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냥 사는 것'인 줄 알았던 나에게,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해 준 책이다.
"있잖아, 당신은 베카의 남편이 자기 몰두적이고, 스스로에게만 관심이 있다고 걱정하지. 이 말은 해야겠어. 루시, 당신도 똑같아."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작은 못이 가슴팍을 밀고 들어오는 것처럼 육체적인 통증을 느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오, 윌리엄!>의 표현대로, 사람은 자신만 모를 뿐 자기 몰두적이고 스스로에게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삶은 자신 이상의 어떤 앎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태평양 전쟁 전범에 대한 진실, 얼마 전 다녀온 4.3 영화제,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세상에 나온 영상들, 이태원 참사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한 가정의 이야기, 음악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 등이 나의 삶의 지도에 들어왔고, 나는 또 어제와 조금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두려움 없이 살기 위해서라도 세계에 대한 앎이 바뀌어야 한다. 세상을 이전과는 다르게 알아야 한다. 알았던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다행히 어떤 앎은 지도다. 새로운 앎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되어야 가능성이 태어난다._앎의 발명
씨랜드 화재 참사, 춘천에 자원봉사를 간 인하대 발명동아리 아이디어 뱅크 학생들, 성수 대교와 삼풍 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수많은 참사 참사들.
사건 후에도 여전히 정의롭지 못하고, 달라지지 않는 세상을 보며 유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살려내지 못한 것이 한이라서, 그 슬픔과 고독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여전히 애쓰고 있다.
나는 유족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다. 유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구해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다는 그 무의미와 싸우며, 자신의 아픈 가슴속 생각 중 가장 좋은 것을 내주면서 변화의 일부분이 되려고 하는 것이 유족들의 사랑이다._사랑의 발명
작가는 그리스 모넴바시아에서 어떤 꿈에서도 볼 수 없었던,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감탄하고 기쁨을 느낀다. 경이로움을 발견한 것이다.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과 기쁨을 느꼈던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최근 나에게 일어난 일을 경이롭다 말하고 싶어졌다.
늦은 봄, 삼청동 길을 걷다 한옥 카페로 들어섰다. 작은 마당이 내다보이는 처마 밑 자리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맑은 하늘 아래 알록달록한 나무와 꽃들을 내다보는 풍경은 비현실적이었다.
고급스러운 그릇에 정성스레 담은 단호박 팥빙수를 한 입 떠먹으니 달지 않고 맛있다. 다기 잔에 담긴 한차의 쌉쌀한 향과 맛도 최고다. 그때였다. 희고 큰 나비 두 마리가 아담한 정원을 유유히 날아다니는 것 아닌가. 그 아름답던 풍경을 나는 경이로움의 발명이라 부르겠다.
나를 변하게 하는 것은 고백도 아니고 내면의 응시도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생명, 다른 이야기다. 내가 자꾸만 어디론가 가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그날 밤의 경이로움과 같은, 세상에 숨겨진 경이로움과 마주치는 그 우연을 기대해서다._경이로움의 발견
내 안에 매몰되지 않기를, 자기 몰두적이고 스스로에게만 관심 갖지 않기를, 나를 변하게 하는 다른 사람, 다른 생명, 다른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알고 살아가기를, 그전에 하던 일을 더 이상 않기도 하며, 새로운 일을 하기도 하며 용기 있게 살기를.
이런 것이야 말로 자신만의 삶이 아닐까.
인간은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기쁠 수 있고, 이 말은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힘을 낼 수 있다는 뜻이고, 나는 기쁨을 맛볼 준비가 되어 있다. 즉 기쁨을 위해 살자고 생각하게 된다.
"오늘 뭐 하세요?,
"놀라고 기뻐합니다."_관계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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