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장편소설
종의 기원
찰스 다윈의 책 <종의 기원>에서 왔으리라 짐작되는 소설의 타이틀.
다윈의 책 원제가 <자연선택 혹은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종의 보존에 의한 종의 기원에 대하여>, 영어로는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이니, 그의 이론에 따르면 생존이란 경쟁을 통한 살아남기 싸움이다.
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Predator, 포식자
아기새를 물어오는 고양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뱀, 토끼를 사냥하는 여우, 물고들의 포식자 상어, 사슴을 해치는 사자.
TV나 책에서 종종 보던 광경이다. 누군가를 잡아먹으며 생존해야 하는 동물들. 인간은 이들의 최상위 포식자이다.
같은 종끼리도 경쟁하며 고군분투를 해야 살아남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물고 뜯어먹으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자연 속에서 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경쟁들을 보면, 종의 번식과 생존을 위해 이기고 지는 싸움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살인이라는 지점으로 옮겨가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존속 살인이라면 더 참담하다.
사이코 패스 증상이 선천적 영향이 큰지, 후천적인 환경이 더 중요한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사회의 규범에 공감하지 않고 편향된 인식을 가지며, 자신의 이익에 따라 타인에게 해를 입힌다. 공감이나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소설 속 한유진은 어려서부터 자기중심적 생각을 하고, 조용하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고, 사회성이 부족했으며, 특이한 놀이를 즐기며 놀았다. (여자아이들 물건을 훔친 후 수집 등)
활달하고 리더십 있는 잘난 형의 그늘에 가리어 부모로부터 주목받지 못하며 자라기도 했다.
어느 날의 가족 여행.
형과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놀던 중 반칙으로 승리를 거머쥔 형을 바닷가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려 죽게 만든다.
웃기지 마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 거야
사건은 동생과 놀다 바다에 빠져 죽은 초등학생과 그를 구하다 죽은 아빠로 기사화된다.
멀리서 현장을 목격했던 엄마는 진실을 밝히고 그를 처벌받게 하는 대신,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자신의 동생 혜원에게 데려가게 된다.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은 유진에게는 그 사실을 숨긴 채 '간질약'이라는 명목으로 충동 억제제를 처방하고 먹이게 된다.
약의 부작용으로 고통받으며 지내는 유진은 엄마와 이모를 속이고 약을 끊어보니 말짱한 정신의 자신과 만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고, 이후 상습적으로 약을 먹지 않게 된다.
그날 형이 공정하게 게임을 했다면, 이모와 엄마가 그를 속이는 대신 솔직하게 말하고 함께 노력하며 약을 먹었다면, 정당한 벌을 받고 본인의 죄를 뉘우쳤다면, 부모가 형에게 준 사랑을 그에게도 주었더라면, 수많은 '그랬다면'이 있었다면......... 그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며 엄마와 행복했을까?
어머니가 내 말을 믿어줬다면, 이 기사를 쓴 기자처럼 그 일이 사고라고 믿었더라면, 우리의 운명이 조금쯤 달라졌을까. 어머니의 소망대로 나는 무해하고 평범한 사람이 되었을까. 그리하여 오래오래 오순도순 살 수 있었을까.
지층처럼 단단하게 쌓였다고 믿어온 것 역시 믿음, 배려, 이해, 연민.........,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 수렴되는 수많은 감정들.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신의 의도가 아닌지도 몰랐다. 만약 그것이 신의 뜻이었다면, 세상을 창조할 때 만물이 만물을 사랑하는 관계로 설계했어야 한다. 서로 잡아먹으면서 살아남는 사슬로 엮는 게 아니라.
인류가 받은 저주 중의 하나가, 어떤 상황에도 적응한다는 거래.
유진은 몇 번의 살인을 더 저지르는 악마가 되어 포식자로서 그의 삶의 자유의지를 행사한다.
자신의 흥미와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남편과 아들을 잃고 사이코패스 유진과 살아가는 엄마 지원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내 속으로 낳은 아들이 사랑하는 또 다른 아들을 죽인 살인자다.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다.
그를 용서하고 믿으며 살 수 있겠는가.
그녀는 큰아들의 죽음 이후 가족이 없는 유진의 친구 '해진'을 아들처럼 데리고 살게 된다.
죽은 아들 유민과 너무 닮아있는 그에게 애정을 주며 말이다. 해진은 유진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매일 매 순간 아이의 눈이 내게 애원한다. 나를 물로 돌려보내 주세요,라고, 자식의 그런 눈을 무시할 수 있는 어미가 세상에 대체 몇이나 될까.
나는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내 삶의 목표, 혜원이의 치료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무탈하고, 무해한 존재로 평범하게 사는 것.
유진이 잔다. 시름없이, 새근새근 잔다. 나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혜원이에게 매달렸다, 뭐든지 하겠다고, 내 인생을 걸어 유진이를 책임지겠다고, 내가 유진이보다 더 오래 살면서 끝가지 책임지겠노라고, 약속에 대한 징표로, 가슴을 갈라 내 심장이라도 꺼내놓고 싶었다.
"엄마, 사랑해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분노가 와르르 무너졌다. 나를 지배하던 충동이 일순간에 가라앉았다. 핏줄의 저주에 걸려든 순간이었다. 내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는지 새삼스레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결코 용서하지 못하리라는 걸 예감한 순간이었다.
나는 유진의 엄마였다. 유진은 내 아이였다. 그것은 세상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하릴없이 성모 마리아 앞에 꿇어앉아 묻는다. 어머니, 지혜로운 어머니.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 참혹한 폭력에서 살아남아 새끼를 낳은 질긴 생명력이 경이로웠다. 다 자란 새끼를 곁에 끼고 다니며 밥을 얻어 먹이는 어미로서의 책임감이 서글펐다. 자신의 허기를 누르고 새끼가 다 먹을 때까지 물러나 기다리는 참을성이 감탄스러웠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세상이 용서하지 않는 죄일지라도 기꺼이 용서하고 안아주는 곳'이 가족의 정의 중 하나라면, 유진은 가족의 품에서 용서받고 사랑받고 지낼 수 있는 걸까?
유진을 바라보며 어쩔 도리 없이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세월을 살아냈던 지원의 삶은 하루하루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두 번째 살인 현장을 목격한 그녀는 결국 아들을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이 세상에 살아서는 안 될 놈이야"
"그때 끝냈어야 했어"
"그때, 죽었어야 했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
아들에게 자살을 유도하고, 자신도 함께 떠나려고 했던 그녀. 결국 아들의 손에 처참히 살해당하고 만다.
방송을 탔던 희대의 살인마들, 존속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사이코패스들, 그들이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도화지 같이 희었던 갓난아기 시절부터 그들의 성향은 그랬던 걸까?
뱃속부터 편하게 육아했더라면,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환경이었더라면, 온 가족이 함께하는 따뜻한 가족의 저녁시간이 있었더라면, 공부와 성적에 아이를 옥죄지 않았더라면, 친구들과 더 많이 놀게 허락했더라면, 차별을 하지 않았더라면, 끔찍한 사건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부모의 폭력이 없었더라면, 따돌림을 당하며 소외당하지 않았더라면, 부모가 맞벌이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빠가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었더라면, 처참한 전쟁터에 가지 않았더라면, 복지가 잘 되는 나라였다면,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였다면, 빈부의 차이가 없는 사회였다면,...........
수많은 '그랬더라면'이 그들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범죄다. 그들의 과거가 어쨌든, 의도가 어쨌든 처벌받아 마땅한 일이다.
가족이라면 사랑의 마음으로 치료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고통스럽겠지만 처벌받을 것은 받고, 병원도 다니고, 치료도 받고, 약도 먹이고, 사랑을 주면서 그래야 할 것 같다.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도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조금 줄일 수는 없는 걸까?
전적으로 누구의 책임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잘못된 성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이, 나라가, 사회가, 가정이 손 놓고 있을 문제는 아니여 보인다.
이 책의 결말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고, 마음이 순수하고 착한, 꿈이 있었고 매 순간 열심히 살았던 청년 해진의 죽음이 이해되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며 자주 느끼는 불쾌하고 슬픈 감정을 책의 말미에 또 경험했다.
약한 사람, 착한 사람, 열심히 산 사람, 요령 없는 사람, 빽 없고 돈 없는 사람이 늘 피해를 입는 세상 말이다.
살인마 이춘재 대신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복역한 윤 씨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늦게나마 억울한 누명을 벗었지만, 잃어버린 무수한 세월의 억울함과 고통은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이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제 내가 왜 인간의 '악'에 관심을 갖는지에 대해 대답할 차례다. 평범한 비둘기라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대처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분신 유진이 미미하나마 어떤 역할을 해주리라 믿고 싶다.
_작가의 말 "인간은 살인으로 진화했다" 중
정유정 작가의 무거운 책 세 권을 연달아 읽었다. <28>, <7년의 밤>, 그리고 <종의 기원>까지.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범죄와 사이코 패스를 다루는 프로그램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나의 마음과 정서가 우울하고 무겁게 가라앉는다.
이런 콘텐츠들이 그 안에서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들을 찾아내며, 사회악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하나의 역할을 해주리라 나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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