 실제 사례들도 소개하고 있다.

 

 

 

○ 책의 구성

 

1. 말하지 못한 내 상처는 어디에 있을까

 

영양이 턱없이 부족한 산모의 태아는 엄마의 뱃속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된다. 

뇌와 같은 필수 기관에 먼저 영양분을 사용하고, 다른 기관의 발달에는 영양분을 적게 사용하게 된다. 이것은 먼 훗날 성인병을 유발하여 수명을 단축하게 만든다.

이처럼 인간의 몸에는 사회적인 경험들이 강력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이 태아의 경험일지라도 말이다. 가난으로 영양이 부족한 산모는 누구의 책임일까? 어떤 사연이 그 산모에게 있는 걸까? 건강은 공동의 책임이다. 역사와 권력, 정치에게 우리 건강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2.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1991년 스웨덴은 경제위기를 겪게된다. 그럼에도 스웨덴의 자살률은 감소하였다. 주된 이유로 국가의 적극적인 <노동시장 프로그램>을 주목하게 된다. 국가가 실직한 노동자들의 편에서 든든하게 지원군 역할을 해 준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2009년 쌍용 자동차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 208명과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는가?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입사 2년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난 황유미 씨와 도 다른 피해자들은 어떠했는가? 아파도 해고당할까 봐 침묵하며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또 어떠한가? 회사가, 나라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는가?  참담하다.
"고용불안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해고된 노동자들이 재취업을 위해 교육 받을 수 있는 공적 안전망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고용불안이 주는 두려움은 극대화됩니다."

 

3.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되려면

 

재난은 기록되어야 한다. 슬픔을 기억하는 것이 괴롭고 힘들지만, 그것을 끝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길이 되려면 말이다.

사회가 부조리해서 받은 상처와 질병은 치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약물치료와 인지치료를 받는 것으로 몸의 이상 증후를 낫게 할 수 있고, 고통을 초래한 사건을 흐릿하게 만들어 일상을 유지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고통을 초래한 사회적 원인이 밝혀지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자신이 받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기에 그것은 치료가 될 수 없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보라.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공유를 통해, 명예회복 - 보상 - 처벌을 거쳐, 사회관계 회복 개선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치유작업이 함께 되어야 합니다."

 

동성결혼 금지와 성소수자 건강은 어떠할까? 제도가 존재를 부정할 때 몸은 아프다.

사실, 이제껏 동성애에 관한 나의 생각은 정리가 되어있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책의 도움으로 동성애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다." 이것은 학계의 오랜 상식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이성에 끌리고 관심을 갖고 사랑하게 된다. 내가 적극적으로 선택하지 않음에도 자연스럽게 이성에게 끌린다. 즉, 선택해서 이성애자가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동성에게 끌리는 것이다. 본능이다. 

소수자라고 부정할 것인가? 우리도 한국을 떠나면 소수자이다. 소수자의 차별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다. 진실된 사랑과 정의를 품고 노력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진정 가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에 치료받을 필요가 없으며, 동성애자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학적, 법적 상식을 바탕으로, 과학적 사실 위에서 한국사회는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4.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 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인간의 질병 발생률을 줄일 수 있다. 심리적인 안정이 병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진실되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저자는 실제 사례를 들며 설명한다.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한가? 정부는 정치인들은 회사와 공동체들은 그리고 개인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 희망

 

아주 조금씩이나마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분명히!

지금도 어딘가에서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파헤치고 있을, 이 책 저자의 시도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사회 역학자인 작가의 노력과 용기 그리고 외로운 싸움의 시간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정말 아프고, 감동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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