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어떻게 살 것인가 제2장 어떻게 죽을 것인가 제3장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제4장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
어떻게 살 것인가 = 인간답게 죽는다는 것
행복한 삶 = 잘 사는 것 (well-being) = 잘 죽는 것 (well-dying)
살아있는 인간은 모두 사형 집행일과 집행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사형수.
살아있는 모든 순간, 우리는 조금씩 죽어간다.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의 죽음이다.
삶과 죽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며 함께 완성되는 것이다.
죽으니 허무한 것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삶은 아름다운 거다.
그러니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하고, 잘 살면 잘 죽는 거다.
그럼 어떻게 살고 죽어야 할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많은 메시지를 주고 있다.
삶이 어려울 때 사전처럼 꺼내 보고, 기억하고 싶은 책이다.
제1장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든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일을 직업으로 갖는다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사물은 각자 다른 소리를 낸다. 그처럼 우리 인생은 각각 다른 모습일 테고, 어떤 삶이 더 옳다고 판단할 수 없다. 그러니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나만의 삶을 설계하며, 그 일을 옳은 방식으로 행사하며 사는 것. 그것이 잘 사는 삶이다.
청년기의 핵심과제는 평생 하고 싶은 일 찾기 그리고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부모의 바람, 다른 사람의 기대, 세상의 잣대 등으로 나의 찰나의 삶을 허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녀들을 자유롭게 놓아주자. 아직 살 날이 많은 그들에게 시행착오의 시간을 너그럽게 주자.
그래서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다려 주자. 그들이 인생이 행복하도록.......
나이가 든 사람들도 남아있는 삶의 시간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소소하게 먹고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용기를 내보자.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제2장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소설도 영화도 연극도 다 마지막이 있고, 엔딩에 따라 스토리가 크게 달라진다.
우리의 죽음도 그럴 것이다. 어떤 죽음을 설계하고 맞이하느냐가 우리 전체 인생의 품격을 좌우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들이 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은 더 가치가 있다. 인생이 아직은 많이 남아 있기에 더 잘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어, 인생을 충동적으로 끝내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오르막도 내리막도 있기 마련이다.
제도나 문화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잘 대처하자. 바꾸려면 투쟁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스트레스는 잘 관리하고 극복해야 한다.
작가가 제시한 방법은,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말기!
그리고 세상과 타인, 내 일 그리고 심지어 내 자신에게도 일정한 '거리감' 두기이다.
생명의 존엄과 동시에 죽음 역시 존엄해야 한다.
영원히 지속할 수 없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나날들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존엄사의 문제도 생각해 볼 일이다.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에필로그 마지막 부분에 다시 한번 나온다.
"더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은 더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 죽음이 가까이 온 만큼 남은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삶은 준비 없이 맞았지만 죽음만큼은 잘 준비해서 임하고 싶다. 애통함을 되도록 적게 남기는 죽음,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죽음, 이런 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믿는다.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면서 잘 준비해야 그런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때가 되면 나는, 그렇게 웃으며 지구 행성을 떠나고 싶다. "
_[어떻게 살 것 인가 中_ 유시민]
제3장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이 책이 주는 메시지다. 행복한 인생을 누리기 위해서 해야 하는 네 가지!
즐겁고 떳떳하게 놀기!
하면 즐거운 일을 선택해, 잘할 수 있게 준비하고, 그러한 직업을 선택하여 열심히 일하기!
생각하면 아리게 다가오는 그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기!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 나가는 연대하기! (이웃 돕기, 교육 후원, 환경 운동, 정치 참여 등)
제4장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
삶을 망치는 생각 들 중 하나로 불운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주제가 나온다.
운칠기삼. 운은 70% 재주나 노력은 30%. 사람의 일은 운이 따라야 성공할 수 있다.
주변의 많은 사례들을 보면서 부정할 수만은 없는 사실이다.
한 학생이 이보다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면서 인생 중 최고치로 공부했다.
그런데 성적은 지난 시험보다 떨어졌다.
심지어 옆 자리 학생은 졸기를 반복하고, 대충 공부하는 거 같았는데 시험 성적은 잘 나왔다.
아이큐의 차이? 아님 시험문제가 엉망이라서? 그날의 컨디션?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
학생은 운이 없었다고 한다. 항상 내가 가장 열심히 했을 때 가장 최악의 결과를 얻는다고...
나는 불운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불운을 어찌할 것인가?
작가는 '불운은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기는 어려운 것'이라 하며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불운에는 어느 정도 스스로의 책임이 있다는 거다. 설계오류, 능력 부족, 판단 착오 등 말이다.
이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의 극복이 가능하기도 하다.
(위의 학생은 혹시 공부방법이나, 컨디션 조절에 문제가 있지 않았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세상의 부조리에 따른 불운이다.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다. 출생이라는 제비뽑기도 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수 있다. 노력한 만큼 보상과 명예를 얻는 공평한 삶은 거의 실현할 수 없는 꿈일지도 모른다.
삶에는 인과관계를 찾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위 학생의 시험 결과는 문제 출제의 오류, 정확한 평가 기준의 오류, 혹은 운이 좋아 찍어서 맞은 옆 자리 학생 등,
부조리에 있을 수도 있다.)
세상의 불운과 부조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불운과 행운이 아무 필연성도 없이 따로따로 찾아온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행운도 우리를 찾아오게 마련이다. 행운이 오면 감사하고 불운이 오더라도 원망하지 말자. 행운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여 혹독한 불운을 이겨내 보자. 학생은 원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저럴 때도 있는 거니까. 그 상황이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 했을 때 느꼈던 그 만족감과 기쁨의 도움을 받아,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며 나아가 보자. 그러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다 보면 정치인들의 이름도 중간중간 나오고,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부분들이 있다. 정말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유시민 님의 책은 이해하기 쉽다.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 생각의 방향성이 같은 듯해서, 많은 공감을 하며 본 책이다. 아직 읽어 보지 못한 분들에게 추천한다.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행복한 죽음을 맞이 하기 위해 ____________.
1949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34세 되던 해 <콘트라베이스>를 시작으로 <향수> <비둘기> 등의 작품으로 세상의 관심과 문학성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모든 문학상을 거부하고, 사진 찍히는 일조차 피하며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이후, 1991년에 발표 한 <좀머 씨 이야기> 속에는 마치 그의 목소리 인 듯한 "그러니 나를 제발 좀 놔두시오!" 라며 하릴없이 걸어 다니는 좀머 씨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2. 단편 모음 집 [깊이에의 강요]
단편모음 중 제일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편소설을 제목 화하였다.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의 세 단편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하나의 고찰>로 구성된다.
작품 하나하나가 다 흥미롭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3. 깊이에의 강요
1)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젊은 화가. 이야기는 그 여인의 초대 전시회로부터 시작한다.
전시회를 본 한 평론가는 '별생각 없이' 혹은 그녀를 북돋아 줄 의도로 이런 말을 남긴다.
"당신 작품에는 재능이 보이고 마음에도 와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초대 전시회라 했으니, 아직 시작 단계일 것이고, 평론가이기에 작품이 완벽하다고만 말하기에는 좀 애매하니,
앞으로 경력을 더 쌓으면 훨씬 발전할 것이라는 의도로 한 말이리라.
이 평론가의 논평은 그녀의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비평 조로 신문에 실리게 되고,
그녀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말을 듣게 된다.
"그녀에게는 깊이가 없어요. 나쁘지는 않은데, 애석하게 깊이가 없어요."
마치 한 평론가의 의견이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말이다.
젊은 화가는 '왜 나는 깊이가 없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불안해하다가
'그래 맞아, 나는 깊이가 없어!'라는 결론을 낸 채,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깊이 있는 게 뭘까 책도 보고, 연구하고, 전시회도 다녀보지만 도무지 깊이 있는 게 뭔지 알아낼 수 없었다.
한 미술품 상인이 그림 몇 장을 그려 달라고 청했을 때 "나를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나는 깊이가 없어요!"라고 소리친다.
젊은 여인은 점점 이상해져 갔다.
약을 먹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그림은 더 이상 그리지 않았다. 친구도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다.
외모는 피폐해져 갔고, 비대해졌으며 집은 엉망이 되어갔다.
상속받은 돈으로 3년간 살았고, 돈이 떨어지자 자신이 그린 그림에 구멍을 내고 찢은 후 텔레비전 방송탑 위에서 뛰어내린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기 때문에, 숲 가장자리까지 날려가 전나무 숲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즉사한다.
2)
그녀가 죽은 뒤 기자들의 태도는 기가 막히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사건이라 판단한 그들은
이 사건을 두 번째 톱기사로 다루었고, 그것도 모자라 3면까지도 다루었다.
자살사건, 바람에 날려간 시체, 미모의 화가, 죽은 후 그녀의 집 상태.
재앙이 휩쓸고 간 듯한 그녀의 집에서 <기자들은 환상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환상적이라니! 도대체 뭐가......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알맹이는 놓친 채 이렇게 치욕스러운 부분에 집중하며 대중의 관심이나 먹고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언론.
정말 신물이 난다.
3)
본의 아니게 한 인간을 자살로 몰고 간 그 평론가는
그녀가 죽은 뒤 한 문예란에 단평을 기고한다.
그녀가 상황을 이겨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래도 그녀의 작품에는, 깊이를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흔적들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당신의 작품에는 깊이가 부족하다'는 말을
그녀가 죽고 나니 '그녀는 깊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로 뒤집어 버린다.
일관성 없이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이기적인 평론가.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_ [파트리크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 中]
4)
한 사람의 별 뜻 없는 말이 한 존재를 죽음으로 몰고갈 수 있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던 말이다. 조심해야 할 일이다.
넘쳐나는 거짓 정보들, 자신에게 유리한 말로 꾸미는 습관들, 책임질 수 없는 말들,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자극적인 기사들......
도대체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상황을 이겨낼 힘을 기르지 못한 개인의 책임이 정말 큰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한다.
하는 일이 무엇이든, 한 개인은 그 일에 대한 깊이에의 강요를 스스로도 어느 정도는 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