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힐 리조트

 

 

새벽에 에어컨을 끄고 잤는데도 이불을 끌어당겼다. 밤공기가 다르다. 오랜만에 이불을 덮고 자니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는 주방 테이블에 쌓여있는 아침거리들을 포기하고 늘어지게 뒹굴었다.

 

11시 체크아웃 시간이 가까울 무렵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메이힐 리조트에서 내다보이는 창밖 풍경이 낯설었다.

압도적인 산 아래로 비를 맞으며 간간히 자동차들이 지나다녔다.

 

오늘의 일정은 병방치 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 한반도 지형을 본 후, 정선 아리랑시장에서 콧등 치기 국수 먹기, 아우라지에서 돌다리와 출렁다리를 밟아 보고, 나전역 카페에서 커피 한잔, 어둑해질 즈음 집으로 향해 오다 덕평휴게소에 들러 '별빛 우주정원'을 관람하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 있었다. 완벽했다.

 

그러나 시장 국수 먹기는 여행 전부터 못 가리라 생각했었고, 어제부터 멀미로 고생한 딸, 잠깐의 소나기 후 쨍쨍한 햇살은 아우라지행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것들을 포기한다면 별빛정원을 볼 수 있는 밤이 되기 전 집에 도착하게 될터다. 계획이란 꼭 지켜지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로운 마음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과감히 동선을 최소화했다.

 

 

 

 

병방치 스카이워크

 

 

해발 583m 절벽 위에 마련된 이 전망대는 한반도 모양의 지형을 볼 수 있어 유명한 곳이다.

 

어제의 고요하고 여유로웠던 여행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알고 보니, 아리힐스 리조트는 스카이워크 외에도 글램핑, 짚 와이어, 래프팅, 산악 바이크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티켓팅을 하고 시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운동과 레포츠를 즐기지 않는 우리로서는 놀라웠다.

 

 

스카이워크를 걸어보기 위해 2,000(성인) 원의 입장료를 지불했다.

투명한 유리를 밟고 절벽 끝에 서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아찔했고, 강 흐름의 차이로 생겨난 한반도 모양 지형이 매우 독특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

나비처럼 춤추는 카메라 시선에 담긴 뉴질랜드의 끝없는 산들과, 아래로 흐르는 강의 흐름.

그리고 나직하게 말하는 인우(이병헌)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은 말했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스카이워크는 너무 짧았다.

거꾸로 된 U자형의 투명 유리를 걷고 몇 장의 사진을 간직하고 나오는데 십 분이 채 안 걸릴 정도였으니.......

관광객이 적었다면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남기며 여유롭게 감상했겠지만, 유리 보호를 위해 덧신을 신은 사람들의 발이 어지럽게 엉켰다.

 

놀라운 지형을 본 것에 만족하며 금세 복잡한 장소를 빠져나왔다.

 

 

 

 

성마령 가든

 

 

빈속이라 출출했다. 

번잡한 아우라지 시장 대신, 눈에 띄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신을 벗고 들어서니 식당 문 앞 자리에서 한 팀이 식사 중이었고 다른 손님은 없었다. 우리는 방으로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이나 수저, 내부 분위기가 깔끔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든든하게 곤드레 정식을 먹으면 좋겠지만 모두 부담스럽지 않은 시원한 음식을 원했다.

 

 

 

단출한 반찬과 함께 나온 평범해 보이는 막국수는 한 입 먹는 순간 반전의 맛을 선사했다.

시원하고 새콤 달콤한 육수와 그 속에 담겨 어우러진 쫄깃쫄깃한 면은 정말 최고였다.

 

 

 

 

나전역 Cafe 

 

 

디저트와 관람을 책임질 나전역으로 향했다. 정선역과 아우라지역의 사이에 있는 간이역.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역을 감각적인 카페로 개조한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민트색으로 치장한 문으로 입장했다.

 

 

 

석탄산업 쇠퇴 이후 2011년 무정차 역이 되었지만, 2015년부터 정선 아리랑 열차가 운행을 재개하면서 실제로 기차가 정차하는 간이역이라 한다. 처음엔 폐역인 줄 알았다.

 

 

 

 

대합실을 예쁘게 꾸민 공간에 어느 정도 사람들이 차 있었지만, 코너를 돌면 있는 넓은 테이블을 운 좋게 차지할 수 있었다. 카페 구경을 하다 보니 정성스럽고 세심한 인테리어와 소품들이 인상적이었다. 역무원 옷을 입고 사진도 찍어볼 수 있다.

 

 

 

카운터 앞, 오래된 역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키오스크에서 주문했다. 다양한 음료가 있었고 젤라토 아이스크림 사진은 곳곳에 걸려 있었다. 

 

나는 나전역 크림 커피, 남편은 블루베리 스무디, 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한쪽 코너에 머그잔과 시계 등 몇 가지 물건을 전시 판매하고 있었고, 나전역 문방구에서는 옛날 과자 등 익숙한 군것질들도 살 수 있었다. 마치 추억의 박물관에 온 듯 설레는 느낌마저 들었다.

 

 

 

무료로 제공하는 엽서와 명함 등이 예쁘다. 작은 것들은 책갈피용으로 넉넉히 챙겼다.

 

 

 

시그니처인 나전역 크림 커피는 3단 커피다. 우유 위에 에스프레소, 그 위를 덮은 곤드레 크림이 독특하다.

빨대를 이용하지 말고 첫 모금에 크림의 달콤함, 다음엔 샷의 은은함, 마지막으로 우유의 깔끔함을 느끼며 마시라는 안내가 있었다. 당부대로 마시니 정말 맛있다.

 

좀 더 그렇게 마실걸...... 너무 빨리 섞어 빨대를 이용했다. 

 

 

 

타는 곳으로 나가보니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형이 정겹다.

지금은 보기 힘든 문방구 앞 게임기와, 낡아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피아노도 추억을 부른다.

 

 

 

뒤편으로는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어 더운 날에도 사람들이 오고 갔다.

딸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남편과 나의 모습을 즉석 사진에 담아 주었다. 

장소와 어울리는 사진이다.

 

많은 일정이 생략되었지만 충분히 재미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3~4시간은 족히 가야 한다.

 

별빛 정원에 들리는 대신 안흥 손 찐빵 가게로 들어섰다.

 

 

 

냉동해 보관할 생각으로 식은 찐빵 20개를 만원을 주고 구입하니, 김이 나는 찐빵을 비닐봉지에 색별로 하나씩 담아주셨다. 통팥이 살아 있는 찐빵은 맛있었다.

 

늘 그렇듯 여행 계획과 운전 담당인 남편의 수고,

세대차이나는 부모와 함께 선뜻 여행을 나서 준 딸,

모든 여행에 의미를 주고 행복해하는 나,

 

우리의 여름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이박 삼일의 휴가는 내일부터다. 아들의 휴가가 8월 중에는 있을 것 같다. 기대되고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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