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열린책들>

 


 

읽은 책은 1993년 <열린 책들>에서 출간했던

[콘트라베이스]라는 제목의

유혜자님 번역본이다.

 

2020년

쥐스킨트 책들을 리뉴얼하면서 새롭게 번역되고 표지와 제목도 바뀌었다.

새로운 번역으로도 읽어보고 싶다.

 

우리나라에 콘트라베이스로 알려진 악기는

독일어로는 콘트라바스(contrabass), 영미권에서는 더블베이스(doublebass)라고 불린다고 하니

콘트라베이스는 사실 없는 단어이다.

 

이 책은,

독일 국립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어 콘트라바스를 연주하는

한 소시민의 독백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연주자의 고뇌와 분노 체념 등의 독백에서 

인간의 쓸쓸함과 외로움, 제도에 순응해 살 수 밖에 없는 현실과, 평범한 소시민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오래전, 대학로에서 배우 명계남 주연으로 이 작품이 공연된 적이 있었다.

무척 보고 싶었지만 당시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박상원 주연 <콘트라바쓰>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이달 말일까지 공연된다고 한다.

 

이 작품을 오롯이 혼자, 어떻게 독백을 이끌어갈까 궁금하다.

 

 


 

 

어린 시절 그리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부모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한 남자.

본인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콘트라바스를 연주하게 된다.

 

최선을 다해 공부해 공무원 신분으로 국립 악단에 들어가서 연주를 하지만,

지휘자나 소프라노의 존재감,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 다른 악기들의 소리에 묻혀

주목받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한탄한다.

 

그러나 사실 그는 자신이 연주하는 콘트라바스가 중요한 역할임을 알고 있다. 

단지......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을 뿐!

 

 

"결국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콘트라바스가 오케스트라 악기 가운데 다른 악기들보다
월등하게 중요한 악기라는 것을 이자리에서 서슴없이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는 신입 메조소프라노 여성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는 수많은 단원들 중 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용기를 내기에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초라해 망설이는 그 남자..........

 

사실 그는 외모가 부족하지도 직업이 초라하지도 않은 인물이다.

공무원으로 수입이 보장되어 있는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사람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잣대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더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것을 어느 정도 강요한다.

 

그렇게 일그러진 세상의 인정을 받고, 높은 수익을 얻고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에는 터무니없는 세상임을 머지않아 직시하게 된다.

 

 

"애당초부터 콘트라바스로 시작된 사람은 절대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되기에는 다들 과정을 겪게 됩니다. 우연과 절망을 통해서지요."

 

 

 

사람일은 노력한다고 모든것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환경과 운의 영향,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자신만의 일과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단 내가 가진 일과 상황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며 사는 것이 진리이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가?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고 세상은 불공정한데.........

 

 

"오케스트라 하면 상상이 되시겠지만,
인간사회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나타내 주기 위해서 엄격한 수직적 조직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저 스스로 알고 있으므로 질투라는 것은 제게 아주 낯선 감정이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공정한 것이 무엇인가 정도는 잘 앍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악 분야에선 몇 가지가 정말로 불공정합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희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는 냉엄한 능력별 계급 제도, 옛날 옛적에 내려진 결정을 그대로 고수하는 잔인한 계급 제도,
재능에 따른 냉혹한 계급 제도, 물리적인 계급별 차별화제도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오케스트라에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이렇게 감정이 격해져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그의 심정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면, 내가 조금이나마 자부심을 갖고 있던 마음의 한 조각조차도 상실하게 된다.

 

 

 

"콘트라바스는 이제까지 발명된 악기 가운데 가장 못생기고, 거칠고, 우아하지 못한 악기입니다.
악기의 돌연변이지요. 종종 저는 이것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는 거죠! 서로 도대체 맞지가 않아요."

 

 


 

 

 

그러나 이렇게 쏟아낼 뿐, 사실 우리는 삶을 바꿀 용기도 없고, 그런 상황도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너무 착실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현실주의자인 저는 제가 발을 어디에다 뻗어야 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그런 것에 착실하게 순종합니다!"

"누구나 각자 자기 나름대로 서 있어야 할 위치가 있고, 또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왜 그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되었고, 그가 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따위는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겁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려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보지만,

세상의 잣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적절한 대우를 해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로 말씀드릴것 같으면,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사실상 공무원이므로 평생 동안 신분이 보장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저는...... 이렇듯 모든 것이 완벽한 이 집을 두고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채 베이스를 자유롭게 연주하며 살 수 없거든요. 도대체 어디서 한단 말입니까?"
 
"그렇지만 그것이 제가 안고 사는 위험 요인입니다. 예전부터 늘 이렇게 살아왔지요."

"어차피 곤욕스럽기는 마찬가지 일겁니다. 이렇게 하든지 아니면 저렇게 하든지........"

 

 


 

 

그는 그녀에게 고백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거절을 당하더라도 말이다.

이 존재감 없는 일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대우가 어떠하든지 자신의 상황을 만족하고 자부심을 갖으며 당당하게 설 수 있을까?

 

우리는 나의 위치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사실 난 콘트라바스 소리를 좋아한다.

그 묵직하고 울림이 있는 소리

뭔가 깊은 슬픔이 느껴지도 하는 그 저음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이 멋지고 대단해 보인다.

 

이렇게 그의 존재를 알고 인정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 세상살이도 그러할 것이다.

 

이 독백의 주인공이 갇혀있는 외로움과 고뇌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나가길 응원한다.

 

우리 모두의 삶도____________________ .

 

 

 

 

 

<2003, 민음사>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영국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다.

 

이 책은 532 p. 의 그리 짧지 않은 두께의 책이지만,

 

글을 읽다 보면 이야기를 하듯이 너무나 솔직한 언어와 표현들,

정말 그럴 것만 같은 심리묘사들로 인해 

지루할 틈 없이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 스스로

 

<이 작품은 너무 가볍고 밝고 반짝거려서 그늘이 필요하다.>

 

라고 말한 의미를 알 것 같다.

 

여자라는 이유로 땅을 상속받지 못하고, 

높은 신분의 가정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했던 그 시절.

 

여자들이 편안한 인생을 살기 위한 방법은 바로

부유한 남자를 만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여겨졌었다.

 

<재산 꽤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라고 시작하는 이 책 서두가 말해 주듯이,

그 재산 꽤나 있는 남자에게 딸을 시집보내려고 하는 한 베넷가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베넷가의 다섯 딸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상을 보여주고 있다.

 

성품이 곱고 늘 좋은 면만을 보려 하는 아름다운 맏딸 제인,

제인보다 예쁘진 않지만 자기주장이 강하고 정이 많으며 영리한 리지,

책을 좋아하고 교양을 쌓지만 사교성이 떨어지는 메리,

오로지 관심이라고는 남자뿐인 철없는 캐서린과 리디아........

 

 

오만과 편견은 

상류층의 두 남자 빙리와 그의 친구 다아시가 그들의 이웃이 되면서

맏딸인 제인과 빙리, 둘째 리지와 다아시의 사랑이

편견과 오해 속에서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는 로맨스 소설이다.

 

 


 

 

오만 : 태도나 행동 따위가 방자하고 건방짐

편견 :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

 

 

상류층의 부유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자부심과 몸에 베인 예절,

혹은 다른 사람 위에 있다는 계급의식이 조금이라도 없기는 힘들어 보인다.

 

서민들은 그들을 열등감에 빠진 채 바라보며

오만하다거나, 남을 무시한다거나,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대기업의 오너 일가

아름다움과 명예를 가진 많은 유명인들

가깝게는 함께 일하는 직장의 상사

아니면, 조금 나은 형편을 가진 이웃들.........

 

많은 사람들이

TV를 보다가도 사람들에 대해 입방아 찧는 걸 좋아한다.

 

저 사람은 ○거야,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하군,  소문이 있으니 뻔하지 뭐.....

하고 판단하는 말들을 많이 하게 된다.

악의가 없어도 그냥 재미로 그런 말들을 내뱉는다.

 

 


 

 

이 책에 나오는 장교 위컴

겉보기에는 잘생기고 예의 바르며 매너 있고 재미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진심은 허랑방탕한 생활에 여성편력, 돈 밖에 모르는 허영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다아시는 부와 지위 모든 걸 갖고 있었지만, 

무뚝뚝하고 재미없고 오만이 가득한 사람으로 나쁜 평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본심은 선하고 정의로우며 진실되고 베푸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빙리는 제인의 머뭇거리며 적극적이지 못했던 태도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하며 그녀를 떠나고,

 

반대로 제인은 떠난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리지는 다아시를 오만의 덩어리라고 생각하며 혐오하고

그의 청혼을 거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본심을 알고는 그의 사랑을 갈구한다.

 

다아시는 리지가 자신의 청혼을 거절했기 때문에

그녀를 포기할 뻔했다.

 

서로의 관계가 조금만 더 틀어졌더라면

저 두 커플은 결국 사랑하고도 사랑을 잃을 뻔했던 것이다.

 

 

선한 마음을 갖고도

성격이나 태도가 부드럽지 않으면 오만함으로 오해를 사기 쉽다.

 

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어도

표현이 부드럽고 사근 거리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겉모습과 행동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편견을 가지면,

좋은 사람을 잃거나, 악한 사람을 곁에 두는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혹은, 무조건 믿지 않도록 신중해야겠다는 생각.

 

내가 오만하게 보이진 않는지 점검하고,

아니면 다른 사람이 나를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둔 채

내 속을 감추고 있진 않는지 돌아보며

 

좀 더 솔직해지고 표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 리지(엘리자베스)의 캐릭터는 참 인상적이다.

18-19세기 영국이 배경임에도,

현대 여성처럼 당당하고 주관이 뚜렷한 그녀.

 

결혼의 조건을 돈과 안락으로 보지 않고,

진정한 사랑을 찾고자 하고 권력과 재물에 굴하지 않는 그녀의 용기

 그리고 솔직한 태도는

책을 읽는 내내 사랑스러웠다.

 

2006년 제작된 [오만과 편견] 영화의 주인공

키이라 나이틀리의 이미지와

싱크로율 거의 일치하는 듯하다.

 

아름다운 배경과 영상이 인상적인 영화도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2003, 양철북>

 


 

The Giver의 저자 로이스 로리의 또 다른 이야기

인간의 존엄에 대해 다루고 있는

 

Number the Srars

별을 헤아리며

 

이 책의 배경은 

2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이 점령한 덴마크이다.

 

유태인 친구 엘렌을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열 살 소녀 안네마리와 그 가족들.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있는 덴마크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내용과 시대의 상황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아마도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묘사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 같다. 

 

유태인 추방과 학살을 다룬 자극적인 많은 작품들과는

또 다른 마음의 울림을 준다.

 


 

 

안네마리는 알고 있었다.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을 것임을.

어떻게 이 시편에서 말하듯, 별들을 하나하나 헤아릴 수 있을까?

별은 너무나 많다. 하늘은 너무나 크다.

 

<별을 헤아리며_로이스 로리> 중

 

 

 

Number the Stars

 

제목 별을 헤아리며는

한 사람 한 사람은 존귀한 존재라는 인간의 존엄을

 

혹은

 

그 시대에 용기와 믿음을 보여준 그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자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을 겪은 우리도 같은 마음일 거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또 인간의 존엄을 찾고자 노력했던 그 셀 수 없는 사람들.......

 

역사에 남겨지진 않았지만

그 평범한 것들, 당연한 것들을 지키고자 용기 냈던 그 사람들은

시대가 지나도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들이다.

 


 

유태인들을 숨겨 주고, 먹을 것과 옷을 주고, 바다 건너 스웨덴까지 안전하게 도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덴마크 사람들. 

 

이 책의

안네마리와 요한슨 부부,

젊은 레지스탕스인 피터 닐슨과 리제언니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

헨리크 삼촌과 어부들,

스웨덴 과학자들.......

 

그리고 작가 후기에서 알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정보를 흘린 독일군 고위 장교 두크 비츠까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읽으며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덴마크 사람이라면 누구나 왕을 보호하기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을 거다."

"아빠도요?" "그렇고말고" "엄마는요?""엄마도 그렇지."

"그럼 나도 그럴래요 아빠, 만약 그래야 한다면요"

 

 

 

"아빠, 전에 어떤 남자애가 군인에게 했다는 말 기억하시죠? 덴마크의 모든 사람들이 왕의 경호원이라는 말."

"내가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니?"

"그럼......... 이젠 모든 덴마크 사람들이 유태인들의 경호원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헐쉬 아줌마네가 단추를 팔지 못하면 어떻게 살아?"

"친구들이 돌볼 거야. 그게 친구들이 할 일이니까."

 

 

 

"용감해야 할 상황이 닥치면 넌 아마 아주아주 용감할 거라고 확신해. 하지만..........

네가 만약 아무것도 모르면 용감해지기가 한결 쉽지. 너희 엄마도 다 아시는 건 아니야.

나도 그렇고. 우린 알아야 할 만큼만 알고 있어."

 

 

 

"아니에요. 제가 얼마나 무서워했는데요."

"넌 네 목숨을 걸었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걸요! 전 그저........"

"그게 바로 용감하다는 말의 의미야. 위험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안 하는 것.

그냥 네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 물론 무서웠겠지. 나도 오늘 그랬으니까.

하지만 넌 네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만 마음을 썼지. 나도 그랬어."

 

<별을 헤아리며_로이스 로리> 중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용감한 지도자들이나 혁명가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안네마리는 보통사람이었다. 그런 대단한 용기를 가지지 않아도 될......

그러나 그녀는 친구의 목숨을 구할 용기를 냈다. 마치 용감한 지도자처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용기이다.

그것은 작은 일,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것부터 시작이다.

 

오래전 필리핀에 봉사활동을 갔던 적이 있었다.

당시 봉사란 거창하게만 느껴져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갔었던 기억이다.

그러나 막상 그들과 마주하며 밥을 먹여주고, 페이스페인팅을 해주고 함께 즐기다 보니

그 작은 것들이 그들에게 웃음을 주고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이처럼

용기도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있음으로 가능한 것임을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임을

 

이 작은 소녀 안네마리를 통해 깨닫는다.

 

 

 

 

<2018, 더퀘스트>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저자는

바운더리(boundary)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관계의 문제를 바라보고, 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바운더리(boundary)란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나와 타인과의 경계이자 통로를 말한다.

몸의 피부와 같이 말이다.

 

바운더리가 너무 단단하면 폐쇄적일 것이고,

반대로 너무 약하면 주위 환경에 휘둘릴 것이기에,

 

자신을 보호할 만큼 충분히 튼튼하되,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어야 한다. 

필터 기능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건강한 바운더리의 형성은 늘 그렇듯이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유아동기 시절 공감과 신뢰를 주는 양육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부모들은 너무 죄책감이나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안정적 애착이란 끝없는 '단절-회복'의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동아줄이지,

부모의 초인적 인내와 정성으로 한 번도 금가지 않고 빚어낸 도자기가 아니다.

그러니 제발 천사 같은 부모가 되려고 하지 마라.

일시적인 단절을 받아들이되 다시 연결을 회복시켜주는 부모가 돼라."

 

육아를 하며 단 한 번도 아이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화내지 않고,

잘못된 훈육을 한 적이 없는 부모가 과연 있을까?

 

단절은 있을 수 밖에 없으니, 그 이후 회복을 거듭하며 서로에게 신뢰를 쌓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에 사회로 나아갔을 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라는 말인 듯하다. 

 


 

부모의 육아형태 뿐 아니라, 타고난 기질, 주위 환경과 상황들로 인해

형성된 일그러진 바운더리의 형태는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볼 수 있다. 

 

순응형- 누군가와 불편해지는 건 너무 싫어

돌봄형- 네가 기뻐야 나도 기뻐

방어형 - 나한테 신경 좀 쓰지 마

지배형 -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

 

어떻게 하면 위와 같은 잘못된 바운더리를 극복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살 수 있을까?

 

건강한 바운더리란 또 무엇일까?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은,

 

첫째, 관계의 깊이를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면서

자신과 관계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분별할 줄 알고,

그에 따라 바운더리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다.

 

둘째, '따로 또 같이' 라는 상호 존중감을 가진다.

 

나와 너의 다름을 존중하고,

둘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셋째, 내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다.

 

공감은 상대의 감정과 고통을 헤아리는 것이지만,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더 나아가 상대의 흥미, 욕구, 생각, 재능, 행복, 미래 등

마음 전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헤아리는 것이다. 

 

넷째,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갈등은 누군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가치관과 취향, 대화방식의 차이로 인해 빚어지는 쌍방향의 문제로 보는 사람이다.

 

"갈등이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친밀감의 수업료' 같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갈등-회복의 경험이다."

 

 

다섯 째, 솔직하게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이다.

 

의식의 안테나가 늘 바깥으로만 향해 있으면

다른 사람 신경 쓰느라 내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에 둔감하게 된다.

부드럽고 정중한 태도로 자기표현을 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불이익이나 어려움은 없거나 적다.

 

"좋은 관계란 내가 무언가 불편하거나 내키지 않는 것에 대해

불안이나 곤란함을 느끼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다."

 


 

인간관계는 쉽지 않다.

가까운 사이라도 갈등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주어진 생을 잘 살아가야 하고, 그러려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세워 나답게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먼저 나 자신의 '관계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왜 나는 이런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 걸까?

부모, 형제 타인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런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다. 

 

내가 부모의 육아방식으로 인해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나의 부모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영향을 받은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용서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나의 마음에 구멍을 메우며 치유하고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 현재의 나를 인식하는 것이다.

아이-어른의 관계에서 벗어나 어른-어른의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일관되게 느꼈던 것은

나의 소중함과, 내가 중요하다는 메시지였다.

 

"관계의 변화란 상대를 내 뜻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 뜻대로 바꿔가는 것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초점은 관계 안에서 '나의 변화'이며 상대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에 대한 연민을 갖자.

 

자주 자신에게 따뜻한 미소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면서 나를 위로하자.

 

자기표현 훈련을 해보자.

 

자기표현을 하면 불안과 긴장이 점점 줄어든다.

더 나아가, 자기표현을 하면 할수록 자신을 좋아하게 된다.

자존감이 높아야 자기표현을 잘하는 게 아니라 자기표현을 잘하다 보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이다. 

 

"불쾌감을 차분히 표현한다는 것은 감정을 조절해서 짤막하고, 천천히, 명료하게 그 핵심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나만의 세계 (오티움)을 만들 것.

 

오티움(Otium)은 라틴어로 영혼을 기쁘게 하는 능동적인 여가를 뜻한다. 

활동의 결과와 상관없이 활동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누리는 일들이 있는가? 

음악, 영화, 글쓰기, 운동, 여행, 수집 그 무엇이든 말이다.

 

 

장 그르니에가 말한 비밀스러운 삶과도 어느 정도 닮아 있는 듯하다.

 

비밀스러운 삶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 어떤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다가 혼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비밀은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이자 시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섬_장 그르니에> 중

 


 

사실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고르자면, 아마 순응형에 가까울 듯하다.

 

거절하거나 싫은 소리를 잘 못하고

뒷감당을 끙끙거리며 했던 경험 몇 가지가 기억난다.

 

하지만 기억하자.

내가 거절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요청일 뿐이니

그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 아닐 거다.

 

문제는 거절하는 태도이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고, 정중하되 명료하게, 유연성을 발휘하며 거절하는 것!

 

나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다면

오히려 쿨하고 멋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지고 인간관계를 하는 것.

명심하고 노력해야 할 일이다.

 

 

 

 

 

 

 

<2020, 위즈덤하우스>

 


 

작가 이도우.

그녀의 첫 번째 산문집이다.

 

예쁜 책.

은은한 표지와 나뭇잎 모양의 디자인.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하루를 털어내고 밤에 쓰는 글은 감성적이다. 센티하다. 철학적이다. 오글거린다.

내 경험상도 말이다.

 

연애시절 수없이 썼던 편지들은 주로 밤에 썼었다.

지금 그것들을 읽는다면, 아마 부끄러워 어디로 숨어버릴지도 모르겠다. ㅎㅎ

 

하지만 밤의 기운을 빌리지 않는다면

내 맘속의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가 망설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산문집은

작가의 이야기, 생각, 추억들을 진솔하게 써 내려간 글 모음집이다.

중간중간 나뭇잎 소설이란 타이틀로 삽입되어 있는 짧은 소설도 좋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잠옷을 입으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 세 소설 속에서 만났던

이름들, 장소들, 이야기들이 있어 더 친숙하고 반가웠다.

 

 


 

 

요즘 즐겨보는 

영화 이야기를 하는 <방구석 1열>이라는 Jtbc TV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장성규 분이 도입부에서 영화소개를 할 때,

  영화의 개봉일에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소개해 준다.

 

이를테면, 

영화 로마의 휴일 개봉일은 '로마 공주 솔비의 생일인 ○ 월 ○ 일에 개봉'을 했다던지.....

 

전혀 관련없음의 사건들이, 단지 같은 날이라는 이유로 의미가 부여되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준다.

자꾸 보다보니 오늘은 또 무슨 에피소드일까 내심 궁금하기도 하다.

 

 

 

"벚꽃이 환한 봄, 4월 19일입니다. 오늘 날짜엔 과연 어떤 기록들이 남아있을까요?

우선 1956년 4월 19일 할리우드 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의 레니에 3세와 결혼해 왕비가 되었고요.

1960년 대한민국에서 4.19 혁명이 일어났죠.

1964년 같은 날짜에 스포츠카 머스탱이 첫선을 보였고요.

영국 시인 바이런과 프랑스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가 1824 년과 1906년 오늘,

세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멘트를 듣다 보면

'오늘의 부피'라 할까, 페이스트리 빵의 결처럼 겹겹이 포개진 날짜에 미묘한 느낌을 받곤 했다.

달력에 기념할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도 4월 19일의 부피가 있었다. 

 

 

............

 

 

언젠가부터 나는 10월 마지막 날의 부피를 기록하고 있다. 

 

...........

 

 

내년 이맘때쯤 또 한 겹 시간의 부피를 쌓을 때까지,

다시 오는 오늘을 만날 때까지, 부디 잘 건너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부피_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중

 

 

 

오늘의 부피라는 글 안에 있는 내용이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생각이다.

페스트리의 겹처럼 쌓여가는 하루의 부피.

 

그날의 나의 부피. 타인의 부피. 우리의 부피.

 

우린 같은 날을 살며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장성규 분의 멘트가 실로 놀랍게 의미 있어진다.

 

의미 있는 날을 정해

나도 그 부피를 기록해 봐야겠다. 

 

 

이도우 작가,

 

그녀는 

마주하고 앉아 차 한잔 마시며

아니면, 가벼운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오래 수다 떨고 싶은.....

 

그런 사람이다.

 

 

 

 

 

 

 

 

 

<2016, 해냄>


영화를 먼저 봤다. 강동원 이나영 배우 주연.

울음을 참으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힘들게 지켜보았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엉엉 소리를 내어 맘껏 울어 본 지 오래된 것 같다. 

한 번쯤 그러고 나면 속이 시원할 것도 같은데 말이다.

 

책은 내용적으로 영화와 조금 다른 부분들이 있긴 했다.

책을 먼저 읽었어도 좋았겠지만, 영화도 매우 인상적이어서 어느 것을 먼저 경험했어도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사형수 정윤수

 

어린 시절 아빠의 폭력, 자식을 버린 엄마, 끔찍한 가난의 고통 속에 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소년원으로 보내진 그.

시각장애를 갖게 된 동생과 전전긍긍하며 밑바닥 삶을 살다가

세 여인 살인 사건의 주도자로 사형 선고를 받은 남자.

 

세상에 냉소적인 여자 문유정

 

대단한 이력을 가진 가족들, 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의 딸이지만

학창 시절,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트라우마와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자 오히려 된통 혼나고 

연고 하나로 마무리하려 했던 엄마에 대한 지독한 미움이 더 상처였던,

세 번의 자살을 시도했던 여자.

 

 

 

수녀인 모니카 고모를 통해 교도소를 드나들며 윤수를 알게 된 유정은 

그를 점점 알아갈수록 그 인간 깊숙한 곳의 슬픔과 상처를 돌아보게 되고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자신과 닮은 그의 모습에서 누구에게도 얘기 못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고백할 용기를 얻고

쏟아내며 치유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현실에서?

살인범의 외모가 아무리 잘생겼다 한들, 살기가 느껴지는 그 얼굴을 마주하며

그에게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어려운 환경과 사회적인 모순의 피해자일지라도 살인은 죄인 것이다.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처럼 억울한 누명을 썼다면 모를까......

 

소설은 윤수를 억울한 무죄인으로도, 악랄한 희대의 살인마로도 묘사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느 정도는 악하고, 어느 정도는 선한 모습과 닮아있는 듯하다.

 

사랑하는 여자의 수술을 돕기 위해 300만 원이 필요하게 되고, 그녀를 만나 얼마간 바르게 살고 있었는데

아는 형의 제의로 딱 한 번만 더 강도짓을 할 결심을 한다. 

 

그러나, 상황은 계획과는 다르게 그 형이 저지른 강간과 두 명의 살인,

그리고 그때 마침 들어오던 파출부를 살해하게 되는 윤수의 범죄로 마무리된다. 

 

두 명의 살인과 강간죄를 뒤집어쓴다. 어쩌면 사형을 선고받지 않았을 그의 범죄.

 


 

사형제 폐지에 대한 찬반 논란은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인권문제, 종교, 사회적 안전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입장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던, 이 소설의 경우처럼 잘못된 판결로 인한 사형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나라는 제도는 아직 남아있지만 1997년 이후 실질적으로 집행을 하지 않고 있기에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이기도 하다.

 

 

 

이미 살인 강간의 전과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출소 후 또다시

8세 여아를 납치해 성폭행을 저지르고 신체를 훼손하게 했다.

그  주인공은 (만취상태였고 심신 미약 등을 이유로) 무기징역이 아닌  

12년 선고를 받고 올해 출소할 예정이다. 우리는 불안해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악을 만드는 사람은 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그도 한 인간이기에 신 외에는 그의 생명을 건드릴 수 없는가?

 

 

 

잊히지 않는 영화 밀양의 한 장면이 있다.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고 수감되어 있는 살인마를 용서하기 위해 찾아간 신애(전도연).

그러나 자신은 신을 믿고 이미 용서를 받았다며

천사 같은 얼굴을 한 그를 마주한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를 용서하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 살아왔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그런데 그 죄인은 그녀가 용서하기도 전에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신애는 신도 세상도 다 거부하게 된다.

 

용서란 가능한 것인가?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가?

 


 

 

누구도, 극악무도한 인간이라 해도, 설사 악마의 화신이라 해도

그를 포기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지요.

우리는 모두 전적으로 선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누구도 결백하지만은 않으니까,

우리는 다만 조금 더 착하고 조금 더 악하니까,

산다는 것이 속죄를 하든 더 죄를 짓든 그 기회를 주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한테는 그걸 막을 권리가 없는 거니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_모니카 수녀>

 

 

 

이곳 구치소에 들어와서 저는 처음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았고,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고,

존댓말을 쓰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인자로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제 육체적 생명은 더 연장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제 영혼은 언제까지나 구더기 들끓는 시궁창을 헤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차마 구더기인 줄도 모르고 그곳이 차마 시궁창이었는지 모르고……

 

저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가져보았습니다.

기다리는 것, 만남을 설레며 준비하는 것, 인간과 인간이 진짜 대화를 나눈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 서로 가식 없이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사랑받아 본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고, 용서받아본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_윤수의 블루노트 중>

 

 

 

 

구치소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인간 대접, 존중, 행복감.

이 세상에 살면서 느꼈으면 좋았을 그 행복감은 그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세상 가운데 살면서 늘 죽고 싶어 했던 그가,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사형수로서 처음으로 살고 싶은 감정을 느낀 그 순간.

 집행일을 마주하게 된다.

 

너무도 살고 싶었던, 이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선과 악, 삶과 죽음, 진정한 삶의 의미, 사랑과 용서 등에 대한

시끄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니게 하는 

무거운 소설이다.

 

 

 

 

 

 

<민음사, 2011>

 


 

읽어보고 싶었던 책. 소장하고 싶어 구입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흥미진진하거나 재미있게 느껴지는 소설은 아닌 듯하다. 

읽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고, 여러 번 읽어야 다음 진도가 나가는 부분도 꽤 있었다.

 

카뮈는 이 작품을 통해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의 시대를 살아온 작가의 경험이 바탕이 된 이 소설에서 말이다.

전쟁=페스트-> 긍정의 메시지 ??

 

작가의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인듯하다. 

 


 

알제리 해안에 면한 프랑스의 한 도시 오랑.

늘 루틴 하게 삶이 돌아가며 특별한 것이 없는 단조로운 그곳에

어느 날 나타난 페스트.

 

페스트는 쥐에게 생기는 전염병으로 쥐벼룩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병이다.

증상은 몸에 멍울이 잡히거나 반점이 생기고 객혈을 하며 극한의 열과 통증을 동반하는 무서운 병이다. 

 

처음 쥐들이 죽어 나갔을 때 사람들의 초기 반응은 마치 도시의 분위기와 별다르지 않았다.

무관심... 설마... 이러다 말겠지... 나랑은 상관없는 일 등

닥쳐오는 고난에 부지런히 반응하지도, 열정적으로 대항하지도 않는 모습.

정부조차도 말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의사 리유의 노력과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으로 인해 페스트는 선언되고 도시는 폐쇄된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생이별과 귀양살이를 하게 되고, 전기가 끊기거나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고,

무엇보다 감염의 두려움 안에서 공포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 상황은 코로나 19로 인한 우리의 현실을 통해, 강도는 다르겠지만,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반응하는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작가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쟁이 발발했다. 전염병이 돈다. 부조리가 있다.

당신은 이러한 악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파늘루 신부처럼

이 재앙은 인간의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는 그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타지 사람 랑베르 기자처럼 

폐쇄된 도시를 어떤 방법으로든 떠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을 쟁취하고자 발버둥 칠 것인가? 

 

보건대를 결성한 타루처럼 

페스트에 저항하며 전염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비록 인간을 구원해주지는 못할지라도, 지금 해야 할 최선의 방법임을 직시하며 열심히 병과 싸울 것인가?

 

의사 리유처럼 

묵묵히 끝없는 성실함으로 자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현재 닥친 악을 물리치기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할 것인가?

 

공무원 서기인 그랑처럼

보잘것없고 평범한 심지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존재지만, 조용한 미덕과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덤덤히 해 낼 것인가? 

 

페스트 이전에는 자살시도자였던 코타르처럼

위기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불행으로 자신의 신세를 위로받으며 , 악을 기회로 삼아 불법을 저지르고 이득을 볼 것인가?

 

 

 

사실, 이렇게 인물들의 태도를 규정하기에는 그들의 심적인 변화가 복잡하고 미묘하다.

파늘루 신부와 랑베르 기자는 나중에 심적 변화를 겪는 인물이며 보건대 활동을 돕게 된다.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가? 

아마 신부도, 의사도, 외지 사람도 아니며 열정적인 인물도, 범죄자도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서기 그랑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보잘것없는 그는 이 글의 서술자인 리유에 의해 매우 중요한 영웅으로 인정받는다.

 

'영웅적인 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러나 리유나 타루 이상으로 보건대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그 조용한 미덕의 실질적 대표자였다고 서술자는 평가한다.' 

 

<페스트_카뮈>

 

 

개인이 해야 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 묵묵히 해 나가는 것.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런 다음에, 서로 연대하며 선을 이루기 위해 함께하는 노력.  

그것이야말로 이 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긍정의 반응이 아닐까? 

 

 

"딴 사람들은 '페스트예요. 페스트를 이겨냈다고요' 하고 난리를 치죠. 좀 더 봐주다간 훈장이라도 달라고 할 판이죠.

그러나 페스트가 대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그뿐이죠."

 

<페스트_카뮈>

 

 

 

우리 곁에 늘 공존하고 있는 부조리들, 불행한 일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죽음까지도......

모두 인생이다. 바꿀 수도 없앨 수도 없는 것들.

 

아무리 리유와 그의 보건대 동료들이 연대하여 페스트와 투쟁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해도.

병의 사라짐과 동시에 타루는 결국 그 병으로 죽게 되고,

리유의 아내는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어찌 이것이 승리란 말인가?

 

영원한 승리, 결정적인 개선이란 있을 수 없는 일!

전염병은 또다시 올 것이고, 죽음은 우리를 옥죄고, 부조리는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유.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페스트_카뮈(타루의 말 중)>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고와 슬픔이 어찌할 수 없는 일임을.

또다시 느끼게 해주는 구절이다.

 

그러나 인생을 슬퍼하고 체념하기보다는, 카뮈의 긍정을 받아들이려 한다. 

주어진 인생 안에서 묵묵히 나의 일을 하고,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며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거창하진 않아도 악에 맞서 싸우는 것.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일. 그러나 할 수 있는 일.

이것을 하고 사는 것이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인 것 같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악. 코로나 19로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일이다.

 

 

 

 

 

 

 

 

<2012, 재미주의>

 


 

오래전, [그대를 사랑합니다] 영화를 보고 마음이 먹먹했었다. 

눈물도 흘렸었던 기억이다. 

그 후 두어 번 더 영화를 챙겨 보았고 

  이번에 강풀의 원작 만화로 읽어 보게 되었다.

 

실제로 그의 할머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쓰기로 맘먹었다는 사연은

책 말미에 할머니의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할머님께서 얼마나 기분이 좋고 뿌듯하실까? 세상을 전부 가진 듯하실 것 같다.

 

 

 

시대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서로를 간섭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자식들에게 부양의 노고를 떠맡기는 것을 피하려는 부모들.

홀로서기도 힘든 이 세상에서 부모까지 책임지는 것이 고통스러운 자식들.

노후복지에 대한 중요성, 늘어나는 요양(병) 원들, 실버타운에 대한 로망,

개인들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는 시대의 분위기. 

 

 

 

이번 명절은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이동과 만남을 자제했다.

특수 상황이긴 하지만, 대면해서 만나는 일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먹고살기 바쁘거나, 개인의 여가생활로 명절이나 휴일조차 여유가 없는 중장년층.

어마 무시한 경쟁 속에서 학업에 지친 학생들.

미래에 대한 궁리와 시도에 여유가 없는 청년들.

 

 

 

큰 아들이 떠났다. 내 품 안의 자식이었는데.

작은 아들이 떠났다. 한 번도 모셔 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

그냥 자식과 함께 살기를 바랐을 뿐이지.

막내딸이 떠났다.

우리는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찾아야만 뵐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

 

우리는 이제 다시 부부다,

가족이었는데.

 

<그대를 사랑합니다_군봉>

 

 

 

 

치매에 걸린 아내를 간호하며 주차관리원으로 일하던 장군봉 할아버지.

자식들은 다 떠나고, 하루 종일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해 시달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를 수발하며 살아가는 

피곤하고 힘든, 외로운 하루하루.

 

아내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은 그는

아내와 떨어져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함께 삶을 마감하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단함이 지독이 눈물이 난다.

 

그의 외로운 인생길 끝자락에 

만석이 할아버지와 송씨라는 두 노인을 만나게 되고,

그들로 인해 소박한 행복과 즐거움을 느낀다.

그 추억으로 마지막 날들을 기쁨으로 채울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그.

 

 

 

는 건 말이다.

뭐, 별거 아냐.

젊었을 때는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고,

나이 들어선 그 추억을 되씹으면서 사는 게 인생이지. 

우리같이........ 저세상에 갈 나이가 되면........ 행복한 추억이 필요해져.

 

<그대를 사랑합니다_만석>

 

 

 

우리가 만난 시간은 겨우 한 계절 남짓이지만...........

만석 씬........ 내 인생의 전체를 행복하게 해 줬어요. 

 

<그대를 사랑합니다_송이뿐>

 

 

 

이 책과 영화는 부모님의 외로움과 쓸쓸함과 더불어,

나의 노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무엇을 행복으로 삼아야 하는지.

지금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만화의 주인공인 또 다른 두 인물 만석과 송 씨 할머니와의 사랑 이야기는

애틋하고 슬프지만 귀엽기 까기 하다. 

 

노인들이 주인공인 순정만화.

 낯설고 색다르지만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우리네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인 듯 하다.

 

 

 

 

 

 

<2016, 문학동네>


제목만 보고는 일본 작가의 작품인 줄 알았던 책.......... , 표지가 예쁘다.

 

2014년 젊은 작가상 심사에서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가 선정되었다.

신인작가들의 중단편을 대상으로 심사한 후, 7인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쇼코의 미소>를 비롯해서 일곱 편의 중단편 모두,

신인의 작품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내게는 많은 감동과 여운을 주는

따스하고 아련한 이야기들이었다. 

 

모든 작품에 흐르고 있는 메시지는 바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인 듯했다.

 

너무 인간적인, 너무도 서민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그녀의 이야기와

감정의 위태로운 표현들은

나에게 많은 공감과 여운을 남기는 것들이었다.

 

친구와 나, 할아버지와 나, 엄마와 나, 선배와 나, 연인과 나, 할머니와 나, 이웃과 이웃, 사람과 사람.............,

 

그들의 모든 관계에는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과 상황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가족이지만, 친하지만, 사랑하지만, 친하고 싶지만, 

원망과 서운함, 미움과 증오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그럼에도,

연민과 사랑, 미안함과 죄책감 등

복잡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책의 모든 인연은 헤어짐으로 마무리된다. 

슬프다.

 

그럼에도 이 글들은 따듯하다.

죽음이 삶의 일부 듯이, 헤어짐도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

불완전한 존재인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는 사실.

 후회도, 맘의 상처도, 아련함도 남아있지만 그것들을  추억할 수 있다는 사실.

 

이런 인간의 연약함이 슬프도록 아름다워 보였다.

 


 

1. 쇼코의 미소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었다.

 

저렇게 제멋대로고 충동적이고 마음 여린 이상한 사람. 이상한 나의 할아버지. 저 엉망진창인 사람.

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할아버지가 씌워준 우산을 쓰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2. 신짜오, 신짜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지적하는 엄마의 예민하고 우울한 기질을

섬세함으로 특별한 정서적 능력으로 이해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줌마는 엄마의 인간적인 약점을 모두 다 알아보고도 있는 그대로의 엄마에게 곁을 줬다.

아줌마가 준 마음의 한 조각을 엄마는 얼마나 소중하게 돌보았을까.

그것이 엄마의 잘못도 아닌 일로 부서져버렸을 때 엄마가 느꼈던 절망은 얼마나 깊은 것이었을까.

 

3.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4. 한지와 영주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

사람들은 떠난다.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 

 

5. 먼 곳에서 온 노래

 

그때 나는 나보다 약한 누군가를 도와주는 내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말로는 친구라고 하면서도 내가 미진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이타심인 줄 알았던 마음이 결국은 이기심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미진이 떠난 이후였습니다.

 

6. 미카엘라

 

세상의 누가 그만큼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 밝고 예쁜 얼굴로 한달음에 달여와 품에 안길 것인가. 

그 시절은 갔지만 여자는 미카엘라에게서 받은 사랑을 잊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부모의 은혜가 하늘 같다고 했지만, 여자는 자식이 준 사랑이야말로 하늘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미카엘라가 자신에게 준 마음은 세상 어디에 가도 없는 순정하고 따뜻한 사랑이었다. 

 

7. 비밀

 

지민이 이제는 먼 땅으로 가버려 소식 한 통이 없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꿔버렸지만 사진 속 그 풍경은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쇼코의 미소_최은영> 중

 


 

중단편 모음집을 읽으면 , 그중 더 애정이 가는 작품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모두 같은 비중의 무게로 내게 다가온다. 

 

아마도 

삶의 고단함 속에서 맺고 있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완벽하지 않고, 서투르고, 상처를 주고받을지라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감정이 

저 깊은 곳에 빛과 같이 남아있기 때문일 거다. 

 

 

 

 

 

 

 

 

<2011, 재미주의>


 

당신의 모든 순간. 이 제목처럼........

당신의 인생에서 모든 순간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살고, 살았을까?

 

얼마 전 본 영화 <윤희에게>에서

딸, 새봄(박소혜)이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왜 살아?"

 

엄마(김희애) 대답한다.

 

"왜 사냐고?"....... "자식 때문에 살지."

 

우리네 인생의 마지막에 다다를 때에

잊고 싶지 않은 것, 가지고 가고 싶은 기억.

그것은 아마 사랑일 거다.

사랑했던 가족, 연인 그리고 사람들......

 

 

이 만화는 순정만화이지만 좀비들의 이야기다.

좀비가 되어서도 그들의 모든 순간을 찾아 돌아오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슬픈 좀비들. 사람들.

 

주인공 정욱의 사랑은 너무 아프다. 눈물이 난다.

가진 것은 없지만, 참 좋은 사람 정욱.

 

그의 모든 순간은 사랑하는 한 여인이었다.

그의 가장 소중하고 행복했던 순간은 그녀와의 추억이었다.

 

좀비로 가득 찬 인간 종말의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열심히 살 수 있었고,

살아남을 수 있었고, 행복할 수 있었다.


 

가을바람이 서늘하다.

계절은 살아있다. 세상은 늘 그 자리에서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듯, 여기저기서 소란스럽게 고통스러워한다.

마치 좀비들의 세상처럼.

 

이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우리의 동력은 뭔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따스한 추억, 웃음, 미소, 격려와 위로,

 

그들과 좋았던 기억들.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

그들로 인해 행복한 나.

 

당신의 모든 순간은 무엇인가? 

어떤 기억이 가장 행복한가? 

 

많은 여운을 주는 책. 역시 강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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