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포세의 소설 멜랑콜리아 1,2
전에 읽었던 욘 포세 소설들의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500 페이지 이상되는 이 책의 두께가 심히 부담스러웠다.
다행히도 그의 소설, [보트하우스]에서 불안으로 우울감에 깊이 빠진 주인공을 경험해 보아서 이 책을 읽는 데 그나마 수월했던 것 같다. 완독까지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고 깊이 생각해야 할 어려운 문장도 별로 없었지만, 우울과 정신이상 (1부), 치매 (2부)를 가진 인물의 반복되는 내면의 소리를 읽어내는 것이 지리하기도 힘들기도 하였다.
책 표지 그림은 노르웨이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그림, <보르그외위섬>이다.
이 풍경화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비롭다. 바위섬들을 희미하게 가린 낮게 깔린 거대한 구름들. 그 뒤로 무언가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주 희미한 빛은 그 신호인 듯 신비롭다.
1부
1991년 늦가을 저녁, 오사네 :
p 345. 그는 라스헤르테르비그가 그린 구름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비밀스러운 본성을 예술의 형대로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노르웨이 교회의 사제와 만나기 위해 어둠 속의 빗길을 걸었다.
삼십 대 중반의 작가 비드메. 그는 오슬로 국립미술관에서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그림을 본 후 충격을 받고 화가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소설 속 작가 비드메의 경험이 욘 포세 자신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재능이 남달란던 헤르테르비그는, 순트의 후원으로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서 한스 구데라는 저명한 화가의 지도를 받게 된다. 그의 우울한 기질, 비천한 집안 출신, 실력에 대한 불안감, 독특한 성격, 그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동료들과 잘 지내지 못했고 큰 상처를 받는다. 결국 우울감을 넘어 정신병에 걸리게 되고 병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1853년 늦가을 오후, 뒤셀도르프 :
p 16. 만약 한스 구데가 나더러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사람, 그림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림을 더 그릴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고, 다시 화가 지망생으로 살아가야 한다. 나는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 내고 싶다. 나처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없다.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다른 학생들은 그림을 못 그린다. 그들은 그저 가만히 서서 고개를 끄덕이고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짓거나 크게 웃음을 터뜨릴 뿐이다. 그들은 그림을 못 그린다.
후원자가 사준 멋진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을 난생처음 입어봤을 화가는, 낯선 곳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성공을 꿈꾸지만 녹록지 않다. 현실을 부정해 보고, 남 탓도 해보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멈추질 않는다. 그를 둘러싼 불안은 희고 검은 천으로 묘사된다.
p 75. 희고 검은 천 (.....) 그것은 단지 바라볼 뿐이다. 그것은 쉴 새 없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내 주위를 빙빙 돌고 있다. 그것은 내게 바짝 다가왔다가 팔 하나의 거리를 두고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움직였다. 그것을 향해 말해 봐야 소용없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 다가오면 나는 그것을 향해 말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은 할 수 없다.
거미줄에 걸리고 그물에 갇힌 듯 헤어 나오기 어려운 그 희고 검은 천은 그를 억압하고 짓누른다. 이런 상황은 북유럽 멜랑콜리한 어느 화가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출신과 배경들, 개인의 성향, 현재의 상황, 타인의 승승장구,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세상의 부조리 등으로 불안하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1856년 크리스마스이브 아침, 가우스타 정신병원 :
가엾게도 화가는 어떤 회복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곳에서도 그는 괴짜였고 보호사들과 다른 환자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그렇지만 그의 내면의 소리는 그림에 대한 희망을 계속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 끈질긴 고집이 그를 구렁텅이로 빠지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포기할 수도 없는 꿈. 헛된 희망들.
p 258. 나는 차분해져야 한다. 나는 내면에서 반짝이는 빛이 되어야 한다. 나는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빛이 되어야 한다. (.....) 세상일과 갖가지 의미들을 지우고, 내면에서 반짝이는 빛, 구름 사이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빛, 내 눈에 보이는 빛과 함께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아무도 그릴 수 없는 훌륭한 그림을. 나는 내면에 빛을 간직한 채 아버지 곁에 앉아 있을 것이다.
p 334. 나는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자주 그렸다. 빛을 머금은 하늘. 구름이 떠 있는 하늘. 나는 그녀의 그림을 그릴 것이다. 빛 속에서. 구름이 떠 있는 하늘 속에서.
2부
2부에서는 가상의 인물 올리네가 헤르테르비그의 누이로 등장한다. 그녀는 치매를 앓고 있다. 주변의 가까운 인물들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그녀는 배고픔과 배설에 대한 전쟁을 벌이며 하루하루 지낸다. 아픈 다리를 무릅쓰고 생선을 얻기 위해, 볼 일을 보기 위해 고군 분투하는 그녀의 모습은 처참하다. 그런 그녀에게 동생 헤르테르비그에 대한 기억은 문득문득 떠오른다.
1902년 초가을, 스타방에르 :
p. 411 나는 몸을 일으켜 하늘을 쳐다보았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검푸른 바다에 하얀 파도가 넘실거렸다. 나는 라스가 하늘 같다고, 바다 같다고 생각했다. 항상 변하는 사람. 밝음에서 어둠으로, 흰색에서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라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바다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p. 417 거뭇거뭇하고 어두운 그림은 어둠에 빠져 있는 라스였던 것이다. 그것은 어둠이었다. 생명을 머금은 어둠, 빛을 발하는 어둠이라고 해야 할까.
화장실에서 홀로 죽어간 그녀 곁에 남아 있었던 것은 그날 구한 생선의 눈알 그리고 평온한 빛뿐이었다.
초라하고 슬프다.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불안과 늙음 그리고 죽음이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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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테르비그의 소설을 쓰고자 했던 비드메 역시 우울한 사람이었다.
그 역시 우울감에서 벗어나 빛의 존재를 발견하기 위해 빗속을 헤쳐 사제를 만났고, 보르그외위섬을 찾았고, 펜을 들지 않았을까. 그러나 사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주지 못했고, 섬은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고, 소설은 시작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저 신의 자비를 바랄 뿐. 결국,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신의 자비를 바란다.
스웨덴 한림원은 욘 포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유를 "그의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다."라고 했다. 우울감과 정신병을 가진 한 개인의 생각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짐작할 뿐. 누구도 치매에 걸린 노인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 그저 말도 안 되는 행동과 말만 한다고 안타까워할 뿐.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 목소리를 부여해 표현하는 작가의 문장들은 고통스럽다. 한강 작가의 세심하고 현실적인 표현들을 읽으며 고통받았던 경험과는 다르지만, 이 역시 고통스럽다.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작품들은 사후 재발굴 되었고 그는 노르웨이 풍경화가로써 알려지게 된다. 그렇다면, 그가 생전 꾸었던 희망은 헛된 희망이 아니었던 걸까? 가난하고 불행한 인생을 살다 죽음 이후 유명해진 빈센트 반 고흐와 이중섭의 꿈은 이루어진 걸까?
거리를 두고 떨어져 타인의 시선으로 본다면, 누군가 집착하고 있는 어떤 일들도 때로는 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현생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 그것이 최선이었다면,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라면,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면,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
의도대로 되지 않는 삶을 통과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신의 자비를 바랄 뿐, 운이 좋기를 바랄 뿐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움과 빛이 있는 종교를 많은 사람들이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어떤 회복도 치유의 방법도 제시되지 않은 멜랑콜리한 소설이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희미한 빛 한 줄기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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