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도우.
그녀의 첫 번째 산문집이다.
예쁜 책.
은은한 표지와 나뭇잎 모양의 디자인.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하루를 털어내고 밤에 쓰는 글은 감성적이다. 센티하다. 철학적이다. 오글거린다.
내 경험상도 말이다.
연애시절 수없이 썼던 편지들은 주로 밤에 썼었다.
지금 그것들을 읽는다면, 아마 부끄러워 어디로 숨어버릴지도 모르겠다. ㅎㅎ
하지만 밤의 기운을 빌리지 않는다면
내 맘속의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가 망설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산문집은
작가의 이야기, 생각, 추억들을 진솔하게 써 내려간 글 모음집이다.
중간중간 나뭇잎 소설이란 타이틀로 삽입되어 있는 짧은 소설도 좋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잠옷을 입으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 세 소설 속에서 만났던
이름들, 장소들, 이야기들이 있어 더 친숙하고 반가웠다.
요즘 즐겨보는
영화 이야기를 하는 <방구석 1열>이라는 Jtbc TV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장성규 분이 도입부에서 영화소개를 할 때,
영화의 개봉일에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소개해 준다.
이를테면,
영화 로마의 휴일 개봉일은 '로마 공주 솔비의 생일인 ○ 월 ○ 일에 개봉'을 했다던지.....
전혀 관련없음의 사건들이, 단지 같은 날이라는 이유로 의미가 부여되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준다.
자꾸 보다보니 오늘은 또 무슨 에피소드일까 내심 궁금하기도 하다.
"벚꽃이 환한 봄, 4월 19일입니다. 오늘 날짜엔 과연 어떤 기록들이 남아있을까요?
우선 1956년 4월 19일 할리우드 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의 레니에 3세와 결혼해 왕비가 되었고요.
1960년 대한민국에서 4.19 혁명이 일어났죠.
1964년 같은 날짜에 스포츠카 머스탱이 첫선을 보였고요.
영국 시인 바이런과 프랑스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가 1824 년과 1906년 오늘,
세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멘트를 듣다 보면
'오늘의 부피'라 할까, 페이스트리 빵의 결처럼 겹겹이 포개진 날짜에 미묘한 느낌을 받곤 했다.
달력에 기념할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도 4월 19일의 부피가 있었다.
............
언젠가부터 나는 10월 마지막 날의 부피를 기록하고 있다.
...........
내년 이맘때쯤 또 한 겹 시간의 부피를 쌓을 때까지,
다시 오는 오늘을 만날 때까지, 부디 잘 건너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부피_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중
오늘의 부피라는 글 안에 있는 내용이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생각이다.
페스트리의 겹처럼 쌓여가는 하루의 부피.
그날의 나의 부피. 타인의 부피. 우리의 부피.
우린 같은 날을 살며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장성규 분의 멘트가 실로 놀랍게 의미 있어진다.
의미 있는 날을 정해
나도 그 부피를 기록해 봐야겠다.
이도우 작가,
그녀는
마주하고 앉아 차 한잔 마시며
아니면, 가벼운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오래 수다 떨고 싶은.....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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