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장편소설

 

종의 기원

 

<2016, 은행나무>

 

 

 

찰스 다윈의 책 <종의 기원>에서 왔으리라 짐작되는 소설의 타이틀.

 

다윈의 책 원제가 <자연선택 혹은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종의 보존에 의한 종의 기원에 대하여>, 영어로는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이니, 그의 이론에 따르면 생존이란 경쟁을 통한 살아남기 싸움이다.

 

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Predator, 포식자

아기새를 물어오는 고양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뱀, 토끼를 사냥하는 여우, 물고들의 포식자 상어, 사슴을 해치는 사자.

TV나 책에서 종종 보던 광경이다. 누군가를 잡아먹으며 생존해야 하는 동물들. 인간은 이들의 최상위 포식자이다.

같은 종끼리도 경쟁하며 고군분투를 해야 살아남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물고 뜯어먹으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자연 속에서 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경쟁들을 보면, 종의 번식과 생존을 위해 이기고 지는 싸움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살인이라는 지점으로 옮겨가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존속 살인이라면 더 참담하다.

 

사이코 패스 증상이 선천적 영향이 큰지, 후천적인 환경이 더 중요한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사회의 규범에 공감하지 않고 편향된 인식을 가지며, 자신의 이익에 따라 타인에게 해를 입힌다. 공감이나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소설 속 한유진은 어려서부터 자기중심적 생각을 하고, 조용하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고, 사회성이 부족했으며, 특이한 놀이를 즐기며 놀았다. (여자아이들 물건을 훔친 후 수집 등)

활달하고 리더십 있는 잘난 형의 그늘에 가리어 부모로부터 주목받지 못하며 자라기도 했다.

 

어느 날의 가족 여행.

형과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놀던 중 반칙으로 승리를 거머쥔 형을 바닷가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려 죽게 만든다.

 

웃기지 마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 거야

 

사건은 동생과 놀다 바다에 빠져 죽은 초등학생과 그를 구하다 죽은 아빠로 기사화된다.

멀리서 현장을 목격했던 엄마는 진실을 밝히고 그를 처벌받게 하는 대신,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자신의 동생 혜원에게 데려가게 된다.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은 유진에게는 그 사실을 숨긴 채 '간질약'이라는 명목으로 충동 억제제를 처방하고 먹이게 된다.

 

약의 부작용으로 고통받으며 지내는 유진은 엄마와 이모를 속이고 약을 끊어보니 말짱한 정신의 자신과 만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고, 이후 상습적으로 약을 먹지 않게 된다.

 

그날 형이 공정하게 게임을 했다면, 이모와 엄마가 그를 속이는 대신 솔직하게 말하고 함께 노력하며 약을 먹었다면, 정당한 벌을 받고 본인의 죄를 뉘우쳤다면, 부모가 형에게 준 사랑을 그에게도 주었더라면, 수많은 '그랬다면'이 있었다면......... 그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며 엄마와 행복했을까?

 

어머니가 내 말을 믿어줬다면, 이 기사를 쓴 기자처럼 그 일이 사고라고 믿었더라면, 우리의 운명이 조금쯤 달라졌을까. 어머니의 소망대로 나는 무해하고 평범한 사람이 되었을까. 그리하여 오래오래 오순도순 살 수 있었을까.

 

지층처럼 단단하게 쌓였다고 믿어온 것 역시 믿음, 배려, 이해, 연민.........,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 수렴되는 수많은 감정들.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신의 의도가 아닌지도 몰랐다. 만약 그것이 신의 뜻이었다면, 세상을 창조할 때 만물이 만물을 사랑하는 관계로 설계했어야 한다. 서로 잡아먹으면서 살아남는 사슬로 엮는 게 아니라.

 

인류가 받은 저주 중의 하나가, 어떤 상황에도 적응한다는 거래.

 

 

유진은 몇 번의 살인을 더 저지르는 악마가 되어 포식자로서 그의 삶의 자유의지를 행사한다.

자신의 흥미와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남편과 아들을 잃고 사이코패스 유진과 살아가는 엄마 지원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내 속으로 낳은 아들이 사랑하는 또 다른 아들을 죽인 살인자다.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다.

그를 용서하고 믿으며 살 수 있겠는가. 

 

그녀는 큰아들의 죽음 이후 가족이 없는 유진의 친구 '해진'을 아들처럼 데리고 살게 된다.

죽은 아들 유민과 너무 닮아있는 그에게 애정을 주며 말이다. 해진은 유진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매일 매 순간 아이의 눈이 내게 애원한다. 나를 물로 돌려보내 주세요,라고, 자식의 그런 눈을 무시할 수 있는 어미가 세상에 대체 몇이나 될까.

 

나는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내 삶의 목표, 혜원이의 치료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무탈하고, 무해한 존재로 평범하게 사는 것.

 

유진이 잔다. 시름없이, 새근새근 잔다. 나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혜원이에게 매달렸다, 뭐든지 하겠다고, 내 인생을 걸어 유진이를 책임지겠다고, 내가 유진이보다 더 오래 살면서 끝가지 책임지겠노라고, 약속에 대한 징표로, 가슴을 갈라 내 심장이라도 꺼내놓고 싶었다. 

 

"엄마, 사랑해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분노가 와르르 무너졌다. 나를 지배하던 충동이 일순간에 가라앉았다. 핏줄의 저주에 걸려든 순간이었다. 내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는지 새삼스레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결코 용서하지 못하리라는 걸 예감한 순간이었다.  

나는 유진의 엄마였다. 유진은 내 아이였다. 그것은 세상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하릴없이 성모 마리아 앞에 꿇어앉아 묻는다. 어머니, 지혜로운 어머니.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 참혹한 폭력에서 살아남아 새끼를 낳은 질긴 생명력이 경이로웠다. 다 자란 새끼를 곁에 끼고 다니며 밥을 얻어 먹이는 어미로서의 책임감이 서글펐다. 자신의 허기를 누르고 새끼가 다 먹을 때까지 물러나 기다리는 참을성이 감탄스러웠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세상이 용서하지 않는 죄일지라도 기꺼이 용서하고 안아주는 곳'이 가족의 정의 중 하나라면, 유진은 가족의 품에서 용서받고 사랑받고 지낼 수 있는 걸까?

 

유진을 바라보며 어쩔 도리 없이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세월을 살아냈던 지원의 삶은 하루하루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두 번째 살인 현장을 목격한 그녀는 결국 아들을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이 세상에 살아서는 안 될 놈이야" 

"그때 끝냈어야 했어" 

"그때, 죽었어야 했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

 

 

아들에게 자살을 유도하고, 자신도 함께 떠나려고 했던 그녀. 결국 아들의 손에 처참히 살해당하고 만다.

 

방송을 탔던 희대의 살인마들, 존속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사이코패스들, 그들이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도화지 같이 희었던 갓난아기 시절부터 그들의 성향은 그랬던 걸까?

뱃속부터 편하게 육아했더라면,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환경이었더라면, 온 가족이 함께하는 따뜻한 가족의 저녁시간이 있었더라면, 공부와 성적에 아이를 옥죄지 않았더라면, 친구들과 더 많이 놀게 허락했더라면, 차별을 하지 않았더라면, 끔찍한 사건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부모의 폭력이 없었더라면, 따돌림을 당하며 소외당하지 않았더라면, 부모가 맞벌이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빠가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었더라면, 처참한 전쟁터에 가지 않았더라면, 복지가 잘 되는 나라였다면,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였다면, 빈부의 차이가 없는 사회였다면,...........

 

수많은 '그랬더라면'이 그들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범죄다. 그들의 과거가 어쨌든, 의도가 어쨌든 처벌받아 마땅한 일이다. 

가족이라면 사랑의 마음으로 치료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고통스럽겠지만 처벌받을 것은 받고, 병원도 다니고, 치료도 받고, 약도 먹이고, 사랑을 주면서 그래야 할 것 같다.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도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조금 줄일 수는 없는 걸까?

전적으로 누구의 책임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잘못된 성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이, 나라가, 사회가, 가정이 손 놓고 있을 문제는 아니여 보인다.

 

이 책의 결말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고, 마음이 순수하고 착한, 꿈이 있었고 매 순간 열심히 살았던 청년 해진의 죽음이 이해되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며 자주 느끼는 불쾌하고 슬픈 감정을 책의 말미에 또 경험했다.

약한 사람, 착한 사람, 열심히 산 사람, 요령 없는 사람, 빽 없고 돈 없는 사람이 늘 피해를 입는 세상 말이다.

 

살인마 이춘재 대신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복역한 윤 씨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늦게나마 억울한 누명을 벗었지만, 잃어버린 무수한 세월의 억울함과 고통은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이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제 내가 왜 인간의 '악'에 관심을 갖는지에 대해 대답할 차례다. 평범한 비둘기라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대처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분신 유진이 미미하나마 어떤 역할을 해주리라 믿고 싶다. 

_작가의 말 "인간은 살인으로 진화했다" 중

 

 

정유정 작가의 무거운 책 세 권을 연달아 읽었다. <28>, <7년의 밤>, 그리고 <종의 기원>까지.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범죄와 사이코 패스를 다루는 프로그램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나의 마음과 정서가 우울하고 무겁게 가라앉는다.

 

이런 콘텐츠들이 그 안에서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들을 찾아내며, 사회악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하나의 역할을 해주리라 나도 믿고 싶다. 

 

 

 

 

 

 

 

그리움의 문장들

 

림태주

 

 

 

<2021, 행성B>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하는 길. 남편이 <그리움의 문장들>에 나온 글이라며 소개해 준 가족의 정의.

끝까지 읽다 보니 맘 한편이 짠해지며 눈가가 촉촉해진다.

 

 

가족의 정의 

욕실 헤어드라이어의 줄이 꼬여 있을 때 플러그를 빼 풀어두는 것. 내가 설거지를 하지 못하더라도 밥그릇에 남은 밥풀이 말라 달라붙지 않도록 물을 개수대에 놓아두는 것. 머리를 감고 수건을 두르고 나올 때 수건걸이에 새 수건을 꺼내 걸어두고 나오는 것. 치약이 떨어지고 화장지가 떨어지면 새것을 꺼내 바꿔두고 나오는 것. 화장실 휴지통이 가득 부풀어 있을 때 엄마를 부르기 전에 새 비닐봉지를 먼저 부르는 것. 세탁기 정도는 스스로 돌릴 줄 아는 것. 벗어놓은 양말과 빨랫감들이 방바닥이 아니라 세탁바구니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 수챗 구멍을 막고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 담아 고인 비누 물이 잘 빠져나가게 해 주는 것. 방바닥에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 있거나 옷장 속에 들어가 있을 때 그게 신데렐라가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누군가의 식사량이나 웃음의 양이 줄었을 때 그것을 알아채는 것. 웃음이 줄어든 대신 근심과 외로움의 양이 늘지 않도록 마음의 눈금을 세심히 살펴주는 것. 아프게 말하고 몰라주는 말을 하는 때가 있더라도,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끝까지 믿어주는 것. 다투었더라도 마주 앉아 밥을 나누고 서로의 물 잔에 물을 채워주는 것. 빗소리 뒤에 숨어서 한숨을 내쉬는 엄마가 보이거나 자주 창밖의 석양을 내다보는 아빠의 등이 보일 때, 그분들의 인생을 헐어내며 내가 살아왔다는 걸 고요히 생각해 보는 것. 세상이 용서하지 않는 죄일지라도 기꺼이 용서하고 안아주는 곳. 끝까지 내편이 되어주는 곳. '우리'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곳. 나를 넘어 세상으로 가는 길이 시작된 곳. 신이 다 돌볼 수 없어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곳. 하나가 없으면 전부가 없는 곳.

<그리움의 문장들_림태주>

 

 

상대가 알아주지 않아도 서로를 배려하는 사소한 행동들을 하며, 의견 차이와 서운함을 느끼더라도 끝까지 너를 믿겠다는 약속을 지켜내는 것, 가족이라면 그래야 하는 것이다. 

좋을 때만 행복하고 궂을 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가족이 아니다. 행복하고 슬픈 두 지점을 넘나들며 생기는 많은 순간들이 아마 그리움 생산의 가장 큰 재료 들일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에 가족의 정의가 삽입되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움_ <Daum 사전>

 

1.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애타는 마음.

2. 과거의 경험이나 추억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

 

사전적 정의로 빠르게 생각해보니, 1번 애타는 마음은 떠나간 사람들, 2번 애틋한 마음은 가족이 먼저 떠 오른다.

사람으로 한정 짓지 않고 생각해 보면, 1번은 간절했던 꿈이나 동경하는 것들, 2번은 행복했던 지난날의 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그리움을 볼 수는 없지만 냄새 맡을 수는 있다. 그리운 것들은 모두 냄새로 온다. 아기 냄새, 엄마 냄새, 겨울바람 냄새, 설탕 냄새, 생선 냄새, 고양이 털 냄새, 자운영꽃 냄새, 비 냄새, 유자 냄새, 재스민 냄새, 사람 냄새. 그렇게 실제적이고, 생생하고, 곁에 있다. 나는 그것들을 느끼고, 내 사랑은 모두 그리운 것들의 고유한 냄새로 온다.

<그리움의 문장들_림태주>

 

 

저자가 수집한 그리움에 대한 글을 읽어보니, 그리움이란 늘 내 곁에서 나를 채우는 그 어떤 것임을 새삼 느낀다. 

때론 아프기도, 때론 기쁘기도 한 아련하고도 애틋한 것들.

 

세월을 살 수록 그리움의 무게는 더해진다. 아쉬운 것도 추억할 것도 겹겹이 쌓여간다.

 

 

 

꽤 오래전, 친정아버지 생신날 아침, 장문의 문자를 아빠에게 보냈다.

죄송한 마음, 감사한 마음, 사랑의 메시지를 담아서.......

잠시 후 울린 폰 알람은 나를 길거리에 주저앉아 울게 만들었다.

 

"고맙다. OO이가 태어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구나. 아빠는 너무 행복했다. 오늘은 마음껏 그때를 그리워하며 추억하련다..... 나도 사랑한다."

 

유난히 예민했던 나의 첫 아이. 그 아이가 태어나던 날의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나의 아빠.

한동안 딸의 직장생활을 위해 고된 육아로 고통받았을 나의 부모님. 행복했지만 힘들었을 그때를 '오늘은 맘껏 그리워하겠다'는 말이 왜 그리 슬펐는지 모르겠다.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라서 아껴서 그리워합니다. <그리움의 문장들_림태주> 

 

 

두해 전 여든 고개를 넘기신 아버지.

아껴두었던 지난날의 추억과 그리움을 이제는 맘껏 꺼내 특별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시라고 마음을 전해 본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표현들로 진한 그리움을 전한 작가의 편지와 엽서 덕에 나의 그리움 목록도 풍성해졌다.

 

생각해보니, 그리움을 의식적으로 밀어내려고 한 적도 있는 것 같다.

슬퍼지기 싫어, 우울해지기 싫어, 혹은 삶이 바쁘다는 핑계와 감성적으로 되는 상황을 피하려.

 

비가 오는 날, 우울한 날, 낭만적인 장소에서만 거하게 날을 잡고 깊숙한 그리움을 꺼낼 노력을 했던 것도 같다.

 

고 이영훈 님의 아름다운 가사 <옛사랑>의 한 구절처럼,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떠오르는 그리움의 생각들을 멈추려 노력하지 말고, 오히려 그리움의 문장들을 기록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처럼 말이다.

 

살아가며 많은 추억을 쌓고 순간들에 소박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 그리움의 부자가 되는 것. 

추억할 것이 많은 사람의 노후는 더 따뜻하고 행복할 것 같으니 말이다.

 

그리움의 힘을 끝까지 믿으라는 것. 그 사람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면 그는 아직 지지 않은 사람이고, 충분히 살아갈 힘이 있다는 증거라는 것 

<그리움의 문장들_림태주> 

 

 

 

 

 

 

 

 

7년의 밤

정유정

 

 

<2011, 은행나무>

 

얼마 전 방구석 1열에 소개된 영화의 원작이기도 한 <7년의 밤>

영화를 먼저 볼까 고민하다 책을 먼저 들었다.

 

 

 

현수의 사실

 

한 때 야구선수, 포지션 포수. 현재는 댐 보안팀장.

마티즈가 갑옷처럼 느껴질 정도의 거구. 강력한 팔의 힘.

상습적인 술꾼. 면허정지 상태에서 음주운전 중 달려 나오는 여자아이를 차로 친 후 질식사 시킴.  호수에 사체 유기. 

물에 빠져가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댐 수문을 열어 저지대 사람들의 수많은 목숨을 하루아침에 앗아간 주인공.

교도소 수감 7년 만에 사형집행을 선고받은 남자.

 

이 모든 것이 사실이다. 당신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그 남자에 대해서.

일말의 연민이라도 느낄 수 있겠는가?

 

 

 

현수의 진실

 

사실에 감추인 이 남자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가?

 

월남전에서 한 쪽 팔을 잃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불행하게 자라온 소년. 

아버지의 신발을 우물에 던지며 그의 죽음을 바랐던 아이. 실제로 그 우물에 빠져 생을 마감한 아버지.

어린 시절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현수.

 

2군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야구 경력. 

신혼여행길 교통사고 부상으로 1군으로의 진출에 실패하고 인생을 걸었던 야구를 접어야 했던 남자.

집 한 채 없는 초라한 현실과 무능력한 남편이라는 타이틀. 그를 피 말리게 괴롭히는 아내의 잔소리. 

문득문득 나타나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술.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되는 그의 전부였던 아들 서원.

 

한 순간의 실수로 오영제라는 남자의 딸을 죽이게 된다.

오영제는 상습적으로 아내와 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이코 패스.

딸이 그의 폭행을 피해 도망가던 중 현수의 차에 치이게 되고,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놀라 아이의 입을 틀어막으며 의도치 않게 살해를 저지르게 된다.

자기 세계가 파괴되었을 때 보이는 미치광이와 같은 영제의 칼날로부터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남자.

 

물론, 불행한 과거의 트라우마가, '실수로'라는 타이틀이, 아들에 대한 사랑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오영제라는 인물의 신들린 복수가 아니었다면 그는 마을 전체를 물지옥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아내 영주의 죽음도 없었을 것이고, 아들 서원은 7년 동안 떠돌아다니며 고통스럽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사형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까.

 

"물론, 자살도 생각했네. 매일, 매 순간. 실행하지 않은 건,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구원이기 때문이었어.
종교를 거부한 것도 비숫한 이유고. 내겐 신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게 할 자유가 있네.
내가 기다리는 건 구원이 아니라 운명이 나를 놓아주는 때야.
삶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순간......... "

_<7년의 밤> 중

 

 

영화 <밀양>에서 자신의 아들을 살해 후 복역하고 있는 범인이, 신께 이미 용서를 받았다며 평화로운 얼굴로 자신 앞에 앉은 모습을 본 여자(전도연 분)는 종교에 대한 배신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거의 미쳐버리게 된다. 

 

신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게 할 자유. 구원을 바랄 수 없는 처지. 

현수는 <밀양>의 뻔뻔한 살인자와 달리 자신이 저지른 사실에 대한 죗값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7년의 밤을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이며,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_<작가의 말 중>

 

 

 

승환이 알고자 했던 사실과 진실 

 

사건를 소설로 담은 승환은 사실과 사실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알아내려 애쓴 인물이며 부자의 충실한 조력가이다.

그러나 현수가 저지른 사실은 팩트다.

그 사이에 숨겨진 진실들 따위가 이 사실을 뒤집을 수도, 상황을 역전시킬 수도, 현수의 사형집행을 되돌릴 수도 없다.

 

이 부분이 마음이 아팠다.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주인공이 기자를 권총으로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의 진실 따위는 그녀를 구제하지 못했다.

신문기사와 TV 보도의 모든 사실들은 그녀를 빠져나올 수 없는 회오리 속으로 끌어당겼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이면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가 한사코 들여다봐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_<작가의 말 중>

 

 

 

사실과 진실 사이.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사이를 들여다보는 것은 어렵고 불편하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듣고 있는 것, 보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사실과 진실 사이의 그 깊숙한 이면을 들여다 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꽤 긴 장편이지만 두 번을 내리읽었다. 

 

한 번 읽고는 영화도 챙겨봤다.

원작의 내용을 담기에 영화 러닝타임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결말의 내용도 조금 다르다.

 

그러나 책과 영화가 말하고 있는 메시지와 무거움은 어느 정도 일치해 보였다.

책과 영화 모두 여운이 남는다.

 

 

 

 

 

 

 

나를 견디는 시간

이윤주

 

 

<2019, 행성B>

 

 

삼십 대가 쓰고 삼십 대가 읽는 <나의 서른에게 시리즈> 중 1편이다.

삼십 대가 아니라 살짝 민망하지만 읽어보았다. 

커버의 은은한 느낌, 가볍게 잡히는 책 크기와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가 사랑스럽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견디고 버텨야 하는 하는 일이라는 건 삼십 대도 마찬가지. 

그녀의 나를 견디는 시간 안에는 책과 글쓰기가 있다.

 

아픈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정확히는, 아픈데 내가 아픈 것을 아는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_이윤주 <나를 견디는 시간> 중

 

 

권정생의 소설 <몽실 언니>를,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제임스 설터의 단편 <어젯밤>을, 페르난두 페소아의 소설 <불안의 서> 등을 읽으며 위로와 힘을 얻는다는 그녀. 역시 국문학도다. 소개된 책 중 <몽실언니> 외에는 낯설다. 

찾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삼십의 문턱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

그 시절을 어찌 견뎠을까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잘도 견뎌냈다.

나만의 비밀스러운 시간들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소중한 책, 장 그르니에의 <섬>이 생각났다.

 

내가 인간의 삶을 일종의 광기로 생각하고 이 세상을 티끌 하나 남김없이 사라지는 한 줄기 수증기라고 생각했던 그때, 그 쓰잘 데 없는 주제(고양이)에 대해 심각하게 연구하는 것보다 더욱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러한 연구는 우리를 살아가게 해 주고 헛되이 나마 오래 살도록 도와준다. 

 

앞으로 다가오는 나날을 어떻게 해서든 견디어내고 싶다면, 그 어떤 것이건 하나의 대상에 다만 몇 시간이라도 열중해 보라. 아마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으리라.

 

알고 보면 우리가 배우는 그 수많은 것들은 모두 무시해 버려도 좋을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끝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인내의 놀이'를 배운다는 것은 결코 그대로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장 그르니에 <섬> 중  

 

 

 

이 블로그 제목은 책 <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를 견디는 시간에 하는 인내의 놀이________________.

 

 


 

서른이던 그렇지 않던, 저자의 <나를 견디는 시간>들을 엿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작가의 솔직하고 진정성이 엿보이는 글을 읽으며 공감했다.  좋은 느낌으로 남은 책이다.

 

 

 

 

 

 

28

정유정 장편소설

 

 

2014.2 은행나무

 

내가 사랑하는 노래 <28>과 같은 Title.  

제목부터 궁금했다. 

 

인수공통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가상의 도시 화양에서 일어난 끔찍하고도 참담했던 28일의 이야기이다.

 

광견병처럼 사람과 동물 사이에 상호 전파되는 전염병.

코로나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때 소설을 접해서인지 더 긴장감 있게 글을 읽었다.

 

 

 

절대악의 존재 동해의 악행들과,

재앙의 혼란 속에서 고개를 든 후 거침없이 행해지는 온갖 야만적인 일들의 연속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구역질 나게 악랄한 일들이 벌어졌던 과거, 그리고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작가가 재앙 속에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생존을 향한 살아있는 존재들의 처절한 노력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생존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내려는 울부짐.

기자 윤주의 시선과 생각이 담긴 글에서 그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살아남기'는 윤주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목표였다. 그 외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다.

 

그 손이 떨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다. 재형은 처음부터 그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무섭다고 호소하고 있었는데. 살아 있어 무섭고, 살고 싶어서 무섭다고.

 

그때 살려고 애쓰는 것 말고 무엇이 가능했겠느냐고,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가 쉬차를 버리지 않았다면 쉬차가 그를 버렸을 터였다.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인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그들은 누군가를 향해 모이는 것이었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줄 누군가. 시선을 맞대고 앉아 함께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뭔가를 나눠 먹을 수 있는 누군가, 시시각각 조여드는 죽음의 손을 잊게 해 줄 누군가를 만나고자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가 그리웠다. 밤은 미치도록 길었다.

 

 

 

수의사 재형

어린 시절, 사랑하는 개들을 살리지 못했던 죄책감으로 유기견들을 보살피며 드림랜드라는 곳을 운영한다. 

종에 관계없이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지키고자 헌신했지만,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개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은 결국 그를 파멸의 길로 몰고 간다.

 

작가의 말을 보면 이 이야기는 우리의 이기심으로 참혹하게 죽어간 동물들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이야기이며, 인간을 넘어 생명을 지키고자 헌신하는 존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인간일 거라는 희망에서 소설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희망의 끈을 쥐고 끌고 가는 인물은 바로 재형일 것이다. 

 

나는 때로 인간 없는 세상을 꿈꾼다. 자연의 법칙이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곳, 모든 생명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세계, 꿈의 나라를__________. (재형)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온몸으로 버티고 살아야 할 119 구조대원 기준.

개들에게 처참히 살해된 아내와 전염병으로 잃은 딸,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목격한 간호사 수진의 끔찍한 최후.

그것도 모자라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극적으로 얻은 삶.

 

살아남기가 이토록 힘들다면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아니, 누가 살아남으려 하겠는가.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주인공 쿠키, 스타, 링고 세 마리 개들.

인수공통 전염병이 상징하듯 이들은 인간들과 함께 사는 또 다른 가족이다. 서로를 보듬을 수도, 서로를 해칠 수도 있는.

개들의 세계에서도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노력은 인간과 다르지 않았다. 

인간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감정 표현이 너무 생생해, 그들의 시선으로의 감정이입이 어렵지 않았다.

 

스타가 코를 들고 목을 문질러주거나, 입술을 핥아주거나, 온화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면 링고의 가슴에는 한 여름 밤하늘처럼 찬연한 별들이 뜨고는 했다. (링고)

 

 

 

직접 눈으로 보듯, 내가 그 인물이 된 듯 , 실감 나는 표현과 묘사는 한강의 소설을 읽으며 감탄했었던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또 다른 작품 <7년의 밤>과 <종의 기원>이 궁금하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재미와 그 안에 알맹이가 담긴 소설일 거라 생각하며 기대를 가져본다.

 

 

 

 

 

인생은 소설이다

_기욤 뮈소

 

 

 

달러구트 꿈 백화점

_이미예

 

 


 

기가 막히게 창의적이고 기발한 이 두 소설은 다른 결의 소설이지만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인생을 소설에 비유한 한 권의 책과 꿈을 다룬 또 다른 책.

 

 

 

꿈과 꿈이 동음이의어인 것도 신기하고요. 그러고 보니 영어로도 dream은 dream이군요.

그럼 저는 꿈에서 꿈을 찾은 셈인가요? <달러구트 꿈 백화점>

 

픽션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건 없으니까. 인간이 현실 속에서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픽션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마치 실존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결과적으로 실존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인생은 소설이다>

 

태오의 모험을 통해 나는 강력한 사랑의 증거를 보았습니다. 현실에서도 소설 못지않은 상상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죠. 만약 현실에서 소설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영원히 가슴에 아로새겨질 감동의 순간으로 남을 겁니다. 태오는 내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한 것이지요. <인생은 소설이다>

 

이 세상에서 믿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달러구트 꿈 백화점>

 

 

 

내가 소설 속 인물이라면?

나의 삶이 꿈속이라면?

 

그렇다면 인생을 내가 하고픈 대로 이끌어 나갈 수도, 멈출 수도,

믿을 수 없는 일들을 해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시간여행을 하거나 꿈을 지배하는 소설, 영화와 드라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하며 현실감이 없다고 말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의 주변에도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에 없다가도 태어나고, 조금 전까지도 존재하다가도 죽음을 맞는 삶의 흐름을 결국은 받아들이게 되듯,

이 도시에 사는 모두는 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태어나고 죽는 것도

뉴스에 보도되는 끔찍한 일들도

평생 내 돈으로는 살 수 없을 화려한 아파트들도

믿을 수 없이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도

1년 넘게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는 현실도

전 세계를 날아다니는 비행기도

쓰러질 정도로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도 

작은 씨앗에서 돋아나는 조그맣고 푸른 새싹도 

 

말도 안 돼. 아닐 거야. 어떻게 이런 일이? 신기하네. 꿈과 같다.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일인데?

라며 말하고 느낀다. 정말 하루에도 여러 번씩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어찌 보면 소설이나 꿈속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어쩌면 우리가 삶을 마치는 그 순간, 소설이 끝이나거나 꿈에서 깨어나는 것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렇다면, 

소설을 써나가듯이 나의 인생을 내가 원하는 길로 창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꿈을 꾼 것 처럼 나쁜 일들은 털어버리고, 행복한 일들은 간직하면서 말이다.

마술사처럼, 소설가처럼.

 

 

소설을 끝냈다. 나는 삶으로 돌아간다. <인생은 소설이다>

 

우리 안에는 소설가 기질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설을 쓴다는 건 결국 숙명에 반기를 드는 것이니까. <인생은 소설이다>

 

 

 

밀리의 서재를 이용해 보니,

 

종이책을 선호하는 나는 전자책이 더 좋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종이책을 가지고 다니는 불편함 때문에 책 읽을 기회를 던져버렸던 그 순간들.

짬 시간에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점이 좋은 것 같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서재에 없는 경우가 많아 아쉽긴 하지만, 비싸지 않은 가격에 틈틈이 독서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니 그동안 내가 멀리했던 장르나 청소년 소설, 자기 계발 책들이나 부담 없는 책들 위주로 골라 읽으면 될 것 같다. 

 

실제로 남편의 경우는 밀리의 서재를 이용한 후,

책 읽는 시간이 급격히 늘어나 그 부작용으로 눈 뻐근함과 어깨 통증이 있을 정도다.

 

이제는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말은 정말 핑계가 될 듯 하다. 

이렇게 쉽게 책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지독히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묘사만으로 극도의 슬픔을 자아내는

김훈의 단편 소설 <화장>을 다시 읽어 보았다.

 

 

"운명하셨습니다"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던 아내가 오랜 고통을 마감했다.

그녀 옆에서 온갖 수발을 들어가며 희생한 그의 남편, 오상무.

 

병시중과 전립선염으로 고생하는 짓눌린 그의 행색과는 다르게

그는 잘나가는 화장품 회사 마케팅팀의 능력 있는 상무다.

 

그는 시종일관 고요한 감정선을 유지한다.

아내의 더러워진 기저귀를 처리할 때도, 아내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도, 장례식장에서도, 아내의 시신을 화장할 때도,

아내가 사랑했던 개 보리를 안락사 시킬 때도, 남몰래 흠모하는 회사 사원 추은주를 대할 때도 말이다.

 

그는 너무 고요하다. 너무 절제되어 있다.

소리치고 화내고 울분을 터트리지 않아 오히려 짠하다.  더 초라하고 슬프다.

 

 

 

삶과 죽음

생기 넘치는 젊음과 축 늘어진 늙음

젊은 여성의 화장(化粧)과 죽은이의 화장(化粧)

능력있는 상사와 초라한 가장

선과 악

이성과 감성

일상과 일탈

중대함과 하찮음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른 두 극.

 

그가 어느 하나로 결정해야만 하는 화장품 광고 문안 '내면 여행'과 '가벼워진다'처럼

그는 늘 두 가지의 모습을 마주하며 서있다.

마지막 결정은 하나.

 

그러나 인간은 둘 중 완전하게 '이거다' 하고 선택하지 못하기에

인간은 약하디 약한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슬픔과 고통은 오롯의 개인의 몫이다.

 

아내가 두통 발작으로 시트를 차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도,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나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끈을 잘라낼 수는 없다.

그 질기고도 가는 끈은 오롯이 혼자 만이 감당해 내야 하는 것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내친김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 <화장>을 보았다.

 

조금은 다른 설정과 스토리 때문인지 책에서 느낀 감정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배우분들의 절제된 감정 연기가 좋았다.

 

큰 소용돌이가 없는 잔잔함 속 인간의 죽음과 슬픔

사실적 묘사와 표현들이 오히려 슬프고 아리게 다가온 책이다.

 

 

 

 

 

 

 

 

 

 

두 해전 읽었던 책.

이 책을 읽고 책 읽는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고마운 책.

요즈음 책 읽기에 게을러진 나를 반성하며 다시 꺼내 들었다.

 

다시 봐도 역시 새롭고 좋다.

나의 잠자고 있던 촉수가 깨어나는 듯하다.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고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마음도 다시 생긴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냐.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카프카_책은 도끼다 (박웅현) 중>

 

 

책 한 권의 위대함이다.

 

다독도 좋지만 그동안 읽었던 책들 중 선별해서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작가가 추천해 주는 책들 중 아직 읽지 못했던 것들도 몇 권 마음에 담아 두었다.

 

 

 

 

<2007, 밝은 세상>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의 과거에서 바꾸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몇 가지 바꾸고 싶은 선택들이 있다. 심지어 얼마 전의 선택에서도 아쉬움이 남는 일이 있었다. '단 몇 일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까......

지금 인생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인생의 굵직한 사건이든 사소한 일이든 바꾸고 싶은 일들이 저마다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캄보디아 노인에게 받은 10개의 알약으로, 3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된 한 남자 엘리엇의 이야기이다. 그의 바람은 그가 정말 사랑했던 한 여인, 일찍 목숨을 잃은 일리나를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그것이었다. 그렇게 그녀를 마주한 그는 불의의 사고로 죽은 그녀의 목숨을 건질 계획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과거가 바뀌는 순간, 미래의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바뀌어져 있고 또 다른 시련들은 찾아온다. 작은 결정 하나가 전혀 다른 인생의 길로 인도하게 되는 것이다. 픽션은 픽션이기에 이 책의 결말은 결국 목숨을 잃었던 일리나도, 폐암에 걸렸던 엘리엇도 살아남아 재회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나에게는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리 없고, 혹 시간 여행이 허락되어 미련이 남는 일들을 다시 선택한다고 한들 그것이 나를 더 행복하고 안전한 상황으로 안내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과거, 예측할 수 없는 미래! 그래서 우리는 불행하고 슬픔에 젖어있는가?

 

 이 책은 현재 인생에 대한 나의 태도와, 주어진 일에 대한 선택이 앞으로의 나를 완전히 다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로 들렸다. 그것이 비록 사소한 일일지라도 말이다.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미련을 버리자. 앞으로 삶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아무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자. 순간순간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견문과 지혜를 넓히자. 그리고 신중하자. 그리고 나서는 후회와 미련은 버려라. 그때 그것은 최선이었고,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이 책은 각 파트의 처음마다 명언들을 소개해 주고 있다. 그 의미를 사색하는 재미도 있었다 

 

13. 우리는 두 눈에 붕대를 감고 현재를 통과한다. 시간이 흘러, 붕대가 벗겨지고 과거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비로소 살아온 날들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깨닫는다. _밀란 쿤데라

 

14. 당신이 아무리 피하려고 애써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당신이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_라마나 마하르쉬

 

24. 당신 앞에 여러 갈래 길이 펼쳐지는데, 어떤 길을 선택할지 모를 때, 무턱대고 아무 길이나 택하지 마라. 차분이 앉아라. 그리고 기다려라.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꼼짝하지 마라. 입을 다물고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 그러다가 가슴이 당신에게 말할 때, 그때 일어나 가슴이 이끄는 길로 가라. _수잔나 타마로 

 

 

 

 

 기욤 뮈소의 소설은 2016년 우리나라에서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좋아하는 두 배우 김윤석, 변요한의 연기가 볼만했다. 아쉬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나름 재미있었던 영화이다. 

기욤 뮈소, 그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소설 <구해줘>도 읽어봐야겠다. 

 

 

 

<2010, 문학동네>


 거리를 지날 때 바라보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예쁘고 화려한 젊은 여성, 멋지고 잘생긴 남성들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내 눈에 깊이 새겨지는 사람들은 희끗희끗한 머리와, 굽은 등, 깊은 세월의 주름을 가진 지친 얼굴의 노인들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이를 먹어가는 나 그리고 조금 더 미래의 상황들을 떠올려보며 그들을 한없이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은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열 세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데 이 중심에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녀는 전체 이야기의 주인공 이지만, 어떤 단편에는 스쳐 지나가는 인물처럼 묘사된다.

이런 책의 구성이 참 독특하고 기발하다. 무게있는 주인공이 아닌 다양한 주변 인물들이 스치듯 바라보는 그녀에 대한 묘사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이 때문에 올리브를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젊어서는 수학교사였고 정년퇴임한 여성이다. 덩치가 크고 고집 세며 무뚝뚝하고 사과하지 않는 성격 덕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정하지 않고, 강인하고 변덕스러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녀를 봤다면 기가 세서 함께 있기가 조금 어려운..... 그러나 쿨하고 재지 않고 시원시원한 이웃들과 닮아있는 듯한 느낌이었을 것 같다.

 

 당당하게 열심히 살았고, 아들 크리스토퍼에게 엄격했지만 나름대로 사랑을 쏟으며 최선을 다해 양육했던 그녀에게 닥친 노후는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다정한 남편 헨리의 요양원 신세. 아들의 이혼과 재혼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냉담한 아들, 크리스토퍼.............

크리스토퍼의 초대로 일말의 희망과 기쁨을 느끼는 듯 했지만, 도시에서 며칠 지낸 그녀는 여벌을 챙기지 못해 너덜너덜해진 그녀의 스타킹처럼 상처 받은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늘 부족하고 실수투성이다. 어느 부모나 자식을 양육함에 최선을 다하고 사랑하려 애쓰지만 그들을 향한 과도한 기대, 그리고 모본을 보이기엔 부족한 성품 등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식들에게 실망과 상처를 주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고 부모의 인생은 실패작인가? 자식들을 위해 살아왔던 그 모든 인생이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것이었던가?

그건 아닐거다....... 부족한 인생 또한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깨닫는 순간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의 삶은 참으로 슬프고 또 슬프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 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작은 기쁨 중>

 

 

 인생은 어떤 길을 따라, 그 길을 타고 가는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크리스토퍼의 집이 지어지기 전부터 수십 년 동안 쿡스 코너에서부터 테일러네 들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던 것처럼, 그 뒤부터는 그 자리에 아들 집이 있었고, 크리스토퍼가 거기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아들은 이제 거기 없었다. 다른 길. 이제는 그 다른 길에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정신은, 혹은 마음은, 둘 중 어느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요즘 좀 느려서 보조를 맞추지 못했고, 그녀는 점점 더 빨리 도는 공위에 올라가려는 뚱뚱한 들쥐가 된 기분이었다. 그녀는 공을 네 발로 긁을 뿐 그 위에 올라가지는 못했다._<단편 다른 길 중>

 

 

 중년의 그들, 전성기의 그들. 그들은 그 순간을 조용히 기뻐할 줄 알았을까? 필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정작 인생을 살아갈 때는 그 소중함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올리브는 지금은 그 추억을 건강하고 순수한 것으로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축구장에서의 그 순간들이 올리브가 지녔던 가장 순수한 추억들인지도 모른다. 순수하지 않은 다른 추억들도 있었으니까._<단편 튤립 중>

 

 

 매일 아침 강변에서 오락가락하는 사이, 다시 봄이 왔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봄이, 조그만 새순을 싹틔우면서.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봄이 오면 기쁘다는 점이었다. 물리적인 세상의 아름다움에 언젠가는 면역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사실이 그랬다. 떠오르는 태양에 강물이 너무 반짝여서 올리브는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_<단편 강 중>

 

 

 오,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내 차례가 돌아올 타르트 접시처럼 사랑을 경솔하게 내던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다. 아니, 사랑이 눈 앞에 있다면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녀의 타르트 접시는 헨리의 선량함으로 가득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올리브가 가끔 부스러기를 털어냈다면, 그건 그녀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것을. _<단편 강 중>

 

 

 

 한 인터뷰에서 일상적인 매일의 삶이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존중할 만한 것이라는 점을 독자들이 느끼길 바란다고 한 작가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매일의 사소한 일상, 나는 그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했지만 존중이라는 면에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_<옮긴이의 말 중>

 

 

 이 책을 읽는 중간중간, 강풀의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모티브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같은 느낌을 주는 구절과 내용들이 있었다. 이 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천천히 두 번 읽었다. 이제 막, 앞의 학년이 바뀐 나의 나이,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아들, 오랜 고통 끝에 스무 살의 찬란한 성인이 된 딸.........

쉽지 않은 삶, 실수 투성이의 삶이지만 존중받고 싶다는 생각과 더불어 나의 부모, 남편, 자식, 이웃들의 삶도 존중하는 삶의 태도를 끊임없이 상기하며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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