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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이 잘 알려지지 않은 파트리크 쥐스킨트.
작품 속 인물들로 그의 생각이나 가치관 등을 살짝 엿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에세이는 사랑에 대한 그의 단상을 편안하게 쓴 글이기에, 책을 읽으며 그와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베일에 싸여있는 쥐스킨트의 속내를 알 수 있는 책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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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 속에는 플라톤의『향연』, 스탕달의『연애론』, 필리프 아리에스의『죽음 앞에 선 인간』, 괴테의『서동시집』, 리하르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등 많은 저서들이 인용되고 있다. 쥐스킨트의 그 부러운 박식함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막스 뮐러의 소설 <독일인의 사랑>에서, 한 영혼과 또 다른 영혼의 일치를 느끼는 고귀한 사랑이야기를 정말 감동적으로 읽었었다. 쥐스킨트의 책에서는 그런 종류의 사랑과는 다른 이야기들이 나온다.
흥미롭고 공감 가는 단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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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몇 가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첫째,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끔찍한 병!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랑에 빠진 한 쌍의 연인은 사회적으로 이방인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둘만의 사랑에 집중하다 보니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이 없고 에로스의 성스러운 광기에 사로잡혀 세상을 무시하는 일이 벌어진다.
사랑이 인간사에서 가장 좋은 것이자 아름다운 것임에도 그 이면에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 수 있다.
사랑은 무엇인가? 선인가 악인가?
또 하나, <진정한 사랑은 자주, 쉽게, 또 겁없이 죽음을 떠올린다. 죽음을 쉽게 비교의 대상으로 삼고, 죽음을 얻으려면 도대체 얼마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계산하는 것이다.>라는 스탕달의 말처럼 이 책은 사랑에 대한 단상이라기에는 사랑과 죽음을 면밀하게 연관시킨다.
사랑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내용의 문학작품들이 많이 있다. 사랑의 고귀한 완성을 죽음 속에서 찾으려는 거다.
어느 정도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나는 사랑을 잃었다고 죽을 만큼 무모하지도 용기 있지도 못하다.
에로틱한 자극의 절정이라고 생각한 죽음을 실행하고자 연인과의 자살을 시도했던 클라이스트.
삼각관계 속에서 죽음을 선택하여 사랑하는 연인을 죽음 저 이면에서 기다리고자 결심한 베르테르.
사랑과 죽음을 동시에 결합하고자 했던 트리스탄과 이졸데.
모두 사랑의 완성은 죽음이라 여긴 듯한 그들의 결단. 사랑은 과연 죽음과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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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죽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지하세계로 간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와 나사렛 예수를 비교한 부분은 흥미로웠다.
오르페우스는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할 수 없어, 단지 정당한 기간의 생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지하세계로 간다. 그리고 지하의 신들에게 겸손한 자세로 설득과 부탁을 하게 된다. 오로지 단 한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말이다.
결국엔 실패하는 이 시도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우리와 비슷하다. 인간적인 사랑은 완전할 수 없다는 의미일까?
쥐스킨트는 오르페우스의 사랑을 예수의 그것과 비교한다.
예수는 한 개인이 아니라 아니라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설득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추종을 요구했다. 결국 그는 죽음과 부활로 전 인류를 구원하는 사랑을 이루어 낸다. 나사렛 예수는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의 사랑과 구원은 오르페우스의 인간적인 에로스와는 다르다.
예수의 사랑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쥐스킨트의 시선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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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랑은 죽음을 통해서 끝나게 되는가 ? 아니면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오히려 사랑과 죽음은 같은 것인가?
지독하게 육체적인 것도 사랑인가? 사랑하는 사람만 보이고 남을 무시하는 것도 사랑인가? 이성의 사랑, 동성의 사랑, 연하의 사랑, 연상의 사랑 등등...... 사랑은 참으로 정의 내리기 어렵게 수많은 모습들로 존재한다. 불완전한 채로 말이다.
사랑을 정의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뭐 중요한가? 신이 아닌 우리들은 불완전하고 모순 투성이의 사랑을 할 수밖에 없겠지만, 좀 더 완전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방향을 따라 하루하루 노력하며 사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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