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길로 가다 / 박노해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일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군 입대한 아들이 너무 그립다.

자대 배치마저도 제일 열악하다는 최전방 사단으로 받게 되었다.

 

최악의 시간은 짧게 끝나길

절정의 시간은 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것은 인간의 욕심일 거다.

 

아들의 혹독한 군 시계는 빨리 흘러가기를

딸의 대학 새내기 시간은 더디 가기를

 

그 둘을 동시에 바라야 하는 나는, 모순 투성이다.

 

좋은 것도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것도 나쁜 게 아니라면

다 돌고 돌아 지나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억울할 것도, 분노할 것도, 속상할 것도 없다.

 

 

한결같이 인간됨을 잃지 말자.

둥그렇게 돌아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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