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시집 같은 작고 얇은 검은 표지. 그 위에 둘러진 노오란 띠지가 마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처럼 느껴진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이 수록되어 있다. 한 권의 책으로 접하는 강연문은 또 다른 감동이다. 이를 시작으로 몇 편의 시와 산문, 화단을 가꾸며 쓴 일기와 사진들이 이어진다.
이 산문집을 읽는 것은 한강이라는 작가를 개인적으로 더 알아가는 일이었다. 하나의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그녀가 생각하고 겪었던 일들을 엿보, 그녀의 일상 곁을 기웃거리는 경험이었다.
(54)
쓴다...... 쓴다.
울면서 쓴다.
(55)
지극한 사랑에서 고통이 나오고, 그 고통은 사랑을 증거하는 걸까?
(76)
우리는 우리 키와 체중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
해가들지 않는 북향정원. 작고 소박한 그 정원을 가꾸며 그녀는 빛을 관찰한다. 해가 들지 않는 음지이지만, 거울에 반사되는 빛이라도 머물게 하고 싶어 거울을 사고 또 산다. 변화하는 빛을 포착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울의 위치를 달리한다.
(96)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 그 빛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잎들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꽃들이 서서히 열린다.
(97)
이 일이 나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을 지난 삼 년 동안 서서히 감각해 왔다. 이 작은 장소의 온화함이 침묵하며 나를 안아주는 동안, 매일, 매 순간, 매 계절 변화하는 빛의 리듬으로.
꺽이고 어둡고 차가운 곳, 소외된 곳에 빛을 건네려 애쓰는 그녀의 모습은 곧 그녀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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