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에서 식사를 마친 후 계속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갔다.

예상치 못한 가파른 경사가 이어졌다. 오르막 끝쪽 주택가에서는 주차장이 구비된 고급 주택들도 볼 수 있었다.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마스크 안까지 번져오고, 하얀 꽃잎들이 눈처럼 나리기 시작했다. 아카시아 나무였다.

떨어지는 꽃잎들은 휘날리며 바닥에 소복이 떨어졌다. 장관이다.

오늘 종일 이 아카시아 나무와 꽃들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금 힘들다 싶으니 인왕산 둘레길인지 산책길인지 모를 이어진 길이 보인다.

여러 갈래길 중 우리는 더숲 초소 책방 쪽으로 가야 했다. 중간에 길을 좀 헤맸다.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어려움 없는 길들 이었지만 우리는 오랜만에 등산을 하는 느낌이었다.

 

 

 

 

무무 전망대

 

오른쪽 남산타워와, 희미하게 보이는 제2 롯데월드, 그 앞쪽으로 광화문 광장,  그 옆으로 경복궁까지

흐린날이지만 한눈에 보인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청와대 지붕도 솟아있다. 이렇게 다 모여있었구나. 

전망대 벤치에서 조금 쉬어갔다.

 

 

 

 

 

더숲 초소 책방 CAFE

 

1층 카운터 앞 쪽에 소박한 책방이 있다.

인왕산 등산이나 산책하시는 분들의 아지트일 듯 한 이 곳은 가족단위, 젊은 층, 연인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대부분 빵 메뉴 하나는 선택해서 먹고 있었는데 아마 베이커리도 맛있나 보다.

우리는 음료 두 잔을 주문하고, 카운터가 있는 1층은 자리가 마땅치 않아 3층 야외 테라스로 이동했다.

 

 

 

오, 여기가 좋다. 산 중턱에서 멋진 경치를 바라보며 차 한잔. 너무 낭만적이다.

우리가 고른 음료 아메리카노(4.9)와 바닐라빈(6.0)

 

낭만을 즐기며 몇 모금 마셨을 때 비가 한두 방울 머리를 적시다 이내 쏟아졌다.

이런, 파라솔이 있는 자리로 급하게 이동했다. 

 

 

더 낭만적인 상황 연출 중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산 중턱 cafe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경쾌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상황.

 

ㅎㅎ 역시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졌다.

다시 자리 이동. 이번에는 2층 자리다.

 

 

2층 창 곁에서 바라본 비내리는 풍경이 너무 좋다.

활짝 열린 창으로 들리는 빗소리, 비 냄새와 이 여유로움이 정말 행복했다.

 

 

이 건물은 청와대 경호를 위해 경찰초소로 이용되던 곳이었는데

2018년 인왕산 전면 개방에 따라 리모델링되어 지금처럼 이용된다고 한다.

'초소'라는 말에 더 와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는 조금 수그러든 듯했지만 계속 오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 청운 문학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청운문학 도서관

 

1층에서 책을 빌려, 2층 한옥 건물에서도 볼 수 있는 듯했는데, 지금은 코로나로 인원이 제한되고 있는 것 같았다. 

산 중턱에 한옥 건물로 지어진 도서관이라니!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 곳을 마음껏 이용하는 근처 주민들이 부럽기도 했다.

 

 

 

오늘 마지막 코스 윤동주 문학관으로 향했다. 길 아래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비를 머금은 빨간 지붕들이 참 예쁘다.

우산을 들고는 있었지만 내리막길이라 조금 편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윤동주 문학관이 보였다. 

 

먼저 시인의 언덕길을 올라가 보았다. 비가 오는데도 야외무대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대기실인 듯 한 천막과 분주하게 행사 준비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 그리고 쏟아지는 비 때문에 자유롭게 언덕을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아담하고 예쁜 동산이었다.

 

 

언덕 올라가는 길에 Cafe가 하나 있다.

 

별뜨락 카페

윤동주 문학관 제 2전시실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한다.

계획대로라면 이곳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가졌어야 했지만 실외 좌석이라 아쉽게도 쉬어가지는 못했다. 

 

 

 

 

윤동주 문학관

 

실내 촬영은 되지 않았다.

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들었다는 이 곳은 총 세개의 전시실로 되어있었다.

아담하지만 건물구조가 인상적이고 내용이 알찬 문학관이었다. 

 

마음이 여리고 아름다운 사람 윤동주. 그의 시를 읽으니 이내 마음이 아파왔다. 

 

<자화상>_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비는 밤까지 계속될 기세다.

주차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 걸었다. 

 

청와대 사랑채를 지나니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을 볼 수 있었다. 

길 건너는 진짜 청와대가 산을 배경으로 위엄있게 자리하고 있었다.

 

 

 

 

Cafe

PAUL BASSET

 

주차장 들어가기 전 TAKE OUT~~

한 달에 한 번, 무료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U+멤버 할인 이용 중이다.

콜드 브루(4.7), 콜드브루 라테(5.3)를 무료로.

이 곳은 아메리카노뿐 아니라 다른 메뉴 몇 가지를 더 선택할 수 있어 좋다. 

 

오늘 종일 나들이는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체력적으로는 좀 무리였다.

많이 걸었고, 우리에겐  등산에 가까운 오르막이었고, 비가 많이 와서인 듯했다.

다음 날까지 몸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화려한 계절 오월에 비 내리는 거리를 종일 걸으며 낭만적인 서울 거리를 언제 다시 돌아다니겠나.

사위에 산의 기운을 느끼며 Cafe에 앉아 비에 젖은 초목의 풍경을 또 언제 바라보겠나.

무성한 아카시아 나무에서 아름다운 향기 외에는 아무 소리 없이 내리는 하얀 꽃잎들을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오늘 이 여행은 손에 꼽히는 멋진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이런 일상들이 나에게 삶에 의욕과 의지를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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