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작품이다.
 
마침표가 거의 없다는 얘기를 듣고 포르투갈 출신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생각났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을 때 마침표와 쉼표 외의 문장 부호가 전혀 없고 심지어 줄 바꿈도 없어 온 신경을 집중했던 기억이다. 주제 사라마구도 198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사실이 신기하다.
 
 
 
[아침 그리고 저녁]
 
1부는 요한네스의 탄생, 2부는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 늙고 죽는다는 것은 고약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아침이 지나 저녁이 오고, 또 저녁은 아침으로 이어지듯이, 삶과 죽음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고요히 흘러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슬프고 외롭지만, 또 아름답고 평화롭다.
 
작가 특유의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문체는 반복과 여백으로 음악적인 리듬감을 주고, 한 인물의 침묵과 고뇌는 그 인물에 대한 신뢰와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1부>
 
p.15-16 이제 사내아이, 어린 요한네스가 세상 빛을 보게 된다. 아이는 마르타의 몸 안에서, 그녀의 뱃속에서 자라났다, 충분히 크고 강하고 어여쁜 모습을 갖출 때까지, 아무것도 아니던 것이 사람이 되어, 작은 사내아이가 되어, 그래 저기 마르타의 몸 안에서, 그녀의 뱃속에서 손가락을 얻고, 발가락과 얼굴, 눈이 생겨나고 뇌와, 아마 머리카락도 약간 자라 있겠지, 그리고 그 아이가 이제 나온다. 마르타, 아이의 어머니는 고통으로 비명을 지른다,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 물고기, 집, 그릇,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올라이는 생각한다,
 
p.17 확실한 것은, 그가 올라이이고 어부이며 마르타와 결혼했고 요한네스의 아들이며 이제, 언제라도, 조그만 사내아이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아이가 할아버지처럼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신이 존재하기는 하겠지, 올라이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가까이 있다. 그리고 그는 전지전능하지도 않다
 
열네 개의 마침표를 찾았다. 또 어디 숨어있을지 모르지만.
작가 혹은 올라이가 결론에 이른 것만이 유일하게 마침표를 갖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머지 문장들은 모호하고 정해져 있지 않은 그저 불확실한 것들일까? 그렇다면 그저 꿈같은 몽롱함 속에서 살아가는 게 인생일까?
 
 
 
<2부>
 
잠에서 깬 요한네스는 몸이 가볍게 느껴지고 모든 것이 여느 때와 다르다. 아주 이상하게 느껴진다.

p.42-43 그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선 채로 자전거를 바라본다, 빨래통 두 개, 모탕, 벽에 걸린 갈퀴와 삽, 어쩐지 모든 것이 제 안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말하는 듯하다, 자신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 모든 것이 그 자신처럼 나이 들어, 각자의 무게를 지탱하며 거기 서서, 전에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고요를 내뿜고 있다,
 
p.43 그러나 물건들은 제각기 지금까지 해온 일들로 인해 무겁고, 동시에 가볍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상상해 보라, 세탁기가 생기기 전에 에르나가 저 통을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저 안에다 얼마나 많은 빨래를 했는지, 그래 결코 적지 않은 빨래였다. 그리도 이제 에르나는 가고 없는데 빨래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것이다,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p.49 달라진 것이 있어도, 그것은 아마 그의 내부에서 일어났다고 보는 게 가장 그럴듯한 것이다, 아니면 혹시 밖으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을까? 저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을까, 대수로운 게 아니라도, 그에게 이런 느낌을 주는, 그저 뭔가 아주 사소하지만 모든 것을 완전히 달라 보이게 하는 그런 일이? 
 
 
 
새벽에 죽음을 맞이한 그의 영혼은 영원한 무로 돌아가기 전 사랑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아내 에르나, 막내딸 싱네, 친구 페테르, 구두장이 야코프, 아마도 짝사랑했었을 안나 페테르센. 
 
p.37 요한네스는 에르나가 늘 앉던 식탁 맞은편을 바라본다, 그리고 지금은 빈 의자인데도 오늘 아침에는 그녀가 앉아 있는 것만 같다
 
p.101 에르나가 살아 있다면 더없이 좋을 텐데, 에르나가 가고 없는 것이 슬프다, 그래도 집이 따뜻하기는 하겠지, 먹을 것도 조금 있고, 하지만 에르나 일은 너무나 안타깝다, 그녀가 떠나야 했던 것은, 그는 늘 자기 차례가 먼저 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르나가 앞서갔고, 혼자 사는 일은 익숙지 않았다, 그들은 오랜 세월 금실 좋은 부부로 살았고 일곱 명의 아이를 낳았다, 물론 티격태격 싸울 때도 있었지만 고요하고 평화롭게 산 편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영영 가고 없다 그래 그런 거지, 요한네스는 말한다
 
p.47 막내 싱네는 거의 매일 그를 보러 오다시피 한다, 장을 보러 갈 때면 꼭 들러 살펴보고 전화도 자주 한다,
 
p.47 페테르와 요한네스, 그들은 오랜 세월 서로의 머리를 잘라주었다, 그런 식으로 둘은 많은 돈을 절약했고 단정해 보이도록 신경 썼다, 하지만 이제 페테르는 죽고 없다,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은 슬픈 일이다,
 
p.51-52 그래 구두장이 야코프는 사람이 좋고 믿음도 강했다, 다른 사람은 흉내도 못 낼 만큼, 그랬고말고, 그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게 두었다, (........) 구두장이 야코프는 친절하고 선한 사람이었다, 그는 신발을 고쳐주고도 거의 돈을 받지 않았다,
 
p.86 다시 젊은이가 된 것처럼 가볍고 건강한 느낌이 드는걸, 그리고 부두를 내려다보는데 거기 안나 페테르센이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는 이제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지? 그가 보낸 편지에 그녀가 답장을 하지 않았으니, 서로 민망한 일이었다,
 
 
 
삶이 더 이상 우리를 원하지 않을 때, 우리는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다. 하지만 죽음도 삶과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거우면서 가볍고, 다르면서 같고, 꿈같으면서 또 현실 같고, 마침표 없이 무수한 쉼표가 쓰인 소설처럼 그렇게 쉬엄쉬엄 흘러가다 스러지는 것이다.
 
p.81 루어가 내려가지 않는 건가? 페테르가 묻는다 안 내려가,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거 고약한 일이군,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요한네스가 올려다보니 페테르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다 정말 고약한 일이다, 페테르가 말한다 바다가 더 이상 자네를 원하지 않는구먼, 그가 말한다 그리고 페테르는 눈물을 닦아낸다 그럼 남는 건 땅뿐인가, 페테르가 말한다
 
p.134 그들은 더 이상 페테르의 고깃배가 아닌 다른 배에 앉아 바다 위에 떠 있다 그리고 하늘과 바다는 둘이 아닌 하나이고 바다와 구름과 바람이 하나이면서 모든 것, 빚과 물이 하나가 된다 그리고 거기, 에르나가 눈을 반짝이며 서 있다, 그녀의 눈에서 나오는 빛 역시 다른 모든 것과 같다, 그러고 나서 페테르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래 이제 길에 접어들었네,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그럼에도 역시 늙는다는 건 고약한 일이다. 죽는다는 건 마음이 너무 아픈 일이다.
일주일 동안 죽음으로 건너간 몇몇 사람들의 소식을 들었다. 조문을 가야 하는 한 친척, 지인에게 들은 노부부의 고요한 죽음, 중년에 돌연사한 한 직장인의 가족, 그리고 나는 욘 포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샤이닝]을 읽고 있다. 그렇게 삶은 죽음과 하나란 사실에 불현듯 놀란다.
 
p.111 에르나가 아직 살아 있던, 지난 몇 년 동안 그들은 참 편하게 살았다고, 돈 걱정 없이, 고생도 걱정도 없이 조용하고 만족스럽게,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에르나가 돌연 다락방 침대에 누운 채 숨을 거뒀다, 그리고 그는 에르나가 늘 서 있던 부엌 창가를 바라보지만, 에르나는 거기 없고 텅 빈 마룻바닥만 남아 있다, 
 
p.135 그리고 싱네는 요한네스의 관 위로 목사가 흙을 더지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는 독특한 분이었죠, 유별난 구석이 있었지만,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걸 저도 알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속을 게워내야 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싱네는 생각한다,
 
 
 
또 한 해가 지나고, 늙음과 죽음은 나에게 많은 자극을 준다. 타인의 늙음이 거울로 다가온다. 현재의 나와, 죽음이 멀지 않은 그때의 나를 비춘다.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하고 두렵다. 살아온 날들을 생각해 보면 최선을 다했고 허투루 살진 않았지만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조용하고 만족스러운 삶은 너무 늦게 찾아왔고, 이 평안은 잠시 지속되다 에르나처럼, 요한네스처럼 끝이 날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고 돌아가야 할 장소임에 틀림없으니,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친절하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말이 없는 세계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또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p. 133  하지만 에르나, 에르나도 거기 있나? 요한네스가 묻는다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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