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또 다른 이야기
『비둘기』
1
주인공 조나단 노엘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
전쟁 중 부모를 잃고
누이동생과 머나 먼 친척집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농사를 배우고,
그러한 생활에 꽤 안정적인 재미를 붙일 무렵...
군입대를 하게 된다.
제대 후 돌아오니, 누이는 이민을 떠나 있었고, 아저씨가 정해 준 한 여인과
꿈꾸어 왔던 결혼을 하며 살던 어느 날...
부인은 바람이 나서 떠나 버린다.
그는 사람들을 피해 낮선 파리로 떠난다.
거기서 인생 최대의 안정기를 누리게 된다.
은행경비원으로 일하며, (꼬딱지만 하고 허름하지만) 머물 공간을 갖게 된다.
53세가 되도록 30년의 세월 동안 자기만의 삶 안에서 행복해한다.
'조나단은 내적인 균형을 깨뜨리거나, 외적인 일상의 질서를 마구 뒤섞어놓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혐오하기까지 했다.'
조나단에게 그 작은 공간은 삶의 마땅찮은 불상사로부터 자기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섬 같은 도피처였다.
사실
이 피곤한 세상을 부대끼며 살고 있는 우리들도
나의 삶을 방해하는 무언가로부터 나를 간절히 지키고 싶어한다.
과거에 몹쓸 경험을 수차례나 했던 조나단은 더 그랬으리라.
2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소박한 행복은 비둘기 한 마리로 깨져 버린다.
금요일 아침 출근 전, 볼일을 보려고 현관을 나가려는 찰나
문 앞에 있는 (조나단의 질서를 깨뜨려 버린) 끔찍한 비둘기를 본 순간!
완전히 뒤죽박죽이 된 공포의 생각들이 조나단의 머리속을 떠다니며,
이 공간을 떠날 것을 결심하게 된다.
'마치 인생이 30년 전으로 되돌아가버리는 것 같았고, 지난 30년이 송두리째 다 날아가버리는 느낌이었다.'
과거의 트라우마든 혹은 다른 이유든,
그것에 갇혀 다른 사람을 피해 살다보면
객관적으로는 사소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그에게는 엄청나게 큰 위기로 다가올 것이다.
아마도 비둘기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을까?
3
그 날,
조나단의 하루는 엉망진창이 된다.
참아낼 수 없는 뜨거운 날씨, 직장에서의 실수, 벤치에 뾰족하게 나와있던 나사에 찢긴 바지
그리고
여러차례 바뀌는 감정들의 소용돌이를 경험하게 된다.
그는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와 은행 경비원의 일을 연결시키며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버텨왔었는데,
스핑크스적인 평화가 무너지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아무데서나 용변을 보는 거지에게 관용적인 애처로운 감정이 있었던 그가,
고작 비둘기 때문에
(거지와는 다르게 성실한 생활을 해왔던 자신이)
집을 잃고 용변을 아무데나 볼 위기에 처해 있다는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며...
자기 자신에 대한 불타는 증오가 바깥 세상으로 퍼져나가면서,
늘 보던 은행 앞 카페 웨이터들은 멍청한 웨이터
손님들은 한심한 관광객,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를 탄 사람들은 원숭이같은 작자들로 만들어 버린다.
그는 권총을 어디로든지 한방 날리고 싶은 충동마져 느끼게 된다.
조나단의 감정의 변화들을 묘사하는 작가의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고 그럴 듯하여
내가 그가 된 듯, 머리 속에 상황을 그려보며 책을 읽게 된다.
그러나 그는,
끔찍한 생각들을 내뱉을 능력이 없는 참아내는 사람이었다.
(슬프긴 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여러가지 부정적인 감정이 폭발로 이어지지 않고,
조나단은 감정을 여러 번 추스리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다시 자기 자리로 되돌아왔을 때는 그 마지막 남은 불씨 같은 분노의 불길도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간신히 마감하게 된 하루 일과...
4
자신의 방이 아닌 호텔로 가기 전, 그는 한참을 걷는다.
'보행은 마음을 달래줬다.
걷는 것에는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보행 후, 조나단은 자기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는 상태로 급격하게 변화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잡화상점에 들려 산
정어리 통조림 하나, 치즈 한 덩이, 배 하나, 포도주 한 병과 아랍식 빵 하나.
(평상시 먹던 저녁 메뉴가 아닌, 낮에 거지가 먹던 음식들이었다)
그의 일생에 마지막 식사가 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천천히 일생 중 가장 맛있는 식사를 한 후,
"내일 자살해야지"
그렇게 말하고 잠 속에 빠져든다.
악천후의 밤을 보내고 동이 틀 무렵,
폭발할 듯한 굉음, 그보다 더 무서운 침묵.
꿈인지 생신지 모를 조나단은
부모님이 살던 집의 지하실인 듯한 곳에
갇혀있다.
그는 이렇게 외치려한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안오는 걸까? 왜 나를 구출해 내지 않지? 왜 이렇게 쥐죽은 듯이 조용한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갔지?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나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단 말이야!"》
이렇게 외치려는 순간 무언가 그에게 대답한다.
조용히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규칙적으로 그리고 쫙쫙 쏟아지는 소리로...
바로 빗소리.
그리고 그는 자유속으로 걸어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활기차고 행복하게,
따쓰한 아침햇살을 느끼며,
자신의 방 근처에서 들리는 친숙한 소리들과 커피 냄새....
그리고
사라진 공포감.
비로서 조나단은 자신에게 온 시련을 이겨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깊이에의 강요처럼 주인공이 자살하지 않기를 바라며 책을 읽었다.
그는 나약하지만 나약하지 않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행동했고,
혼자이고 싶어했지만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그만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나는 믿는다.
이제는
비둘기가 아닌 독수리가 그의 집 문 앞에 버티고 있을지라도
그는 다시 이겨낼 것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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