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벚꽃이 오래 머무는 느낌이다.
한동안 올랐던 기온에 서둘러 피어나더니, 곧 비바람을 만나 이제 끝이려니 했었다.
그러나 그 모진 시간을 견디고, 꽃들은 자기만의 속도로 천천히 꽃잎을 내리고 있다.
이제야 만개한 다른 지역은 아쉬움에 머물던 상춘객들을 다시 불러 모은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차창 밖으로 군데군데 보이는 하얗고 커다란 벚나무들이 여전히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고궁의 풍경은 더없이 다채롭다. 지는 꽃과 아직 건재한 꽃, 그리고 새로 피어나는 꽃들이 우아한 소나무와 연초록 나무들 사이에서 서로의 시간을 포개며 어우러진다.
아름다운 꽃잎이 흩날리는 풍경은 눈이 부시다.
맑고 화창한 날, 햇빛을 받으면 그 장면은 더욱 환상적으로 빛난다.
잠시, 아주 잠시 머무는 것들.
그 짧은 시간은
나무에게도, 사람에게도
슬프도록 소중하다.

하지만 꽃잎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 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기억하고, 다음 해를 기다린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무는 더 단단해지고, 더 깊은 뿌리로 더 환한 꽃을 피워낸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피어나는 순간도, 흩날리는 순간도, 잎을 떨군 고요한 계절까지도 다, 그 나무의 시간이다.
최은영의 소설 <밝은 밤>을 다시 꺼내 읽었다.
p. 337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 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입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내게서 버려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도.
그 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종종 눈을 감고 어린 언니와 나를 만난다. 그 애들의 손을 잡아 보기도 하고 해가 지는 놀이터 벤치에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학교에 갈 채비를 하던 열 살의 나에게도, 철봉에 매달려 울음을 참던 중학생의 나에게도, 나를 함부로 대하는 배우자를 용인했던 나와 그런 나를 용서할 수 없어 스스로를 공격하기 바빴던 나에게도 다가가서 귀를 기울인다.
나야. 듣고 있어.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줘.
결국,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나일 수밖에 없다.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내 삶을 외면하지 않으며,
체념 대신 끝까지 나를 보듬어 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둠을 지나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구름 사이로 햇빛 한 줄기가 내려오듯,
그런 마음이 스며드는 순간
별것 아닌 일들조차
문득, 깊은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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