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2004>


이 책은 가브리엘 루아의 네 편의 중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삼리웡, 그대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

한 나그네가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우두 골짜기

세상 끝의 정원

 

 

캐나다 서부 내륙의 넓은 평원지역에 정착한 소수민족, 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그들을 따스한 연민의 감정을 느끼며 바라본다.

 

모든 것의 결핍으로 도저히 살 수 없을 지경이 된 사람들.

알지도 못하는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 새로 인생을 시작하려는 그들에게는 

대단한 포부도 무시무시한 두려움도 공존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또 다른 고통과 어려움은 늘 줄지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각자의 방법으로

인생을 개척하고 살아나가는 

인간들의 연약함과 슬픔을 책을 읽으면서 끝없이 느꼈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에게서 소박하게 느껴지는 행복의 기운은 

더 슬프고 가엾다.

 

 

 

[세상 끝의 정원]

 

우크라이나에서 넓디넓은 캐나다 땅으로 이민 온 마르타.

몇 페이지 안 되는 이 소설 속에서 그녀의 삶을 돌아보기란 쉽지 않겠지만,

황량한 터에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생각해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살만하게 집을 갖추고,

힘든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산 세월들.

 

사랑스러웠던 자녀들은 살길을 찾아 떠나고

다정했던 남편은 활기를 잃어버린 채 무뚝뚝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녀가 견뎌낸 세월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인적 없던 벌판에 여러 종류의 꽃과 식물을 심음으로 그녀만의 정원을 만든다.

그리고 그 무수한 세월을 피고 지는 꽃들을 가꾸고 바라보며 견뎌낸다.

 

 

 

그녀는 여름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짧은 계절을 붙잡아 아름답게 꾸며서 그것이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그녀가 일생 동안 바친 모든 노력을 생각했다. 마치 여름에만 희망을 걸고, 있는 힘을 다해서 노력할 가치가 있다는 듯이......... 사실 그녀는 여름을 얼마나 소중히 해왔던가.

여름은 희망 못지않게, 젊음 못지않게 커다란 신비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세상 끝의 정원_가브리엘 루아> 중

 

 

 

그녀는 그 정원 안에 꽃들만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의 삶 그 자체를 가꾸어놓았던 것이다.

 

 

 

그녀는 적어도 곁에 거느린 자녀들과 매일같이 그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착한 남편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 그것들은 그녀를 위로해주는 것들이었다. 

 

<세상 끝의 정원_가브리엘 루아> 중

 

 

 

 

비길 데 없이 정성스럽게 가꾸었던 여름의 꽃들은 매서운 추위나 바람으로 몇 시간 만에 참혹한 모습을 하고 만다.

찬란했던 우리의 인생은 어느 순간 고통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잘 살아보지만 끝내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된다. 

 

그녀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불멸은 가능한가? 저 너머 세상에서 영혼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될까? 

초라하고 보잘것없었던 그녀의 삶은 이 세상 밖에서 받아들여 질까?

 

 

 

그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 바람이 가금 그녀를 기억해주고 이 고장을 더듬고 다니며 풀잎들을 흔들다가 그녀의 삶에 대하여 뭔가를 말해주기만 한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았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바람이 심심할 때면 그녀에게서 위안을 얻고 그녀는 또 그 떠도는 정령에게서 위안을 얻고..........

 

마르타는 두 손을 마주 잡았다. 한숨이 나왔다. 대기와 바람과 풀들의 이 겸허한 불멸에 그녀는 자신의 영혼을 맡겼다.

 

<세상 끝의 정원_가브리엘 루아> 중

 

 

 

 

췌장암을 앓고 있는 직장 동료의 동생.

암 소식을 접한 지 불과 6개월 조금 더 된 것 같은데

그동안 몰라보게 살이 빠졌고, 이제는 혼자 거동도 어렵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비관적으로 본다고 한다.

너무 고통스러워 호스피스 병동에 보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는 이야기를 어제 들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생을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그녀.........

 

말년에 암으로 투병했던 마르타의 삶 가운데서도

여름날의 화려함과 반짝거리는 순간이 있었듯이,

 

유독이 가족을 잘 챙겼다던 그녀의 생가운데도 그런 무수한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로 버티고 살아가는 우리가, 언젠가 삶을 떠나야 할 때,

 

그 찬란했을 여름날을 기억할 수 있기를.

그래서 대자연에 나를 맡기고 아쉬워하지 않기를.

잘 살았다고. 행복했노라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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