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은 1993년 <열린 책들>에서 출간했던
[콘트라베이스]라는 제목의
유혜자님 번역본이다.
2020년
쥐스킨트 책들을 리뉴얼하면서 새롭게 번역되고 표지와 제목도 바뀌었다.
새로운 번역으로도 읽어보고 싶다.
우리나라에 콘트라베이스로 알려진 악기는
독일어로는 콘트라바스(contrabass), 영미권에서는 더블베이스(doublebass)라고 불린다고 하니
콘트라베이스는 사실 없는 단어이다.
이 책은,
독일 국립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어 콘트라바스를 연주하는
한 소시민의 독백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연주자의 고뇌와 분노 체념 등의 독백에서
인간의 쓸쓸함과 외로움, 제도에 순응해 살 수 밖에 없는 현실과, 평범한 소시민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오래전, 대학로에서 배우 명계남 주연으로 이 작품이 공연된 적이 있었다.
무척 보고 싶었지만 당시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박상원 주연 <콘트라바쓰>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이달 말일까지 공연된다고 한다.
이 작품을 오롯이 혼자, 어떻게 독백을 이끌어갈까 궁금하다.
어린 시절 그리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부모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한 남자.
본인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콘트라바스를 연주하게 된다.
최선을 다해 공부해 공무원 신분으로 국립 악단에 들어가서 연주를 하지만,
지휘자나 소프라노의 존재감,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 다른 악기들의 소리에 묻혀
주목받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한탄한다.
그러나 사실 그는 자신이 연주하는 콘트라바스가 중요한 역할임을 알고 있다.
단지......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을 뿐!
"결국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콘트라바스가 오케스트라 악기 가운데 다른 악기들보다
월등하게 중요한 악기라는 것을 이자리에서 서슴없이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는 신입 메조소프라노 여성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는 수많은 단원들 중 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용기를 내기에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초라해 망설이는 그 남자..........
사실 그는 외모가 부족하지도 직업이 초라하지도 않은 인물이다.
공무원으로 수입이 보장되어 있는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사람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잣대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더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것을 어느 정도 강요한다.
그렇게 일그러진 세상의 인정을 받고, 높은 수익을 얻고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에는 터무니없는 세상임을 머지않아 직시하게 된다.
"애당초부터 콘트라바스로 시작된 사람은 절대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되기에는 다들 과정을 겪게 됩니다. 우연과 절망을 통해서지요."
사람일은 노력한다고 모든것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환경과 운의 영향,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자신만의 일과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단 내가 가진 일과 상황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며 사는 것이 진리이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가?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고 세상은 불공정한데.........
"오케스트라 하면 상상이 되시겠지만,
인간사회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나타내 주기 위해서 엄격한 수직적 조직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저 스스로 알고 있으므로 질투라는 것은 제게 아주 낯선 감정이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공정한 것이 무엇인가 정도는 잘 앍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악 분야에선 몇 가지가 정말로 불공정합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희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는 냉엄한 능력별 계급 제도, 옛날 옛적에 내려진 결정을 그대로 고수하는 잔인한 계급 제도,
재능에 따른 냉혹한 계급 제도, 물리적인 계급별 차별화제도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오케스트라에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이렇게 감정이 격해져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그의 심정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면, 내가 조금이나마 자부심을 갖고 있던 마음의 한 조각조차도 상실하게 된다.
"콘트라바스는 이제까지 발명된 악기 가운데 가장 못생기고, 거칠고, 우아하지 못한 악기입니다.
악기의 돌연변이지요. 종종 저는 이것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는 거죠! 서로 도대체 맞지가 않아요."
그러나 이렇게 쏟아낼 뿐, 사실 우리는 삶을 바꿀 용기도 없고, 그런 상황도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너무 착실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현실주의자인 저는 제가 발을 어디에다 뻗어야 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그런 것에 착실하게 순종합니다!"
"누구나 각자 자기 나름대로 서 있어야 할 위치가 있고, 또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왜 그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되었고, 그가 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따위는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겁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려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보지만,
세상의 잣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적절한 대우를 해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로 말씀드릴것 같으면,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사실상 공무원이므로 평생 동안 신분이 보장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저는...... 이렇듯 모든 것이 완벽한 이 집을 두고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채 베이스를 자유롭게 연주하며 살 수 없거든요. 도대체 어디서 한단 말입니까?"
"그렇지만 그것이 제가 안고 사는 위험 요인입니다. 예전부터 늘 이렇게 살아왔지요."
"어차피 곤욕스럽기는 마찬가지 일겁니다. 이렇게 하든지 아니면 저렇게 하든지........"
그는 그녀에게 고백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거절을 당하더라도 말이다.
이 존재감 없는 일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대우가 어떠하든지 자신의 상황을 만족하고 자부심을 갖으며 당당하게 설 수 있을까?
우리는 나의 위치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사실 난 콘트라바스 소리를 좋아한다.
그 묵직하고 울림이 있는 소리
뭔가 깊은 슬픔이 느껴지도 하는 그 저음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이 멋지고 대단해 보인다.
이렇게 그의 존재를 알고 인정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 세상살이도 그러할 것이다.
이 독백의 주인공이 갇혀있는 외로움과 고뇌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나가길 응원한다.
우리 모두의 삶도____________________ .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_기욤 뮈소 (0) | 2021.01.21 |
---|---|
[미국소설 ] 올리브 키터리지_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0) | 2021.01.03 |
[영국 소설] 오만과 편견_제인 오스틴 (0) | 2020.11.17 |
[외국동화] 별을 헤아리며_로이스 로리 (0) | 2020.11.03 |
[교양 심리학] 관계를 읽는 시간_문요한 (0) | 2020.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