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열린 <새벽부터 황혼까지,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를 보았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북유럽 화가들의 이름과 작품들은 낯설었지만, 북유럽적 사실주의와 낭만주의가 어우러진 그림들은 오히려 마음에 더 다가왔던 기억이다.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_북유럽 편>에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의 작품들이 다채롭게 실려 있었다.
책의 한정된 크기 때문에 그림이 작게 실려 아쉬움이 남았지만, 화가들의 삶과 작품 설명을 함께 읽는 과정에서 또 다른 감동을 만날 수 있었다.
혹독한 겨울이 이어지는 북유럽 낮의 햇빛은 얼마나 귀할까. 짧은 일조량과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빛을 붙잡아 일상을 그려낸 화가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그 순간의 소중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전시와 책에서 많은 작품들이 마음에 남았지만, 그중 몇몇 작품들을 기록해 두려 한다.
산란하는 빛을 담다, 스웨덴
● 칼 라르손의 <아늑한 모퉁이>
p.41 겨울왕국이라 불리는 북유럽의 오후, 아무도 없는 거실을 가득 채우는 햇빛은 쓸쓸함이 아닌 따뜻함과 행복을 느끼게 한다.
● 한나 파울리 <아침 식사>
p.73 식탁 위의 스테인리스 주전자와 유리병 그리고 자기로 만든 찻잔들이 살아 있는 듯 생동감 넘치게 반짝인다. 식탁을 장식한 테이블보 위로 이들이 만드는 얼룩덜룩한 행복의 빛이 넘실거리고, 화면 바로 앞 나무 의자의 등받이에도 만져질 듯이 생생한 빛이 흘러넘친다.
피오르의 대자연을 담다, 노르웨이
● 한스 프레드릭 구데 <하르당에르 피오르의 신부 행열>
p.110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터져나갈 듯 맑은 피오르의 아름다움이다. 눈부시도록 밝은 햇빛이 협곡과 구름 그리고 만년설을 비추며 신혼부부는 물론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고 있다.
● 한스 달 <눈부신 풍경>
p. 133 하얀 블라우스와 빨간 치마 그리고 다양한 무늬의 스카프 등 노르웨이 전통 복장을 한 금발의 여인이 하던 일을 멈추고 건너편 만년설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로 꽃들이 만발하지만 여인의 맞은편에 보이는 설산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설산에서 깊은 계곡을 한 구비 지나면 한여름의 푸른 산이 보이는데 그 산 아래로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거대한 폭포가 보인다. 쇠스랑을 세워 들고 광경을 보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이 당당해 보인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황홀감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 있다.
고요히 스며드는 일상을 담다, 덴마크
● 페데르 크뢰위에르 <힙힙만세>
p.197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빛이 숲 속에 마련된 탁자의 모서리를 환하게 비추는 가운데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들이 건배하고 있다. 건배하는 남자들 앞으로 부인들이 남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테이블 한구석에는 엄마에게 몸을 기울이며 응석을 부르는 소녀가 보인다. 소녀의 분홍색 옷과 소녀 앞에 보이는 하얀 식탁보 위로 한낮의 사랑스러운 빛이 충만하게 내려서 있다. 햇빛이 주는 기분 좋은 빛과 그늘에서 한껏 취한 남자들이 있는 테이블에 빈 술병과 잔들이 늘어져 있다. 이들은 파티를 오랫동안 즐기고 있는 중이다.
● 베르타 베그만 <정원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어머니>
p.230 따스한 봄 햇살이 만연한 가운데 젊은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다. 정원을 가로지르는 좁은 길 양쪽으로 봄꽃들이 봄 햇살을 맞으며 아우성치고, 봄꽃들 아래에 보이는 시원한 그늘은 봄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만든다. 파란 줄무늬 드레스와 하얀 스카프를 두른 엄마의 얼굴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미소가 감돌고, 엄마의 품에 안긴 사랑스러운 아기의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이 가득하다. 엄마와 아기의 팔과 등 그리고 머리 위에 쏟아지는 빛들이 모녀의 모습을 따스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질감으로 가득 채운다.
● 라우릿스 안데르센 링, <아침식사>

p.237 스냅사진처럼 일상의 한순간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고요한 거실과 신문으로 상징되는 외부세계와 아무런 방해도 없이 혼자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사색에 빠진 인물로 상징되는 내부세계가 아슬아슬한 경계를 이루며 절묘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하지만 분명한 행복을 담다, 핀란드
● 엘린 디니엘손 감보기 <리부리노의 안타니뇨 해변, 1904>
p.282 파스텔톤의 옅은 파란색을 띤 바다와 하늘은 가족들을 편안하고 부드럽게 감싸고 멀리서 밀려오는 은은한 햇살은 가족들의 얼굴에 스며들어 자유로움과 흥겨움을 더하고 있다.
● 페카 할로넨 <보트를 타고 있는 여인>
p.311 초록의 숲이 그대로 담겨 있는 호수에서 한 여인이 보트를 타고 있다. 벌겋게 상기된 채 울고 있는 그녀는 하얀 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낸다. 그녀는 불안하거나 슬퍼 보이지 않는다. 고요한 정적 속에 자신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슬픔에 찬 여인의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힘든 과거를 살아온 그녀의 모습이 호수에 빠져 있다. 자신을 만난 그녀는 자신과 사랑에 빠져 있다. 자연과 여인 그리고 자기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빛으로 가득한 일상을 그려낸 화가들의 그림에는 경쟁과 불안, 고독과 외로움으로 지친 현대인조차도 잠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어떤 힘이 있다. 빛이 스며드는 순간들이 쌓여 우리의 일상을 이루고, 그 찰나들이 모여 결국 삶은 풍성해진다.
북유럽 소설들을 읽다 보면 빙하가 남긴 피오르 지형이 자주 등장한다. 거대한 절벽이 양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서고, 그 사이 좁고 깊은 바다 물길이 들어와 장엄한 풍경을 만든다. 대자연의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 우리는 작아지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무위의 행복을 배운다.
"삶은 끊임없는 파티다. 그리고 나는 세상이 웃는 모습을 알았다." _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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