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먼저 봤다. 강동원 이나영 배우 주연.
울음을 참으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힘들게 지켜보았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엉엉 소리를 내어 맘껏 울어 본 지 오래된 것 같다.
한 번쯤 그러고 나면 속이 시원할 것도 같은데 말이다.
책은 내용적으로 영화와 조금 다른 부분들이 있긴 했다.
책을 먼저 읽었어도 좋았겠지만, 영화도 매우 인상적이어서 어느 것을 먼저 경험했어도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사형수 정윤수
어린 시절 아빠의 폭력, 자식을 버린 엄마, 끔찍한 가난의 고통 속에 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소년원으로 보내진 그.
시각장애를 갖게 된 동생과 전전긍긍하며 밑바닥 삶을 살다가
세 여인 살인 사건의 주도자로 사형 선고를 받은 남자.
세상에 냉소적인 여자 문유정
대단한 이력을 가진 가족들, 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의 딸이지만
학창 시절,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트라우마와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자 오히려 된통 혼나고
연고 하나로 마무리하려 했던 엄마에 대한 지독한 미움이 더 상처였던,
세 번의 자살을 시도했던 여자.
수녀인 모니카 고모를 통해 교도소를 드나들며 윤수를 알게 된 유정은
그를 점점 알아갈수록 그 인간 깊숙한 곳의 슬픔과 상처를 돌아보게 되고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자신과 닮은 그의 모습에서 누구에게도 얘기 못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고백할 용기를 얻고
쏟아내며 치유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현실에서?
살인범의 외모가 아무리 잘생겼다 한들, 살기가 느껴지는 그 얼굴을 마주하며
그에게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어려운 환경과 사회적인 모순의 피해자일지라도 살인은 죄인 것이다.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처럼 억울한 누명을 썼다면 모를까......
소설은 윤수를 억울한 무죄인으로도, 악랄한 희대의 살인마로도 묘사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느 정도는 악하고, 어느 정도는 선한 모습과 닮아있는 듯하다.
사랑하는 여자의 수술을 돕기 위해 300만 원이 필요하게 되고, 그녀를 만나 얼마간 바르게 살고 있었는데
아는 형의 제의로 딱 한 번만 더 강도짓을 할 결심을 한다.
그러나, 상황은 계획과는 다르게 그 형이 저지른 강간과 두 명의 살인,
그리고 그때 마침 들어오던 파출부를 살해하게 되는 윤수의 범죄로 마무리된다.
두 명의 살인과 강간죄를 뒤집어쓴다. 어쩌면 사형을 선고받지 않았을 그의 범죄.
사형제 폐지에 대한 찬반 논란은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인권문제, 종교, 사회적 안전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입장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던, 이 소설의 경우처럼 잘못된 판결로 인한 사형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나라는 제도는 아직 남아있지만 1997년 이후 실질적으로 집행을 하지 않고 있기에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이기도 하다.
이미 살인 강간의 전과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출소 후 또다시
8세 여아를 납치해 성폭행을 저지르고 신체를 훼손하게 했다.
그 주인공은 (만취상태였고 심신 미약 등을 이유로) 무기징역이 아닌
12년 선고를 받고 올해 출소할 예정이다. 우리는 불안해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악을 만드는 사람은 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그도 한 인간이기에 신 외에는 그의 생명을 건드릴 수 없는가?
잊히지 않는 영화 밀양의 한 장면이 있다.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고 수감되어 있는 살인마를 용서하기 위해 찾아간 신애(전도연).
그러나 자신은 신을 믿고 이미 용서를 받았다며
천사 같은 얼굴을 한 그를 마주한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를 용서하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 살아왔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그런데 그 죄인은 그녀가 용서하기도 전에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신애는 신도 세상도 다 거부하게 된다.
용서란 가능한 것인가?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가?
누구도, 극악무도한 인간이라 해도, 설사 악마의 화신이라 해도
그를 포기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지요.
우리는 모두 전적으로 선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누구도 결백하지만은 않으니까,
우리는 다만 조금 더 착하고 조금 더 악하니까,
산다는 것이 속죄를 하든 더 죄를 짓든 그 기회를 주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한테는 그걸 막을 권리가 없는 거니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_모니카 수녀>
이곳 구치소에 들어와서 저는 처음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았고,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고,
존댓말을 쓰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인자로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제 육체적 생명은 더 연장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제 영혼은 언제까지나 구더기 들끓는 시궁창을 헤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차마 구더기인 줄도 모르고 그곳이 차마 시궁창이었는지 모르고……
저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가져보았습니다.
기다리는 것, 만남을 설레며 준비하는 것, 인간과 인간이 진짜 대화를 나눈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 서로 가식 없이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사랑받아 본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고, 용서받아본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_윤수의 블루노트 중>
구치소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인간 대접, 존중, 행복감.
이 세상에 살면서 느꼈으면 좋았을 그 행복감은 그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세상 가운데 살면서 늘 죽고 싶어 했던 그가,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사형수로서 처음으로 살고 싶은 감정을 느낀 그 순간.
집행일을 마주하게 된다.
너무도 살고 싶었던, 이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선과 악, 삶과 죽음, 진정한 삶의 의미, 사랑과 용서 등에 대한
시끄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니게 하는
무거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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