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오늘은 입장료를 내고 화성행궁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유모차와 어린이의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들의 모습이 신선해 보였다.

 

역사의 현장을 거니는 일은 뭔가 신비스럽다.

날씨마저 흐리고 운치 있었다.

 

그동안 여러 번을 봤을 텐데.... 오늘처럼 여유롭게 행궁 안을 거닐다 보니 새롭고 재미나다.

그중, 한동안 보수 중이었던 화령전을 볼 수 있었다.

 

정조대왕이 돌아가신 후 그의 어진을 모시기 위해 세운 곳, 

 

 

 

화령전

 

 

둘러보며 뭔가 좀 특별하다 느끼고 있는 데

마침 지나가시던 할아버지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초등학교 때 모습 거의 그대로라 하시며 

감동받고 추억에 젖으시는 모습에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화령전의 구조는 어진을 봉인한 운한각

화재나 홍수 등 만약의 사태에 어진을 옮겨 모시는 이안청 사이를

복도각으로 연결해 놓았는데

이것은 그 시대에 독특한 공간 구성이라고 한다.

 

2019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역사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 건물인가!

 

 

 

 

 

'옛 선조들의 삶을 엿보며 꿈속을 헤매는 듯한 지금 나와 이 현실도,

후세들에게는 마찬가지로 꿈과 같은 신비로움의 현장이 되겠지.' 생각하니

 

인생은 아무것도 아닌, 한 점과 같은 것, 바람과 같은 것임을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빗방울을 뿌리며 쌀쌀해지는 날씨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2018, 웨일북>

 

 


 

 

90년생이 온다

 

 

 

우리 집에도 99년생이 있다. 22세.

초등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그래도 독서를 즐겨했던 녀석이 대학생이 되어서는 도무지 책을 보지 않는다.

다른 잔소리는 집어치우고라도 책을 가까이하라는 말은 여러 번 한 듯하다.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뭐, 아무리 이야기해도 달라지지도 않았거니와, 무엇보다 책을 읽지 않아도 그만의 방식으로 인생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거란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저자는 90년대생의 특징을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로 정리한다.

 

 

"이제 어떤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셔츠를 직접 만들어 입거나 짐승을 직접 도살하는 것만큼이나 구식이고, 심지어는 멍청한 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니콜라스 키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The Shallows>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대중화된 깊이 읽기의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소수의 엘리트만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역사적인 표준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 글들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스마트 폰으로 소통을 하고, 영화를 보고, 오락을 즐기고, 소비를 하고, 과제를 하는 그들.

모바일 라이프를 즐기는 90년생들에겐 종이보다는 화면이 더 익숙하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는 동영상이나 다른 사람들의 올려놓은 경험을 공유하며 정보를 얻는 것이 훨씬 빠르고 간단하다. 그리고 재미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 책은 90년대생이 일터의 주인공 그리고 소비의 주체가 되어가는 현시대에는, 더 이상 예전의 문화와 관습, 마케팅으로는 기업이 성공할 수 없음을 꼬집고 있는 책이다.

 

90년 대생들에게는 돈을 많이 주는 회사보다는 건전한 기업문화와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

칼퇴근은 당연하고, 휴가를 당당히 쓰며, 한 직장을 평생 희생해야 할 곳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좋은 학교를 나와도, 대기업을 다니다가도 공무원이 되기 위해 다시 고시학원을 헤매는 그들의 속마음은 어떨까?

이는 안정적인 삶이라기보다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그들의 선택이다. 법이 정한 테두리, 법정 근로시간을 지켜가며 정당한 급여를 받고 그 안에서 충분한 휴식과 재미를 추구하는 삶 말이다.

 

간단하고 편리한 제품을 선호하며,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기업의 물건을 소비하지 않고, 참여를 통한 능동적인 소비자의 역할을 의미 있게 생각하는 그들. 무엇보다 재미와 유머가 중요한 삶의 가치인 90년대생의 마음을 끌기 위한 기업의 고민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커피 브랜드의 강자 스타벅스의 성공을 엿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스타벅스의 인사팀 한 담당자는 스타벅스의 성공을 광고와 프로모션이 아닌 브랜딩에 대한 투자와 내부 직원을 첫 번째 고객으로 두고 아끼는 기업 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요즘 애들은 예전과는 달라. 인내심도 없고, 산만하고, 진득한 맛이 없어. 무슨 일을 시키면 마무리가 잘 안되지. 책이라곤 도통 읽을 줄 몰라.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어른들에게 예의가 없지. 폰만 보며 그저 노는 것만 좋아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시대는 달라졌고,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고 있다. 꼰대처럼 판단하고 비판만 하고 있으면 있을수록 세대 간 갈등은 커져만 갈 것이고, 다음 세대를 책임질 젊은 이들을 벼랑으로 몰아가기만 할 뿐이다. 

 

사이먼 시넥의 표현인 이 '놀라운 아이들'을 받아들여야 하며 이들에게 신경을 쓰고 장기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기성세대들은 젊은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살아온 세월이 더 많다고 인품과 지혜가 더 뛰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배울 것은 배우고, 포용할 것은 포용하며 바꾸어 나가야 한다.

 

많은 기성세대들이 이 책을 읽고 90년생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20, 한겨레출판>

 

 

 


 

|결 : 거칢에 대하여|

 

책 표지와 제목이 강렬하다.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의 작가 홍세화. 그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다.

주어진 삶 동안 열심히 사유하고 행동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해 준 책이다.

 

'사유하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은 이미 자신은 완성 단계에 있고, 내 생각은 다 맞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하지 않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내가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 다른 사람의 의견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매 순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럴 때 고집스러운 자아를 가진 사람이 아닌 부드럽고 결이 아름다운 고결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일을 의심쩍어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오히려 이를  습관화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에 대한 믿음을 튼튼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홍세화_ 결 中]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직장 동료가 성소수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며, 정치와 연관하여 매우 비판을 하였다. 나는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서 나의 생각을 소심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말 주변이 없는 건지, 논리가 부족한 건지, 용기가 없었던 건지..... 대화는 어색하게 끝난 채 알 수 없는 불편한 감정만이 남아있었다.

아마 내가 그녀를 설득하는 것도, 그녀가 나를 설득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다. 사람의 생각이란 이리 다르고 고집스러워 설득하기도 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니 얼마나 큰 다툼이 세상에 존재하겠는가?

 

확고하게 나를 사로잡은 생각은 과연 어떻게 나에게 왔을까? 작가는 이것이 나의 사유의 결과라기보다는 체제에 순응하며 살다 보니,  20이 이끄는 지배세력의 법과 논리에 묻혀 살다 보니 자연스레 들어온 '생각'이라는 것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는 생각하는 존재로 존중받지 못한 채 지식과 생각을 꾸역꾸역 입력당하고 있다. 왜?라는 질문을 귀찮아하는 부모와, 나에게 불편하거나 부당하게 느껴진 것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길러주는 교육보다는 그 불편을 없애기 위해 경쟁을 부추기는 학교들..... 우리는 '생각하지' 않고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라는 공자님 말씀이 딱 그렇다.

 

 

 

 

당신은 20에 속하는가 80에 속하는가? 절대다수는 80에 속한다. 나도 다를 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다수의 학생들은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이들 청년들의 꿈은 가능한 여유로움을 유지한 채 노동을 적게 하고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80에 속한 나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일말의 회의도 없이 막무가내로 고집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자유의 날개는 저 먼 곳에서 슬픈 날갯짓을 하고 있다.  [홍세화_ 결 中]

 

 

그렇다. 80에 속하는 사람들인데 마치 20에 속하는 듯, 아니면 마치 그렇게 될 수 있는 듯이 행동한다. 80의 정서를 거부하고 80의 복지와 안녕에 무관심하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뭔가 행동해야 한다. 내가 속한 80의 고통에 감정 이입하고 연대해야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더 안전하고 공정하게 살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생각과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 중립을 지키는 것, 질서에 대한 무의식의 복종이 결코 선한 것이 아니다. 논쟁이 필요하면 논쟁을, 설득이 필요할 때는 설득을, 투쟁이 필요할 때는 투쟁을 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 나의 인생의 결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 익숙해짐의 과정에서 무감하여 별일 없이 살거나 한 두 마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다가 마침내 냉소와 좌절에 빠지는 게 우리의 모습이라면, 진정한 자유인은 거기에 '회의하는 자아'로 단호히 맞서라고 요구할 것이다. [홍세화_ 결 中]

 

우리는 바위는 확실히 부서진다는 확실성이 아니라 바위도 부서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행동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자들이 바라는 사회변화는 확실성이 아닌 가능성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세화_ 결 中]

 

 

 

 

'배고픔은 있지만 생각 고픔의 현상은 없다'라는 말! 정말 그러고 보니 내가 생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 생각을 가지고만 있었던 나를 반성해본다.

나의 존재가 무엇인가? 나는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져 있지는 않은가? 삶의 주체가 되어 나의 결을 고결하게 지어가며 현실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입된 고집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유연함과 반성 없이 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이룰 수 없는 삶의 모습을 환상처럼 그리다 이 삶을 마무리한다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일까?

 

자유인으로 살려면 외로움은 당연한 대가이다. 이러한 외로움과 불안은 내면에 이웃에 대한 사랑과 참여, 연대 의지가 있을 때 극복할 수 있다.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여 자유로부터 도피하지 말자. 20에 속하는 사람인 듯 애써 나를 거부하고 부자유함 속으로 들어가지 말자. 내 인생의 주체는 나이고 나는 자유인이다!

 

 

 

 

 

 

|||

 

 

 

 

 

 


광화문 카페 Four B


Do your Best.

Back to Basics.

Look on Bright side. 

Then, you'll be Brilliant.


예전부터 오고 싶었던 곳. 오늘에서야 오게 되었다.


비좁고 사람들이 많아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편안한 카페가 아니라,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자리를 잡고 둘러보니,


오픈 키친에서 바쁘게 일하는 직원분들이 인상적이었다.

테이블 마다 눈을 끄는 생화가 은은한 매력을 주었다.

베이글 맛집답게 다양한 베이글과 앙징맞은 스프레드가 (점심을 막 먹었지만) 주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베이직 베이글과 무화과 스프레드를 선택했다.




따뜻한 베이글과 고소하고 달콤한 스프레드의 조화가 환상이다.

베이글 매니아가 아니라 뭐가 특별한지는 모르겠지만,

암턴 맛있다. ㅎ




나는 아메리카노, 짝궁은 모카치노였나?

잔도 예쁘다.



도심 한복판에 세련되고 현대적인 분위기,

맛있는 베이글과 다양한 스프레드.


직장인들의 관심을 끌 만한 공간인 듯 보였다.


다음에는 배고플 때! 다른 종류의 베이글과 스프레드!를 선택하여 맛보기로 하고,



공부하느라 애쓰는 딸을 위해

허니버터 베이글과 크랜베리 스프레드를 포장해 나왔다.



♧♧♧




부처님 오신날,


황금연휴 시작일


코로나사태로 지친 사람들은 제주도로 강원도로 여행을 떠난다.

조금만 더 참으면 좋으련만, 아이들도 어른들도 지쳤나 보다.


황금연휴라곤 하지만 남편과 다르게, 난 오늘과 어린이날만 쉬는 징검다리 휴일이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도심에 오히려 사람이 없을 듯 하여 경복궁을 가기로 했다.


정말 탁월한 선택!!

정말 여러번 와 본 이 곳이 이렇게 한적한 적이 있었을까?

늘 사람들에 치여 경회루를 슬쩍 보고 돌아나오곤 했었는데....


드문드문 한복을 입고 거니는 사람들 사이로 고즈넉한 평화가 느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물론이고 ㅎㅎ




이 얼마만에 나들이인가!

봄을 삼켜버린 듯한 계절은 어느새 성큼 여름냄새가 난다.



사소한 이런 이벤트가

나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중요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쉼과 치유를 느낀 하루에 감사한다.


###





 

2020.03.20

 

이사

 

코로나 19로 우리집 고3도 집에서 공부를 한다. 개학, 온라인 개학, 휴교연장.... 

 어떻게 결정이 나던지 학생도 부모도 여러가지로 심란하다.

 

이 와중에 이사를 했다.

멀지 않은 곳이지만, 10년동안 정들었던 집과 이별을 했다.

 

사는게 다 그런건지...

이사가기 전에 살던 집과 정 뗄 일들을 몇가지 겪으며 마음 고생을 좀 했다.

해서, 미련없이 새 집을 더 좋아할 수 있을 듯하다.

...

 

 

 

 

이사하는 날,

딸 방 벽지에서 발견한 메모이다.

BTS의 '이사'라는 곡 가사 중, 마지막 한 줄을 바꾸어 써 놓았다.

 

 

 

 

주말에 돌아오면 느꼈을 그 익숙함 속 안도감.

딸에게 그런 편안함 감정을 주었을 집! 이었겠다 생각하니

내가 너무 정을 떼려고만 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나에게도 아름답고 소중했던 10년의 추억.

그 속에서의 모든 것들을 추억하며 감사한다.

 

그리고

 

새로운 집에서의 또 다른 추억을 잘 쌓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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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이후>

 

 


 

 

요즘 매주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tvN의 책 읽어드립니다!

 

프로그램 정보에 쓰여 있는 대로,

 

읽고 싶어 구입했지만, 살기 바빠서, 내용이 어려워서, 혹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서 완독 하지 못한 스테디셀러 책들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프로그램!!

 

이다.

 

 

 

 

설민석 선생님의 재미있고 대단한 해설과, 출연진들의 책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는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전현무의 솔직함과 입담도 웃음 포인트이다.

 

이 책은, 방송을 보고 읽어보게 되었다.

 

 

저자 수전 손택은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문명의 수호자'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대놓고 우세하다고 확신한다.

그 특권을 잃어버릴까 모난 자존심을 세우며 다른 민족들을 무시하고 심지어 짓밟는 일들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모든 미국인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미국은 대량학살 위에 세워졌다."  "백인은 역사의 암이다." 등의 센 발언을 하면서

인간의 존엄과 평등 그리고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입장을 항변하였다.

미국의 보수주의자 등 많은 인사들에게 얼마나 눈엣가시 같은 인물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

 

『타인의 고통』은 전쟁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책이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후세들이 6.25 전쟁의 참혹한 사진을 봤을 때,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장면을 TV에서 접했을 때,

영화로도 많이 제작된 유태인의 홀로코스트 화면을 봤을 때 무슨 생각이 들까?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미지들은 당연히

충격과 공포, 연민과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을 몰아올 것이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미지를 찾아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손가락 하나이다.

우리는 쉽게, 습관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검색하고 찾아보고 그리고....... 익숙해진다.

무뎌진다.

 

이런 이미지들을 보는 것이 우리를 더 선량하게 만들까?

우리가 대단한 연민을 가짐으로써 인류평화에 한몫을 담당하는 것일까?

 

"내 확신에 따르면 사람들은 현실의 불행과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얼마간, 그것도 적지 않은 즐거움을 느낀다."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다."

 

 

<타인의 고통 中_ 수전 손택>

 

●●●

 

그렇다면 그녀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우리가 연민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 고통과 나는 상관없는 제삼자라는 반증이다.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선하다는 증거일 수 있겠지만, 어찌 보면 그것은 뻔뻔함과 책임회피의 반응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 연민의 감정은 변하고 시들해진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타인의 고통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타인의 고통 中_ 수전 손택>

 

나의 특권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우리는 상상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것은 많은 부분에서 연결되어 있어 보인다.

 

상위 몇 프로 이내의 부자들의 소유는 빈민층과 무관하지 않다.

한 기업의 눈부실만한 성공이 노동자의 지나친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전쟁을 하는 목적은 너무도 그렇다.

 

●●●●

 

 

이 책은 또한 이미지 역사의 실체를 고발하고 있다.

연출되거나 조작된 이미지들, 사진 밖에서 이루어진 전쟁들, 재현된 현실과 실제 현실의 참담함 사이 등을 말이다.

 

 

역사 속에서 사진작가들은 자국의 전쟁을 옹호하고 지속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진을 이용했다. 

 

전사들 업무의 긍정적인 이미지, 자국의 우월함을 돋보이게 하는 사진,

가난하고 미개한 곳에서만 발생하는 듯한 비극의 사진들을 찍으면서 말이다.

 

결국 많은 사진들의 순수하지 못한 성격에도 그것이 역사의 증거가 된 것이다.

 

우리가 관음증 환자처럼 타인의 고통스러운 이미지들을 들여다보면서

왜곡된 정보로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연민을 느끼는 것 만으로는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 정답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행동해야 하는지 더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행동해야 하는지............

 

"저는 이 책의 도움을 받아서 사람들이 이미지의 용도와 의미뿐만 아니라

전쟁의 본성, 연민의 한계, 그리고 양심의 명령까지 훨씬 더 진실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타인의 고통 中_ 수전 손택>

 

 

 

 

 

●●●●●

 

 

 

 

 

 

 

 

<2007, 민음사>

 


 

소설 좁은문의 저자이며,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앙드레 지드. 그가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후 쓴 자전적 에세이다. 

소설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은 소설도, 시도, 기행문도, 교훈서로 정의하기에도 모호했다.

이 책은 지드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 무엇이 삶을 살아가는 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지를 젊은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강렬한 의지가 담겨있는 글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는 이 책을 던져버려라 ---- 그리고 밖으로 나가라. 나는 이 책이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 --- 어느 곳으로든, 그대의 도시로부터, 그대의 가정으로부터, 그대의 방으로부터, 그대의 생각으로부터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바란다.    [......]    나의 이 책이 그대로 하여금 이 책 자체보다 그대 자신에게 ---- 그리고 그대 자신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도록 가르쳐주기를. <앙드레 지드_지상의 양식 中>

 

 

 

 

 

 

그는 신보다는 인간, 영혼보다는 육체, 하늘보다는 땅을 중시하며 인간의 욕망에 충실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당시 도덕적, 종교적 관습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에게 도전하는 충격적인 것이었으리라.

카뮈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정도이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 한 세대에 끼친 충격에 비견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책이 감동시킬 대중을 발견하는 데 이십 년이 걸렸다. _알베르 카뮈

 

총 8장으로 구성된 『지상의 양식』 중 곳곳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들의 양식- 과일, 포도주, 치즈, 곡식 등 -에 대한 찬사를 감각적으로 표현하며 무한히 행복해하는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책을 읽거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의 무한함과 위대함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의 모습을 깨닫는 통찰의 내용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또한 주어진 자연과 더불어 살며 사랑하는 인생은 더없이 행복한 삶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지상의 양식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닌 존재의 약함을 깨달으며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면서 사는 삶이 아닐까?

 

 

 

 

 

 

 

지드의 『지상의 양식』은 현재를 살아가는 고단한 사람들에게도 기이하리만큼 매력적인 내용이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구속에서 벗어나 욕망에 솔직하고 현재를 즐기며 많은 경험을 하고 살라는 그의 외침은, 젊은이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몇 가지만 정리해 보기로 했다. 

 

 

 

현재를 즐기라!


⊙ 신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대가 이미 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함을 뜻한다. 신을 행복과 구별하여 생각하지 말고 그대의 온 행복을 순간 속에서 찾아라.


⊙  결코 미래 속에서 과거를 다시 찾으려 하지 말라. 각 순간에서 유별난 새로움을 포착하라. 그리고 그대의 기쁨들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말라. 차라리 준비되어 있는 곳에서 어떤  '다른'  기쁨이 그대 앞에 불쑥 내닫게 된다는 것을 알라.


⊙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 오직 그대의 원칙과 소망에 일치하는 행복만을 인정한다면 그대에게 불행이 있으리라.

 

⊙ 우리는 순간에 찍히는 사진과 같은 생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순간들의 '현존'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진 것인가를!

 

매 순간을 내 삶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습관을 붙였다. 그 순간순간에 느닷없이 행복의 개별성을 송두리째 집약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경험을 할 것!

 

⊙ 사람은 오직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자신할 수 있다. 이해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 행할 수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최대한으로 많은 인간성을 수용할 것'.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공식이다.

 

⊙ 바닷가의 모래가 부드럽다는 것을 책에서 읽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맨발로 그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감각으로 느껴보지 못한 일체의 지식이 내겐 무용할 뿐이다.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무르지 말라. 주위가 그대와 흡사하게 되면, 또는 그대가 주위를 닮게 되면 거기에는 이미 그대에게 이로울 만한 것이 없다.

 

⊙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대기 상태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나는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공들여 찾기보다는 부모의 의견, 주변의 시선을 좇아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으로 눈을 돌리는 학생들,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젊은이들,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일을 시작할 수 있겠어!라고 외치며 숨어버리는 사람들........ 도전하자!  나의 욕망에 솔직하자!  변화를 두려워 말자!

 

하루하루 주어진 삶 가운데 만나는 우연한 만남을 소중히 하자. 현상계의 수다스러움을 느끼자. 내가 만나는 사람들, 다양한 계절, 익숙한 공원들, 지저귀는 새들, 불 밝힌 카페들, 고즈넉한 저녁, 물결치는 파도, 따사로운 햇살, 쌉쌀한 아메리카노, 달콤한 포도알, 연약한 코스모스, 가족의 웃음 등 그 행복의 찰나를 놓치지 말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인생의 전부인 것이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사색하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강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앙드레 지드_지상의 양식 中>

 

 

 

 

 

 

 

 

 

 

 

 

다시 읽은 책은 처음 접했을 때만큼의 충격과 낯섦은 아니어도, 여전히 강렬하다.

흐릿해진 기억 속에서  이 소설은 항상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과 겹쳐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넋두리하듯 조용한 흐름의 그것과, 충격적이고 강렬한 전개를 가진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것은 아마, 억압과 순종 그리고 끊임없이 견디어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공통된 슬픔과 고뇌에서 오는 이미지 때문이리라.

 

처음엔 한 편의 소설인 줄 알았다. 작가는 세 편의 중편소설을 하나로 매듭지어 본인이 하고픈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따로 있을 때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합해지면 그중 어느 것도 아닌 다른 이야기가 담기는 장편소설이다. _<작가의 말 中>


|채식주의자... <창작과 비평> 2004년 여름호

 

|몽고반점... <문학과 사회 >2004년 가을호

 

|나무 불꽃... <문학 판> 2005년 겨울호

 

 

 

채식주의자,

 

영혜....... 그녀는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억압과 폭력을 경험한다. 또한, 자신을 물어 상처를 입힌 개가 아버지에 의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그것의 고기를 나누어 먹는 과정에서 겪은 트라우마를 갖고 살게 된다. 무뚝뚝한 남편은 회사일에 온통 집중하며 그녀에게 다정한 눈빛, 친절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어느 밤 영혜는 피 흘리는 고깃덩어리를 경멸하게 되는 꿈을 꾸게 되고 더 이상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된다. 그녀는 하루하루 몸과 정신이 피폐해져 결국 자해까지 하게 되고 정신병동에 입원한다.

 

몽고반점,

 

영혜의 형부....... 이미지를 비디오에 담아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처제가 자해했던 날, 피 흘리는 그녀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간 그 남자. 아내로부터 우연히 영혜의 몸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것은 그의 예술적 욕망의 도화선이 되어 결코 건너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된다. 영혜와 자신의 온몸에 꽃을 그리고 교합하는 장면을 연출하고자 했던 그의 예술적 욕망은 이성을 무시하고, 자신과 가족의 인생을 파멸의 길로 이끌게 된다.

 

나무 불꽃,

 

인혜...... 영혜의 언니,  서글서글한 눈매, 성실하고 배려심 많은 성격, 맏이로서의 책임감, 긍정적이고 넉넉한 마음씨. 그녀는 말 잘 듣는 딸이었고, 살림 잘하는 아내였고, 희생적인 엄마였으며, 성실한 화장품 가게의 사장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성실함은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 그녀의 내면은 깊은 절망과 외로움, 허무함으로 가득 차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픈 동생에게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 했던 남편, 정신병동에서 지내는 동생 영혜를 돌볼 유일한 가족으로서의 책임, 삶의 끈을 놓고 싶지만 눈에 밟히는 어린 아들. 그녀가 떠맡은 무수한 책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살아갈 수밖에 없게 하였다.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 전의 어린 시절로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_<채식주의자_한강>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도, 실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명쾌하게 알아낼 수 없었다. 매우 난해하고 어려웠다. 책 부록에 담긴 해설 부분은 오히려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작가는 인간의 폭력, 욕망, 악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살아있는 것들 사이의 폭력과 피 흘림을 경고하며 거칠고 모난 무기가 아닌 부드럽고 온순한 식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였을까?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여성을 욕망을 이루려는 한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인간 존엄의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글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아픈 이들을 어루만져 주는 글이었을까?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견디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고통스러운 꿈에서 깨어나 자신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였을까?

 

그 무엇이 되었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그 상처들을 매만져주고 공감해 주고, 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느껴졌다. 작가 특유의 생생한 묘사와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가 책을 한달음에 읽게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들은 너무 무겁고 깊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

 

 

 

 

 

 

 

 
 

<2014, 창비>

                     


 


잔잔하지만 강하게 마음을 때리는 소설, <소년이 온다>를 다시 꺼내 들었다. 두 번을 내리읽었다.
한강의 소설은 마음이 아프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은 후에도 끝없는 분노와 혼란, 아픔과 슬픔 등의 감정이 꿈을 꾸듯 멍하게 한다. 1980년 5월 18일. 그 잔혹했던 열흘간의 이야기이다. 
 
총 6개의 소제목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지만, 독특하게도 각 장 마다 글을 이끄는 화자가 다르다. 이러한 구성은 그 당시 각자의 방식대로 인간의 존엄과 정의를 위해 소리쳤던 사람들, 싸늘한 주검이 된 사람들, 고통스러운 삶을 지탱해 나가는 사람들, 혹은 그 시절을 무사히 건너왔지만 이후 가슴 때리는 먹먹함으로 책임감을 느끼는 모든 이들의 심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작가의 세밀하고 감각적인 표현들은 온 정신을 책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마치 책 속의 상황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긴장감을 더해준다. 이 글의 중심에 있는 한 아이, 열여섯, 중학교 3학년, 평범하게 생긴 곱디 고운 그 소년, 동호
책을 다 읽은 후, 제목을 생각해 본다. 작가가 처음 생각한 제목은 ‘여름의 당신’이었다고 한다. 그 잔혹했던 봄이 지나고 소년이 만나지 못한 여름을 말하고 싶었다고......., 하지만 동호를 모르는 독자들을 생각해 많은 고민 끝에 지어진 제목이 바로 ‘소년이 온다’이다. 많은 여운을 준다.

 

 

|제1장 어린 새

 
동호와 그의 친구 정대는 시위 현장에 가담하게 된다. 무차별하게 쏜 총을 맞은 정대의 몸을 뒤로 하고 동호는 몸을 피한다.  그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며  정대와 그의 누이의 시신을 찾기 위해 도청까지 오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게 된다.
 
수많은 시신들을 수습하던 동호는 죽은 몸에  '혼' 이란 것이 있을까? 생각한다. 온화한 성품의 외할머니 임종을 지켜보며, 할머니의 조용한 얼굴에서 '어린 새' 같은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었던 적이 있었다. 도청에 있는 사람들의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지, 그 몸 곁에서 파닥거리며 시취를 없애기 위해 피어놓은 촛불들을 흔들리게 하는지, 동호는 궁금했다. 어린 새와 같은 혼. 온화한 할머니의 몸에서 나간 그것은, 억울하게 죽은 평범한 시민들의 몸에서 나간 그것들과 같은 것처럼 느껴졌으리라. 가련한 죽은 몸. 어린 새.

 
 

|제2장 검은 숨

 
죽은 몸이 되어 거대한 몸들의 탑 가운데 버려진 정대. 그의 혼이 1인칭 화자가 되어 썩어가는 자신의 몸을 지켜본다. 온 힘으로 다른 혼들을 느껴본다.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누가 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억울해서 더 격렬한 힘을 갖는 혼. 자신을 죽게 만든 그들의 악몽 속으로 들어가서 피 흐르는 자신의 눈을 보여주고 싶은 분노를 느낀다.
 

" 우리들의 몸은 계속 불꽃을 뿜으며 타들어갔어. 장기들이 끓으며 오그라들었어. 간헐적으로 쉭쉭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는 우리들의 썩은 몸이 내쉬는 같았어. "  <소년이 온다 中_한강>

 
 

지독한 냄새와 구더기로 뒤덮인 시체더미는 불태워지며 검은 숨 내쉰다. 안도의 숨인지 슬픔의 숨인지 모를… 혐오스러운 육체로부터 자유가 된 정대의 혼은 동호를 찾는다. 그 순간 총소리와 함께 동호의 혼이 빠져나오는 기척을 느낀다."그때 너는 죽었어."

 


 

 
제3장부터 6장까지는, 시대의 상처를 안고 그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과 아픔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이야기한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소년이 온다 中_한강>
 

 

|제3장 일곱 대의 뺨

 
동호와 함께 도청에서 시체를 수습했던 은숙의 이야기이다. 그날 밤 계엄군을 피한 그녀. 살아남은 그녀의 삶은 어떠했을까? 입시 실패, 재수, 아버지의 병, 휴학, 복학, 학비를 벌기 위해 다시 휴학. 결국, 그녀는 졸업을 포기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한 출판사의 직원이 되고, 원고 검열로 한 수배자와 관련이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 그녀는 경찰서 조사실에서 일곱 대의 뺨 맞고 피를 흘린다. 그녀는 그 억울한 뺨을 하루에 한 대씩 잊고자 노력해 본다.
 
"오늘은 여섯 번째 따귀를 잊어야 하는 날이지만, 이미 뺨은 아물어 거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내일이 되어 일곱 번째 뺨을 잊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소년이 온다 中_한강>
 
 
그녀는 결코 그날을 잊지 못한다. 도청의 분수대가 눈부신 물줄기를 뿜는다. 그녀는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한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그 잔인했던 오월을 뒤로하고 축제 같은 분수의 물줄기를 보는 것이 괴로웠으리라. 그날을 지우고 살 자신이 없다. 그녀는 동호를 기억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살고 싶어 무서워서 떨리는 눈꺼풀을.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소년이 온다 中_한강>
 

 
|제4장 쇠와 피

 
도청에서 시위를 주도하던 김진수의 이야기이다.  그날 시민군들의 임무는 버티는 것!이었다. 수십만의 시민들이 분수대 앞으로 모일 때까지만 말이다. 처음 총을 만져보는 여린 청년들과, 어설프게 총을 메고 카스텔라가 먹고 싶다던 아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도청에 남아 총을 지니게 되었을까? 이상하게도 그들을 이끈 것은 강렬한 무엇, 바로 양심이었다.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소년이 온다 中_한강>

 
 

그러나 그들은 한 발의 총도 쏘지 못했다. 쏠 수 없는 총을 나눠가진 어린아이들처럼.      이 날, 항복하고 두 손을 든 채 계단을 내려오던 동호는 계엄군의 총을 맞고 숨을 거둔다. 가 몸을 뚫어 콸콸 흐르는 를 흘린 채.
 
극렬분자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치욕스러운 감옥생활을 경험한 진수는 석방 후에도 고통의 흔적을 안고 체념과 복종과 공허함만이 뒤섞인 삶을 살다가 결국에는 자살을 하게 된다.

 
 
|제5장 밤의 눈동자

 
동호와 함께 도청에서 시체 수습을 했던 선주의 이야기. 그녀는 열여덟 나이로 하루 열다섯 시간씩 방직공장에서 일했었다. 노조간부들이 끌려가던 날 저항하다가 장파열 진단을 받고 해고 통보를 당한다. 그 후 양장점 미싱사 시다로 있다가 삼 년 만에 미싱사가 되어 일하던 중, 바로 그날을 마주한다. 보안부대에 잡혀가 조사실 탁자에서 온갖 치욕스러운 고문을 당한 후 석방된다. 쉴 새 없이 일했고 투쟁했고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던 그녀.
 
 
세월이 지난 뒤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시민군의 심리부검을 논문으로 쓴다는 한 남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다. 그는 기억하고 직면하고 증언해 달라고 그녀에게 요구한다. 고통을 주는 일들을 잊으며 밀어내며 살고 있는 그녀에게 말이다.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서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소년이 온다 中_한강>

 

 
열일곱 살, 노조 모임을 마친 봄밤에. 스무 살 성희 언니가 말했다. "그럴듯하지 않니. 달은 밤의 눈동 자래."   그 말을 듣고 달이 무섭다고 말한 선주. 깜깜한 밤을 훤히 밝혀 나를 바라보고 감시하는 밤의 눈동자. 그 눈동자는 무엇이었을까? 회백색 가로등 아래에서 어둠을 지켜보며 나오지 않았던 도피생활. 숨어서 나 자신을 지키려 애써왔던 노력들. 그러나, 그녀는 피할 수 없었다. 나를 지켜보는 눈동자를. 총격의 반동으로 팔다리가 엇갈려 모로 누워있는 동호의 사진을 마주했을 때, 그 순간 그녀의 피는 끓어 펄펄 되살게 되었다. 고통의 힘. 분노의 힘으로.

 

|제6장 꽃 핀 쪽으로

 
동호의 어머니가 화자가 되어, 자식을 잃은 후회와 슬픔을 토해낸다. 사투리에서 느껴지는 그 구슬픔은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동호와 둘이 걷던 햇빛 나던 어느 날. 엄마가 밝은 곳, 꽃 핀 쪽으로, 좋은 곳으로 가라고 손을 잡고 끌었던 그 사랑스러운 아들.
 
"그저 겨울이 지나간 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면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면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소년이 온다 中_한강>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5.18 광주를 무사히 건너온 '나'라는 인물이 세월이 지나 그 당시의 아픔을 함께하는 이야기이다. 바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고 피해자들을 인터뷰하고 했던 그녀의 노력. 그 와중에 느꼈던 고통, 슬픔과 힘든 순간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소년이 온다 中_한강>
 

 


 

 
유태인 학살을 그린 영화, <쉰들러 리스트>. 독일인 쉰들러는 자신의 재산으로 유태인 천여 명을 학살당하지 않도록 구해준다. (실존 인물인 그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영화에서 그가 유태인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심경의 변화, 즉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 흑백 영화 속 단 하나의 색., 빨간 코트를 입은 유태인 소녀의 죽음이다. 아무 양심의 거리낌 없이 유태인들에게 총을 쏘고 폭력을 휘두르는 나치의 만행을 바라보는 쉰들러 역시 같은 독일인, 나치당이었지만, 한 어린 소녀의 부당한 죽음 앞에서 피할 수 없었던 양심. 그것은  더 강력한 '무엇'이었던 것이다.  
  
잔인하고 끔찍했던 오월.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양심을 던져버린 사람들과 양심의 소리를 들었던 연약 했지만 위대한 사람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세상이 달라진 지금. 우리 삶의 곳곳에서 '이기심'으로 무너지는 양심들 그리고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양심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무엇이 지켜져야 하는 것인지, 무엇을 간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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