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후각 시각이 인간보다 뛰어난, 개들이 느끼는 세상은 어떨까?

사람 구실을 못할 때, ‘개만도 못한 놈이란 말을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그야말로 개만도 못한 사람들일지도...

 

이 책은 태어나보니, 진돗개 수놈, 보리의 아름다운 인생이야기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기어이, 스스로 아름다운 운명을 완성 한다라는 것을 자연 속에서 보고 알았다고 말한 저자의 말처럼, 사람들이나 개들이나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인 것이다. 개는 세상 구석구석을 온 몸으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세상을 몸으로 받아내며 살아간다. 인간은 어떠한가? 삶 그 자체를 오롯이 느끼지 못하고 삶 가운데 수시로 개입하는 매체, 글자, 말 등 다른 것들에 부당하게 현혹되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작가는 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인간 세상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세상을 느껴보자는 의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의 순진하고 청초하고 깊은 표현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마음이 소박해지는 글의 내용은 참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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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내용 중 보리의 눈으로 본 사람들 혹은 글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개와 사람의 차이들에 대해 한 번 집중해 보았다.

 

는 자연이 걸어오는 수많은 말들을 알아듣지만, 사람들은 자연의 소리에 관심은 없고 제 말만을 해대고, 그나마도 못 알아들어서 지지고 볶으며 싸움판을 벌이고 있다.

 

들은 이 세상 온 천지를 선생님으로 삼고 찾아가 함께 뒹굴면서 배운다. 신바람 나게 말이다. 사람들처럼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신바람은 개의 몸의 바탕이고 눈치는 개의 마음의 힘이다.

 

들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살피며 살아가는 걸 배운다. 마음이 재빠르고 정확해서 남의 얼굴빛과 마음의 빛깔을 살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눈치가 모자라서 남이야 어찌되었던 제멋대로 하고, 심지어 이런 눈치 없고 막 나가는 사람들이 소신 있는사람으로 여겨지는,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은 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살지를 못한다. 따스한 집과 옷과 밥, 부모형제와 이웃,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고 약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이다.

 

들은 언제나 지나간 슬픔을 슬퍼하기보다는 닥쳐오는 기쁨을 기뻐한다. 주인할머니는 마지막까지 마을을 떠나지 못하겠다고 울며 슬퍼했지만, 보리는 정든 고향을 떠나 새 주인집으로 가는 것을 슬퍼하거나 세상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향의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단단해진 발바닥 굳은살을 보며 만족스러워했을 뿐이다.

 

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일 뿐이다. 지나간 주인은 지나간 주인이다. 개들은 .. .. 주인을 향한 마음이 영원한 것이다. 지나간 날들은 개를 사로잡지 못하고 개는 닥쳐올 날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근심하지 않는다. 과거에 집착하며 앞으로의 삶을 걱정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가.

 

보리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빨리 달릴 수 있었지만, 뱀이나 들 고양이를 쫓아버릴 때처럼 바쁠 때가 아니면 아이들 앞에서 달리기 솜씨를 자랑하지 않는다. 자랑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보다 품격 있다.

 

보리도 가끔은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인라인스케이트 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이 낡으면 새 신으로 갈아 신으면 되는 인간과는 달리, 내 몸의 모든 무게와 느낌을 저장하고 있는 굳은살 한 벌 뿐인 . 단지 발바닥 굳은살로는 건너갈 수 없는 사람들의 세상에 가슴이 저렸다. 또 한 번, 아이들의 교실을 엿보며 정말로 사람이 되고 싶은 보리. 보리가 사람의 아름다움에 홀려있을 때도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 있었다.

 

주인님의 몸에서 나는 경유냄새. 고단하고도 힘찬, 어딘지 쓸쓸한 슬픔도 느껴지는 그 냄새는 보리가 지키고 따르고 사랑해야 하는 냄새였다. 그 밖에 갯가마을에 스며있는 여러 가지 냄새들. 새벽 선착장에서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라면의 냄새, 예쁜 여자들의 화장품 냄새,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지내는 사내들의 절은 담배냄새, 고약한 오줌 냄새 등. 보리는 이런 냄새까지도 좋아하는 가 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취하는 사람. 나와 다른 것들은 인정하지 않고 내치지는 않는지.

 

까닭 없이 짖는 개는 없다. 그러나 어느 때 짖는가를 보면 그 개가 어떤 개인지 알 수 있다.

약자나 선한 사람들 같은 지나가는 것들이 지나갈 때 보리는 짖지 않는다. 한편, 이웃동네 악돌이라는 개는 허름하거나 힘이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짖어대고 말쑥한 사람들이 지나갈 때는 짖지 않는 힘세고 사납고 거칠 것이 없는 놈이었다. 오히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사람들도 악돌이와 닮아있다.

 

어느 날, 보리는 세상을 쓰다듬듯이 부드러운 눈빛을 가진 암캐 흰순이를 만난다. 달려들어서 싸우려하지 않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눈빛. 태어나보니 암캐인 운명을 순응하는 눈빛. 태어나보니 사람인, 우리, 자연을 거스르며 세상과 싸우려하고 좀 더 가지려고, 좀 더 편하려고 하는 우리는.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찾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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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는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것 같지만 나름의 고뇌와 고통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인간들의 그것과 같은.

 

 

흰순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악돌이와의 만남. 보리는 무섭지 않았다. 겁이나 무서움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이길 수 있을는지를 보리는 생각하지 않았다. 짖지 않고 고요히 집중하며 한 걸음씩 나아갔을 뿐이다. 결과는. 털이 뜯겨나가고 살점이 패어지고 뼈가 으깨진 불쌍한 몸. 어쩔 수 없이 싸워야하는 상황이 있다. 보리는 피하지 않는다. 자신이 약한지 강한지 생각지 않고 그래야할 때는 그런다.

 

 

"그렇게 못되고 경우 없는 놈이 그토록 강하다는 것은 알 수 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었지만 그놈은 어째든 강한 놈이었다. 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어찌 그것을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고통은 모조리 나의 것이었다. 악돌이가 이기고 내가 진 것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다만 악돌이가 강했고 내가 약했을 뿐이었다. 아주 분명한 일이었다. 그 분명한 것이 견딜 수 없어서 앞발을 쳐들고 우우우우 울었다."

 

 

살다보면 그렇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한다. 내 몸으로 고통을 참아내면서... 그렇다면 그건 견딜 수 있는 것 아닐까? 내가 약해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어쩔 수 없는 일들. 살려면 견뎌아하는 것들.

 

가을에, 주인이 파도에 휩쓸려 죽었다. 죽음이 대체 무엇인지를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보리는 울었다. 보리는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럴 수는 없고 이럴 리가 없고 이래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악돌이를 만나서 해답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격렬했던 싸움 후, 네 다리로 땅을 딛지 못할 정도로 지쳤으나 악돌이도 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보리는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주인아주머니는 도회지로 이사를 결정하고 살던 집을 팔려고 내놓는다. 보리는 식구들과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남은 하루하루를 긴장하며 되도록 밖으로 싸돌아다니지 않고 집 안에 머물렀다. 마을을 떠났는지 죽었는지 모를 악동이의 행방, 마을 사람들에게 희생 된 흰순이. 악동이의 새끼들임에 틀림없어 보이는 흰순이가 남긴 강아지들. 보리의 인생도 뜻대로 되지는 않는 듯 해 보인다.

 

 

"내 마지막 날들은 햇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가볍게도 하루하루 흘러가고 있었다. "

 

"악돌이가 떠나고 흰순이가 죽고 없는 마을은 견딜 수 없이 허허로웠다. 내가 가야할 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마을에 악돌이가 여전히 힘세고 사납게 살아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흰순이 같은 개들이 풀이 돋아나고 바람이 불어오듯이 저절로 태어나주기를 바랐다. 저절로 되는 것들은 다들 저절로 돌아올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여전히 냄새맡고 핥아먹고 싸워야 할 것이었다. 어디로 가든, 내 발바닥의 굳은살이 그 땅을 밟을 것이고 나는 굳은살의 탄력으로 땅 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 보리의 마지막 날들조차도 보리는 희망에 찬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못된 악동이도 부드러운 눈빛의 흰순이도 다 공존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어떤 세상이 오던 그 세상 가운데는 아름다움과 행복이 깃들어 있음을 보리는 알았던 것일까.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가면서 사는 인생이 불가피하지만, 그 곳에서 여전히 세상과 부딪치며 사는 것이 인생이고 그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을 보리는 알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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