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이 잘 알려지지 않은 파트리크 쥐스킨트.

작품 속 인물들로 그의 생각이나 가치관 등을 살짝 엿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에세이는 사랑에 대한 그의 단상을 편안하게 쓴 글이기에, 책을 읽으며 그와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베일에 싸여있는 쥐스킨트의 속내를 알 수 있는 책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

 

 

 

이 에세이 속에는 플라톤의『향연』, 스탕달의『연애론』, 필리프 아리에스의『죽음 앞에 선 인간』, 괴테의『서동시집』, 리하르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등 많은 저서들이 인용되고 있다. 쥐스킨트의 그 부러운 박식함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막스 뮐러의 소설 <독일인의 사랑>에서, 한 영혼과 또 다른 영혼의 일치를 느끼는 고귀한 사랑이야기를 정말 감동적으로 읽었었다. 쥐스킨트의 책에서는 그런 종류의 사랑과는 다른 이야기들이 나온다.

흥미롭고 공감 가는 단상들이다.

 

 

 

흥미로운 몇 가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첫째,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끔찍한 병!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랑에 빠진 한 쌍의 연인은 사회적으로 이방인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둘만의 사랑에 집중하다 보니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이 없고 에로스의 성스러운 광기에 사로잡혀 세상을 무시하는 일이 벌어진다.

사랑이 인간사에서 가장 좋은 것이자 아름다운 것임에도 그 이면에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 수 있다.

사랑은 무엇인가? 선인가 악인가?

 

 

또 하나, <진정한 사랑은 자주, 쉽게, 또 겁없이 죽음을 떠올린다. 죽음을 쉽게 비교의 대상으로 삼고, 죽음을 얻으려면 도대체 얼마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계산하는 것이다.>라는 스탕달의 말처럼 이 책은 사랑에 대한 단상이라기에는 사랑과 죽음을 면밀하게 연관시킨다.

사랑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내용의 문학작품들이 많이 있다. 사랑의 고귀한 완성을 죽음 속에서 찾으려는 거다.

어느 정도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나는 사랑을 잃었다고 죽을 만큼 무모하지도 용기 있지도 못하다.

 

에로틱한 자극의 절정이라고 생각한 죽음을 실행하고자 연인과의 자살을 시도했던 클라이스트.

삼각관계 속에서 죽음을 선택하여 사랑하는 연인을 죽음 저 이면에서 기다리고자 결심한 베르테르.

사랑과 죽음을 동시에 결합하고자 했던 트리스탄과 이졸데.

모두 사랑의 완성은 죽음이라 여긴 듯한 그들의 결단. 사랑은 과연 죽음과 같은 것일까?

 

 

 

마지막으로 죽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지하세계로 간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와 나사렛 예수를 비교한 부분은 흥미로웠다. 

오르페우스는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할 수 없어, 단지 정당한 기간의 생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지하세계로 간다. 그리고 지하의 신들에게 겸손한 자세로 설득과 부탁을 하게 된다. 오로지 단 한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말이다.

결국엔 실패하는 이 시도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우리와 비슷하다. 인간적인 사랑은 완전할 수 없다는 의미일까?

 

쥐스킨트는 오르페우스의 사랑을 예수의 그것과 비교한다.

예수는 한 개인이 아니라 아니라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설득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추종을 요구했다. 결국 그는 죽음과 부활로 전 인류를 구원하는 사랑을 이루어 낸다. 나사렛 예수는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의 사랑과 구원은 오르페우스의 인간적인 에로스와는 다르다.

예수의 사랑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쥐스킨트의 시선이 신선하다.

 

 

 

결국 사랑은 죽음을 통해서 끝나게 되는가 ? 아니면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오히려 사랑과 죽음은 같은 것인가?

지독하게 육체적인 것도 사랑인가? 사랑하는 사람만 보이고 남을 무시하는 것도 사랑인가? 이성의 사랑, 동성의 사랑, 연하의 사랑, 연상의 사랑 등등...... 사랑은 참으로 정의 내리기 어렵게 수많은 모습들로 존재한다. 불완전한 채로 말이다.

사랑을 정의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뭐 중요한가? 신이 아닌 우리들은 불완전하고 모순 투성이의 사랑을 할 수밖에 없겠지만, 좀 더 완전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방향을 따라 하루하루 노력하며 사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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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일 출판사_1984, 김은경 옮김>

 


 

가지고 있는 책은 오래 전 품절되었을 아주 낡은 책이다. 연필로 가늘게 밑줄이 그어져 있는 곳곳의 흔적을 보며 젊은 시절의 내가 희미하게 기억난다.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고전, 독일인의 사랑. 언어학자로 더 많이 알려진 막스 뮐러의 유일한 소설이다.

 

|첫번째의 추억 ~ 세번째의 추억

 

이 세 추억은 ''의 어린 시절 회상과, 소년이 사랑할 수 있는 최대의 사랑으로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마리아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어려서부터 병으로 누워있는 연약하지만 품위있고 고상한 정신을 가진 소녀이다. 소년의 사랑은 청년들, 장년들에게는 보기 어려운 진실성과 순수함 그리고 열정이 있다. 우리는 자라면서 남에게는 예의를 갖추고,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온전히 나를 드러내서는 그 사랑이 깨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소년은 그녀가 남이란 생각에 의문을 품는다내 마음 속에 그녀가, 그녀 마음속에는 내가 늘 있는 듯한 감정을 경험한다.

 

|네번째의 추억 ~ 다섯번째의 추억

 

학창시절과 대학 초년의 시절을 보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 그녀를 떠나 있었지만 ''의 환상 속에서 너무나 커져버린 그녀와의 재회를 하게 된다. 그리고 항상 누워있지만 여전히 고귀하고 아름다운 그녀와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집중하고 있으면 참으로 아름답다. 서로의 생각이 비슷할 뿐더러, 다른 생각들이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부드럽게 전달하며 서로 마음의 상함 없이 깊은 대화를 이어간다.

 

사실, (연애시절 그러하진 못했지만) 나는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자녀들, , 종교, 사회적 이슈, 인생, 삶의 가치, 미래 등을 이야기 하는 시간들이 의미 있다. 대화를 하고 나면 새로운 힘이 생기는 듯하다. 거짓 없이 진실 되게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며,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더 좋은 길을 찾으려는 시도는 인생을 즐기는 또 다른 매력이다.

 

|여섯번째의 추억 ~ 일곱번째의 추억

 

순수하게 사랑하는 그들에게도 사랑의 위기는 찾아온다. 주위의 시선들, 부모의 반대, 마리아의 건강악화 등 순수한 사랑을 가로막는 상황들은 너무나 많다. 사랑하는 데 무슨 조건이 그리도 많은지 도무지 사랑이라는 것을 하는게 예나 지금이나 까다롭다그러나 는 한 순간을 잃는 것은 영원을 잃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녀를 다시 찾아간다.

 

사랑이 무엇일지라도, 마리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마리아, 나는 당신이 나의 것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당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추억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꼭 육체적인 사랑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로에게 속해있는 일체감을 느낀다면, 자신과 온전히 일치되는 말들로 이루어진 대화가 통한다면, 서로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영혼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오빠와 누이의 사이 같은 것이든, 아버지와 자식 사이 같은 것이든, 신랑과 신부의 사이 같은 것이든 말이다.

 

통계학자의 말에 의하면 매 시간마다 하나의 사랑이 깨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어째서 그럴까요? 그것은 대체로 이 세상이 부부사이의 사랑 외에는 다른 사람들 사이의 사랑을 전혀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부부사이의 사랑은 영혼의 사랑을 할 때 깨어지지 않고 영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나의 이웃에게, 또 다른 누군가에게 느끼는 이러한 종류의 사랑도 우리는 사랑이라 불러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영혼의 사랑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하죠?” 마리아의 질문에 는 이렇게 대답한다.

 

왜냐구요 ? 마리아! 어린 아이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 봐요. 꽃에게 왜 꽃을 피우느냐고 물어 봐요!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 봐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야만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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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선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좋아하고, 내가 당신을 좋아하므로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다.”

 

세상에... 너무 아름답고 진실 된 고백 아닌가! 이런 고백을 받는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그날 밤 그녀는 하늘로 떠나간다. 그 후, 몇 해가 흘러갔지만 그녀의 사랑은 여전히 그에게 머무른다. 그 사랑의 경험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며 살게 되지만, 오롯이 혼자임을 느끼는 그런 날에......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회상으로 물들게 된다.

 

요즘에 이런 사랑이 어디 있을까? 성경이나 고전에만 가능한 이야기라는 말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은 이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무 욕심 없이, 비교 없이, 순수하게 사랑하는 그 일치감. 그 한 방울의 사랑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는 놀라움. 독일인의 사랑은 세상을 살아가며 어떻게사랑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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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제작되었던 그 유명한 책 『The Giver』기억전달자를 다시 읽어보았다. 청소년 문학들은 대체로 글자가 커서 읽을 때 참 편하다. 사실 청소년 문학으로 구분되어 있는 수많은 좋은 책들은, 성인들에게도 흥미로움 뿐 아니라 깨달음과 지혜를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 책을 골라 읽는 것은 오히려 책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굳이 매번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읽으며 힘들어할 필요만은 없을 것 같다.

 

 

로이스 로리(Lois Lowry) 는 이 책으로 아동, 청소년 문학상인 뉴베리 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고, 이 책은 슈페 베스트셀러와 청소년 필독서 선정 등 많은 영예를 얻은 책이다. 영어에 관심 있는 학생들의 원서 읽기로도 좋은 책이지 싶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의 고통과 슬픔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조금 더 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심은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키고, 그에 따른 가난과 굶주림, 질병 등의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가진자나 못 가진 자나 모두 고통스럽고 슬픈 삶을 살게 만든다. 이건 팩트인 듯 하다.

 

이 책에 나온 미래세계는 이런 불평등을 걷어내고 좀 더 평화롭게 살기 위한 방법으로 '늘 같음 상태'(Sameness)를 선택한다. 과거의 기억과, 다름을 불러일으킬 모든 요소를 통제한다. 사람들은 감시당하며, 색도 존재하지 않고, 부모도, 배우자도, 자식도, 직업도 선택이 아닌 적절한 기준으로 주어진다. 먹고사는 문제에 이상이 없도록 한 해에 태어나는 아기들의 수를 제한하며, 노인들의 수도 제한한다. 즉, 성욕을 없애는 약을 의무적으로 먹고, 쌍둥이가 태어나면 몸무게가 덜 나가는 아이는 '임무 해제' 당한다. 노인들도 적당한 시기가 되면 '임무 해제'를 당하여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된다.'임무 해제'(be released) 란 바로 죽음을 포장한 말인 것이다. 때문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다 똑같은 대우를 받고 그 누구도 굶주리거나 차별받지 않는다.

 

<여기 생활은 늘 질서 정연하고 예측이 가능해. 그래서 별로 힘이 들지 않지. 이 삶은 바로 원로들이 선택한 결과야.>

 

굶주림 없이 모두 배부르고, 직업의 귀천이 없어 다 존중받고, 부자도 가난도 없으니 무시와 시기가 없고,  전쟁이나 싸움이 없고, 몸이 불편한 아이를 키우는 아픔도, 노인을 돌보는 수고로움도 없는 세상...

오늘 길을 걸어가다 한 기관의 노동조합이 투쟁하는 장면을 보았다. 광화문 광장의 소란스러운 주말 모습들이 겹쳐지며 심란한 마음이 든다. 이 책과 같은 미래라면 이런 소란은 없는 세상이겠지...

 

같음을 유지하기 위해 과거의 역사는 모조리 기억전달자(The Giver)만이 보유하고 있다. 이 책에 그의 존재가 나오기 전까지는, 조너스라는 소년을 중심으로 낯설지만 평화로워 보이기도 하는 미래 세계의 일상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그러나 조너스가 12살 기념식에서 기억 보유자(The Receiver)의 직위를 받은 후, 기억전달자로부터 과거의 기억들을 전달받게 되고, 현재의 삶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조너스는 전쟁. 고통. 슬픔. 굶주림의 견디기 힘든 기억들과, 즐거움. 아름다움. 행복. 사랑의 눈부신 감정들을 경험하고 전달받게 된다. 그는 매우 고통스러워하지만, 정말로 평화로운 사회를 추구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기억을 되찾아 주기 위한 위험한 모험을 하게 된다.

 

가족과의 행복, 사랑하는 연인과 이웃,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자유가 있지만, 그 이면에 고통과 부조리함, 불평등과 미움, 전쟁이 존재하는 세상!

아니면, 평등하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살며, 전쟁과 고통이 없지만, 그 이면에 감시와 통제, 수동적인 삶과 사랑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 같은 삶!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주인공 조나단은 왜 사람에게 기억을 되돌릴 위험한 결정을 한 걸까?

 

이 책에 나오는 미래 세계의 모습엔 사실 모순이 존재한다.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임무 해제 당하는 약한 아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행해지는 노인 안락사, 심지어 장애를 가진 아기나  세 번 이상 중대한 잘못을 한 사람이 받는 임무해제 등 말이다. 같음을 유지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희생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지만, 애초에 그러한 같음은.. 평등은..  없는 걸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결말은 열린 결말로 맺어진다.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여운을 남긴다. 영화가 이 작품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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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 그르니에 전집 中 6. 섬 <청하>_함유선 옮김

 

 


 

아주 오래된 책 한 권을 책꽂이에서 꺼냈다. 1988년 처음 발행된 장 그르니에 전집 중 한 권이다. 『섬

 

이 책은 그의 제자인 알베르 까뮈가 쓴, <섬에 부침>이란 소개글로도 유명한 책이다. 까뮈는 스승의 이 글을 읽고 진정으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독서, 짤막한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에 끼치는 영향은 과히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까뮈의 추천글을 읽으며 나도 이 책을 자녀들에게 권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여행 에세이라고 할 수도 있을 이 짤막한 글들의 모음은, 사실 쉽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다. 깊은 사색의 시간이 필요한 책인 듯싶다. 내가 아주 오래전에 읽었을 이 책은, 고백하건대 최근 다시 읽었을 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나였지만 결정적 순간의 감동을 맞이할 마음의 깊이가 없었던가보다. 

 

그 후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이 책은 나에게 깊은 감동을 가져다준다. 어쩌면 자녀들에게 부러 권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空)의 매혹    고양이 물루    케르켈렌 군도   행운의 섬   부활의 섬   상상의 인도   사라져 간 나날들   보로메 섬 

 

 

이 여덟 개의 짧은 에세이 중 케르켈렌 군도 편의 첫 문장이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낯선 어느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몹시도 원했었다. 나는 겸허하게 그리고 가난하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비밀스런운 삶.

 

요즘 우리 주변은 우리를 가만 놔두지 못한다. 나만의 비밀스러움을 간직할 시간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책에도 언급되었듯이, 비밀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에 대한 열등의식이나, 가난, 아니면 인간사회의 관습적인 관계들에 별다른 매혹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달이 우리에게 똑같은 한쪽 만을 보여주는 것처럼, 사람들의 삶도 그렇다. 모든 사람의 감추어진 삶에는 어떤 위대함이 깃들어있다. 필연적으로 부끄럽거나 인위적인 것 이상이다.

 

비밀스러운 삶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 어떤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다가 혼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비밀은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이자 시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 자신을 되찾기 위한 여행, 위대하고 가슴을 찌르는 듯한 풍경 속에서 한없이 작은 나를 발견하는 것, 공(空)에서 얻는 모든 것, 보여지는 나 말고 더 깊숙한 내면의 나를 찾아가는 그 모든 여정은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가게 해 줄 것이다.

 

유럽여행을 가보는 것을 생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에세이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지중해 연안의 온 바닷가는 아닐지라도, 그 중 한 곳이라도 다녀오고 싶다. 그러나 이런 나의 충동에 사뭇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그의 마지막 이야기 보로메 섬.

 

 

여행을 한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 산을 하나 넘으면 또 산이 나오고, 들판을 가로질러 가도 또  들판이 있고, 사막을 지나가도 또 사막이 있으리.............. 그러한 대응품들을 찾으면서 사는 수밖에!

 

그렇다면 무엇을? 그러므로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다 나에게는 보로메 섬이라고 여겨진다. 너무나도 쉽사리 허물어질 듯하고 그러나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지켜주는 어느 마른 돌담이 늘 나를 홀로 서 있게 해주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그득히 채워 줄 것이고, 어느 농가의 문께에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그루의 씨프레 나무만으로도 나를 반가이 맞아주기에 족하리니..... 한 번의 악수, 단 하나의 지혜의 표시, 한 번의 눈길..... 이런 것들이 바로 그토록 가까이 있는, 가혹할 정도로 가까이 있는 나의 보로메 섬들이리니.』

 

 

왕복 1시간. 운동삼아 일터까지 걸어 다닌 지가 꽤 되었다. 올 겨울은 추위가 그만그만하여 걷는 걸 계속하려고 노력 중이다. 무심코 걸어갔던 그 길의 나무들과 하늘 그리고 건물들과 사람들 마저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 아픔이 길이 되려면

 

'부제는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이다.

정의로운 건강?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람이 병드는 것에도 불공정함과 부조리가 원인일 수 있으며,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공동체의 문제라는 것이 이글에 흐르고 있는 메시지이다.

 

 

 

○ 김승섭

 

오늘날, 의료기술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그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존재한다.

개개인의 삶에 대한, 혹은 병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  하는걸까? 병이 일어나는 사회적 원인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분포하지는 않아 보인다. 사회적인 약자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고 더 자주 아프다. 비정규직 노동자, 소득 없는 노인, 결혼이주여성, 성소수자 등등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질병의 사회적인 원인에 대해 조사하고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즉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이다.  * 역학(Epidemiology)이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이다

 

 

 

○ 데이터의 힘

 

저자는 사회적 약자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부와 기업의 관심 밖이었기에 데이터가 거의 없었고, 불안정한 그들의 삶으로 인해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약자의 건강을 말하기 위해서 항상 데이터를 먼저 수집하고, 그 데이터를 분석해 학술 논문을 쓰고, 그 근거에 기초해서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필요한지 말했습니다. 그것은 학자인 제가 '링'위에 올라가는 방법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동안 감성적으로 이해했던 문제들을, 정확한 사실 즉 구체적이고 수치화된 데이터들로 인지함으로써 완벽하게 이해되고 정리되는 통쾌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책에는 재난의 원인을 정확한 데이터로 분석하여, 그에 기반을 두고 대응 전략을 마련했던 공동체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는 몇몇 실제 사례들도 소개하고 있다.

 

 

 

○ 책의 구성

 

1. 말하지 못한 내 상처는 어디에 있을까

 

영양이 턱없이 부족한 산모의 태아는 엄마의 뱃속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된다. 

뇌와 같은 필수 기관에 먼저 영양분을 사용하고, 다른 기관의 발달에는 영양분을 적게 사용하게 된다. 이것은 먼 훗날 성인병을 유발하여 수명을 단축하게 만든다.

이처럼 인간의 몸에는 사회적인 경험들이 강력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이 태아의 경험일지라도 말이다. 가난으로 영양이 부족한 산모는 누구의 책임일까? 어떤 사연이 그 산모에게 있는 걸까? 건강은 공동의 책임이다. 역사와 권력, 정치에게 우리 건강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2.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1991년 스웨덴은 경제위기를 겪게된다. 그럼에도 스웨덴의 자살률은 감소하였다. 주된 이유로 국가의 적극적인 <노동시장 프로그램>을 주목하게 된다. 국가가 실직한 노동자들의 편에서 든든하게 지원군 역할을 해 준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2009년 쌍용 자동차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 208명과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는가?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입사 2년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난 황유미 씨와 도 다른 피해자들은 어떠했는가? 아파도 해고당할까 봐 침묵하며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또 어떠한가? 회사가, 나라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는가?  참담하다.
"고용불안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해고된 노동자들이 재취업을 위해 교육 받을 수 있는 공적 안전망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고용불안이 주는 두려움은 극대화됩니다."

 

3.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되려면

 

재난은 기록되어야 한다. 슬픔을 기억하는 것이 괴롭고 힘들지만, 그것을 끝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길이 되려면 말이다.

사회가 부조리해서 받은 상처와 질병은 치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약물치료와 인지치료를 받는 것으로 몸의 이상 증후를 낫게 할 수 있고, 고통을 초래한 사건을 흐릿하게 만들어 일상을 유지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고통을 초래한 사회적 원인이 밝혀지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자신이 받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기에 그것은 치료가 될 수 없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보라.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공유를 통해, 명예회복 - 보상 - 처벌을 거쳐, 사회관계 회복 개선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치유작업이 함께 되어야 합니다."

 

동성결혼 금지와 성소수자 건강은 어떠할까? 제도가 존재를 부정할 때 몸은 아프다.

사실, 이제껏 동성애에 관한 나의 생각은 정리가 되어있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책의 도움으로 동성애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다." 이것은 학계의 오랜 상식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이성에 끌리고 관심을 갖고 사랑하게 된다. 내가 적극적으로 선택하지 않음에도 자연스럽게 이성에게 끌린다. 즉, 선택해서 이성애자가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동성에게 끌리는 것이다. 본능이다. 

소수자라고 부정할 것인가? 우리도 한국을 떠나면 소수자이다. 소수자의 차별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다. 진실된 사랑과 정의를 품고 노력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진정 가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에 치료받을 필요가 없으며, 동성애자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학적, 법적 상식을 바탕으로, 과학적 사실 위에서 한국사회는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4.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 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인간의 질병 발생률을 줄일 수 있다. 심리적인 안정이 병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진실되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저자는 실제 사례를 들며 설명한다.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한가? 정부는 정치인들은 회사와 공동체들은 그리고 개인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 희망

 

아주 조금씩이나마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분명히!

지금도 어딘가에서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파헤치고 있을, 이 책 저자의 시도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사회 역학자인 작가의 노력과 용기 그리고 외로운 싸움의 시간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정말 아프고, 감동적인 책이다.

 

 

 

 

 

 

 ○○○

 

 

 

 

 

 

 

 

 


 

About... Frantz Kafka (프란츠 카프카)

 

유대계 독일 작가로서 부유한 유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와 성격이 다른 아버지는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었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외이중의식이라는 카프카 작품의 뿌리가 되었다. 프라하에서 태어나 직장생활을 성실하게 하면서 창작활동을 이어나가던 중, 그는 결핵으로 투병하게 되고, 4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불운의 주인공이 된다.

미발표된 그의 작품들을 파기해 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친구는 작품을 세상에 발표하게 되고 카프카는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게 된다.

 

 

 

 

About... Die Verwandlung (변신)

 

그레고르라는 한 남자.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보니 흉축한 벌레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사람이었을 때의 모습이 소설에 묘사되지는 않지만, 글을 읽어나가면서 그레고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 가정 안에서 어떤 아들이었는지 알게 된다.

 

그레고르는 출장을 다녀야 하는 외판사원이었다. 부모님이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꾸역꾸역 하며 살고 있었다.  이 날 아침도 출장을 가기 위해 타려던 새벽기차 놓친 것을, 자신이 벌레가 된 사실보다 더 걱정을 하는 듯해 보인다. 나의 안전이나, 휴식보단 돈을 벌기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가족 중 누구도 돈을 벌 수 없는 상황... 5년간 일하지 않아 살이 찐 무기력한 아버지. 천식을 앓고 있어 산보조차도 하기 힘든 어머니. 예쁜 옷을 입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열일곱 살 누이동생. 오로지 그만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며 일했다. 처음 그레고르가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가족들은 놀람과 행복으로 그레고르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는 이 시기를 '아름다운 시절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일들에 익숙해졌을 때, 가족들로부터의 특별히 따스한 온기는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그레고르의 변신은, 돈이 없으면 벌레 취급을 받는 자본주의라는 시대적 현실과, 자신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가족에 대한 존재의 무의식적인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변신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당연히 직장에서 잘리고, 흉측한 그의 모습을 견디지 못하는 가족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를 엄격하게 대하며 사과를 던져 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아빠, 아들의 변신을 슬퍼하지만 두려워 다가가지도 못하는 엄마, 처음에는 그나마 그에게 먹이를 주고 살펴주었던 동생마저도 그를 견디지 못하게 된다.

 

 

 

그 사이 가족들에게는 변화가 일어난다. 급사일을 하게 된 아버지, 다른 사람들의 옷을 손질해 주는 어머니, 판매원 일자리를 얻고 더 좋은 일자리를 위해 공부도 하는 누이동생. 그의 가족들은 방 하나를 세 주기도 하며 돈을 벌 궁리를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던 그들은 세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최대한 열심히 해나가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말이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고, 가족에게 도움은커녕 세입자들을 나가게 만들고, 가족을 고통스럽게 하는 장본인 그레고르를 '내다 버려야 한다'라고 말한다.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벌레취급을 받는 너무도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매정한 현실이 씁쓸하다.

 

그레고르는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예전처럼 가족의 일들을 맡아 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에 감동을 받기도 하며, 때로는 가족들의 못된 기대에 분노를 느끼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을 겪게 된다.

 

벌레로 변신 후에도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수많은 노력의 나날들이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가족의 사랑도 사회의 관심도 얻지 못하고 소외되어 죽게된다.

 

 

 

그가 죽은 후, 가족들은 신께 감사하며 지난 일은 잊고 앞으로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부모의 관심은 딸로 옮겨가 그녀가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기까지 한다.

 

"그런 딸의 모습은 그들 부부가 꾸는 새로운 꿈과 계획들이 옳다는 징표처럼 보였다."

 

 

 

이 글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 파괴되는 우리 개인의 모습과, 사회의 태도에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참다운 가치가 무엇인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매 순간 점검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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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 후각 시각이 인간보다 뛰어난, 개들이 느끼는 세상은 어떨까?

사람 구실을 못할 때, ‘개만도 못한 놈이란 말을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그야말로 개만도 못한 사람들일지도...

 

이 책은 태어나보니, 진돗개 수놈, 보리의 아름다운 인생이야기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기어이, 스스로 아름다운 운명을 완성 한다라는 것을 자연 속에서 보고 알았다고 말한 저자의 말처럼, 사람들이나 개들이나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인 것이다. 개는 세상 구석구석을 온 몸으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세상을 몸으로 받아내며 살아간다. 인간은 어떠한가? 삶 그 자체를 오롯이 느끼지 못하고 삶 가운데 수시로 개입하는 매체, 글자, 말 등 다른 것들에 부당하게 현혹되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작가는 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인간 세상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세상을 느껴보자는 의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의 순진하고 청초하고 깊은 표현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마음이 소박해지는 글의 내용은 참 따스하다.

 

 

*

 

 

글의 내용 중 보리의 눈으로 본 사람들 혹은 글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개와 사람의 차이들에 대해 한 번 집중해 보았다.

 

는 자연이 걸어오는 수많은 말들을 알아듣지만, 사람들은 자연의 소리에 관심은 없고 제 말만을 해대고, 그나마도 못 알아들어서 지지고 볶으며 싸움판을 벌이고 있다.

 

들은 이 세상 온 천지를 선생님으로 삼고 찾아가 함께 뒹굴면서 배운다. 신바람 나게 말이다. 사람들처럼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신바람은 개의 몸의 바탕이고 눈치는 개의 마음의 힘이다.

 

들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살피며 살아가는 걸 배운다. 마음이 재빠르고 정확해서 남의 얼굴빛과 마음의 빛깔을 살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눈치가 모자라서 남이야 어찌되었던 제멋대로 하고, 심지어 이런 눈치 없고 막 나가는 사람들이 소신 있는사람으로 여겨지는,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은 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살지를 못한다. 따스한 집과 옷과 밥, 부모형제와 이웃,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고 약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이다.

 

들은 언제나 지나간 슬픔을 슬퍼하기보다는 닥쳐오는 기쁨을 기뻐한다. 주인할머니는 마지막까지 마을을 떠나지 못하겠다고 울며 슬퍼했지만, 보리는 정든 고향을 떠나 새 주인집으로 가는 것을 슬퍼하거나 세상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향의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단단해진 발바닥 굳은살을 보며 만족스러워했을 뿐이다.

 

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일 뿐이다. 지나간 주인은 지나간 주인이다. 개들은 .. .. 주인을 향한 마음이 영원한 것이다. 지나간 날들은 개를 사로잡지 못하고 개는 닥쳐올 날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근심하지 않는다. 과거에 집착하며 앞으로의 삶을 걱정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가.

 

보리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빨리 달릴 수 있었지만, 뱀이나 들 고양이를 쫓아버릴 때처럼 바쁠 때가 아니면 아이들 앞에서 달리기 솜씨를 자랑하지 않는다. 자랑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보다 품격 있다.

 

보리도 가끔은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인라인스케이트 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이 낡으면 새 신으로 갈아 신으면 되는 인간과는 달리, 내 몸의 모든 무게와 느낌을 저장하고 있는 굳은살 한 벌 뿐인 . 단지 발바닥 굳은살로는 건너갈 수 없는 사람들의 세상에 가슴이 저렸다. 또 한 번, 아이들의 교실을 엿보며 정말로 사람이 되고 싶은 보리. 보리가 사람의 아름다움에 홀려있을 때도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 있었다.

 

주인님의 몸에서 나는 경유냄새. 고단하고도 힘찬, 어딘지 쓸쓸한 슬픔도 느껴지는 그 냄새는 보리가 지키고 따르고 사랑해야 하는 냄새였다. 그 밖에 갯가마을에 스며있는 여러 가지 냄새들. 새벽 선착장에서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라면의 냄새, 예쁜 여자들의 화장품 냄새,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지내는 사내들의 절은 담배냄새, 고약한 오줌 냄새 등. 보리는 이런 냄새까지도 좋아하는 가 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취하는 사람. 나와 다른 것들은 인정하지 않고 내치지는 않는지.

 

까닭 없이 짖는 개는 없다. 그러나 어느 때 짖는가를 보면 그 개가 어떤 개인지 알 수 있다.

약자나 선한 사람들 같은 지나가는 것들이 지나갈 때 보리는 짖지 않는다. 한편, 이웃동네 악돌이라는 개는 허름하거나 힘이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짖어대고 말쑥한 사람들이 지나갈 때는 짖지 않는 힘세고 사납고 거칠 것이 없는 놈이었다. 오히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사람들도 악돌이와 닮아있다.

 

어느 날, 보리는 세상을 쓰다듬듯이 부드러운 눈빛을 가진 암캐 흰순이를 만난다. 달려들어서 싸우려하지 않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눈빛. 태어나보니 암캐인 운명을 순응하는 눈빛. 태어나보니 사람인, 우리, 자연을 거스르며 세상과 싸우려하고 좀 더 가지려고, 좀 더 편하려고 하는 우리는.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찾을 길이 없다.

  

 

**

 

 

보리는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것 같지만 나름의 고뇌와 고통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인간들의 그것과 같은.

 

 

흰순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악돌이와의 만남. 보리는 무섭지 않았다. 겁이나 무서움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이길 수 있을는지를 보리는 생각하지 않았다. 짖지 않고 고요히 집중하며 한 걸음씩 나아갔을 뿐이다. 결과는. 털이 뜯겨나가고 살점이 패어지고 뼈가 으깨진 불쌍한 몸. 어쩔 수 없이 싸워야하는 상황이 있다. 보리는 피하지 않는다. 자신이 약한지 강한지 생각지 않고 그래야할 때는 그런다.

 

 

"그렇게 못되고 경우 없는 놈이 그토록 강하다는 것은 알 수 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었지만 그놈은 어째든 강한 놈이었다. 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어찌 그것을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고통은 모조리 나의 것이었다. 악돌이가 이기고 내가 진 것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다만 악돌이가 강했고 내가 약했을 뿐이었다. 아주 분명한 일이었다. 그 분명한 것이 견딜 수 없어서 앞발을 쳐들고 우우우우 울었다."

 

 

살다보면 그렇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한다. 내 몸으로 고통을 참아내면서... 그렇다면 그건 견딜 수 있는 것 아닐까? 내가 약해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어쩔 수 없는 일들. 살려면 견뎌아하는 것들.

 

가을에, 주인이 파도에 휩쓸려 죽었다. 죽음이 대체 무엇인지를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보리는 울었다. 보리는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럴 수는 없고 이럴 리가 없고 이래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악돌이를 만나서 해답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격렬했던 싸움 후, 네 다리로 땅을 딛지 못할 정도로 지쳤으나 악돌이도 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보리는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주인아주머니는 도회지로 이사를 결정하고 살던 집을 팔려고 내놓는다. 보리는 식구들과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남은 하루하루를 긴장하며 되도록 밖으로 싸돌아다니지 않고 집 안에 머물렀다. 마을을 떠났는지 죽었는지 모를 악동이의 행방, 마을 사람들에게 희생 된 흰순이. 악동이의 새끼들임에 틀림없어 보이는 흰순이가 남긴 강아지들. 보리의 인생도 뜻대로 되지는 않는 듯 해 보인다.

 

 

"내 마지막 날들은 햇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가볍게도 하루하루 흘러가고 있었다. "

 

"악돌이가 떠나고 흰순이가 죽고 없는 마을은 견딜 수 없이 허허로웠다. 내가 가야할 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마을에 악돌이가 여전히 힘세고 사납게 살아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흰순이 같은 개들이 풀이 돋아나고 바람이 불어오듯이 저절로 태어나주기를 바랐다. 저절로 되는 것들은 다들 저절로 돌아올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여전히 냄새맡고 핥아먹고 싸워야 할 것이었다. 어디로 가든, 내 발바닥의 굳은살이 그 땅을 밟을 것이고 나는 굳은살의 탄력으로 땅 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 보리의 마지막 날들조차도 보리는 희망에 찬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못된 악동이도 부드러운 눈빛의 흰순이도 다 공존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어떤 세상이 오던 그 세상 가운데는 아름다움과 행복이 깃들어 있음을 보리는 알았던 것일까.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가면서 사는 인생이 불가피하지만, 그 곳에서 여전히 세상과 부딪치며 사는 것이 인생이고 그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을 보리는 알았던 것일까.

 

 

 

 

***

 

 

 

 

 

 

 

 

 

 

 


 

이 책은 기독교 서적이지만, 종교에 상관없이,

게으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제1부 게으름에 익숙한 그대에게]

 

게으름의 정체/ 싫증

게으름의 뿌리/ 자기 사랑

게으름의 발전/ 정욕

게으름의 선택/ 부주의

게으름의 결과/ 고통

 

목차만 봐도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일상의 피로와 더불어 종종 찾아오는 게으름이 이리도 무서운 죄였다니!

 

 

 

이 책에서 게으른 사람의 모습이란? '분명한 목표 없이 되는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희생을 각오하고,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육체의 게으름이다.

 

게으른 자일수록 핑계가 많고 변명이 많다.

이유인즉, 게으른 사람은 본질적으로 빗나간 자기 사랑에 깊이 빠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잘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자신의 본질적인 연약함과 그릇된 자기 사랑으로 말미암은 게으름 사이에서

명확하게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핑계와 변명을 하지 않고 부지런해질 수 있을 것이다.

 

 

 

부지런함은 지혜로움도 필요하다.

여기서 지혜롭다는 것은 쓸모없이 낭비되던 시간들을 정돈하여 보다 중요한 일에 사용할 줄 아는 것이고,

급한 일과 꼭 해야 하는 일들을 조화롭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며,

맡은 일을 잘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은 해야 할 일을 안. 할. 구실을 찾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해야 될 것을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지식 위에, 효과적인 업무 수행의 방법을 아는 지혜도 있고,

그 일을 끝가지 해내는 인내와 성실함이 있다면, 그의 부지런함은 탁월하게 빛날 것이다.

 

 

 

게으름의 발전과정

처음엔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다가, 다음엔 의무를 완전히 저버리게 되고,

이에 만족하지 않고 결국엔 자신의 정욕을 따라 악을 행해서라도 즐겁게 되고자 한다.

 

이러한 게으름의 발전을 조장하는 것은 바로 비교의식이다.

"그거 꼭 해야 하나?" "대부분 그렇게 살지 않으니 괜찮아" 등등.

게으른 마음이 지성의 동의를 받으면 의지를 굴복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부지런한 삶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나?

미루면 미룰수록 게으름과의 싸움은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만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게으름의 폐해를 깨닫고 '이러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목표를 세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확인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다.

 

작은 길에는 늘 부대낌과 시련이 있지만,

그것이 바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인 것이다.

휴식은 즐거움을 맛보기 위한 것이 아닌,

다시 일하기 위한 것이어야 함을 기억하며 우리의 쉼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

 

 

"게으른 사람의 인생 악보에는 쉼표만 가득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 악보에는 음표가 가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의 인생은 한가해도 아름다운 멜로디가 없지만,

성실한 사람의 인생은 힘들어도 아름다운 노래가 있습니다."

 

<게으름_김남준>

 

 

 

 

[제2부 익숙한 게으름과의 작별]

 

게으름과 잠

게으름과 선한 일을 향한 반응

게으름과 교만

게으른 자에 대한 하나님의 고통

게으름으로부터의 교훈

 

 

불붙는 인생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잠은 목표에서 벗어난 일이다.

 "나는 고3이다" 중요한 일을 최선을 다해하기 위해 신경이 분산되는 것을 막으며 생활하는 고3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되면 그렇게 살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는 잠의 폭력적인 횡포를 규제할 수 있는 육체적인 능력이 있다.

 

 

어떤 일에 대한 미약한 반응과 끝까지 하지 않는 것도 게으른 것 

어떤 일이 100의 힘이 필요하다면, 120의 힘을 장전해야 승산이 있다.

남보다 부지런해야 하고 활기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몸과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이 준비되는 데서 비롯된다.

일체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게으른 자의 특성 고집, 깨뜨려짐이 없는 자의 교만

우리는 배우면 배울수록 겸손해진다.

인간의 지성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지적인 어두움, 무지와 고집은 게으른 사람에게 장막을 친다.

지혜는 열심을 품고 부지런하게 산 사람에게 주어진다.

무지와 교만은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지만, 부지런함은 우리를 지혜롭고 겸손하게 만든다.

 

 

"무언가를 경험하고 깨닫는 일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경험의 양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지적인 판단 능력과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게으름_김남준>

 

 

 

 

마지막으로 저자는 

부지런한 삶과 신령한 영성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아무리 욕심이 나고 사정이 급해도 침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바치는 경건 생활임을 강조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일상생활에서 진전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목표가 분명한지?

무엇을 하고 왜 하는지 모르는 채, 그냥 바쁘게만 사는 것은 아닌지?

삶에 끌려다니고 있지는 않은지?

육체의 연약 이상으로 잠을 자지는 않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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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점검해보고, 반성해 볼일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문학계 Me too 운동의 중심에 서서,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 준 그녀.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된다. 각 부에서 몇 편씩을 기억해본다.

 

 

<제1부 꽃들이 먼저 알아>

 

 

밥을 지으며

 

 목숨을 걸고 뭘 하진 않았어요.(왜 그래야 하지요?) 서른다섯이 지나 제 계산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답니다!

 

아무리 고군분투하며 내가 바라는 인생 스토리를 써 내려가려 해 봐도, 결론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얼마 전 슈가맨에 나왔던 양준일이 생각났다. 본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이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네 뜻대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인생의 쓴 맛을 적지 않게 본 그. 그에게 이루어진 완벽은 무엇일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그 완벽을 만드는 key 일까.

 

수건을 접으며

 

엉망인 세상을 내 손으로 정리할 순 없지만 수건을 내 맘대로 접을 수 있지. 수납장과 서람의 질서를 나는 사랑하지......  세상과 맞선 투쟁의지를 불태우며 수건을 접는다......빨래 접기가 귀찮아지면 미련 없이 떠나야겠지...... 엉망진창인 세상을 정리할 순 없지만 쉼표와 마침표의 질서를 나는 사랑하지.

 

질서와 정의가 힘을 쓰지 못하는 세상. 부조리와 불균형이 판을 치는 세상. 그 속에서 단정하게 깔끔한 쉼표와 마침표를 찍으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너무 맑은 날은 오히려 눈물이 났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 질서를 더 이상 챙기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삶의 가치조차 없는 것. 엉망진창 속에서도, 보잘것없지만 지켜야 할 쉼표와 마침표!

 

 

<제2부 지리멸렬한 고통>

 

괴물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거룩한 문학

 

그가 아무리 자유와 평등을 외쳐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짓밟는다면 그의 자유는 공허한 말잔치.

..... 휴머니즘을 팔아먹는 문학은 이제 그만!

 

바위로 계란 깨기

 

계란으로 바위를 친 게 아니라, 바위로 계란을 깨뜨린 거지..... 썩은 계란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피라미드를 흔든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었지.

 

여성의 이름으로

 

어머니가 아니라, 아내가 아니라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그래야, 이 삐뚤어진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2부에서는 문학계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내용들과, 그로 인해 지리멸렬한 고통을 감내하는 그녀의 분노와 외로움이 느껴진다. 

썩은 계란으로도 피라미드는 쌓아진다는 사실이 참으로 믿을 수 없다. 하지만, 무너질 수밖에 없겠지. 그래야만 하는 거니까.

 

 

 

<제3부 다시 오지 않는>

 

시골 장례식

 

용문에서 목격한 어느 죽음,

앞산 뒤뜰이 떠들썩하게 소리와 색으로 물들어

꽃 같은 죽음.

생일잔치 같은 장례식.

 

이 세상에 나올 때,

그리고 들어갈 때만 화려한 사람들.

 

시 전문이다. 너무 공감이 갔다. 장례식이 쓸쓸할까 봐, 조문객들이 적게 올까 봐, 화환이 적게 들어올까 봐, 초라할까 봐, 왜 걱정을 하나? 죽고 나면 다 모를 것을. 이 또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함인가. 살아생전에 쓸쓸하지 않게, 꽃처럼, 매 순간 생일처럼 화려하게 챙기고 사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운가?

 

 

 

<제4부 심심한 날>

 

베스트셀러

 

지식이 상품으로 변신한 순간, 거짓이 진실보다 잘 팔리는 시장에서 누구의 거짓이 더 오래갈까......모래처럼 가볍게 돌아다니며 서점에 진열된 황금빛 시끄러운 띠지를 두른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는

 

황금빛 시끄러운 띠지를 두른... 하. 아무리 화려한 스펙과 지위, 글솜씨가 있다 한들 우리의 선택은 올바른 것일까? 그 이면에 숨긴 정체는 어찌 알아볼 수 있을까?

 

카페 가는 길

 

바람이 나를 밀어 세게 밀어. 앞으로 앞으로 힘들이지 않고 이렇게 살았으면, 바람이 시키는 대로 흘러 흘러 어디엔가 닿았겠지. 거리의 먼지를 깨물고 머리카락이 엉키고 목을 때리는데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바람이 신기해..... 따끈한 빵 냄새를 향해 금방 구운 빵을 차지하려 헤벌리고 뛰어가는 나의 종착지는 에티오피아 시다모

 

바람이 미는 대로 사는 인생. 종착지는 어디일까. 행복에 닿아있을까?

바람을 거스리며 사는 인생은 또 어떠할까. 결국, 원하는 것을 얻을까?

결국 맛있는 커피 한 잔에 목숨 거는 연약하고도 단순한 인간들인데.

 

쓰는 인류

 

5천 년 전 수메르인. 그들은 진흙에 소중한 것들을 기록했다. 이렇게 한 번 새긴 글들은 굳어져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진흙판을 깨지 않고는 말이다. 그러나 삶이 윤택해지고 기술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된 우리 지금은. 그 진실됨과 무거움을 무시한 채 가벼운 말들과 지켜내지 못할 글들을 쏟아낸다.

 

 

지우개를 발명하고

사랑과 증오를 오려 붙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댓글은 차단하고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심심해서,라고 말하는 인류는

 

조금 불편하게 살아도 진실되고 진지한 그들은 미개인 같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지금 그렇게 보인다.

 

.....

 

시 군데군데 드러나는, 요양원에 모신 노모를 간호하고 보살피는 시인의 상황과, 

피고로서 겪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겹쳐진다.

 

해서, 이 시집은 봄날과 같은 따스한 시모음이라기보다는 어둡고 우울하며 적의에 차 있는 불편한 시들이다.

알아야 할 진실들. 삶의 종착역. 어떻게 살 것인가?

 

 

 

.....

 

 

 

 

 

 

 

    <2002년, 청미래, 절판>                      
<2013년, 청미래, 개정판>

 

 

               

 


 

 

알랭 드 보통이 23살에 쓴 첫 소설이다. (세상에!)  나는 집에있는 파란 커버의 책으로 읽었다.

영국에서는 <Essays In Love> 미국에서는 <On Love> 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고 한다.

 

영어 제목 그대로 사랑에 관한 책!이다. 이 글을 읽는 내내 재미있었지만, 철학적 내용이 많아 잠시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이 있었다. 이 책은 1인칭 남성 화자의 목소리로 글을 전개해 나간다.

클로이라는 여성이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하고, 위기를 겪으며, 헤어지고... 그 과정을 통해 사랑에 대한 교훈을 얻으려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사랑에 다시 한번 빠지게 되는 정말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필자의 재미난 표현들과 박학다식한 지식들을 동원하여 글을 세련되고, 재미있게,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나가기에 이 책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누구나 경험해봤을 법한 일들을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 표현하고 생각하지?'라는 놀라움을 끊임없이 가지면서 읽었다. 알랭 드 보통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거의 천재에 가까운 듯하다.

 

아래 소개하는, 이 책의 차례에 나온 소제목들만 봐도, 그 내용을 상상하기에 만만치 않다.

내가 책을 읽으며 집중하려 했던 한 방법은, 글이 제목을 어떻게 설명했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읽어 내려갔다.

 

 

제1장 낭만적 운명론 : 클로이와의 만남! 상황의 우연적 성격을 보지 못하고 신비주의적인 의미를 부여함. 운명이구나!  첫눈에 반함.

 

제2장 이상화 : ~가 어색해 보이지만, 그래도 그녀가 사랑스럽다. 그녀는 완벽해!  자기 자신을 용납하기는 어려워하면서도, 다른 사람은 끝도 없이 이상화함.

 

제3장 이면의 의미 : 그녀의 행동은 어떤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나의 욕망은 그녀의 모든 것에서 (내 사랑의 정당한) 의미를 읽어내려 한다.

 

제4장 진정성 :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열등감으로 진정한 자아를 감추고, 그녀의 욕망에 맞게 얼마든지 나를 바꾸는 비진정성을 보임. ex) 나는 알코올을 원함, 그녀는 물을 원함, 고로 나도 물을 원하는 거짓된 자아.

 

제5장 정신과 육체 : 육체적인 쾌락 vs 더불어 피어나는 생각/ 친밀성 vs 나머지 미지의 영역/ 사랑하는 사람 vs 생각하는 사람의 충돌... 결국 정신과 육체의 결합을 시도.

 

 

 

제6장 마르크스주의 : 자기 증오에서 생겨난 마르크스주의. 대단한 사람이라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하며, 나를 우습게 생각할 때만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 크로이가 나를 사랑하기를 바랐으면서, 막상 그녀가 나를 사랑하자 그녀에게 화를 냄.

 

제7장 틀린 음정 : 관계 초기, 내적인 공상과 외적 현실 사이의 과도기에 탐지해 낸 수많은 틀린 음정. 그러나 국적, 계급이나 직업이 아닌 아주 사소한 취향과 의견의 차이가 더 위협적. 그 결과 피곤함, 두려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갈망하는 마음마저 생김.

 

제8장 사랑이냐 자유주의냐 : 사랑에 대해 얘기하면서 상대를 마음대로 살게 해주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사랑하기 때문이라 하면서 자신의 개인적 판단을 앞세워 강요. 이것은 사랑의 비자유적인 면. 사랑? 자유주의? 선택 필요. 그러나 클로이와 나는 유. 머. 감. 각.으로 편협함에 이르지 않고 벽을 넘어간다.

 

제9장 아름다움 : 플라톤의 '이상적 형상'보다는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결정 근거가 주관적'이라는 칸트의 견해에 동조. 고로, 클로이는 아름답다. 이런 주관적 이론은 관찰자를 없어선 안될 존재로 만드는 기분 좋음을 동행한다.

 

제10장 사랑을 말하기 : 사랑이란 언어는 가장 모호한 것. 역사적으로 걸쳐진 공동의 영역.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는 불완전한 송신기로 암호화된 메시지를 타전하는 것. 그래서 나만의 언어"나는 클로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마시멜로 한다"라고 고백. 

 

11장 그녀에게 무엇을 보는가? : 그녀는 나에게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랑스러울까?

【왕관→군주, 바퀴→자동차, 백악관→미국 정부, 클로이의 천사 같은 표정→클로이】로 실체의 속성 한 가지를 실제 자체로 해석한 것은 아닐까?

 

제12장 회의주의와 신앙 : "신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그 적은 가능성이 주는 기쁨이 더 큰 가능성이 주는 공포를 압도하기에 신앙은 정당화될 수 있다."_파스칼./연인들은 사랑 없이 의심하는 것보다는, 틀려도 사랑을 하는 모험을 더 좋아한다.

 

제13장 친밀성 : 자아/타아 가 아닌, /자아 타아/.클로이를 '나의 당근'이라는 친밀한 언어로 부름. 비논리와 장난으로, 그녀와 나의 개인적 사건들과 습관들이 친밀성을 형성.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중심 악상(라이트 모티브)처럼 익숙함은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고 친밀성에 기초한 집안 언어가 생김. 그것이 나와 클로이 간의 접착제 역할. 클로이는 세상에 대한 나의 판단의 최종 저장소.(사랑의 음모성)

 

 

 

제14장 "나"의 확인 : 다른 사람들이 나의 존재에 대해 정통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정확한 정체성을 가지는 일이 다른 사람에 의해 좌우될 위험이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나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어떤 눈도 우리의 '나'를 온전히 담을 수는 없다. 사랑도 왜곡될 수 있다는 얘기.

 

제15장 마음의 동요 : 사랑이란 단어는 내 감정을 얼마나 나타낼까? 감정의 유동성, 변덕스러움, 배신, 권태, 짜증, 무관심이 들어설 공간이 있을까? 나무를 나무라고 부르지만, 1년 내내 나무는 변하고 있듯이, 클로이에 대한 내 감정이 변했다면,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그녀 자신도 변하는 존재란 사실이다. 영원할 수 없다는 사랑의 비극. 지나간 사랑들에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는 나를 보며 슬퍼짐.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훨씬 복잡하고, 덜 유쾌한 현실의 생략형 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식했다.

 

제16장 행복에 대한 두려움 :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내 행복의 원인인 클로이가 쉽게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우리는 행복을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 속에서만 찾으려고 하지만, 기억과 기대와 절대 같을 수 없는 현재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가 현재를 살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평생 갈망해온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일지도...

 

제17장 수축 : 잠자리에서의 다름. 사소한 일에서의 다툼. 다른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 내 가치에 의문을 품는 듯한 느낌. 한편에는 여자를 천사와 동일시하는 남자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사랑을 병과 동일시하는 여자가 있는 희비극.

 

제18장 낭만적 테러리즘 : 일단 한쪽이 관심을 잃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는 듯하다. 돌이킬 수 있는 어떤 행동을 해도 매력 없이 짜증만 일으키게 되고, 다시 사랑을 소생시키려 해 보지만, 오히려 상대를 질식시키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올뿐이다. 그 결과 사랑의 응답을 강요하기 위해서 '낭만적 테러리즘'의 방법을 동원한다. 꾀(삐지기, 질투 유발, 죄책감 자극), 폭발 등 사랑의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삐진 것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성공은 공허했다. "그 성공(나의 강요)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나는 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요구 해소 과정에서 요구를 부정하는 아이러니.

 

 

 

제19장 선악을 넘어서 : 나의 친구 윌을 만나고 있던 클로이. 배신의 짐을 덜 듯 울며 고백하는 클로이. 이제 끝!

사랑이 윤리의 한 지류인 것처럼,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은 '악', 거부를 당한 사람은 '선'의 화신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를 떠난 그녀는 '악', 그녀를 바란다는 그 이유로 나는 그녀에게 여전히 '너무 좋은' 사람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나의 사랑의 갈구도, 클로이의 사랑의 거부도 근본적으로는 이기적인 두 충동일 뿐인 것이다. / 나는 클로이가 나를 불쾌하게 했기 때문에 그녀를 악이라 불렀다. 나의 도덕률은 나의 욕망의 승화된 형태일 분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사랑을 한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을 할 수는 없다.

 

제20장 심리적 운명론 : 참담한 사건일수록 가당치 않은 의미를 붙이게 되고, 심리적 운명론으로 빠져드는 경향도 강해진다. 왜 나인가? 왜 이런 일이? 왜 지금? 나는 극작가가 아닌 연기자였다. 정신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드라마 속에 살면서, 안으로부터 나온 운명 즉 심리적 운명의 저주에 깔려 괴로워했다.

 

제21장 자살 : 나의 죽음을 통해서만 내 사랑의 중요함과 불멸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죽게 되면 나의 소멸이라는 것으로 어떤 기쁨도 나는 얻지 못할 것임. 그럼에도 모아 둔 알약들을 먹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것들은 비타민C였다.

 

제22장 예수 콤플렉스 : 나는 고통을 받지 않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더 낫다. 클로이는 그렇게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고통은 다른 사람들 때문이다. 예수처럼! 예수는 완전히 의로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배반당했다. 예수 콤플렉스는 자기 방어 메커니즘에 불과하지만, 어느 정도 건강한 면이 있다.

 

제23장 생략 : "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아랍 속담처럼 클로이를 잊기까지는 시간이 더디갔다. 그러다 불가피하게 그녀에 대한 기억이 전처럼 괴롭지 않은 시간들이 왔다. 새로운 습관들이 만들어졌고, 클로이 없는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시간은 자신을 생략한다. 확장된 상태에 살지만 수축된 상태에서만 기억되는 아코디언 같다. 나의 연애는 정제되어 몇 개의 아이콘적 요소만 남았다.

 

 

 

제24장 사랑의 교훈 : 사는 것도 하나의 기술로 받아들이면 지혜로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사랑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도록 지혜의 조각들을 배울 수는 없을까? 어쩌면, 지혜로운 또는 전혀 고통 없는 사랑이라는 개념은 무혈 전투와 같이 모순일지도 모른다. 낭만적 실증주의의 도움으로 클로이와 나눈 사랑의 결과, 나에게 어떤 지혜의 도움을 주지 못했다. 대책 없는 사랑 때문에 비관적이 된 나는 금욕주의를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금욕주의는 사랑의 순간 겁쟁이에 불과한 부적절한 해답이었다. 사랑은 분석적 정신에 겸손을 가르쳤다. 결국 분석에는 결함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내가 다시 한번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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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교훈은 뭘까?

 

개인적이 생각이긴 하지만,

결혼 전 청춘들의 연애에 있어서, 초기에 일어나기 쉬운 낭만적 운명론, 이상화, 이면의 의미 등에 너무 속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사랑을 낭만적인 환상으로 보아선 안 될 듯하다. 물론 사랑은 어느 정도는 낭만적이고, 환상적이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설렘에 잠시 나를 맡겨볼 순 있지만, 마냥 달콤한 사랑, 나날이 행복한 삶은 없다! 그것은 우리 속에 있는 기억과 기대가 만들어 낸 망상일 뿐이다. 완벽한 사랑이 있음을 믿고 현재를 부인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러니 사랑을 선택할 때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 서로가 덜 고통스러울, 상대를 고르는 것. 사랑은 현실이니까.

 

연인뿐 아니라, 가족과의 사랑도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런 순간이 모두 사랑이다. 다가올 행복을 고대하며 지금 두려움을 가지지 말자. 현재를 살자. 사랑도 지금이고, 행복도 지금이다. 완벽해 보이는 언어... 사! 랑! 행! 복! 도, 그 이면에는 웃음과 눈물, 달콤함과 쌉쌀함이, +와 -가, 매 순간 회오리치며 공존하는 게 아닐까. 내가 살 수 있는 단 한 번의 삶! 기대와 기억의 방해로 망치지 말자. 지금이 행복이요. 사랑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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