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2011>

 


 

읽어보고 싶었던 책. 소장하고 싶어 구입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흥미진진하거나 재미있게 느껴지는 소설은 아닌 듯하다. 

읽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고, 여러 번 읽어야 다음 진도가 나가는 부분도 꽤 있었다.

 

카뮈는 이 작품을 통해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의 시대를 살아온 작가의 경험이 바탕이 된 이 소설에서 말이다.

전쟁=페스트-> 긍정의 메시지 ??

 

작가의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인듯하다. 

 


 

알제리 해안에 면한 프랑스의 한 도시 오랑.

늘 루틴 하게 삶이 돌아가며 특별한 것이 없는 단조로운 그곳에

어느 날 나타난 페스트.

 

페스트는 쥐에게 생기는 전염병으로 쥐벼룩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병이다.

증상은 몸에 멍울이 잡히거나 반점이 생기고 객혈을 하며 극한의 열과 통증을 동반하는 무서운 병이다. 

 

처음 쥐들이 죽어 나갔을 때 사람들의 초기 반응은 마치 도시의 분위기와 별다르지 않았다.

무관심... 설마... 이러다 말겠지... 나랑은 상관없는 일 등

닥쳐오는 고난에 부지런히 반응하지도, 열정적으로 대항하지도 않는 모습.

정부조차도 말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의사 리유의 노력과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으로 인해 페스트는 선언되고 도시는 폐쇄된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생이별과 귀양살이를 하게 되고, 전기가 끊기거나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고,

무엇보다 감염의 두려움 안에서 공포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 상황은 코로나 19로 인한 우리의 현실을 통해, 강도는 다르겠지만,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반응하는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작가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쟁이 발발했다. 전염병이 돈다. 부조리가 있다.

당신은 이러한 악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파늘루 신부처럼

이 재앙은 인간의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는 그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타지 사람 랑베르 기자처럼 

폐쇄된 도시를 어떤 방법으로든 떠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을 쟁취하고자 발버둥 칠 것인가? 

 

보건대를 결성한 타루처럼 

페스트에 저항하며 전염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비록 인간을 구원해주지는 못할지라도, 지금 해야 할 최선의 방법임을 직시하며 열심히 병과 싸울 것인가?

 

의사 리유처럼 

묵묵히 끝없는 성실함으로 자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현재 닥친 악을 물리치기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할 것인가?

 

공무원 서기인 그랑처럼

보잘것없고 평범한 심지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존재지만, 조용한 미덕과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덤덤히 해 낼 것인가? 

 

페스트 이전에는 자살시도자였던 코타르처럼

위기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불행으로 자신의 신세를 위로받으며 , 악을 기회로 삼아 불법을 저지르고 이득을 볼 것인가?

 

 

 

사실, 이렇게 인물들의 태도를 규정하기에는 그들의 심적인 변화가 복잡하고 미묘하다.

파늘루 신부와 랑베르 기자는 나중에 심적 변화를 겪는 인물이며 보건대 활동을 돕게 된다.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가? 

아마 신부도, 의사도, 외지 사람도 아니며 열정적인 인물도, 범죄자도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서기 그랑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보잘것없는 그는 이 글의 서술자인 리유에 의해 매우 중요한 영웅으로 인정받는다.

 

'영웅적인 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러나 리유나 타루 이상으로 보건대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그 조용한 미덕의 실질적 대표자였다고 서술자는 평가한다.' 

 

<페스트_카뮈>

 

 

개인이 해야 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 묵묵히 해 나가는 것.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런 다음에, 서로 연대하며 선을 이루기 위해 함께하는 노력.  

그것이야말로 이 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긍정의 반응이 아닐까? 

 

 

"딴 사람들은 '페스트예요. 페스트를 이겨냈다고요' 하고 난리를 치죠. 좀 더 봐주다간 훈장이라도 달라고 할 판이죠.

그러나 페스트가 대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그뿐이죠."

 

<페스트_카뮈>

 

 

 

우리 곁에 늘 공존하고 있는 부조리들, 불행한 일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죽음까지도......

모두 인생이다. 바꿀 수도 없앨 수도 없는 것들.

 

아무리 리유와 그의 보건대 동료들이 연대하여 페스트와 투쟁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해도.

병의 사라짐과 동시에 타루는 결국 그 병으로 죽게 되고,

리유의 아내는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어찌 이것이 승리란 말인가?

 

영원한 승리, 결정적인 개선이란 있을 수 없는 일!

전염병은 또다시 올 것이고, 죽음은 우리를 옥죄고, 부조리는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유.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페스트_카뮈(타루의 말 중)>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고와 슬픔이 어찌할 수 없는 일임을.

또다시 느끼게 해주는 구절이다.

 

그러나 인생을 슬퍼하고 체념하기보다는, 카뮈의 긍정을 받아들이려 한다. 

주어진 인생 안에서 묵묵히 나의 일을 하고,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며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거창하진 않아도 악에 맞서 싸우는 것.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일. 그러나 할 수 있는 일.

이것을 하고 사는 것이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인 것 같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악. 코로나 19로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일이다.

 

 

 

 

 

 

 

 

 

<별글>

 

 


 

 

< 1 부 >

 

 

이 책은 주인공 뫼르소의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꽤 먼 거리의 요양원을 찾아가는 뫼르소. 어머니와의 특별한 추억이 없고, 어머니의 나이를 정확히 모르며, 굳이 시신을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뫼르소의 생각은, 어머니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내 탓이 아니다. 요양원을 선택한 것도 최선이었다는 생각이다.

 

다음 날, 해수욕장을 가기도 하며, 그곳에서 만난 직장 동료였던 마리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어머니의 죽음은 끝이났고, 직장도 나갈 것이며,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레몽과의 대화를 엿보면 그의 성격이나 생각을 알 수 있다. 

평이 좋지 않은 이웃 레몽이 친구가 되고 싶냐는 말에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한다.

둘의 대화 중, "별다른 생각은 없고 흥미롭기는 하다."  "그런 것 같다." "어찌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해는 된다"라는 식의 말을 하며,  레옹이 사창가를 가자고 했을 때는  "나는 그런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안 가겠다"라고 한다.

 

마리가 사랑하느냐고 묻자, "난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녀가 결혼을 하자고 했을 때, "사랑하는 것 같진 않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좋다"

마리가 결혼은 중대한 일이라고 하자,  뫼르소는 "나는 그렇지 않다" 라는 답을 한다.

 

회사 사장이 파리 출장소로 갈 생각이 있는지, 생활의 변화에 구미가 당기지 않냐고 물었을 때, "그렇기는 해도, 사실 나는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며, 어디든 나름대로 강점이 있고, 이곳 생활도 불편하지 않다"라고 하자, 사장은 그에게 언제나 제대로 대답하는 법이 없고 야망도 없어서 사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몰아친다.

 

 

 

그러나 책 중간중간 뫼르소의 성실함과 다정한 면도 읽힌다.

그날의 일을 열심히 하며, 개 잃은 살라마노 영감을 집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충고도 해 주는 등 인정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자, 이쯤에서 뫼르소의 성격과 성품 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가 느끼는 뫼르소는 어떤 사람인가?

(물론 책을 끝까지 읽은 후 나의 느낌이다. 왠지모를 연민이 느껴지며, 오히려 이런 성격이 부럽기 까지도 하다는 생각도 했다.)

 

1.자기 감정에 충실하고 / 2.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관계에 신경 쓰지 않으며 /

3. 말을 할 때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않는,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 / 4. 모든 일에는 중요한 것은 없고, 어찌되든 상관없고 / 5.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욕심이 없으며 / 6.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감

 

그러나 뫼르소를 잘 모르는 타인이 봤을 때는... 음 아마도... 

열정과 야망 없음. 매정함. 답답함. 융통성 없음. 개인주의 등으로 보일 듯하다.

 

 

 

이런 뫼르소는 질이 나쁜 레몽과, 뫼르소의 정부와 그녀의 오빠 그리고 아랍인들과 엮이게 된다.

우연히  소지하게 된 레몽의 권총. 홀로 산책. 또다시우연히  만난 아랍인.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 뜨거운 바람, 열을 쏟아내는 하늘, 칼을 겨누는 아랍인......

 

모든 것이 흔들리는 순간 방아쇠는 당겨진다. 그 후 네 발을 더 쏘며 뫼르소는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 2 부 >



 

2부에서는 심문받는 뫼르소와 공판의 과정 그리고 판결과 처형을 기다리는 뫼르소의 이야기이다.

 

능력 없는 변호사, 예심판사, 검사, 판사, 배심원, 기자들... 이들은 어머니의 장례식 때 보였던 뫼르소의 태도와  살인 후 죽은 시체를 향한 네 발의 총격에 집중한다.

 

그러나, 뫼르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하며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랑하고, 햇빛 때문에 네 번의 총격을 더 했다고 말한다. (변명이나 자신에게 유리한 말은 도무지 할 줄 모른다)

그러나, 종교, 신념, 도덕성, 관습 등을 중시하는 집단에게 뫼르소의 이러한 태도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2부를 읽으며 내내 답답했던 것은, 뫼르소의 재판임에도 뫼르소는 자신의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가만있어요. 그래야 일이 잘 풀립니다."라고 말하는 능력 없는 변호사.

 

어떻게 보면 사건이 나와 무관하게 다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참여도 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내 의견은 묻지도 않은 채 내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때로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 아니 도대체 누가 피고입니까? 피고가 중요한 겁니다. 나도 할 말이 있단 말입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선지, 살인을 해서 기소된 것인지 모를 재판은 끝이 나고, 뫼르소는 사형 판결을 받게 된다.

사형 집행 날을 기다리며 처음에는 우연과 행운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회심을 요구하는 사제에게 강렬하게 자신의 의견을 쏟아낸다.

 

" 내 생각은 옳았고, 여전히 옳고, 항상 옳다. 나른 이런 것을 했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지만 또 다른 일을 했다.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나는 이 모든 시간 동안 내 정당함이 인정될 저 새벽을 기다리며 살아온 셈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삶 내내, 내 미래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직 다가오지 않은 수년의 시간을 건너서 어두운 바람이 내게로 거슬러 왔다. 그 바람은 그보다 더 사실적일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내게 주어졌던 것들을 그만 그만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

 

뫼르소는 자신의 삶과 죽음에 확신이 있었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주위를 둘러싼 것은 모두 불확실하지만, 그 가운데서 하루하루 삶을 살아낸 그의 삶 자체에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었다.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이 상처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과 닮아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자신의 운명에 순응한다.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의 존재와 본질을.... 출생과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을 기쁘게 받아들인 것이다.)

 

 

 

< 왜 이방인일까? >

 

 

1부에서는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무관심 해 보이는 뫼르소의 태도에서 이방인을 엿볼 수 있었고,

2부에서는 뫼르소에게는 생소한 재판 과정과, 재판에 참여한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낯선 느낌이 뫼르소를 마치 이방인처럼

 

그리고 나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 뫼르소의 삶이 이방인 같은 삶이었다.

 

 

 

현실을 사는 우리는 다 이방인이 아닐까?

 

내 의지에 의해 태어나지 않은 낯선 세상. 내가 생각한 대로 살아지지 않고,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는 인생과, 다른 사람들의 판단 속에 진정한 나는 존재하지 않은 세상.

어차피 혼자 감당해내야만 하는 인생.

 

이런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산다면 그것을 누가 비방할 수 있겠는가? 설령 비방한다 한들 그게 어떻겠는가?

 

 

 

이 출판사의 책은 따로 해설이 없어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단편 소설이며 내용이 흥미로웠기 때문에 읽기에 어려운 책은 아니었지만, 몇 번을 다시 읽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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